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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 중간 실기 시험(3) (84/167)

〈 84화 〉 중간 실기 시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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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분위기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조는 대열을 갖추고 전진을 시작했다. 일차 목적지는 보급 포인트. 이전 던전 체험 학습 때의 진형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가 가장 앞에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진형인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사수는 정찰을 위해 가장 앞에서 전진하는 역할을 맡고, 검사 한 명은 사수를 보호하기 위해 앞쪽에서 호위를 선다. 맨 뒤에는 후열을 방비하기 위한 검사가 위치하고, 검사 둘 사이에 마법사들이 위치해 호위받는 진형이었다.

정찰을 위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 흘깃 내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김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꽤 긴장한 듯,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야.”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모습에 한 마디 충고하려 말을 건 순간이었다. 김민우가 당황한 듯 퍼뜩 몸을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과한 반응에 살짝 눈가를 꿈틀하며 말을 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걸어. 안 그러면 빨리 지칠 테니까.”

“…그래.”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조금 기분이 나빠지려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뒤쪽에서 느껴진 시선에 뒤를 향하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도영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선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그러고 보니 너, 요즘 따로 새로운 훈련이라도 하고 있냐?”

“…아니, 딱히 별로 추가로 한 건 없는데?”

그러던 도중 갑작스레 이도영의 옆에 있던 덩치 큰 사내, 마진철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던전 공략 체험 이후에도 교분을 이어간 듯, 꽤 친근한 말투였다. 그 질문에 고개를 돌려 마진철을 바라보는 이도영의 모습에 신경을 끄고 다시 앞을 향했다.

“진짜 따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아, 응. 그렇다니까?”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대화에 흥미가 생긴 듯, 최윤아의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가 이도영과 마진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진철과는 친한 모양이지만, 최윤아와는 아직 데면데면한 듯,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한 이도영에게 최윤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실력이 는 거야? 네가 저번에 이긴 강혜성은 나도 이길 자신 없는 애였는데.”

“그, 그건 그냥 특성을 각성해서 그래.”

“특성?”

최윤아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기야 특성은 보통 날 때부터, 늦어도 어릴 때 이미 각성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도영 정도의 나이에 특성을 각성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으니까.

‘뭐, 드물다 수준이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원작에서 김유진이 새로 특성을 개화하는 장면도 있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이도영은 특성을 새로 각성한 게 아니라, 봉인해 뒀던 특성이 해방된 거고.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기도 잠시, 이내 귓가에 최윤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으음…. 특성이라면 그럴 만하네. 그런데 엄청 좋은 특성인가 보네? 대단하다!”

“…그, 그런가?”

아까 전까지 살짝 머뭇거림이 섞여 있던 목소리와는 달리, 놀람과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 그 열광적인 반응에 얼떨떨한 목소리로 이도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살짝 상기된 목소리였다.

어째 미묘해진 기분에 괜히 속으로 한 마디 뒷담을 중얼거렸다.

‘지들끼리 아주 잘 노네.’

나는 앞에서 혼자 정찰하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니 조금 배알이 꼴렸다. 내 옆에 있는 놈은 입 꾹 닫고 눈만 부라리고 있고.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너무 띄워주진 마. 아직 한참 모자란걸.”

“에이, 그래도 성장 속도를 보면 조만간 최상위권으로 올라갈 것 같은데?”

“야, 나보다 센 놈도 이겨 놓고 모자란다고 하면 내가 뭐가 되냐?”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뒷자리의 대화는 점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거듭 칭찬을 들은 이도영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경계 안 해?’

아무리 정찰은 주로 내 역할이라지만, 그래도 아예 피크닉이라도 온 마냥 떠드는 모습에 조금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색함은 이미 팔아 치운 듯, 스스럼없이 최윤아와 떠드는 이도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허, 참. 원작 히로인으로는 부족하다, 이건가?’

누구는 눈이 빠져라 정찰하고 있는데, 다른 놈은 그사이에 새 플래그를 꽂고 있는 꼴을 보니 꽤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칠어진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저기.”

“응?”

갑자기 옆자리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을 듣고 김민우를 바라보자, 이내 김민우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몬스터.”

“아, 그러네.”

가리킨 방향에는 뱀을 닮은 몬스터가 똬리를 틀고 누워 있었다. 짜증으로 시야가 좁아진 탓에, 보호색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이내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민우를 바라보았다.

‘얘는 누구랑 다르게 열심히 경계한 모양이네.’

궁사가 흘려넘긴 몬스터를 근접 전투 계열이 찾았다. 물론 내가 조금 부주의해진 탓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검사가 사수가 놓친 몬스터를 발견했다는 건, 정말 성실하게 관찰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고마워.”

“아, 아냐….”

뒤쪽의 누구들과는 다르게 성실한 태도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칭찬이 어색한 듯, 아니면 낯을 가리는 듯, 내게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시아야, 무슨 일 있어?”

뒤쪽에서 이도영의 질문이 들려왔다.

“별거 아냐. 몬스터를 발견해서.”

“몬스터? 그럼 전투 대형으로….”

“됐다니까. 그럴 필요 없어.”

저번 던전 공략 체험 때의 진형을 세우자는 이도영의 말을 대충 자른 뒤, 등에 멘 활을 꺼내 들었다. 그리 강하지 않은 몬스터이니, 굳이 귀찮게 진형을 바꿔서 상대할 필요까진 없었다. 빠르게 몬스터를 처리한 뒤,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

묘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와 김민우를 바라보는 이도영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됐지? 이제 다시 돌아가.”

