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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화 〉 중간 실기 시험(1) (82/167)

〈 82화 〉 중간 실기 시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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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얼굴을 꿰뚫을 듯 쏘아지는 시선을 받아내며 설명을 이어간 덕에, 겨우겨우 김유진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건 맞지만, 근본적인 실력 상승의 원인은 이도영의 잠재력이라 이거지.

“저번에 마인이랑 싸웠을 때, 도영이가 특성을 개화했다고?”

“어.”

“도영이는 특성 덕에 실력이 엄청 빨리 늘은 거고?”

“그래.”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아직 이설화를 꽤 의식하고 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첫 만남 이후 몇 번 따로 마주한 덕에 원작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감정이 좀 남아있을 테니까.

그와 별개로 이해했다는 듯 지은 시무룩한 표정에 조금 마음을 놓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김유진이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응? 그런데 특성을 개화한 거면, 시아 덕분에 실력이 늘어났다는 건 무슨 소리야?”

“아.”

김유진의 질문을 듣자마자 이도영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 반응을 캐치한 김유진이 다시 내게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이 정도야 둘러댈 만하다. 굳이 엘릭서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쟤 특성이 조금 불안정하거든. 그런데 내가 그걸 진정시킬 수 있어서.”

“…그래?”

“어, 너희 아버지께서도 그러시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김유진이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김시우가 김유진에게는 전혀 언질을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딸이라지만 프라이버시는 지켜주겠다는 건가.

아니, 딱히 그런 성격은 아니었을 텐데? 애초에 특성은 딱히 숨길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무슨 특성인지는 알려주는 거라면 몰라도, 특성이 있다는 언질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미 이도영이나 내가 알려줬을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이었다. 김유진이 나와 이도영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흥미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왜?”

“아, 아무것도 아냐!”

그 시선에 가볍게 질문을 던지자, 김유진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횡설수설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당황할 질문인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그, 그보다 시아야, 도영이한테 할 말 있지 않았어?”

“…그러네.”

당황을 숨기려는 듯, 급히 화제를 돌리는 김유진에게 어이없는 시선을 보내기도 잠시, 이내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이도영한테 할 말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애초에 방금 그 해프닝만 아니었으면 이미 했을 말이기도 하고. 이도영을 째릿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 특성은 왜 쓴 거야.”

“…응?”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무슨 말이냐는 듯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 태연자약한 반응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잘못해서 폭주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진정시키려고 그랬어?”

“아, 그….”

따가운 시선을 받던 이도영이 이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뭐, 왠지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나. 그 대답에 어이가 없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이도영이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주인공 각성 장면이냐고.’

아니, 주인공 맞긴 한데. 그리고 얘기를 들어보면 각성 장면도 맞긴 한데. 아니, 그래도 이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잖아? 일단 소설 속이긴 한데.

“그래서 단순히 괜찮을 거라는 감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그런 거라고?”

“응….”

차게 식은 내 눈빛을 받은 이도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노려보기도 잠시, 이내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행동해.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응….”

혹시라도 이도영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그 순간 세계 멸망 확정이다. 내가 주인공 역할을 대체하기에는, 얘가 가진 권능이 키 포인트니까. 얘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은 없다.

‘저번 폭주 때 이야기대로라면 내가 얘 권능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원주인이 아닌 이상 결국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설령 내가 권능을 전부 흡수한다고 해도 스토리를 따라가기 벅찰 판에, 고작 일부분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즉, 쓸데없는 싸움 따위에 위험을 무릅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거다. 물론 언젠가는 권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줄일 수 있는 위험은 줄여야지.

말을 마치고 이도영의 안색을 눈으로 훑었다. 이제서야 위험했다는 자각이 들었는지, 이도영이 축 처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째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별문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권능 사용법을 벌써 익힌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원작보다 성장세가 더욱 빨라진 거니까. 다만 제 몸이 잘못될 뻔한 것도 모르고 막 나갔다는 게 좀 불안할 뿐이지.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급격히 무거워진 분위기에 김유진이 내게 뭐라도 해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그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긴 건 축하해.”

“…응.”

“싸움 붙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며?”

제 욕 먹는 건 참아도 친구가 욕먹는 건 못 참는다는 건가.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이 작 경련했다. 아마 싸운 이유를 들키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 반응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잘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고맙다고는 해야겠네. 고마워.”

감사인사를 전하자, 이내 이도영이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그 의미 모를 행동에 가만히 이도영을 바라보기도 잠시, 내게 쏘아지는 김유진의 묘한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

아무래도 방금 내가 한 말은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아예 숨통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 어색한 분위기에 빠져 있던 도중이었다. 시체가 된 분위기를 깨뜨리듯, 집합하라는 신유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다시 모이라는 것 같은데.”

“…그러게.”

차갑게 식은 분위기에서 몇 마디를 나눈 채, 쭈뼛쭈뼛 집합 장소를 향했다. 아니, 진짜 답답해 죽겠네.

*

­쉬이익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쏘아낸 화살이 과녁에 명중했다. 아쉽게도 정중앙에서 조금 빗나간 채 꽂힌 화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궁술은 꽤 체화된 모양이네.’

