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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 진전(3) (79/167)

〈 79화 〉 진전(3)

* * *

월요일 아침. 교실로 향하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주말, 정확히는 토요일에 있었던 일 탓에, 교실로 향하는 기분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리던 중, 어제 깨달은 사실을 다시 확인하려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현재 보유 중인 마나]

[105/120]

어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대 보유량이 90이었던 마나량이 120으로 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뭐, 그날 밤새 사용했던 정령술 덕이겠지. 여태 정령술은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는 탓에 여태까진 체화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그날 질리도록 사용한 덕에 꽤 체화를 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그걸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딱히 스킬 체화라든지, 시스템 포인트 획득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행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도 이득을 보긴 했다. 충분히 스킬을 체화한 덕에, 신체 능력도, 마나통도 꽤 많이 늘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엘릭서를 먹인 보람은 충분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어째 얼굴 보기가 좀 그렇단 말이지….’

아무리 그날 이도영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고 바로 미안한 기분을 훌훌 털어 버리기는 힘들었다. 내가 그리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째 그냥 좀 그랬으니까. 생각도 잠시, 이내 교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교실 안에 들어서자, 이내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

시선을 마주친 순간, 인사하듯 이쪽에 손을 흔드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자리로 향했다. 아직 평소처럼 대하기엔 조금 불편한 기분이었다. 그때 있었던 해프닝도 그렇고, 쟤는 까딱하면 진짜 죽을 뻔했으니까.

이도영이 딱히 그런 걸 마음에 담아둘 성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조금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잠을 설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이내 생각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김시우가 말하길, 그때 겨우 처리한 마인의 배후 조직이 습격해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웬만하면 다시 공격해오진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미 도시에 테러를 저지른 시점에서 국가가 눈에 불을 켜고 배후를 추적하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서 추가로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건 꽤 힘들 거라고. 행동하는 순간 최소한 한국 내의 끄나풀은 초토화를 각오해야 할 테니까.

‘근데 그러면 자퇴해도 딱히 내가 위험해지지는 않는 거 아닌가?’

설마 저번에 병실에서 얘기했을 때, 나 낚였던 거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납득할 만한 사유가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그 놈들이 맛이 제대로 간 놈들이라면, 사관학교 생도라는 이름값은 방파제를 하나 늘려줄 테니까.

‘사관학교는 국가만이 아니라, 다른 대형 길드들에게도 후원을 받고 있으니까.’

물론 기본적으로 사관학교는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맞다. 하지만 사관학교는 자체적으로 대형 길드들이랑 제휴를 맺고 있거든. 생도들이 견학을 가거나 직업 체험 같은 걸 할 때 협조를 받는 대신, 신입을 모집할 때 어느 정도 편의를 봐 주는 식으로 말이야.

즉, 사관학교 생도를 고의로 노린다는 것은, 후원하고 있는 길드들까지 도발하는 행위. 굳이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일반 시민과 사관학교 생도의 목숨값은 꽤 차이가 난다는 거지. 뭐, 그런 세상이니까.

결국, 사관학교를 나간다고 해도 김시우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노려질 확률이 높은 건 아니다. 하지만 사관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 습격당할 확률이 월등하게 낮아진다는 뜻이다. 물론 눈에 뵈는 게 없는 미친놈들이라면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웬만하면 그럴 일은 없겠지. 설마.

그렇게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그것들은 왜 테러하러 왔던 거래?’

이도영과 내가 상대한 그 마인의 목적이 복수라는 건 알겠지만, 그건 그 마인만의 목적이니까. 다른 마인들이 테러를 저지를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 마인이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있어서 복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데려온 걸 수도 있지만, 겨우겨우 조직에 들어갔다는 단말마를 고려하면 그 가설은 확률이 낮고.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애초에 내겐 추리를 이어갈 단서가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으니까. 고민도 잠시, 이내 그 사실을 깨닫고 생각을 마쳤다.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때마침 문이 열리고, 김유진이 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아야, 안녕!”

고개를 끄덕여 마주 인사를 건네자, 이내 김유진이 이도영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김유진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시아야, 금요일 저녁에 뭐 했어?”

“…딱히 별건 안 했는데. 왜?”

질문과 동시에 내게 쏘아진 의미심장한 눈빛에 괜히 움찔하기도 잠시, 이내 당황한 기색을 숨긴 채 태연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기는 좀 그렇잖아. 뭐, 새삼스레 그런 걸 신경 쓴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얘, 원작에서는 히로인이었는데.’

뭐, 지금은 딱히 그런 감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원작대로라고 해야겠지. 원작에서도 김유진이 이도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신경 쓰게 된 건 각성 이후였으니까. 어라,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그게 지금이잖아?’