“…응.”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향했다. 어째서인지 조용해진 뒤쪽 분위기에 눈매를 좁히기도 잠시, 이내 대충 털어버리고 정찰을 재개했다. 뭐, 조용하면 좋은 거지.

*

그 몬스터를 시작으로 보급 포인트로 향하는 길에서 꽤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다. 대부분 몬스터는 굳이 진형을 바꿀 필요 없이, 내 화살만으로 처리할 수 있었기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물론 몬스터만 처리한 건 아니었다. 보급 포인트에서 보급품을 챙기면서, 다른 조도 몇 처리했으니까. 이도영은 몬스터에 비해 사람을 상대하는 게 편한 모양인지, 전투 진형을 갖추자 꽤 편한 표정을 지었었다.

아무튼, 보급품을 챙긴 후 다른 조를 쓰러뜨리며 보급 포인트에서 멀어지자, 이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에 몸을 누일 곳을 찾아 헤매기도 잠시, 이내 근처에서 작은 동굴을 찾아냈다.

“오늘은 저기서 자면 될 것 같은데.”

“응, 괜찮은 것 같아.”

조원들의 의견을 대충 수렴한 뒤, 이내 동굴 안으로 향했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보급품을 내려놓은 마진철이 바닥에 간이 텐트를 설치하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보급품에 야영 장비도 있어서 다행이네.”

“그러게.”

하마터면 동굴 바닥에 대충 누워 잘 뻔했다며 껄껄 웃는 마진철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동굴을 나섰다. 슬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근처에서 접근하는 조나 몬스터는 없는 것 같았다.

“…시아야. 정찰 끝났어?”

“어, 그래.”

얼마 후, 나를 부르는 이도영의 목소리에 대답한 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바닥에 설치된 작은 텐트 다섯 개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 침낭이 놓인 텐트를 구경하기도 잠시, 이내 식사를 시작했다.

“별 맛은 없네.”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급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떨어지는 맛에 한 마디를 중얼거리자 마진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흘렸다. 뭐, 전투식량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감지덕지긴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다시 알음알음 대화가 오가기 시작하는 모습에 가만히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어째 오늘따라 잦은 이상한 행동에 의문 섞인 시선을 향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조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불침번은 어떻게 할까?”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정해야 하네.’

갑자기 떠오른 화제에 이도영의 이상행동은 대충 머릿속 어딘가로 치워버린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가지 방법이 나오고, 이내 순서를 정할 방법이 결정되었다. 그리 복잡한 방법은 아니었다.

“자, 그럼 한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

몇 번의 게임 끝에, 불침번 순서를 선택할 순서가 정해졌다. 우연히도 내가 첫 번째, 이도영이 두 번째였다.

“나는 제일 일찍 서는 거로 해줘.”

원래 불침번은 가장 처음, 아니면 가장 끝이 편한 법이었다. 그다음으로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럼 시아 다음으로 설게.”

“음, 도영이는 시아 다음인가? 그럼 나는 그다음으로 할게.”

‘굳이?’

꿀시간대를 버리고 내 뒤를 택한 이도영에게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낸 순간이었다. 다음 타자인 마진철이 세 번째 시간대를 자처했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최윤아가 마지막 시간대를 선택하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사소한 배려라 이건가?’

뭐, 체력 요건을 고려하면 최윤아가 마지막 시간에 불침번을 서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긴 했다. 이도영은 엘릭서를 먹기도 했고, 평소에 체력 단련도 하지만, 쟤는 순수 마법사라 체력이 약한 편이니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어째 좀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레이디 퍼스트라기 보단, 마법 직군에 대한 배려긴 하겠지만.

“그럼 이제 불침번도 정했으니 이만 자는 게 어때?”

“그래.”

“응, 그럼 난 맨 마지막에 깨워 줘.”

내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빠져있던 동안, 어느새 이야기를 마친 이들이 하나둘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온종일 이동하느라 꽤 지친 모양인지, 텐트에 들어선 이들이 순식간에 고롱고롱 잠에 빠져들었다.

가만히 잠에 빠진 이들을 바라보다가 동굴 밖으로 나와 바닥에 앉은 순간이었다. 나를 따라 나온 이도영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안 자게? 다음 불침번이니까 빨리 자 두지 그래?”

“…오늘은 안 해?”

“해? 뭘?”

“마나, 회복해야 하잖아.”

“아…그래. 해야지”

까먹고 있었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이도영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째 오늘따라 적극적인 태도에 순간 멍한 표정으로 내게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얘, 진짜 오늘 온종일 왜 이래?’

미묘한 기분에 이도영을 응시하기도 잠시, 이내 내밀어진 손을 살포시 잡았다. 닿은 신체 부위에서 밀려오는 따스한 포근함에 조금 졸음이 밀려왔다.

“…피곤하면 그냥 자. 내가 네 불침번까지 설 테니까.”

내 얼굴을 본 이도영이 꽤 달콤한 제안을 던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내가 그걸 받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았다. 애초에 단련 상태를 고려하면 나보다 이도영이 더 피곤할 테니까. 뭐, 엘릭서를 먹었으니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답을 들은 이도영도 별로 기대하진 않았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

한동안 시선이 오가고, 이내 침묵이 내려앉았다. 벽에 가만히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에 무수하게 떠 있는 별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계속 잡고 있는 손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굳이 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몸을 맡긴 채, 그렇게 불침번을 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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