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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 랭킹 갱신(1) (92/167)

〈 92화 〉 랭킹 갱신(1)

* * *

새끼를 가득 친 화살. 수십 발의 화살이 그대로 방어 마법에 충돌했다.

­투두두두둑!

마치 우박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 그 소리를 수십 배는 키운 듯한 충돌음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견고하던 방어막에 실금이 가고, 이내 으스러지기 시작하는 실드를 본 적들이 방어 태세에 들어간 틈을 타 몸을 날렸다.

“뭐…?”

공세를 잇기는커녕, 오히려 자리를 피해 이도영을 향해 이동하는 내 모습을 본 박휘성이 의문 섞인 목소리를 냈다.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는 타당한 의문이었다. 이도영과 내가 함께 움직인다면, 그 효율은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였으니까.

애초에 마력이 회복되는 걸 계산 안에 넣어도 이도영과 합류해서 전투를 이어가는 건 마이너스였는데, 그걸 모르는 이에게 내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는 뻔했다. 쓸데없이 손해를 자초하는 멍청한 행동에 불과하게 보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며 박휘성 조를 흘긋 바라본 순간, 예상치 못한 반응이 눈에 띄었다.

‘…눈치챘나?’

예상했던 반응인 비웃음이나 의문이 아니었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박휘성이 이도영이 있는 방향을 심각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히든카드의 정체는 몰라도, 적어도 내게 무슨 수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이내 궁지에 몰린 이도영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

하늘을 빽빽하게 채웠던 매직 미사일의 수량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 있었다. 그나마 남은 수량마저 실시간으로 깎여나감에 따라 이도영의 얼굴에 점점 패색이 번졌다.

­우우우우웅!

여전히 매직 미사일의 숫자는 꽤 되었으나, 숙련된 검사, 거기에 더해 이미 수의 폭력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가 상대라면 발걸음을 묶는 것조차 힘든 수량이었다.

곧 다가올 패배를 직감한 듯, 이도영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건 안 되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다리를 움직이며 활을 겨냥했다. 목표는 검사. 세 발의 화살을 시위에 메긴 뒤, 이내 상대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쐐애액!

“…큭!”

깔끔한 멀티 샷. 활대를 떠난 세 발의 화살이 이리저리 궤도를 휘며 쇄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검사를 향해 화살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까가강!

당황도 잠시,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검사가 검을 휘둘렀다.

클린 히트. 마력이 가득 깃든 검면이 화살촉을 후려치고, 이내 청명한 종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화살이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역시 무리인가….”

아까 전 다른 검사에게 화살을 쏘았던 때와 달리, 이번에 가한 공격을 쉽게 막아낸 검사의 모습. 상대한 검사 간 실력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내 자세에 있었다.

무빙 샷. 몸을 단단히 받치는 지반이 있는 상태에서 쏘아낸 화살과 쉼 없이 움직이는 상태에서 쏘아낸 화살에 실린 힘이 같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잠시 이동을 멈추고 활을 쏠 여유는 나지 않았다. 슬슬 박휘성 일행의 혼란이 잦아들었을 테니까.

그 생각이 씨가 되었는지, 이내 이쪽을 향해 공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펑! 펑! 펑!

정면에 내리꽂힌 마법에 황급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마법의 뒤를 따른 화살이 급소를 향해 독랄하게 날아들었다.급히 팔을 휘둘러 화살을 쳐내자 이내 손바닥에서 느껴진 얼얼함에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화살에 마력을 적잖이도 쏟아부은 모양이었다.

‘낭비 수준인데, 이건.’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내 발길을 묶는데 이 정도로 강력한 화살을 쏠 필요는 없었다. 괜히 마력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단순히 발길을 묶는 게 목표라면 그렇다는 거지만.

생각도 잠시, 이내 다시 쏘아진 마법을 보자마자 급히 땅을 박찼다. 그 순간이었다.

­쐐액!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마법을 회피한 순간, 다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

땅에 디딘 왼 다리를 축으로 가볍게 몸을 회전하며 허공에 뜬 오른발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 상태로 화살을 걷어찬 순간 다리에서 느껴진 얼얼한 충격에 표정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꼬리를 물고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활대를 겨눴다.

­퍼퍼펑!

가볍게 날린 화살에도 속절없이 폭발하는 마법. 그리 수준 높은 마법은 아니었다.

그저 내 움직임을 견제하는데, 발을 묶는데 집중하겠다는 듯 무수하게 쏟아지는 대인 마법. 그리고 그와 반대로 한 발 한 발 막대한 마력이 깃들어 있는, 마법을 피할 때 드러난 빈틈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

빈틈을 시기적절하게 노리고 쏘아진 탓에, 회피하지 못한 화살을 어쩔 수 없이 막아낼 때마다 몸에 쌓이는 피로감에 위험을 직감했다.

‘이거, 위험한데….’

