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 중간 실기 시험(9) (90/167)

〈 90화 〉 중간 실기 시험(9)

* * *

­우우우우웅!

“마법? 이쪽으로?”

이동하던 도중, 김유진은 전신의 기감을 통해 막대한 마력의 기파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위력의 마법. 그 마법에 맞먹는,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마법의 전조였다.

그리고 그 마법의 목적이 자신들임을 깨달은 순간, 김유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에 대응하듯 김유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의 기파가 이내 이리저리 엮여 한 가지 마법으로 화했다.

적색을 넘어 푸른 빛에 도달한 초고온의 화염,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이 김유진의 앞에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법이 완성된 순간, 그에 대비되는 극저온의 냉기가 김유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어어어어엉!

고열과 극저온, 불과 얼음이라는 상반된 속성에 노출된 공기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굉음을 터뜨렸다. 화염과 얼음이 본격적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그 빈틈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진 화살이 김유진을 향했다

­까아앙!

고작 화살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실린 어마어마한 물리력에 화살을 쳐낸 검사의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겨우 화살을 막아낸 검사가 자세를 되찾은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허공에 떠오른 수백 발의 매직 미사일이 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신입생 수준을 한참 벗어난 궁술.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막대한 수량의 매직 미사일. 겨우겨우 화염의 벽을 확장시켜 매직 미사일을 막아낸 김유진이 당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시아…? 도영이?”

“맞아.”

그 중얼거림에 긍정을 표하며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시아, 이도영. 그리고 백발의 소녀를 본 순간, 김유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설화?”

“안녕.”

전투 상황에는 맞지 않는 태평한 인사.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을 띄운 백발의 소녀, 이설화가 김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도 잠시, 이내 상황을 이해한 김유진이 질문을 던졌다.

“설마 팀이라도 맺은 거야?”

“어.”

흔쾌한 긍정. 그에 김유진의 표정이 작게 찌푸려졌다. 자신의 방어 마법에도 밀리지 않고 있는, 아니 오히려 우세를 점하고 있는 수준의 마법. 그리고 빙() 속성. 신입생 중,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마법사는 이설화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마법의 시전자가 이설화임을 납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해와 감정은 별개였다. 유시아와 이설화, 신입생 중 1위의 궁사와 마법사가 힘을 합쳤다는 건, 그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므로. 비록 마지막 한 명, 이도영의 실력은 조금 애매했지만, 유시아와 이설화의 합작은 그 정도 부족함은 쉽게 메울 수 있었으니까.

“어제 기습당한 게 참 인상 깊어서, 오늘 보답해주려고.”

“아니, 그건….”

어제의 기습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 칼날 같은 말투. 유시아의 시선을 받은 김유진이 작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화염의 벽에서 다시 한번 냉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그 압도적인 위력에 화염의 벽이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김유진이 마나를 더욱 쏟아부었지만, 한 번 기세에서 밀린 화염은 속절없이 냉기에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실력의 격차에 이를 악문 김유진을 옆에 있던 궁사가 잡아끌었다.

“조장! 튀자!”

그 손길에 김유진의 몸이 자리를 벗어난 순간, 화염을 완전히 잡아먹은 냉기가 이내 방금 전까지 김유진이 있던 장소에 직격했다. 급격한 냉각을 버티지 못한 땅이 산산이 바스러지는 것을 보며 궁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쟤, 학년 1위 아니야? 왜 둘이 같이 다니고 있어?”

“팀 맺었대잖아! 나도 몰라!”

“야, 그보다 빨리 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것 좀 봐.”

“헐….”

김유진과 대화를 나누기도 잠시, 이내 검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궁사가 경망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마법사가 아닌 그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의 기파. 아무리 봐도 신입생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힘이었다. 이설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역 마법에 전조에, 눈을 질끈 감은 이들이 이내 전속력으로 도주를 시작했다.

***

“당할 땐 짜증 났는데, 막상 내가 쫓으니까 재밌네.”

“아하하….”

김유진 조를 추격하며 중얼거린 한 마디에 이도영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 애매한 반응에 괜히 째릿 눈치를 준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고개를 살짝 들자, 허공을 날아서 이동하고 있는 이설화와 그 밑에서 같이 날고 있는 이도영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나저나 너, 마력은 괜찮냐?”

“응. 문제없어.”

마법사만 둘인 탓에 추격하면서 어떻게 이동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허공을 유영하는 이설화의 속도는 나 못지않게 신속했다. 원래 신입생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닌데, 그걸 혼자도 아니고, 이도영까지 적용하다니. 역시 이설화라고 해야 할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나란히 허공을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업고 갈 걸 그랬나?’

이도영을 업은 상태에서는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도 잠시, 이내 김유진 일행이 향한 곳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끝이 보이는 삼림에서 벗어나 이동이 편한 초원으로 진입한 덕에,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삼림에 있었기에, 거리를 좁히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나 먼저 가 있을게. 도영이랑 따라와.”

그 말을 남긴 이설화가 이도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시선을 향하기도 잠시, 이내 다시 비행 마법을 시전한 이설화의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전진했다. 점점 멀어지는 이설화의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혼자 가네.”

“그러게….”

*

­퍼어어어엉!

“이익!”

