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중간 실기 시험(5)
* * *
퍼어어엉!
화염으로 뒤덮인 대지가 그대로 탄화되어 검게 그을렸다. 회피와 동시에 내 뒤를 쫓아 날아오는 화염 마법을 피해 곡예하듯 몸을 움직였다.아크로바틱한 움직임으로 등에 매달린 이도영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으으윽….”
격하게 흔들린 탓에 어지러운 듯, 이도영이 작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조금만 버티라는 말을 남기고 반대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정도 벌어진 거리에 작게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쐐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한 발의 화살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그 공격을 머리가 판단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움직인 몸이 화살을 공중에서 잡아챘다. 자연스럽게 행한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에 당황하기도 잠시,이내 표정을 굳히고 다시 땅을 박찼다.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아?말이 돼?”
어이가 없다는 듯,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궁사가 다시 이쪽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귓가에 연이어 들리는 파공음에 고개를 돌려 날아오는 화살을 바라보며 활을 겨누려던 순간이었다. 이도영이 손을 들어올렸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수십 개의 방어막이 화살 앞에 형성되었다.비록 화살 한 발마다 열 겹 가까이 깨져버리는 수준의 실드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박살이 날 때마다 그 이상으로 충원되는 실드의 양에 상대 궁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별….”
당황한 표정을 가만히 응시하며 궁사를 향해 화살을 쏘아내려던 순간이었다. 금세 거리를 좁힌 김유진이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거대한 화염이 떠올랐다.
금세 몸집을 불린 화염이 그대로 방어막 위로 내리꽂히고, 수십 겹을 넘어 백 겹에 달하는 방어막이 모조리 깨져나갔다. 그러고도 힘이 남은 듯, 이쪽으로 닥쳐오는 화염을 피해 몸을 날리며 탄성을 흘렸다.
“와….”
돌겠네.
속으로 나직이 욕설을 내뱉은 뒤,김유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내가 이도영을 등에 매달고 있는 것처럼,김유진은 검사 한 명의 등에 업힌 채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째 진지한 전투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얼빠진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이내 하늘에 떠오른 화염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며 다시 땅을 박찼다.
콰가가가각!
회전을 가미한 불화살이 땅에 충돌하고, 그대로 지면을 갈아버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도화선으로 다시 추격전이 재개되었다.
내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을 이도영이 실드로 막아내고,이쪽으로 날아드는 마법은 빠르게 몸을 놀려 피해낸다.그리고 빈틈이 보인 순간,추격자들을 향해 화살과 매직 미사일을 쏘아낸다. 그를 반복하며 점차 거리를 벌린다.
마치 슈팅 탄막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잠시,스쳐 지나가던 풍경 속에서 익숙한 낯이 시야에 잡혔다. 처음 날아왔던 광역 화염 마법에 휩쓸렸던 조원 중 한 명,김민우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너,탈락한 거 아니었어?”
“마법이 날아오는 걸 보고 바로 피했다.다행히도 범위 외곽에 있었던 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지.”
이도영이 던진 질문에 짧게 대답한 김민우가 일행에 합류했다.둘,아니 이제 셋이 된 일행이 빠르게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시험장의 풍경을 눈으로 훑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최윤아랑 마진철은 탈락했다는 건가.’
하기야 화염 마법이 방어 마법에 잠시 진로를 방해받았을 때,검사와 마법사 사이의 거리는 꽤 됐을 테니까, 바로 몸을 날렸다면 피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마법의 범위 외곽에 있었다고도 했으니까. 뭐, 마진철은 아쉽게도 최윤아랑 같이 탈락했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얘는 남아서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 뒤,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마진철이 탈락한 건 좀 아쉽지만,그래도 검사 한 명이라도 남은 건 정말 다행이었다.적어도 궁사,마법사,검사, 3인 체제는 꾸릴 수 있을 테니.
물론 이도영은 마법사라고 치기에는 유틸성이 심각하게 낮긴 하지만,그래도 마법사긴 마법사니까.최윤아가 탈락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마법사 역할을 대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조금 나아진 기분에 표정을 살짝 편 순간이었다. 내 등에 업혀 있는 이도영을 흘깃 바라본 김민우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너,왜 업혀 있는 거냐.”
