〈 65화 〉각성(4)
고아원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영웅과 마인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여파로 근처에 폭음이 울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몸을 진정시키며, 이도영은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후, 고아원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도달한 이도영이 고개를 숙이고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신체단련은 꾸준히 했다고는 하나, 역시 계속해서 달린 탓인지, 아니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몸의 한계인지, 가빠지기 시작한 호흡을 필사적으로 정돈한 이도영이 고아원을 바라보았다.
“아….”
가히 흉가로 보일만한 몰골. 평소 왔을 때의 익숙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처참히 파괴된 건물의 모습에 순간 이도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정신을 차린 이도영이 고아원 안으로 달려들었다. 처참히 박살난 문짝 덕에,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그다지 기쁜 사실은 아니었지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비릿한 혈향이 이도영의 콧속을 가득 채웠다. 그 불길한 냄새에 이도영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다. 빠르게 발을 놀려 이도영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이도영을 알아본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도영이 형!”
“흐아앙!”
삽시간에 울음소리로 가득 찬 장내를 본 이도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달랜 뒤, 이도영이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다친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럼 이 피 냄새는 대체?’
그 의문의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전부 무사했지만, 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보육교사들은 전부 퇴근했겠지만, 고아원 내에서 생활하는 원장이 보이지않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을 의미했다.
“원장님은 어디 계셔?”
불안함을 숨긴 채,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한 이도영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은 아이들이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이도영이 얼굴을 딱딱히 굳힌 순간이었다.
“나 여기 있다, 이놈아.”
걸걸한 목소리로 이도영을 부른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목소리에 이도영이 화색을 띠기도 잠시, 이내 원장의 처참한 몰골이 시야에 들어왔다.
“원장님!”
“시끄러, 인마. 아직 귀 안 먹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연한 말투로 너스레를 떤 원장이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히도출혈은 이미 멎은 듯,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마인이 습격해왔다.”
뻣뻣하게 굳은 이도영의 얼굴을 본 원장이 말을 이었다.
“내가 예전에 말했지? 왜 영웅질을 관두게 됐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이야기는 이도영이 영웅을 지망하게 된 계기였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을 본 원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굴을 보니까 내가 그때 놓쳤던 그놈이더라고. 여태까지 살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마인의 경우, 악마에게서 자신에게는 과분한 힘을 얻은 대가로, 영혼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힘을 사용하는 빈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십 년을 버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렇기에 이미 미쳐 날뛰다가 토벌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 원장이 얼굴을 굳혔다.
“내 팔뚝을 날려 먹고도 만족을 못 했는지. 복수하러 왔다고 하더구나.”
“그럼…원장님이 물리치신 거에요?”
“미쳤냐?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놈을 쓰러뜨려?”
그렇게 말하며 의수가 달린 오른팔을 내밀어보인 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누가 화살로 그놈을 유인해 준 덕에 살았다. 아마 이 근처에 있던영웅이었겠지.”
그러니까 지금쯤 영웅에게 토벌 당했을 거라며 원장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도영은 웃을 수 없었다. 고아원으로 오라던 메시지. 그리고 현재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아. 마인을 유인한 도구.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인이 어디, 어디로 갔어요?”
“뭐야? 왜 그래?”
갑작스러운 이도영의 반응에 원장이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기도 잠시, 하얗게 질린 이도영의 얼굴을 본원장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설마 아는 사람이냐?”
“제 친구일 거에요!”
다급하게 내뱉은 이도영의 대답을 들은 원장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기도 잠시, 이도영을 묵묵히 바라본 원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지 마라. 개죽음이야.”
“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이도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은퇴했다지만, 사관학교 신입생한테도 밀릴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순식간에 당했어.”
“그러니까 더욱 빨리 가봐야…!”
“어차피 네가 가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아직 나도 이기지 못하는 놈이, 그놈한테 가봤자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순간 입을 닫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도영을 바라본 원장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마인이 오기 전에 대피하는 게맞다. 네 말대로라면 곧 그놈이 되돌아올지도….”
“아니요. 저는 가봐야겠어요.”
“뭐…?”
당황한 원장을 이도영이 차분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 진지한 분위기에 원장이 입을 닫고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원장님이 예전에 말했잖아요. 영웅이 도망치면 누가 싸우냐고.”
그 말을 들은 원장이 얼굴을 굳혔다.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기도 잠시, 이도영의 눈빛을 본 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불효자식 같으니. 사관학교 때도 그러더니, 한번을 안 지는구나.”
그렇게 말한 원장이 손을 들어 야산을 가리켰다. 그 동작을 본 이도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이도영을 본 원장이 한 마디를 더했다.
“하나만 약속해라. 꼭 살아서 돌아와라.”
“…네.”
묵묵히 고개를 돌린 이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이내 고아원을 나갔다. 멀어지는 이도영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 원장이 이내 몸을 일으키고 아이들과 대피를 시작했다.
*
-쾅!
야산에 오르고 얼마 후, 정신없이 달리는 이도영의 귓가에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이도영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긴지 얼마 뒤, 처참하게 망가진 폐허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처참한 상태에 시선을 내린 순간, 바닥에 남은 붉은 혈흔이 이도영의 눈에 비쳤다.
“….”
