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이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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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마친 김시우는 이내 병실에서 떠나갔다. 가기 전에 나한테 회복 마법을 걸어 주기도 했고, 오늘 이야기한 덕에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았으니 분명 감사해야 하는 일이기는 한데 말이야.
‘괜히 짜증나네.’
하필 전해준 정보가 정보다 보니 기분이 영 꿀꿀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퇴하고 놀 생각 만만이었는데, 꼼짝없이 이도영을 따라서 계속 학교에 묶여 있어야 한다니. 왠지 줬다 뺏긴 느낌이라 기분이 묘하게 불쾌했다.
‘무슨 휴가 잘린 현역병도 아니고.’
아니, 대충 상황은 비슷한 게 맞나? 물론 사관학교를 군대에 비교하는 건 영웅사관학교에 미안하기 짝이 없으니까. 좀 그런 비유긴 하지만.
적어도 사관학교는 밥은 맛있거든. 강제로 끌고 가놓고 한 끼에 예산은 고작 2,930원에, 그나마도 군납비리로 다 해 처먹은 짬밥이랑 비비는 건 사관학교 급식 퀄리티에 대한 모욕이지. 솔직히 말이 급식이지 진짜 엄청 맛있더라고. 심지어 뷔페식이기도 하고.
‘아니, 근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딴 데로 새어간 생각을 바로잡고 다시 상념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지금 얻은 정보를 요약해보면 이 정도네.
‘자퇴는 불가능. 이도영이랑 같이 다녀야 하는 것도 변함없고, 그나마 다행인 건 더 이상 숨쉬기 힘들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것 정도인가?’
쯧, 뭐. 그래도 여태까지랑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마나 회복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시스템 메시지를 띄워 빠르게 마나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마나량은 45. 최대 마나량에서 15가 빠진 양이었다. 저번에 각성했을 때, 마나통이 세 배는 늘어났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15는 왜 빠져 있는 거래?
‘아. 하루가 지났으니까, 시스템 유지 마나로 썼구나.’
이거 참,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빠지네?
스킬 탭과 포인트 시스템이 각성한 건 좋은데, 그 탓에 시스템의 유지비가 폭증해버렸다. 늘어난 마나통으로도 4일밖에 못 버티니까. 뭐, 그건 그렇고 비어있는 마나가 정확히 15라는 건 확실하네.
‘호흡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스스로 마나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가.’
뭐, 마나를 흡수할 때의 그 느낌이 없어서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그 사실을 확인하자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시험을 조졌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다고 해도, 막상 망한 성적표를 받으면 또 기분이 나빠지는 거랑 같은 이치니까.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차라리 자퇴 못 하는 게 다행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라도 자퇴 절차를 끝냈는데, 유지 마나가 부족해서 시스템이 정지해버렸다면? 백수로 살 거였으니까 시스템 자체는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혹시라도 시스템이 정지했을 때, 호흡이 다시 힘들어지거나 하면 매우 곤란했다.
물론 내가 호흡이 편해진 건 시스템 덕은 아니고, 계약할 때 흡수한 권능 덕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뭐, 어차피 자퇴 못 하는 건 확정이니까. 어째 필사적으로 장점을 찾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내 생각을 마치고 팔을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휴대폰에는 몇 통의 문자 메시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김유진과 이도영이 보낸 메시지였다.
몸 상태를 묻는 메시지부터 아버지, 김시우에게 내 몸 상태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메시지. 그리고 다 나으면 학교에서 보자는 메시지까지. 아주 글자 하나하나 걱정이 그득그득 들어찬 메시지들이었다.
‘나 참.’
그 훤히 드러나는 걱정에 묘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이런 건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피식 웃음을 터뜨린 뒤 간결하게 고맙다는 답장을 써서 둘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얼마 후, 슬슬 몰려오는 피곤함에 잠을 청했다.
*
다음 날, 의사에게 간단한 경과를 들었다. 뭐, 이대로 가면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나?
‘근데 딱히 퇴원하고 싶진 않은데.’
병원식이 더럽게 맛이 없는 것만 빼면, 입원 생활 자체는 매우 편했다. 이젠 딱히 호흡이 곤란할 일도 없고. 뭐, 저번에 입원했을 때도 이도영이 옷을 두고 간 덕에 그리 숨 쉬는 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생각에 빠져있기도 잠시, 이내 설명을 마친 의사가 병실을 비웠다. 다시 병실 안에 적막이 맴돌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열심히 내가 웹서핑에 빠져 있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병실 문이 열렸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덩치가 큰 남성이었다.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헐렁한 옷 위로 여실히 드러나는 어마어마한 근육이 눈에 띄었다. 내가 시선을 보내자, 이내 뻘쭘한 듯 의수가 달린 오른팔을 괜히 만지작거린 남성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 양반은 왜 왔대?’
