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중간 실기 시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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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제안은 받아들였다.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니까.방금 전까지 전력이 부족해서 끙끙 앓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이설화와 같은 최상위 중 최상위 전력이 합류하는 걸 거절할 리가 없었다.
‘마법사라는 점이 아쉽긴 한데.’
궁사와 마법사 둘.어떻게 생각해도 밸런스 좋은 편성이라고 하긴 힘든 구성이었다.물론 내실을 까보면 그렇게까지 불안정한 것도 아니었지만.이래 봬도 나도 신입생 수준은 초월한 궁사였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의 마법사와 궁사가 팀을 이뤘다는 건,사실상 반칙에 가까웠다.나는 안 맞고 상대만 공격하는 더티 플레이를 기본으로 펼칠 수 있었다는 뜻이니까.
물론 내가 과부하 탓에 시스템 적용에 약간 제한이 걸린 상태긴 했지만, 다른 조의 궁사 정도는 이 상태로도 쉽게 농락할 수 있었다. 보급 포인트로 향하는 길, 근처에서 발견한 다른 조를 이설화와 함께 처리한 뒤, 이설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아니,아무것도 아냐.”
내 시선을 받은 이설화가 내게 용무를 물었다.대충 둘러대며 시선을 떼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설화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정면을 주시하는 이설화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른 조원들이 전부 탈락했다고 했지?’
아까 팀을 이루기 전 나눴던 대화 중 가장 신경 쓰였던 말.물론 그게 거짓말일 거라고 의심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이설화가 그럴 음모를 꾸밀 캐릭터도 아니지만,애초에 우리를 꾀어내 공격하려던 거라고 치기에는 이런 거짓말로 유인하기보다는 그냥 강가에서 우리를 기습하는 게 더 편했을 테니까. 즉, 그게 거짓말이었다면 굳이 우리랑 같이 다닐 동기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팀을 결성해서 같이 다닌 결과,이설화에게 팀 플레이에 대한 심각한 결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조별 플레이에 심각하게 비협조적인 것도 아니고,본인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으니까.그런 이가 벌써부터 조원을 전부 잃고 떠돌아다닌다는 건 꽤 이상할 법했다. 물론 예상가는 이유가 전혀 없진 않았다.
‘교관의 차별 대우…인가.’
옆 반의 일이기에 그리 비중이 높진 않았지만,일단 이설화도 히로인이었으니까.원작에서도 옆 반의 실태에 대해 어느 정도는 묘사된 편이었다.그리 좋은 묘사는 아니었지만. 원작에서의 그 짤막한 묘사만 봐도,그쪽의 교관이 어떤 인간인지는 충분히 알 만했다.
‘뭐,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쪽 교관의 삽질 덕에 우리가 강력한 전력을 얻게 된 걸 고려하면,딱히 그 교관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애초에 내가 그것 때문에 화를 낼 만큼 이설화랑 친한 사이인 것도 아니기도 하고.
“….”
생각을 마치고 정찰을 이어가던 도중, 잠시 이설화와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동향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미 꽤 친해졌었지만, 봉사활동 부에서 같은 조인 덕에 더욱 친분을 쌓은 듯, 사이 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기도 잠시,이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나 회복하기는 힘들 것 같네.’
신체 접촉으로 방법이 바뀐 이상,마나 회복을 위해서는 최소한 손이라도 잡아야 할 텐데.아무래도 신체 접촉을 하기에는 조금 곤란할 것 같았다. 뭐,마나가 그리 부족한 편은 아니었지만,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괜히 방법이 바뀌어서,귀찮게.’
이설화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도영을 보며, 이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짜증에 살짝 눈가를 좁혔다.여태 별 생각 없긴 했지만, 지금 보면 바뀐 마나 회복 방식은 귀찮기 짝이 없었다. 올라오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고 다시 정찰을 재개했다.
*
딱히 그 후에도 별 문제는 없었다.
물론 다른 조나 몬스터를 발견하는 일은,허용 면적이 줄어들었으니 더 잦아지긴 했다. 하지만 김유진 때의 일을 교훈 삼아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기도 했고,애초에 이쪽의 사정거리가 상대 조에 비해 압도적이었으니까.우리 쪽이 피해를 입는 경우는 없었다.이설화의 화력이 화력이다 보니,시간이 그리 질질 끌리지도 않았고.
아무튼 오늘도 보급 포인트에서 투하된 보급품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보급품은5인이 기준 분량이었으니, 쓸일 없는 텐트 두 개와 비상식량 일부를 내버린 뒤 물끄러미 나머지 짐덩이를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짐덩이로 가까이 다가간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들고 갈게.”
“…네가?”
“응.”
그 제안에 솔깃하기도 잠시,이내 미묘하게 걱정되는 기분에 묘한 표정으로 이도영을 바라보았다.물론 엘릭서까지 먹은 데다가,평소 신체 단련도 게을리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이도영의 신체 능력이 그렇게 딸리는 편은 아니긴 했지만. 그건 아직 마법사치고 괜찮다, 수준이었으니까.
