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이후(2)
* * *
며칠 후, 완전히 회복을 끝내고 퇴원 절차를 밟았다. 완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시스템 각성 이후 강화된 신체 능력에는 재생력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거기에 추가로 대마법사의 회복 마법까지 받았으니, 금방 낫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문병 한 번 안 오네.’
휴대폰에 수신된 문자는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정작 김유진이나 이도영이 문병을 오진 못 했다. 뭐, 일요일에는 내가 면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그 후로는 평일이었으니까. 사관학교를 빠져나오기는 힘들었겠지. 딱히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휴대폰으로 지도 앱을 켜서 목적지를 설정했다. 목적지는 이도영이 자란 고아원이었다.
‘엘릭서, 가져와야 하니까.’
마인을 유인하기 전, 미리 구석에 숨겨뒀던 가방. 그걸 가지러 갈 시간이었다. 뭐,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믿음이 안 가서.
아무리 뽁뽁이로 둘둘 말아서 싸구려 음료처럼 보인다고 해도, 엘릭서는 엘릭서. 애초에 그 오색의 광채를 숨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뽁뽁이는 혹시나 모를 파손 때문에 두른 거지, 딱히 위장하려는 목적으로 두른 것도 아니었고.
한참 후, 고아원에 도착했다. 아직 테러의 여파를 회복하지 못한 듯 무너져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고아원이 무너졌으면 원장이랑 애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뭐, 정부에서 숙소라도 지원해 줬나?
사소한 궁금증도 잠시, 이내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 산을 올랐다. 얼마 후, 내가 마인에게 화살을 처음 쏘았던 장소에 도착했다.
‘어디다 숨겼더라?’
이 근처였는데. 애초에 시간이 부족해서 그리 치밀하게 숨기지도 못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적당히 주위를 둘러보자 이내 내가 가방을 숨겼던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바닥을 훑어보자 인위적으로 땅을 팠던 흔적이 눈에 띄었다.
그곳을 파헤치자 금세 땅에 묻혀 있던 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흙을 털어낸 뒤, 가방의 후크를 열었다. 싸구려 뽁뽁이로 둘러싸인 유리병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졌다.
‘다행히도 별 손상은 없는 것 같네.’
뭐, 엘릭서가 무슨 가공식품도 아니고. 설마 땅에 좀 묻어뒀다고 상하기야 하겠느냐마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엘릭서를 다른 가방에 집어넣었다. 흙이 잔뜩 묻은 가방을 들고 돌아가는 건 조금 곤란하니까.
*
엘릭서를 챙긴 후, 산에서 내려와 사관학교로 향했다. 휴대폰으로 김유진에게 사관학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보냈다. 이도영한테는 안 보냈지만.
‘솔직히 아직 이도영은 좀 뻘쭘해서.’
뭐, 결국 내일부터 다시 만나야 하는 건 맞는데. 오늘 이야기하기엔 좀 그랬다. 얼굴을 마주하면 어색해서 버티기 힘들 것 같거든. 그렇게 잡생각을 하며 걸음을 걸은 지도 한참, 어느새 교무실에 도착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실 안에는 신유정 한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의자에 앉자 이내 신유정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오늘 퇴원한 건가?”
“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신유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영구적인 부상은 남지 않은 모양이군.”
잠시 내 몸을 훑어본 신유정이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시선을 거뒀다. 고개를 끄덕인 뒤, 신유정이 이내 조금 안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인이랑 싸웠는데 그 정도 부상으로 그쳤다니. 천운이로구나.”
저번, 현장 체험 학습에서 마인이랑 직접 싸웠던 사람이 한 말이라 무게감이 달랐다. 뭐, 그때는 나랑 이도영에 더해서 신유정이랑 김유진까지 있었는데도 처참하게 당할 뻔했으니까. 아마 영웅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면 모두 골로 갔을걸? 만약 그랬다면 한국 내의 마인들은 김시우한테 씨가 말랐겠지만.
생각이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시선을 신유정에게 향하자, 서류를 훑어보던 신유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도영 생도와 같이 싸운 덕에 마인 토벌에 성공했다고? 흐음….”
그 말을 내뱉은 신유정이 내게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저번 조별 실습처럼 내가 혼자 마인을 잡을 수 있었으면서, 굳이 이도영을 끼워 넣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마인 토벌은 꽤 큰 이슈기도 하고, 해낸 이들이 신입생이라는 걸 감안하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영웅이 되었을 때 큰 어드밴티지가 될 테니까. 그리고 이도영의 실력을 생각하면, 내가 혼자 잡았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은 반대잖아.’
나는 오히려 마인한테 떡실신 당했고, 마인은 사실상 이도영이 거의 다 잡은 거나 다름없었다. 뭐, 그래도 결정타는 내가 치긴 했지만. 그래 봐야 아무리 좋게 봐도 합작이거든. 거기까지 생각한 뒤 신유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는데, 그거 아니에요.”
“…응?”
“제가 혼자 마인을 토벌하고 이도영이랑 같이 잡았다고 하는 거, 아니라구요.”
솔직히 이런 오해는 달갑지 않기도 하고, 이런 이미지가 박혀 있으면 나도 이도영도 손해일 테니까. 공사 구분은 철저해야지. 그런 생각을 담아 신유정에게 진실을 담은 한 마디를 더했다.
“오히려 이도영 아니었으면 마인을 쓰러뜨리긴커녕, 반대로 제가 당했을 거에요.”
내 말을 들은 신유정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반응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신유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그래. 그 뜻이었구나?”