고아원 돌보기도 바쁠 양반이. 마인한테 습격당한 것도 얼마 안 됐으면서.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원장과 눈을 마주하자, 이내 원장의 몸이 움찔 떨렸다. 왜 이런 반응이래?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반갑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색한 목소리로 원장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얼마 후, 원장이 용건을 입에 담았다.
“그…오늘은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다네.”
“감사 인사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원장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인이 습격했을 당시, 내가 마인을 유인해준 덕에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내가 아니었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나.
‘뭐, 그렇게 보면 그렇기도 한데.’
애초에 마인이 습격했을 때, 이도영이 그 자리에 없었던 건 내 탓이니까. 내 잘못을 내가 메꾼 거라서, 딱히 감사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뭐, 내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내게 감사의 말을 끝낸 원장이 이내 이쪽에 고개를 숙였다. 근데 지금 뭐 하냐?
“…뭐 하세요?”
“감사하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도 같이 하려고 하네.”
‘잉, 이건 또 뭔 소리야?’
아니, 감사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나를 보며 원장이 묵묵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마인을 유인해준 뒤 얼마 후, 도영이가 고아원에 왔었네. 그리고 사정을 들은 도영이는 바로 자네에게 가려고 했네.”
‘오, 진짜?’
원작에서는 마인한테 덤벼들 때 꽤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원작이랑 조금 달라진 모양이네. 원작이 비틀렸다는 점은 같았지만, 어째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 그 정도는 바뀌어도 별 상관없긴 하니까.
그래도 챙겨준 보람은 있네. 의리 있게 바로 도우러 온 거 보면. 생각도 잠시, 이내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 반응을 본 원장이 고개를 더욱 숙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도영이를 막으려 했네. 잘못하면 마인한테 도영이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핑계로 말이네.”
말을 마친 원장이 눈을 감았다. 뭐, 그거야 당연한 거지. 누가 자기 지인이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좋아하겠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응?”
그래서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내 말을 들은 원장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반응이래? 고민도 잠시, 이내 원장이 왜 이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설마 이도영을 말렸다는 거 하나 때문에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야?’
이도영이 굳이 그걸 나한테 고자질할 사람도 아니고, 입만 닫으면 절대 모르는 걸 굳이 사과까지 하러 왔다고?
‘이걸 호인이라고 봐야 하나?’
뭐, 이도영이 존경하는 위인답긴 한데. 이거 참, 이게 굳이 나한테 사과까지 할 일인가?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뭐, 괜찮아요. 어르신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정말인가?”
“네, 그리고 이도영이 그런 말에 설득될 놈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도와주러 오기도 했잖아요?”
애초에 씨알도 안 먹힐 시도였는데, 뭐. 그래도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도와주러 온 건 좀 기특하네. 피식 웃으며 원장에게 말을 건네자 이내 원장이 감사하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 고개를 다시 든 원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실례가 아니면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네.”
뭘 물어보려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원장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도영이랑은 무슨 사이인가?”
“친구요.”
뭐하러 이런 걸 물어봐? 뻔한 거 아닌가. 내 대답을 들은 원장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뭔데. 친하다고 해서 그런가? 뭐, 솔직히 걔도 딱히 인싸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생각에 빠진 내게 원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도영이랑 많이 친한가?”
“음….”
뭐, 솔직히 나 정도면 친한 친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해준 게 몇 갠데. 성적도 챙겨줘, 친구도 만들어줘, 습격에서 고아원도 구해줬고, 폭주 탓에 죽을 뻔한 것도….
아, 잠깐만. 또 떠올랐어.
정령 계약을 떠올리자, 이내 그때 있었던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까지 같이 떠올랐다. 급격히 밀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에 피가 몰렸다. 그러기도 잠시, 내게 향해지는 원장의 묘한 시선에 냉정함을 되찾았다. 갑작스레 붉어진 얼굴 탓에 어째 영 미묘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 빠르게 대답을 뱉었다.
“그, 네. 꽤 친한 사이 맞아요….”
“…그래. 그렇군. 대답해줘서 고맙네.”
내 대답을 들은 원장이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한 순간, 원장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원장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급격히 밀려오는 피로감에 원장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였다. 갑작스레 원장이 내 손을 잡아왔다. 느닷 없는 신체 접촉에 당황한 내게 원장이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영이랑 친하게 지내 줘서 고맙네.”
“친구니까요.”
세계 멸망을 떠나서, 김유진이나 이도영에게는 꽤 정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래, 친구라고 할 만한 것 같긴 하네. 생각을 마치고 원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진지한 눈을 한 원장이 엄숙히 내게 부탁을 건네왔다.
“앞으로도 도영이를 잘 부탁하네.”
“아, 네….”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감사하다는 듯 내게 한 번 더 고개를 꾸벅인 원장이 이내 병실을 나섰다. 다시 적막해진 병실 안에서 조용히 원장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 이도영을 잘 부탁한다고 했냐?
‘어라, 근데 나 설마 지금 보모 역할 떠맡겨진 건가?’
에반데. 아니,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러 온 거 아니었어? 눈 뜨고 코 베였네. 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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