가만히 괜찮겠냐는 시선을 보내자,이내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앞에서 정찰을 맡아야 하는데,짐을 옮기는 일까지 하면 방해가 될 거고, 이설화는 순수 마법사라서 체력이 약하니 짐을 옮기기 힘들다.그러니 이도영 자신이 짐을 옮기는 게 가장 합당하다.뭐 그런 식의 말이었다.
“나는 괜찮은데.”
“아냐,그리고 나는 하는 일도 없잖아.”
이설화의 말에 가볍게 대답한 이도영이 짐을 주워들었다.말투와 달리 내용은 그리 가볍진 않았지만.아무래도 자신이 전력에 기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조금 신경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오늘,이도영이 기여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대부분의 전투가 장거리에서 벌어진 덕에, 사실상 매직 미사일 원툴인 이도영은 거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으니까.딱히 나나 이설화가 뭐라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이도영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럼.”
뭐,이런 일이라도 해서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긴 했다. 그래도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살짝 걱정이 들어 질문을 던졌다.
“진짜 괜찮겠어?”
“응.”
내 질문에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대답과는 달리,이도영의 상태는 그리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뭐,엄청 힘들어 보이는 수준도 아니긴 했지만.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뭐,그럼 조금만 고생해줘.어차피 곧 아영지를 찾긴 해야 하니까.”
원래는 조금 더 다니면서 점수를 번 뒤,야영지를 찾을 생각이었지만.그냥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생각해보니 야영지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근처를 정찰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점심을 거른 탓에 조금 배가 고프긴 했으니까.
생각을 마친 뒤,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보급 포인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그 후,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이설화와 같이 근처를 둘러보았다.다행히도 다른 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를 사냥한 뒤, 다시 야영지로 복귀했다.
“오늘 불침번은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야영지에 돌아오자, 이내 잘 시간이 되어 불침번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뭐, 순서를 정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이설화가 첫 번째,이도영이 두 번째,그리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순서를 정하고 이내 불침번을 서기 시작하는 이설화를 보며 텐트 안으로 향했다. 침낭에 누워 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시험도 끝인가.’
솔직히 귀찮기 짝이 없는 시험이었다.야영도 그렇고,하루 종일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온종일 긴장하면서 정찰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피곤해 죽을 것 같았으니까. 그 상태로 불침번을 서면 없던 짜증도 생겨나겠지.
‘뭐,어제는 그렇게 짜증나지는 않았지만.’
혼자 선 게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역시 첫 번째 순서였다는 점이 가장 주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았다.중간에 잠을 깨는 것보단 아예 조금 덜 자는 게 나았으니까.
‘그래서 이도영 걔도 안 자고 깨어 있었던 건가.’
굳이 얼마 안 되는 쪽잠을 자다가 깨워질 바에는,차라리 쭉 불침번을 서는 게 나을 거란 판단이었나? 뭐, 내가 걔 생각을 알 방도는 없으니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도 잠시,이내 밀려오기 시작한 졸음에 생각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
“시아야.”
“…어,일어났어.”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불침번을 설 순서가 되어 이도영이 부른 모양이었다.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밖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미묘하게 밝은 바깥 풍경에 눈을 찌푸렸다.
“어…?”
어째 날이 이상하게 밝아 보인다?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이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불침번을 설 시간은커녕, 벌써 기상 시간 직전이 되어있었다. 당황한 눈으로 이도영에게 질문했다.
“아니,왜 안 깨웠어?”
“그냥 푹 자라고.”
“아니….”
어이가 없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탓에 입을 꾹 닫고 이도영을 빤히 바라보았다.불침번을 서느라 밤을 샌 모양인지,이도영의 얼굴은 꽤 핼쑥해 보였다. 그 몰골에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내 몫까지 불침번 선 거야?그래서 안 깨운 거고?”
“응.”
“…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자, 이도영이 대답 대신 오른손을 내밀었다.물끄러미 무슨 뜻이냐는 듯 그 손을 바라보자,이내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마나 회복해야지.”
“…그래.”
티나게 화제를 돌리려는 모습에 묵묵히 손을 잡았다. 닿은 신체부위에서 흡수되는 마나가 청량감과 포근함을 전해주었다. 그 감각에 취하기도 잠시, 이내 반쪽이 된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고맙긴 한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야.”
“그러니까,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미안.”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눈꼬리를 내렸다. 어째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신경 써서 해준 행동일 텐데, 너무 타박만 한 느낌이었다. 살짝 미안한 기분이 들어 한 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신경 써준 건 고마워. 나 때문에 밤 샌 거지?”
“…응.”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가라앉은 분위기에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주잡은 손에서 흘러들어오는 마나를 느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슬슬 떨어지려던 순간이었다.
벌써 잠에서 깬 모양인지, 이설화가 텐트에서 나와 이쪽을 향했다. 물끄러미 마주잡은 손을 바라보던 이설화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데이트?”
“하아….”
차마 변명할 기력도 남지 않아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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