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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 중간 실기 시험(10) (91/167)

〈 91화 〉 중간 실기 시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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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긴장으로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박휘성이 흘깃 김유진 일행을 바라보았다. 이설화의 마법에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도움을 청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이래서 싸우기 싫었는데.’

그 결정에 사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전투를 피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유시아의 실력. 그것이 진짜 이유였으니까.

­까아앙!

이쪽을 향해 매섭게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낸 검사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검을 든 팔이 크게 원을 그리며 뒤로 꺾였다.

“크윽….”

고작 화살 한 발에 담겨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거력. 단순한 활대의 장력에서 나온 위력이 아니었다. 그 원인은 화살에 깃든 정순하기 짝이 없는 마나. 그를 받아낸 탓에 자세가 흐트러진 검사를 향해 다시 한 번 날아드는 화살을 급하게 형성된 방어 마법이 가로막았다.

­쨍강!

“저게 말이 돼?!”

나름대로 고위의 방어 마법. 급히 시전한 탓에 온전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화살 한 발에 픽 하고 깨져버릴 만한 마법은 아니었다. 하나, 쏘아진 것 또한 단순한 화살 한 발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난 마법을 보며 마법사가 경악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더 강해졌다는 건가….’

대략 한 달 전, 대련 수업에서 유시아와 겨뤘던 기억이 상기된 박휘성이 짧게 몸을 떨었다. 자신의 마력 방패를 단숨에 깨부수고 쇄도했던 화살.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듯한 위력이었다. 아니, 그때의 위력보다 몇 곱절은 강해진 듯했다.

“젠장…!”

입술을 짓씹은 박휘성이 유시아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세 발의 멀티 샷. 궤도를 휘어가며 무작위로 쇄도하는 화살에 대한 유시아의 대응은 간단했다. 가볍게 들어올린 손에 마력을 두른 뒤, 그대로 화살을 향해 휘두른다. 까가강, 하는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화살이 맥없이 바닥에 뒹굴었다.

“괴물…이군.”

여태 신음성을 제외하면 침묵을 지키던 검사조차 경악을 금치 못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귓가에 들려온 기묘한 진동음에 박휘성이 눈을 굴렸다. 이도영과 다른 한 명이 싸우는 곳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우우우우웅!

허공에 떠오른 수백 발의 매직 미사일. 형편없는 위력의 기초 마법에 불과하지만, 그 수량이 저 정도로 막대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상대가 근접 계열이라면 더더욱. 자신을 향해 내려꽂히는 매직 미사일을 검을 휘둘러 튕겨내는 다른 조원을 보며 박휘성이 탄식을 내뱉었다.

김유진 조는 이설화가, 그리고 자신의 조 중 자신을 포함한 셋은 유시아가, 마지막 검사 한 명은 이도영이. 기가 막힐 정도로 백중세를 이룬 전력. 고착 상태에 들어선 전장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아니, 유시아와 이설화, 단 한 명에게 자신과 김유진의 조가 처참하게 밀리고 있는 것을 보면, 백중세라는 말도 높게 쳐준 걸지도.

순수한 실력의 격차. 셋이 뭉쳤음에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차이. 그를 목도한 박휘성이 이를 악물었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음에도 자만했다. 마법사 1위인 이설화를 상대로 2위인 김유진이 처참하게 밀리고 있는 걸 보면, 자신 또한 그 정도의 격차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했어야 했다.

‘최소한 예화가 당하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 최상위권의 마법사 한 명이 추가되었다면, 이도영 정도는 이미 쓰러뜨렸을 터. 그렇다면 그 후 유시아와 제대로 맞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셋으로는 밀리지만 다섯이라면 최소한 동수, 더 나아가 우세를 점할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처음의 기습으로 신예화가 탈락해버린 이상, 헛된 망상에 불과한 생각이었다. 숫자의 우세를 점했음에도 전력이 열세라는 우스운 상황에 박휘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박휘성의 눈이 매섭게 뜨였다.

‘전력이 부족해. 정면으로 맞붙으면 이길 수 없어.’

그렇다면 지금 펼쳐야 할 전략은, 차륜전. 피로를 최대한 줄이면서, 숫자의 우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 덕에 시아가 지쳐버린다면 우리의 승리고, 단순히 시험 종료까지 시간을 끌기만 해도 이기는 거나 다름없다. 대응 방식을 결정한 박휘성이 이내 다시 화살을 쏘아내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음…?’

전투에 돌입한 이후, 지금까지 쭉 이어지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티 나게 바뀐 태도에 눈가를 좁혔다.

방금까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를 쓰며 달려들던 검사가, 이제 날아오는 공격에 대응하는 데 포커스를 맞춘다. 이쪽을 향해 공격 마법을 펑펑 쏟아붓던 마법사가, 공격을 최소화한 채 방어 마법에 전념한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움직임. 그 움직임의 의도를 깨달은 순간 눈가를 찌푸렸다.

‘이거 안 좋은데.’

