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중간 실기 시험(4)
* * *
어둑어둑해진 밤, 강가 근처에 자리 잡은 이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보급 포인트에서 보급품을 획득한 듯, 다섯 개의 텐트가 근처에 설치되어 있었다.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가만히 바닥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남성을 제외한 네 명은 보급품에 들어있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이었다. 도도한 인상의 여성이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남성을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 진짜. 조장, 그만 궁상떨고 밥이나 먹어.”
답답함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쏘아진 날카로운 시선. 그 시선을 받은 남성, 박휘성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도도한 인상의 여인이 말을 이었다.
“하루 종일 땅만 파고 있네. 아주 지극정성이야, 정말.”
“야, 야, 예화야. 그만해.”
“흥.”
자신을 말리는 목소리에 여인, 신예화가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에 입가에 난처한 웃음을 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뭐, 너도 조장이 걔한테 얼마나 신경 쓰는지는 알잖아. 그냥 좀 이해해 줘.”
“알아, 그러니까 이 정도로 참는 거야.”
그렇게 대화가 잠시 일단락되고, 이내 무리에 다가온 박휘성이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표정으로 꾸역꾸역 식사를 이어가는 박휘성의 모습에, 신예화가 픽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나 참, 근데 솔직히 내가 봐도 조장은 좀 과한 것 같긴 해.”
“야, 너도 그렇지 않냐? 진짜 좀 그렇잖아.”
자신에게 동조하는 의견에 신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동조를 구하는 시선을 받은 남성이 뭐라고 대답할지 난처한 표정을 짓던 도중이었다.
“나도 그래. 오늘 조장은 좀 너무했어.”
그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귀여운 인상의 여성이 동조의 목소리를 냈다. 갑작스러운 조원들의 배신에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은 순간, 묵묵히 사태를 관찰하던 마지막 조원마저 그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가 배정된 입구가 어디인지 알아본 일은 조장이 조금 과했던 것 같다.”
“아, 아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조원이 합심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들은 박휘성이 식사조차 멈추고 당황한 시선을 보냈다.
“아니,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조장, 그냥 스토커잖아. 애초에 그 여자가 어디로 배정됐는지는 어떻게 안 거야?”
“우리 교관이 알려줬을걸? 그 양반, 우리 눈치 엄청 보잖아.”
“아, 그 인간?”
그 말을 들은 신예화가 살짝 입가를 비틀었다. 비웃음이었다.
“난 그런 사람 진짜 마음에 안 들더라. 뭐, 그런다고 우리가 지한테 뭐라도 해줄 줄 아나?”
“뭐,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한테서 떨어질 떡고물이 탐나는 거겠지.”
“그러니까 더 짜증 난다고. 요즘 애들 사이에 도는 특별 대우 얘기, 누가 봐도 우리 얘기잖아. 그 인간이 그따위로 행동한 탓에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돼?”
옆 반에는 대마법사 딸도 있는데, 그녀는 자신들 같은 소문 하나도 없다, 교관은 실력대로 대우하는 거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던데 그러면 이설화는 뭐냐, 그렇게 한참 열변을 토한 신예화가 이내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장내에 정적이 흐르고, 묵직해진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처음 신예화를 말렸던 남성이 농담하듯 입을 연 순간이었다.
“하하, 그래도 알아본 정도로 끝났으니까 다행이지. 그 인간 성격 보면 조장한테 잘 보이겠답시고 배정된 입구를 바꿔줘도 이상할 게 없는데.”
“커헉! 컥…. 케흑…!”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린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박휘성이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시작했다. 그 과한 반응을 본 신예화가 놀라기도 잠시, 이내 도끼눈을 뜨고 박휘성을 노려보았다.
“잠깐만, 조장, 아니 야. 너 설마 진짜 그랬냐?”
“그, 그게…내가 바꿔달라고 했던 건 아닌데….”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녀의 눈치를 보는 박휘성의 모습에, 드디어 폭발한 여인이 박휘성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
세 번째 순서, 마진철이 불침번을 설 때가 되기 전까지 가만히 이도영과 불침번을 섰다. 물론 나는 첫 번째 불침번이고, 두 번째 순서는 이도영이니, 굳이 내가 그때까지 같이 불침번을 설 필요는 없긴 했지만.
그래도 얘는 같이 서 줬는데, 의리 없이 혼자 버리고 자러 가기엔 좀 기분이 그랬다. 그렇게 속으로 이유를 대며 가만히 불침번을 섰다.
그동안 딱히 이도영과 별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도 그렇고, 이도영도 그렇고, 그리 사교성 있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정확히는 말주변이 없는 성격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한 건 또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이내 교대 시간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킨 마진철이 나를 바라보며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뭐야. 조장 아직 안 잤어?”
그 말을 듣자마자 급격히 밀려오기 시작한 피로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가만히 나와 이도영을 번갈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마진철이 기지개를 켜며 동굴 밖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뗀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잘 자라.”
“응, 시아 너도.”
동굴 속, 미묘하게 다시 깔린 어색한 분위기에 쭈뼛거리기도 잠시, 이내 서로 인사를 건네고 각자의 텐트 안으로 향했다. 의외로 꽤나 널찍한 텐트 내부에 작게 감탄을 내뱉은 뒤, 다소곳하게 설치된 침낭에 몸을 누인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아침, 기상시간을 알리는 최윤아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바깥은 벌써 동이 튼 모양인지, 동굴 내부에 햇볕이 들고 있었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텐트와 침낭을 정리한 뒤 밖을 향했다.
