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계약(1)
“…커헉!”
정신이 들자마자 속에서 느껴진 불쾌감에 기침을 내뱉었다. 마치 염증이라도 생긴 듯, 계속해서 밀려오는 따끔따끔한 감각이 신경을 자극했다. 그 통증에 눈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기절하기 직전의 통증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했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아프다고?’
얼마 전, 마기를 소량 흡입했을 때보다도 훨씬 경미한 통증.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에 비하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통증에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가물가물한 시야가 점차 또렷해지고, 시야에 비친 광경을 보자 이내 의문이 해결되었다.
‘그래도 제대로 각성하긴 한 모양이네.’
몰려오는 안도감에 호흡을 한 번 들이킨 순간, 갑작스레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청량감에 숨을 멈췄다. 통증조차 무뎌질 정도로 강렬한 감각에 순간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 압도적인 감각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어떻게든 쾌감을 흘려넘기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
비명을 내지른 이도영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나가 방출되었다. 급속도로 진해지는 주위의 마나 농도 덕에 느껴지는 청량감이 더욱 강해졌다. 그 쾌감에 취하기도 잠시, 이내 시선에 잡힌 마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 새끼,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분명 원작에서는 이도영이 각성하자마자 쓸려나가는 잡몹 역할이었을 텐데, 지금 꼬라지를 보니 잡몹은커녕 열심히 맞다이를 뜨고 있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야?
원작의 묘사를 보면, 이도영의 근처에 간 마인은 즉시 힘이 대폭 약화된다. 그리고 마인이 된 지 오래되어 육체에 마기가 진득하게 배어 있다면 심지어 몸이 녹아버릴 수도 있다.
‘근데 저 새끼는 멀쩡하단 말이야.’
수십 년 전부터 마인이었던 걸 고려하면, 몸뚱아리는 마기에 아주 절임이 되었을 테고. 아니, 애초에 저 마인한테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원작에서는 저리 정신이 멀쩡한 놈이 아니었거든. 뭐, 지금도 마인인 이상 멀쩡한 놈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예 맛이 간 놈이었으니까.
‘저 새끼는 대체 어떻게 아직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냐?’
마인은 결국 악마와 계약한 탓에 분에 넘치는 힘을 다루는 존재. 자신의 한계를 넘은 과분한 힘은 서서히 사용자의 영혼을 붕괴시킨다. 그런데 저 새끼는 멀쩡하단 말이야. 마기를 다루는 걸 보니 마인이 아닌 건 아닌데. 의문이 피어오른 순간, 머릿속에서 헤르메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계의 힘이다.]
“이계의 힘?”
[저 마인이 마기를 다루는 방식 말이다.]
마치 내 의문에 대답하듯 전해진 헤르메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계의 힘이라고? 벌써? 아직 게이트가 열리기는 한참 남지 않았나? 그러기도 잠시, 이내 전투를 재개한 이도영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아무래도 망한 것 같은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도영이 마인을 쓰러뜨리자마자 엘릭서를 먹일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엘릭서는 내가 처음 활을 쐈던 곳에 두고 왔으니 한참 멀리 있고, 애초에 이도영은 지금 마인을 쓰러뜨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것보다 저 새끼 괜찮은 건 맞아? 어째 꼬라지 보면 마인보다 쟤가 더 마인 같은데? 멍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는 이도영의 모습에 순간 불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에 대답하듯 머릿속에서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마인을 쓰러뜨리고 엘릭서를 먹이지 않으면 위험할 게다. 이미 권능이 영혼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 같으니.]
이런 미친.
그건 안 되지. 내가 뭐 때문에 개고생을 했는데. 한 마디 욕설을 내뱉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아악!”
다리에 체중을 실은 순간 밀려온 강렬한 통증에 비명을내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다리에 구멍 뚫렸지. 방금 전 움직임 탓에 상처가 벌어졌는지, 상처에서 다시 울컥울컥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팔을 뻗어 근처에 떨어뜨린 활을 주워들었다.
그래도 일어난 덕분에 활은 주웠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은 개뿔.
“아, 돌겠네.”
이도영이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쌩쌩하게 날뛰는 마인의 모습에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아니, 저건 또 어떻게 잡냐? 미치겠네, 진짜.
그 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확실히 저 힘의 원리를 알겠구나.]
‘뭔 소리야?’
뜬금없는 헤르메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잠시, 이내 헤르메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 마인이 다루는 힘의 중심지는 복부다. 정확히는 하복부지. 그곳에 있는 근원을 중심으로 마기를통제하고 있다.]