단순히 내 체력을 빼려는 의도, 아니면 시험 종료까지 시간을 끌려는 의도였겠지만,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내 전투 유지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가만히 눈을 굴려 곁눈질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현재 보유 중인 마나]

[71/120]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아있는 마나. 거기에 더해, 일부 몸 안에 남은 권능이 조금씩 회복을 돕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한참 부족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날아오는 화살을 고개를 틀어 회피한 뒤,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나마 김유진 조와 처음 마주쳤을 때와는 달리, 셋에 불과한 숫자. 그리고 김유진에 비하기는 부족한 마법사의 실력 덕에 우세를 점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결정타를 먹이기에는 부족했다. 시선을 흘긋 돌려 김유진 조와 맞붙고 있는 이설화의 상황을 확인했다.

‘저쪽은 아직 한창 싸우는 중이고….’

화염과 냉기가 맞부딪치는 전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열세였으나, 슬슬 이설화를 상대하는 데 적응한 듯, 전장은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설화의 도움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도영은…. 오히려 열세인가.’

반대로 시선을 향하자, 검사를 향해 매직 미사일을 쏟아내는 이도영의 모습이 보였다. 이설화를 상대하는 김유진 조와 마찬가지로, 매직 미사일에 적응을 마친 모양인지 검사는 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도영은 슬슬 마력이 달리기 시작하는지 초조한 기색이었다.

‘뭐, 지금 이도영 실력으로 이 정도까지 해준 것도 대단한 거지만.’

칭찬해주면 칭찬해줬지, 딱히 뭐라고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지금 상황은 별개. 전황이 영 곤란하게 돌아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공세에 힘이 빠진 틈을 타, 이쪽을 덮쳐오는 마법을 발을 굴려 피한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부족한 건 화력. 지금 내가 우세를 점했음에도 결정타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결정적인 화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물론 시스템 적용 강도를 더 높이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몸이 과부하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탓에 그건 불가능했으니까.

‘궁술 랭크를 더 높이는 건 탈락.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탈락. 다른 방법은…없나?’

차라리 이도영이랑 붙어서 싸우는 게 나았을까? 아니, 그건 아니다. 나라면 몰라도, 이도영은 저 셋, 아니 붙어서 싸운다면 넷이겠지, 아무튼 박휘성 조의 합공을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내가 이도영을 업으면 되지 않냐 싶겠지만, 이도영을 업은 상태로는 운신의 폭이 심각하게 좁아진다. 김유진 조와 싸울 때도 회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큰 기술을 날린 뒤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까앙!

“…진짜 전혀 안 봐주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틈을 타 또다시 날아온 화살을 쳐내며 이를 악물었다. 얍삽한 견제였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인적인 우세, 자원의 총량에서의 우세, 그러한 우세를 가장 잘 활용하려면 차륜전과 같이 소수의 힘을 빼는 방법이 유효했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악재가 터졌다. 이도영이 마력을 전부 소진한 듯, 결국 허공에 떠오르던 매직 미사일의 생성이 멈췄다. 그 난감한 상황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아직까지 허공에 떠오른 매직 미사일의 수를 고려하면, 이도영이 당장 당하진 않겠지만. 그래 봤자 남은 시간은 촌각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차라리 권능을 사용하면 마력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아무래도 내가 했던 말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모두 사용했거나.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권능이라고?’

폭주를 유도하는 건 미친 짓이다. 고작 시험 따위에서 이기자고 그딴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폭주를 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폭주는 권능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필수적인 목표가 아니니까. 진짜 목표는 권능의 발현.

‘분명 저번에, 권능이 안정을 유지하는 한도에서 힘을 끌어왔다고 했지?’

폭주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권능을 끌어낸다. 즉, 그 선이 높아진다면 더욱 많은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을 높이는 방법은, 이미 하나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궁술은 이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정령술은 달라.’

육체를 사용하는 궁술과는 다르게, 정령술은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기술. 물론 과부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나, 궁술에 비해 그 활용이 더 자유롭다. 그리고 정령술은 계약한 존재가, 자신의 힘을 더욱 원활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술.즉, 이게 본래 정령술의 사용법이다.

“이제 끝이다!”

그 순간, 슬슬 매직 미사일이 떨어져 가는 이도영을 향해 검사가 달려들었다. 급히 시위에 걸린 화살에 지닌 마력을 최대한 쏟아부었다. 목표는 박휘성 조. 발길을 묶은 다음, 바로 이도영에게 향한다. 생각을 마치고 활시위를 놓았다.

­쐐애액!

“뭐…?!”

상대를 향해 날아들던 단발의 화살이 순식간에 증식을 시작했다. 한 발에서 두 발, 네 발, 이윽고 수십 발의 화살이 이리저리 궤도를 틀어가며 박휘성 조를 향해 쇄도했다. 상대 또한 급히 방어 마법을 시전했지만, 이번 공격이 품은 마력의 양을 고려하면, 쉽게 막지는 못할 터.

­까가가가각!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터뜨리며 수십 발에 화살이 방어 마법에 직격한 순간, 드러난 빈틈을 향해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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