방해가 없었다면 두 번은 도착했을 짧은 거리였음에도, 아직 이도영과 내 사이의 거리는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그에 발걸음을 재촉하려고 해도, 박휘성 조의 공격은 내 전진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물귀신처럼 발길을 묶는 데 특화된 전법. 조금 전 대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실상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또다시 차륜전에 들어간 셈이나 다름없었다.

김유진과 처음 대치했을 때처럼 장소가 숲이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전장은 장애물 하나 없는 평야. 이렇게 집요하게 발길을 잡아끈다면,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발길이 묶여 있는 동안, 이도영의 전황은 착실하게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글렀나.”

스물, 열, 다섯, 그리고 하나. 허공을 유영하던 매직 미사일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이내 마지막 남은 매직 미사일마저 검사의 검에 스러졌다.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려는 이도영을 향해 검사가 접근하고, 곧 결딴이 나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근처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에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갑작스레 일어난 이변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방금까지만 해도 녹색으로 가득 찼던 초원이,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얼음, 또 얼음. 전장 한 귀퉁이, 수십 미터의 면적이 통째로 얼어붙은 전장. 그 순백의 전장 한가운데에서, 흐릿한 불길 하나만이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이 스러지고, 불꽃 안에서 김유진 조의 모습이 드러났다. 조금 전 펼쳐진 마법에 경악한 듯,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한 궁사가 작게 중얼거리는 입 모양이 눈에 비쳤다.

“괴물….”

신입생 수준에 빗대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고, 현역 영웅에 비교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신위. 궁사의 말대로, 괴물이라고 할 만한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설화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파아앗!

맹금류의 것처럼 변한 왼쪽 눈을 부릅뜬 이설화가 김유진 조를 바라보았다. 이설화의 왼눈에서 흘러나오는 무지막지한 마력 기파에 위축된 김유진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설화가 손을 치켜들자 푸르던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압도적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토트의 눈.’

이도영의 폭주와 비슷한 메커니즘이지만, 그 안정성의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두 사람이 지닌 실력이라는 기반 자체가 달랐으니까.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휘두르는 특성이 전해주는 어마어마한 출력.

그녀가 시전한 대마법에 경악에 빠진 다른 이들을 보며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지금 상황 자체는 좋지만, 오래가진 못해.’

결국, 과부하도 폭주도, 본질은 정해진 출력 이상으로 힘을 끌어내는 행위. 차이점이 있다면, 과부하와는 다르게 폭주는 신체가 망가지건 말건 출력이 끊이지 않고 쏟아진다는 정도다.

아니, 과부하에서 조절에 실패하면 바로 폭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그리고 비록 김유진이 실력 자체가 밀린다고는 하나, 3:1 시점에서 속절없이 당하기만 할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꿍쳐둔 수가 한두 개 정도는 있을 터.

그 예상을 긍정하듯, 이내 솟아오른 극열의 화염이 김유진의 주위를 감싸듯 타올랐다.

“….”

주변을 뒤덮은 냉기에 맞서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몸을 지키는 정도는 충분히 해낼 만한 화력. 아무래도 박휘성 조가 택했던 전략과 마찬가지로, 김유진도 장기전에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시간만 끌어도 승리, 라 이거지.’

시험 종료 시각까지만 버텨내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나라고 해도 그런 선택을 내렸을 테니.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 몰려든 새하얀 냉기의 군집에서 뿜어진 막대한 냉기가 김유진의 화염에 때려 박혔다.

­푸화아아악!

또다시 화염과 냉기가 맞부딪히고, 이내 부외자들이 다시 전투를 이어가려던 찰나, 다시 이도영에게 접근한 검사가 이도영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이었다.

하늘을 가린 냉기의 군집에서 쏘아진 얼음의 창이, 검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큭!”

검사가 창을 쳐내기 위해 공격 방향을 바꾼 틈을 타, 이도영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에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살피자, 이내 현재 상황이 두 눈에 들어왔다. 짧게 요약하자면, 갑작스레 공격 세례를 받은 건 저 검사뿐만이 아니었다.

­콰가가각!

김유진 조, 그리고 검사뿐이 아니라, 박휘성 조까지. 이설화의 마법이 전장에 있는 적들을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김유진이 방어 태세를 굳히고 있을 뿐이라고 하나, 말도 안 되는 실력. 그에 감탄을 내뱉으며 이설화를 바라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이설화가 태연하게 입을 움직였다.

“가.”

“…하, 참나.”

누가 보면 중간고사가 아니라 생사투라도 벌이는 줄 알겠네. 쓸데없이 더럽게 진지해서는. 괜히 우스워진 기분에 헛웃음을 내뱉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스운 건 우스운 거고,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끝도 없이 쏟아지던 이설화의 마법이 멈추고, 새하얗던 하늘이 파랗게 물들었다.

­우우우우웅!

본래 하늘이 지녔던 푸른 빛이 아닌, 하늘 높이 떠오른 매직 미사일에서 뿜어진 푸른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허공에 빽빽하게 모여 있던 매직 미사일의 군집이 적들을 향해 쏟아지고, 그 뒤를 이어, 내 화살이 혼란에 빠진 적들의 빈틈을 향해 날아들었다.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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