근처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듯, 이리저리 박살난 공간. 공간 안을 가득 채운 마기가 전신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이도영은 서클이격렬하게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기를 전부 정화해버리겠다는 듯, 폭력적으로 회전한서클이 이내 전신을 마력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몸에 가득 들이찬 마력은, 이내 달리기로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몰아쉬던 숨이 금세 진정되고, 안정을 찾은 이도영이 고개를 들었다. 마인이 이동한 방향에 자취처럼 남아있는 마기가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마력이 불어난 몸 상태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강해졌으니 좋은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이 고개를 들었다.
“저긴가.”
작게 중얼거린 이도영이 마기의 자취를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얼마 뒤, 점점 짙어지는 마기에 이도영이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전투의 여파로 생겨난 넓은 공터에 도달한 순간, 이도영의 귓가에 고통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헉….”
익숙한 목소리. 시아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돌리자, 만신창이가 된 채 마인에게 목을 잡혀 매달린유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쥐새끼 같은 년. 드디어 잡았다.”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 마인이 유시아의 몸을 이도영이 있는 쪽으로 집어 던졌다. 허공을 날아간 유시아의 몸이 그대로 나무에 부딪혔다. 콰드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유시아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불청객이 하나 더 있는 모양인데.”
그 충격적인 광경에 멍하니 굳어있기도 잠시, 이내 마인이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이도영의 모습을 훑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한 마인이 히죽 웃었다.
“흐음, 아무래도 친구인 모양이네? 아니면 애인이라던가.”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이도영이 시아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마인이 웃음지었다.
“시아야…!”
빠르게 유시아의 상처를 확인한 이도영이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급소는 다치지 않았지만, 전신이 생채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이도영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오른쪽 다리에 두꺼운 나무토막이 박혀,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이도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에 정신을 차린 듯, 흐릿한 눈으로 이도영을 바라본 유시아가 입을 열었다.
“씹새끼…. 존나 늦게 오네.”
그 말을 마친 유시아가 격렬하게 기침을 내뱉었다. 마기 탓인지, 호흡을 제대로 잇지 못하던 유시아가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 모습을본 이도영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순간이었다.
“오늘은 참 기분이 더러워. 기껏 복수하러 왔는데, 끝장을 내기도 전에 날파리가 날아들어서 방해하고 말이야.”
이도영을 바라보며, 마인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날파리. 유시아를 뜻하는 것이 틀림없는 단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도영의 머릿속에 분노가 밀려왔다.
“그래도 뭐, 저 날파리는 꽤 잡는 재미는 있었어.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인의 말을 들을수록, 커져가는 감정에 비례해 서클의 회전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기를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듯, 몸 안의 마력이 광분하듯 날뛰었다. 그 순간, 이도영의 머릿속에 이 이상 나아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건…위험해.’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댐처럼,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막고 있던 것이 부숴질 것만 같았다. 본능적으로 느낀 위기감에 서클의 움직임이 느려지려던 순간이었다.
“뭐, 너는 그리 강해보이진 않지만 상관은 없어. 네 앞에서 저 년을 괴롭히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거든. 예를 들어, 팔이라도 자른다던가?”
아, 팔은 이미 한 번 잘라봤는데. 또 자르기는 재미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한 마인이 손가락을 들어 쓰러진 유시아를 가리켰다. 그 말을 이해한 순간, 이도영의 머릿속에 있던 위기감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술에 취한 채, 잘린팔을 내려다보던 원장의 눈빛이, 시아의 얼굴과 겹쳐졌다. 시아가 팔을 잃을 뻔했다던 영웅의 말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위기감을 잡아먹은 분노는, 이내 이도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극도로 강해진 감정에 눈에 실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그 감정에 호응하듯, 서클이 회전하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서클에 회전에 의한 어마어마한 마력이 이도영의 전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회전 속도가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이도영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막고 있던 벽이, 결국 무너졌다.
검녹색이었던 이도영의 머리카락이, 완연한 녹색의 빛을 띠었다. 여태까지 전혀 말을 듣지 않던 마력이, 마치 순한 양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예전엔 꿈도 꿀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마력이 손짓 하나하나에 충실하게 따라 움직였다. 그 압도적인 전능감에 이도영이 정신을 빼앗긴 순간, 마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 갑자기 머리카락 색이 바뀌었네? 흐음, 꽤 신기….”
-콰아아아앙!
마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도영이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마인의 몸을 압도적인 마력이 그대로 덮쳤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력 덩어리. 그 원초적인 폭력에, 어마어마한 물리량에 노출된 마인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한참 허공을 체류하던 마인이 정신을 차린 듯 한 바퀴 회전한 뒤 땅에 내려앉았다. 이내 자세를 되돌린 마인이 입을 열었다.
“너, 이 새끼. 갑자기 기습을….”
사납게 이도영을 보며 으르렁거리던 마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도영의 주위가 전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여태까지 마법 수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도영이 유일하게 수련했던 마법, 매직 미사일. 마인에게 겨냥된 수백 발의 매직미사일이 이도영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순간 말을 잃은 마인을 보며, 이도영이 차갑게 읊조렸다.
“죽어.”
그 말을 내뱉은 직후, 매직 미사일의 군집이 마인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