훌륭하다고 하긴 힘든 솜씨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까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겠다. 아직 신입생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활을 잡은 지 한 달 남짓이라는 걸 고려하면 대단한 실력이지.

생각을 이어가며 가볍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몸이 자동으로 최적화된 자세를 잡는 것을 똑똑히 느끼며 시스템의 인도대로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쐐애액!

아까 전과는 한참 다른 파공음. 날카롭게 쏘아진 화살이 이내 정중앙을 꿰뚫었다. 정확히 가운데에 꽂힌 화살을 보며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한참 후, 전부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은 화살을 보며 시스템 보정을 풀었다. 그 순간 급격히 느껴진 탈력감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시스템 보정이 있을 때의 감각을 되새기며 화살을 메겼다.

­쉐액!

시스템 보정을 받을 때보단 거칠지만, 조금 전보단 확연히 나아진 파공음. 맹렬한 기세로 쏘아진 화살이 이내 표적을 꿰뚫었다. 정중앙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활을 내리고 시스템 창을 띄웠다. 60/120. 정확히 절반의 마나가 남아 있었다. 시선을 떼고 활을 케이스에 집어넣은 뒤, 다시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현재 보유 중인 마나]

[61/120]

놀랍게도, 그 사이에 60이었던 마나량이 61로 올라가 있었다. 작게 감탄을 흘리며 케이스를 등에 메었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멈추지 않고 쭉쭉 오르는 마나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마나를 계속 힐끔거리며 훈련장을 나섰다.

‘이도영이 권능을 다룰 수 있으니까 좋네. 그냥 진작 시켜볼 걸 그랬나.’

대련 수업 이후, 교실에서 이론 수업을 듣던 도중이었다. 헤르메스가 갑자기 내게 귀띔을 해왔었다. 이도영이 권능을 다룰 수 있게 됐으니, 그 권능을 받아들여 보라는 말이었다.

지금 자연스레 회복되고 있는 마나는, 그 결과물이었다. 방과 후 이도영에게서 권능을 일부 흡수한 결과, 이도영과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나가 회복되었으니까.

‘뭐, 그리 오래가진 않지만.’

이도영과 계약할 당시에 흡수했던 권능. 내가 숨을 쉬는 데 지장이 없게 만들어준 그 권능과는 다르게 이번에 흡수한 권능은 일회용에 가까웠다. 계약할 당시 흡수한 권능이 우물이라면, 이번에 흡수한 권능은 우물물에 비유하면 되겠지. 권능을 받아들였을 때, 헤르메스가 덧붙였던 설명을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근원이 아니라 생성된 힘만 받아오는 거라고 했던가?’

뭐,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여분의 마나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좋은 일이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눈속임에 가깝긴 하지만, 마나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만 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권능을 흡수할 때의 감각은 마나를 흡수할 때보다 더 강렬했다는 점일까. 정신을 바짝 안 차리면 표정이 풀려버릴 정도로.

‘그래도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여분 마나통이 생긴 거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가만히 몸 안에 받아들인 권능을 가늠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정도 양이면 마나를 전부 회복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전신에 따스하게 퍼지는 감각에 살풋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안녕!”

갑작스레 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박휘성이었다.

“그래, 안녕.”

“둘이서 보는 건 되게 오랜만이네!”

“그러게.”

내가 입원했던 탓에, 한동안 동아리 활동을 못 했으니까.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며칠 전까진 학교에 오지도 못했지만, 학교에 오고도 얘랑 말할 일은 적었으니까.

‘솔직히 좀 껄끄럽기도 하고.’

마인 건이야 이미 스토리가 뒤틀린 이상, 어떻게 될지 모르니 패스한다 쳐도. 애초에 나한테 고백을 박았다는 점에서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휘성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몸은 괜찮아?”

“어, 괜찮아.”

“다행이네. 걱정 많이 했거든.”

아, 그래. 그건 고맙긴 하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박휘성을 힐끔 바라보았다. 나랑 대화를 나눠서 좋다는 듯, 입가에 한껏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에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뭐, 굳이 뭐라 하려면 못할 것도 없긴 한데. 그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미묘한 눈으로 박휘성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훈련하고 오는 길이야?”

“응.”

“난 지금 훈련하러 가는 길인데. 우연이네!”

“그래, 그러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의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진짜 뭐 어쩌라고.’

난 훈련 끝났는데, 같이 훈련하러 가자는 말은 아닐 거 아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박휘성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얼굴 본 게 반가워서 인사해봤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어, 그래. 고맙다.”

“그럼 내일 보자! 잘 가!”

그 말을 남긴 박휘성은 이내 훈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멀어지는 박휘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진짜 뭔 말을 좀 하긴 했는데. 정작 내용물은 하나도 없네.

그렇게 방금 나눈 대화를 되새기던 순간이었다. 불현듯 머릿속에 박휘성이 작별인사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근데 내일 보자는 건 뭐냐? 내일은 동아리 활동일도 아닌데?’

뭐, 점심시간이나 아침에 보자는 건가? 그 뜻은 아닌 것 같았는데.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며 터벅터벅 기숙사로 향했다.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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