원작에서는, 이도영의 실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동시에, 그에 따라 이 반 1위인 김유진의 비중이 점점 늘어났었으니까. 슬슬 그럴 때가 되긴 했지만. 설마 진짜인가? 진짜 플래그라고?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허, 벌써 히로인이 꼬이기 시작하는 건가. 이건 좀 그러네. 빡세게 수련해도 모자랄 판에, 여자랑 노는 건 좀 그렇잖아? 응, 그렇지.

어째서인지 조금 나빠진 기분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머릿속이 당황으로 가득 찼다.

“금요일에 도영이랑 같이 나가길래, 뭐 했나 해서!”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은 김유진이 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천진한 웃음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잠깐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지금부터 간단하게 학급 내 대련이 있을 예정이다.”

훈련장 근처, 공터에서 신유정이 곧 있을 수업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은 대련 상대를 굳이 지정해주지는 않을 거다. 입학한 지 한 달쯤 됐다면 대충 동기들의 수준 정도는 알고 있겠지. 자유롭게 어울리고 싶은 생도와 대련하도록.”

멍하니 이어지는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방금 전 김유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도영이랑 같이 나가는 걸 봤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내가 이도영을 집에 초대한 것까지 전부 들킨 줄 알았었다.

‘뭐,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김유진은 단순히 교문을 같이 나서는 것만 봤다고 했다. 그 후 그걸 얼버무리느라 꽤 힘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을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갑자기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집에 친구가 좀 놀러 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면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왠지 김유진한테는 사실을 밝히기 좀 그런 기분이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귓가에 김유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아야!”

아, 깜짝이야. 김유진을 바라보자, 이내 김유진이 손가락을 들어 대련장 쪽을 가리켰다. 그 동작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내 대련장 위에 올라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도영이었다.

“뭐야, 쟤 대련한대?”

“응, 그런 것 같은데. 근데 상대가….”

확실하게 끝맺지 않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상대로 올라온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니까…쟤가 누구더라?

“쟤가 누군데?”

“…진짜 몰라?”

내가 알면 물어보겠냐? 그런 의미를 담아 김유진을 바라보자, 이내 김유진이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질문에 대답했다.

“저번에 던전 공략 체험 팀 짤 때, 너랑 싸웠던 애 있잖아.”

“아….”

그 새끼구나, 까먹고 있었네. 아니, 사실 지금도 이름이 뭐였는지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좀 인상이 불쾌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그 생각도 잠시, 이내 든 의문에 김유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근데 걔가 왜 쟤랑 싸워?”

“아…그게….”

대답하기 뭐한 듯, 말꼬리를 늘리는 김유진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다시 대련장을 바라보았다. 신체가 더욱 강화된 덕인지, 더 선명해진 시야를 통해 이도영과 상대의 표정을 살폈다.

‘아, 쟤 이름이 강혜성이었구나.’

명찰을 확인한 후에야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한 기억에 작게 탄성을 흘렸다. 뭐, 표정을 보아하니 둘이 친한 사이인 건 절대 아니고, 싸움이라도 붙은 것 같은데.

실실 쪼개는 상대 놈과 대비되게 이도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걸 보면, 아무래도 쟤, 꽤 화난 것 같은데. 아마 시비는 저쪽이 걸어왔을 테고. 애초에 이도영이 먼저 싸움을 걸 성격은 아니기도 하지만.

‘그런데 왜 저리 화가 났대?’

그 의문에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이었다.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강혜성이 먼저 도영이 앞에서 네 욕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싸움이 붙었다는데….”

“허….”

미묘한 기분에 작게 침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나 때문에 싸우는 건 줄은 몰랐는데. 그러기도 잠시, 이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하는 걱정에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으려나.”

각성하긴 했지만, 권능이 안정을 찾은 이상, 저번에 폭주할 때의 힘은 절대 못 낼 테고. 그러면 순수하게 성장한 기량만으로 대결해야 하는데. 아직 이도영이 각성한 지 몇 주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그리 낙관적인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뭐, 단순히 대련이니까. 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겠지. 지고 나면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옆에서 들려온 김유진의 탄성에 생각을 마치고 대련장을 바라보았다.

‘어라.’

예상과는 다르게 승부는 호각이었다. 아니, 이도영이 더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쟤 왜 이리 세졌냐? 설마 엘릭서 하나 먹였다고 저렇게 세진 거야?

‘아니, 엘릭서가 그리 만만한 영약이 아닌 건 맞지만….’

저렇게 효과가 좋다고?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순식간에승부가 격해지고, 급격히 상대를 몰아붙인 이도영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도영의 공격을 받은 상대가 날아가는 것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잠깐만. 쟤가 이겼어?’

진짜 너무 강해진 것 같은데? 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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