‘…응?’
얘 왜 웃는 거냐?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며 웃음을 멈춘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아니, 미안하다. 나는 그 생각을 한 게 아니거든.”
“…그럼요?”
그럼 뭔 생각을 한 건데? 내 질문을 들은 신유정이 답변했다.
“네가 주말에 그곳에 간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다. 분명 그 근처는 이도영 생도가 자란 곳이라고 하던데.”
“아….”
그 얘기였어? 젠장, 혼자 김칫국 드링킹 해버렸네.
헛다리를 짚었단 걸 깨닫자, 이내 조금 전 발언이 격렬하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괜히 헛다리 짚어놓고 역정 낸 꼴이잖아. 아, 진짜 요즘 왜 이러냐.
한참 수치심에 빠진 내게 신유정이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아니, 그래. 교관으로서는 참 훈훈해 보이는 일이긴 하네. 정작 내 얼굴이 더 훈훈해진 게 문제지만. 젠장.
“그래, 아무래도 말하기 곤란한 것 같으니, 왜 그곳에 있었는지는 더 묻지 않으마.”
그 말을 뱉은 신유정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수치심으로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신유정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내 신유정이 내게 한 마디를 더 건넸다.
“마인이랑 싸우느라 수고 많았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아…네.”
그,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뭐, 그래도 걱정해주는 건 고맙긴 하네. 그 감정을 담아 고개를 꾸벅이자 이내 신유정이 내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내일부터 다시 교실에서 보도록 하지.”
“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교무실을 나섰다. 아, 갑자기 또 자퇴하고 싶네.
*
교무실을 나선 뒤, 건물 밖으로 걸어나가며 휴대폰을 꺼냈다. 신유정과 대화를 나눈 동안, 휴대폰에 몇 통의 메시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전부 김유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진짜? 학교에 왔다고?]
[지금 교무실이야?]
[기다려! 지금 갈게!]
아니, 왜 오는 거냐? 그냥 내일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춘 순간이었다.
“시아야!”
그새 도착했는지, 김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김유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
오자마자 내 건강을 염려하는 김유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뱉었다. 그래도 뭐, 막상 보니까 좋기는 하네.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그래도 걱정스럽다는 듯 한 번 더 되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어. 진짜 괜찮아.”
근데 조금 귀찮긴 하네.
김유진이 한 번 더 물어오기 전에 빠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뭐, 김시우의 회복 마법이 없었으면, 혹시라도 큰 상처 부위엔 흉터 같은 게 남을지도 몰랐으니까. 그 뜻을 담아 감사를 표하자 김유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과장스러운 태도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시아, 왠지 기분 좋아 보이네?”
“그래?”
호흡이 편해져서 그런가? 확실히 평소랑은 조금 어투가 다른 것 같긴 했다. 고민도 잠시, 이내 김유진에게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자퇴 안 하기로 했다.”
“진짜?”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라, 그런데 김시우가 말 안 해줬나?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대답을 독촉하는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유진이 기쁜 듯 탄성을 내질렀다.
“헤헤, 다행이다!”
‘음…. 근데 이게 다행인 건가?’
어…뭐, 얘 입장에선 좋은 일이긴 한데.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어째 너무 기뻐하네. 괜히 기분이 떨떠름해지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내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마인 테러랑 관련된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아야, 마인이랑은 어쩌다 싸우게 된 거야? 도영이도 있었다던데?”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도 잠시, 어째 질문에서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아니, 잠깐만. 이거 조금 전에 신유정이 했던 질문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대충 둘러대며 질문에 대답했다.
“그냥…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으음….”
내 대답이 불만스러운 듯, 신음성을 흘린 김유진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홍채에 그려진 불꽃 모양의 형체가 그 시선에 맞춰 일렁였다. 그리고 얼마 후, 김유진이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았어. 말해주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고맙다.”
그래도 끝까지 물어보진 않아서 다행이네. 이걸 설명하긴 좀 힘드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부터 다시 학교 다니는 거지?”
“응. 맞아.”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이 활짝 웃었다. 어째 이렇게까지 반응하면 좀 미안해지는데. 요즘 김유진한테 신경 안 쓰기도 했고. 갑자기 피어오른 감정에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아, 도영이도 왔네! 도영아!”
‘뭐?’
내 뒤편을 바라보던 김유진이 갑자기 팔을 흔들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이쪽으로 걸어오던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
“그…안녕.”
이도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격히 밀려온 뻘쭘함에 신음성을 내뱉었다. 뻘쭘하기는 이도영도 마찬가지인 듯, 시선을 피한 이도영이 내게 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불편한 분위기에서, 김유진이 혼자 싱글벙글 웃음을 흘렸다.
“시아가 왔다고 해서 아까 도영이도 불렀어!”
아니, 잠깐만. 이건 좀 아니지. 나 지금 어색해 죽을 것 같은데. 그리고 침묵이 맴돌던 순간이었다.
띠링
“아, 나 이만 집에 가봐야겠다! 그럼 둘 다 내일 봐!”
김유진의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들리고, 휴대폰을 확인한 김유진이 갑자기 나와 이도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김유진이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둘만 남은 공간. 급격히 싸늘해진 분위기가 장내에 감돌았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눈이 마주쳐 황급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에 속으로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아니, 불러놓고 지 혼자 가는 게 말이 되냐?’
아, 진짜 돌겠네. 이 분위기 어쩔 거야.
김유진한테 미안하긴 개뿔.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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