“…아.”
김민우의 시선을 받은 이도영이 부끄러운 듯 침음성을 흘렸다. 아니, 그런데 딱히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않나?
뭐,다른 사람 등에 매달려서 가는 게 그리 좋은 꼴은 아니긴 하지.업혀 있는 상대가 여자라면 더더욱. 그렇긴 한데, 애초에 얘는 마법사잖아. 내가 더 빠르니까 내가 업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도주하는 와중에도 서로 미묘한 시선이 오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어 한 마디를 건넸다.
“내가 업은 거야.얘보다는 내가 더 빠르잖아.”
“…그래, 그런가.”
내 말을 들은 김민우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뒤쪽에서 날아온 공격에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적당히 해야지. 빡치게 하네.’
급격히 마나를 끌어올려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도영과 몸을 맞대고 있는 덕에,다행히도 마나가 고갈될 걱정은 없었다.쐐애액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을 뒤로 한 채 다시 발을 놀렸다.
***
한편 추격자 쪽.
“이게 말이 돼?”
“아,조장!몸 흔들지 마! 어지러워!”
“으으으….”
분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던 김유진이 자신을 업은 건장한 여성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그 반응에 김유진을 업고 있는 여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도 조장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최상위권 실력의 다섯 명이 뭉쳤는데,정작 유시아 하나를 못 잡고 있었으니까.
물론 김민우나 이도영이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실질적으로 그들의 추격에 방해를 끼친 지분은 유시아가 압도적이었으니,사실상 유시아 하나를 못 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타박을 듣고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유진이 이내 성토하듯 중얼거렸다.
“시아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냐?”
날아온 화살 한 발 한 발이 급소를 향해 파고들고,그를 막아내는 틈을 타서 금세 거리를 벌린다.가장 추격하기 힘든 직군,궁사를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물론 딱히 우습게 본 적도 없었고, 애초에 궁사가 추격이 힘들다고 해도 다른 궁사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들이 이 정도로 고초를 겪는 건, 순전히 유시아의 실력 탓이었으니까.
“아니,솔직히 걔,진짜 말 안 된다니까,조장?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고.내가 고만고만한 실력인 것도 아닌데.”
옆에서 발걸음을 맞춰 달리던 궁사가 김유진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방금 화살을 쏘아냈을 때, 그걸 손으로 잡은 모습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말에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이었다. 저 앞에서 달리는 유시아 일행을 향해 굵디굵은 번갯불이 날아들었다.앞서 나가던 조원,다른 검사와 마법사가 쏘아낸 공격이었다.
파지지지직!
“좋아!”
순식간에 쇄도한 번갯불이 적중함과 동시에 뿜어낸 빛으로 주위가 하얗게 물들었다.그리고 빛으로 가득 찬 장소에서,인영 하나가 떨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에 환호하기도 잠시,이내 이어진 상황에 김유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파파파파팟!
유시아가 있던 곳에서 쏘아진 수십 발의 마력 화살이,전격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를 향해 날아들었다.그 터무니없는 숫자에 공격의 정체를 매직 미사일이라고 판단한 마법사가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물론 그 예상은 오답이었다.
쨍그랑!
“아아악!”
순식간에 방어 마법을 깨뜨린 화살. 그러고도 남은 수십 발의 화살이 마법사와 그를 업고 있는 검사에게 쇄도했다.짧게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이내 그 두 명에게 탈락 판정이 내려졌다.그리고 그를 잠시 바라보던 유시아가 이내 유유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어떨지는 몰라도, 겉보기로는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장,그냥 포기할까?”
“그래….”
그 압도적인 파괴력에 멍한 표정을 지은 조원의 질문에,김유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원을 둘이나 잃었으니 더 추격을 이어가는 것은 곤란했다. 추격을 종료하고, 업힌 등에서 내려와 땅을 디디고 선 김유진이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저 공격을 날렸으면 안 쫓았지….”
아니, 그보다 저 공격 진짜 뭐야? 저게 말이 돼?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삐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땅에 쿵쿵 발을 구르는 김유진의 모습에 조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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