“….”
그리고 한참 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전방에서 불타 죽은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했다. 강력한 화염에 그슬린 탓에, 단숨에 숨통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시험 시작인가.”
“…그런 것 같다.”
몬스터의 짓인지, 사람의 짓인지는 구분하기 힘든 흔적. 그에 경각심이 들어 작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같이 시체를 바라보던, 정확히는 나를 호위하던 김민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계심을 한층 끌어올린 채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물론 다른 그룹일 확률은 그리 높진 않았지만.
만약 우리가 보급 포인트로 향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어제 챙겨온 식량이 남았으므로, 우리는 굳이 보급 포인트로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직 허용 면적이 꽤 남은 것을 고려하면, 다른 그룹의 소행일 확률은 적었다.
“…잠깐, 다들 멈춰.”
그리고 한참 다시 전진을 이어가자, 이내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만히 몬스터를 응시하며 조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전투 대형으로.”
“….”
내가 알기로, 저 몬스터는 어제 마주했던 몬스터들과는 격이 다른 강력한 몬스터였다. 내가 작정하고 스킬을 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단숨에 처리하기는 힘들 정도로.
낮아진 내 목소리 톤에, 조원들이 긴장한 듯 낯빛을 굳힌 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진형을 갖춘 뒤 나를 바라보는 조원들의 시선에 가만히 입을 열었다.
“지휘는 똑같이 이도영이 하는 걸로. 할 수 있지?”
“…응.”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 못한 듯, 몬스터는 태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뭐, 지금 저 몬스터와 우리 조 사이에 놓인 거리를 고려하면 그럴 만하긴 했다. 가만히 한 마디를 입에 담은 뒤, 활시위를 놓았다.
“그럼 간다.”
쐐애액!
쏘아낸 화살이 순식간에 허공을 갈라 몬스터를 향했다. 장애물을 이리저리 피해 날아간 화살이 몬스터에게 근접한 순간이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눈치챈 몬스터가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화살을 보며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아까 그 흔적은 저놈이 남긴 모양이다.”
앞에서 곧 달려들 몬스터를 대비하던 김민우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이내 밀려든 위화감에 살짝 눈을 찡그렸다.
‘진짜 저 몬스터가 범인이 맞나?’
하지만 깊게 생각에 빠질 틈은 없었다. 화살이 날아온 진원지를 눈치챈 몬스터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급히 지워내고 몬스터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
“허억, 헉….”
던전 공략 체험에서 데스 나이트와 싸웠을 때처럼 기진맥진한 검사들이 숨을 급히 몰아쉬며 검을 휘둘렀다. 물론 데스 나이트 급으로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하필 화염을 다루는 탓에 검사들의 체력 소모가 가속화 된 모양이었다.
실제로 조금 떨어진 나도 꽤 더울 정도였으니, 직접 몬스터와 맞붙은 근접 계열들이 얼마나 힘들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에 눈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눈앞의 몬스터가 단말마를 내뱉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활을 내렸다.
그워어어어!
김민우가 휘두른 검이 몬스터의 모가지에 파고들자, 이내 울부짖던 몬스터가 점차 잠잠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풀린 긴장에 한숨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
갑작스레 쏟아진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짜릿하게 내달렸다. 급격하게 밀려든 불안에 고개를 돌린 순간, 시야에 반짝이는 점이 비쳤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이도영을 끌어안고 땅을 박차며 외쳤다.
“피해!”
퍼어어어엉!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한 순간, 방금 그 장소에서 쏘아진 어마어마한 화염이 내가 있던 장소를 내달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 화염이 다른 조원을 향했다.
쨍강!
“꺅!”
신윤아가 본능적으로 방어 마법을 펼친 듯, 화염의 진로가 가로막힌 순간이었다. 분한 듯 일렁이던 화염이 이내 폭발하듯 몸을 부풀렸다. 순식간에 방어 마법이 깨지고, 이내 화염이 품은 막대한 파괴력에 노출된 신윤아가 비명을 질렀다.
즉각 방어 마법이 전개되었을 테니 실질적인 부상은 없겠지만, 탈락은 확정이었다.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눈을 매섭게 떴다. 신입생 중 이 정도 화염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사나운 눈으로 공격이 날아온 곳을 노려보자, 이내 공격을 날린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시아야!”
“허….”
방금 그 어마어마한 마법을 날렸다고 하기엔 천진난만할 정도로 밝은 인사. 얼굴 가득 지은 싱글벙글한 표정에 헛웃음을 내뱉기도 잠시, 이내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김유진의 조원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이도영을 영입한 탓에 전반적으로 수준이 낮아진 자신의 조와는 달리, 최상위권이라고 부르기 부족함 없는 이들뿐이었다.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순간이었다.바로 옆에서 쥐꼬리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시아야. 일단 좀 놓아줘….”
“아.”
까먹고 있었네.
그 말을 듣고 품에 끌어안긴 이도영을 놓아주려던 순간, 싱글 웃던 김유진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무수한 화염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끌어안았던 이도영의 몸을 그대로 둘러멘 뒤 입을 열었다.
“야, 아무래도 일단 튀어야겠다.”
“뭐? 자, 잠깐…!”
퍼퍼퍼펑!
자리를 피하자마자 그곳을 뒤덮은 화염에 짧게 혀를 차며 빠르게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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