이설화의 뒤를 따라 초원으로 진입한 뒤, 목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벌써 접근을 끝낸 이설화가 허공에서 융단폭격을 퍼붓고, 그에 대항하듯 화염과 화살이 하늘을 거슬러 올라 이설화를 향하고 있었다. 3:1의 싸움이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이설화의 실력에 김유진이 분한 듯 이를 가는 모습이 눈에 비쳤다.

“와, 쟤 진짜 세긴 세네.”

작게 감탄을 내뱉자 이도영이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황을 보아하니 그리 급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여유를 가지고 이도영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쐐애애애액!

갑작스레 반대편에서 쏘아진 화살과 바람이 허공에 있는 이설화를 향해 날아들었다.

“뭐, 뭐야?”

놀란 이도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다행히도 기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이설화가 이내 싸늘한 눈으로 공격이 날아온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낯이 눈에 띄었다. 박휘성 조였다.

‘아니, 쟤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등장에 혼란스러운 듯, 전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한 박휘성 조가 이내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오는 박휘성 조를 바라보며 우리도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시아? 너도 여기 있었어?”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박휘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기도 잠시, 내 옆에 있는 이도영을 눈에 담은 박휘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실례지만 다른 조원들은 어디 있어?”

“어제 전부 탈락했는데.”

“…그럼 어제부터 단둘이었던 거야?”

엄밀히 따지면 둘이 아니라 셋이었지, 이설화까지 합쳐서. 하지만 내가 해명을 내뱉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박휘성이 이설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뭔데. 어이가 없네.

“…안녕, 설화야.”

“그래.”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설화에게 인사를 건넨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설화야, 미안하지만 물러가 줬으면 해. 이쪽은 우리랑 약속한 게 있거든.”

“약속?”

“그건….”

“그건 네가 알 필요 없잖아?”

이설화의 질문에 대답하는 박휘성의 말을 끊고, 도도한 인상의 여성이 이설화에게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쏘아붙였다. 그에 이설화가 뭐라 반응하려던 순간이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일단 나도 쟤랑 팀이라서.”

“…시아, 너랑 팀이라고?”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난 탓에 슬슬 시험 종료 시각이 코앞이었기에, 지금 김유진 조를 처리하는 게 마지막으로 성적을 올릴 기회였다. 즉, 여기서 물러나면 성적 역전의 기회는 물건너가는 셈이었으니, 물러나라는 말은 간과할 수 없었다. 내 말을 들은 박휘성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저, 시아야….”

“아, 됐어. 조장, 비켜.”

아까 박휘성의 말을 끊었던 도도한 인상의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박휘성을 밀쳤다.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행동에 멍하니 밀려난 박휘성을 뒤로 한 여성이 내게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너, 조장이 그냥 가라고 할 때 가지그래? 시간이 촉박한 건 알겠는데, 주제는 알아야지.”

“예화야!”

“아, 조장은 좀 꺼져봐! 그제부터 짜증 나게 진짜!”

지들끼리 티격대는 모습을 보며 밀려든 감정에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지금 나한테 주제를 알라고 한 거 맞지? 어이가 없네.

급격히 밀려온 빡침에 표정을 굳힌 순간이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도영이 얼굴을 찌푸린 채 나서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뒤, 입을 터는 여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그래.

“조장이 계속 봐줬다고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좀 적당히 하라고. 괜히 순진한 조장….”

“신예화!”

“아, 알았어. 알았다고!”

계속해서 입을 놀리던 여자에게 소리친 박휘성이 미안하다는 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얘가 한 말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래도 지금은 물러가 주면 안 될까?”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제발 그만 좀 해!”

마지막까지 날뛰던 여자의 입을 막은 박휘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박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너랑 싸우기 싫어서 그래. 내가 사과할 테니까….”

“나랑 싸우기 싫다고?”

박휘성의 말을 끊고 방금까지 내게 시비를 걸었던 여자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머릿속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던 퓨즈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이도영에게 작게 전투를 준비하라는 눈짓을 보내자, 이내 알겠다는 듯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확인한 뒤, 박휘성의 말을 자르고 대꾸했다.

“그래,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곧 시험 종료 시각이라서.”

“아, 그래서 진짜 덤벼보겠단….”

“야.”

내 말을 듣자마자 가소롭다는 듯 입을 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게 말해보라는 양, 팔짱을 낀 여성의 태도에 한 번 더 짜증이 일어났다.

아, 이 새끼가 사람 진짜 빡치게 하네.

“넌 그냥 닥쳐, 좀.”

“뭐?”

내 입에서 대뜸 욕설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급격히 멍해진 여성의 얼굴을 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쐐애액!

“꺅!”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쏘아진 화살. 그에 상대가 급히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그 마법에 막힌 화살이 부들부들 떨며 허공에 멈췄다. 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상대가 이내 표독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진짜 해보자는 거….”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쨍그랑 소리와 함께 마법을 깨뜨린 화살이 여성의 몸을 관통했다. 자신이 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지은 채 탈락한 여성을 바라본 박휘성이 내게 소리를 질렀다.

“시아야!”

“조장, 그만 포기해. 싸움은 못 피할 것 같은데.”

전투태세에 들어간 조원들 중 한 명,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던 남성이 박휘성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얼굴을 굳히기도 잠시, 이내 내 공격을 신호로 받아들인 듯, 전투를 재개한 김유진 일행과 이설화를 본 박휘성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진짜 싸우고 싶진 않았는데.”

탄식하듯 중얼거린 박휘성의 말을 마지막으로, 삼파전이 시작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