“…즉, 그 근원을 파괴하면 저렇게 날뛰진 못한다, 이거에요?”
[그래. 바로 그거다.]
아니, 그런 약점이 있었는데 안 말하고 여태 뭐했던 거냐? 순간 어이가없어 입을 꾹 다물자 헤르메스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저 자가 저 힘을 다루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가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게다!]
“아…네.”
뭘 그렇게까지 당황하고 그러냐. 사람 뻘쭘하게. 괜히 어색해진 기분에 슬쩍 고개를 끄덕인 뒤, 마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콰아앙!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이도영과 마인이 한 번 더 격돌했다.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격돌의 여파로 으스러진 마인의 손에서 사방으로 혈액이 튀었다. 얼마 후, 팔을 재생한 마인이 웃음을 흘리며 이도영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와, 미친 새끼.”
그 모습에서 느껴진 광기에 순간 질린 감정이 들었다. 감상도 잠시, 화살을 활시위에 매긴 후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하복부, 내가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한 덕에 이쪽을 경계하지 않고 있을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한 발 만에 꿰뚫어야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눈으로 마인의 움직임을 좇았다. 정확히 한 발, 실패하면 끝이다. 그리고 얼마 후, 기회가 찾아왔다.
-퍼어엉!
“하, 이제 그만 뒈져라!”
날아온 거대한 마력 덩어리를 오른팔을 대가로 피해낸 마인이, 이내 이도영의 코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오른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채로, 마인이 이도영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가볍게 회전해 휘두르는, 체중이 가득 실린 완벽한 스트레이트 펀치. 마인의 왼 주먹이 미처 공격을 막을 겨를이 없는 이도영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쪽을 향해 마인의 상체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현재 왼팔은 이도영을 향한 상황. 그리고 오른팔은 이도영이 날린 마력 덩어리에 의해 파괴된 채 아직 재생하지 못한 상태. 한순간 훤히 드러난 빈틈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울려 퍼지고 얼마 후, 마인의 주먹이 이도영의 머리에 직격하기 직전, 마인의 하복부가 화살에 의해 통째로 뜯겨 날아갔다. 그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마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리고 몇 초 후, 구멍이 뚫린 마인의 하복부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기가 마인의 몸을 뒤덮기도 잠시, 살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마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 마인의 몸이 서서히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마기로 절여진 육체가 이도영의 권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절규하던 마인이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너어어어어…! 이 개 같은 년이…!”
“뭐, 등신아.”
곧 죽을 놈이 하는 욕이야 몇백 번이고 들어줄 순 있지만, 굳이 듣고만 있을 필요도 없지? 뭐가 예쁘다고.
내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내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읽었는지 분노로 가득한 괴성을 내지른 마인이 절규했다.
“내가…! 내가 이딴 애송이들한테! 내가 어떻게 교에 들어갔는데…! 내가!”
‘…교?’
마인이 내뱉은 심상치 않은 단어. 분명 떡밥으로 보이는 수상한 말에 내 표정이 굳어진 순간이었다. 이도영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수십 발의 매직 미사일이 그대로 마인의 몸뚱이에 때려박혔다.
-치이익!
“키에에에에에엑!”
괴성을 내지르기도 잠시, 이내 마인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 후, 비명이 완전히 멎은 후, 숨통이 끊긴 마인의 몸뚱아리가 정화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헐.”
나 아직 제대로 이야기 못 들었는데. 그렇게 멍하니 푸념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이런, 늦어버렸구나.]
“뭐?”
늦었다고? 뭔 개소리야?
내가 얼굴을 굳힌 순간이었다. 이도영의 입에서 방금 마인이 내질렀던 것과 똑같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이도영의 몸에서 다시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순간 호흡기를 가득 채우는 청량감에 정신을 놓기도 잠시, 이내 이쪽을 노려보는 이도영의 모습에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저, 저기? 야, 정신 좀 차려봐.”
내 말을귓등으로 흘린 이도영이 나를 노려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방금 전, 마인에게 꽂혔던 매직 미사일이 다시 하늘을 가득 채웠다. 아니, 잠깐만. 이 미친 새끼야. 피아식별 안 하냐? 나 지금 다리 다쳐서 피하지도 못하는데?
아, 좆됐다.
본능적으로 내게 이어질 공격을 직감하고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한참 후.
“…뭐야?”
예상과는 달리, 여전히 날아오지 않는 공격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이도영이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 가득했던 매직 미사일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복구에 필요한 마나를 전부 충족하였습니다]
[스킬 탭이 복구됩니다]
[포인트 시스템이 복구됩니다]
아니, 이건 또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