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랭킹 갱신(3)
* * *
시험이 종료된 직후, 아직 침묵이 가득한 통제실 안에서 한 마법 담당 교관이 입을 열었다.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방금 그거…. 매직 미사일 맞죠?”
그 말을 들은 다른 교관이 관측 기기에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이내 몇 가지 메시지가 화면에 출력되고, 그를 확인한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매직 미사일 마력 패턴과 완벽히 일치하네요.”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교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진짜 매직 미사일이라구요? 그게 전부 다? 말이 안 되잖아요.”
“뭐, 저 수량 자체가 놀라운 건 아니죠. 저 정도야 이설화나 김유진 생도 같은 이레귤러는 제외하더라도, 1학년 최상위권 수준만 되어도 저 정도 수량은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마나 양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저 수량을 한 번에 시전했냐 이거지.”
수십 발 정도를 한 번에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수백 발이라면 조금 힘들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매직 미사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숙련된 마법사, 현역 영웅 수준에서도 꽤 오랜 시전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에 대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토론을 나누는 마법사들을 향해 수염이 덥수룩한 검사 교관이 뒷머리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요? 뭐, 조금 전 이설화 생도도 하늘에서 순식간에 얼음 마법을 쏟아내고 그러지 않았나?”
“그거랑 이건 달라요!”
방금 입을 열었던 마법 교관이 질문에 빽 소리를 질러 대답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교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미안해요. 하지만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요. 혹시 체화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체화. 어떠한 속성에 대해 강력한 친화력을 지닌 이의 신체가, 그 속성에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 체화를 마친 신체는 그 속성의 성질을 일부 발현한다는 점에서, 특성을 개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현상이었다. 이설화의 백발과 김유진의 적발도 체화의 산물이었으니까.
마법 교관의 질문을 받은 남성은 체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인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남성뿐만 아니라, 다른 근접 교관들도 대부분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마법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속성의 체화를 마친 마법사는 마법을 떠나서 그 속성을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속성의 마법을 시전할 때면, 지배력의 도움을 받아 원활하게 시전할 수 있죠.”
쉽게 설명하자면, 마법의 시전 과정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마법사에게는 매번 풀 때마다 형식과 패턴이 바뀌는 수학 문제.
하지만 속성을 체화한 마법사의 경우, 지배력의 도움을 받아 그 문제의 변화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즉, 무작위로 맨땅에 헤딩할 필요 없이, 원하는 문제를 골라서 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 전 이설화 생도가 시전한 마법은, 규모가 1학년이 시전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본질적으로는 비슷해요. 자신이 지닌 지배력을 통해, 하늘에 자신에게 마법 사용이 원활한 필드를 만들어낸 거죠.”
“거, 그러면 이도영 생도도 비슷한 거 아니요? 그, 이도영 생도도 체화라는 걸 했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에요!”
또다시 흥분하기 시작하는 마법사의 표정에 남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숨을 몰아쉬던 마법사가 폭주하듯 설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매직 미사일은 기초 마법, 속성이 없는 마법이에요. 아, 속성이 없다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속성이 없다는 건, 사실은 마나가 지닌 특색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특색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어떠한 속성도 강세를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 즉 마나를 구성하는 모든 속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라는 거라구요!”
다시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마나의 속성이라는 것은 빛의 색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빛의 삼원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이 합쳐졌을 때, 흰색의 빛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마나를 구성하는 속성이 한치의 치우침도 없이 동등할 때, 마나는 특색을 잃고 무속성을 띠게 된다.
“즉, 무속성이라는 건 사실 잘못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속성의 마나 구조를 살펴보면, 모든 속성이 동등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니, 그.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왜 불가능하다는 거요?”
끝날 기미 없는 마법사의 프리토킹을 끊은 남성이 질린 기색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에 숨을 몰아쉬던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간 말을 고르던 마법사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약하자면, 무속성은 사실 모든 속성을 총망라한 속성이에요. 그리고 체화는 특별한 소수, 속성에 대한 강력한 친화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죠. 그러므로 무속성을 체화한다는 건 모든 속성을 체화하는 것과 같은 일. 즉, 모든 속성에 대한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했냐는 마법사의 시선에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속성만 체화할 수 있어도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재능. 그 재능을 모든 속성에 대해 지니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니, 불가능하다고 할 만도 한 확률이었다.
납득도 잠시, 이내 한 가지 궁금증이 피어난 남성이 마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만약 무속성을 체화하는 게 가능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뭐. 모든 마법을 방금 이설화 생도가 얼음 마법을 펼칠 때처럼 수월하게 펼칠 수 있지 않을까요?”
“으음….”
생각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에 대답을 들은 남성이 침음성을 흘렸다. 마법사가 뿜어낸 열기가 서서히 식고, 슬슬 진정된 내부 분위기를 확인한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성적 평가는 언제 시작할 예정이지?”
“아….”
아무래도 까먹고 있었던 모양인지,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던 교관들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 전에 잠시 저 교관님께 질문 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능글맞은 인상을 주는 외모를 가진 남성이 신유정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신유정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조금 전 신유정이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본인, 이용완이었다.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이용완 교관.”
“글쎄요. 저도 그냥 성적 평가나 하려고 했는데, 어째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이죠.”
신유정의 말을 유들유들하게 흘린 이용완이 방금 전까지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던 교관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교관을 향해, 이용완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아, 네. 물어보세요.”
“네, 고마워요. 다름이 아니라 방금 했던 이야기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생겨서 말이에요.”
“묻고 싶은 이야기요…?”
설명할 기회를 잡은 교관의 눈이 다시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이용완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으음, 방금 저 친구가 한 번에 엄청난 숫자의 매직 미사일을 시전한 것 때문에 지금 이야기가 나왔던 거잖아요?”
“네, 그렇죠…?”
어째 묘하게 흘러가는 주제에 신유정이 눈가를 좁혔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용완이 이도영을 노리는 모양이었다. 그 이유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 이내 방금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박휘성 생도가 유시아 생도에게 관심이 있다던 말. 그리고 지금까지 이용완이 보였던 박쥐 같은 행동. 어째서 이용완이 이도영 생도를 노리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신유정의 반응을 본 이용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분명 그 직전만 하더라도, 이도영 생도는 매직 미사일 하나 시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네, 마치 마력을 다 쓴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다음에 매직 미사일을 시전한 그 마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 그건….”
매직 미사일의 동시 시전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 그를 상기시키는 이용완의 말에 교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분위기를 본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건 지도 교관인 내게 묻는 게 올바르지 않겠나? 이도영 생도가 지닌 특성의 힘이다. 저번 대련수업에서도 그랬었으니.”
“아, 특성의 힘이라. 그런가요? 이거 참 신기하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신유정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이용완이 다시 교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말씀하시길, 모든 속성을 총망라한 것이 바로 무속성이라고 하셨죠?”
“네, 그래요.”
“묘하네요. 저도 비슷한 속성을 하나 알고 있거든요. 모든 속성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속성 말이에요.”
“저, 교, 교관님?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한 교관을 향해 유들유들하게 웃어 보인 이용완이 말을 이었다.
“그냥 질문일 뿐이에요.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모든 속성이 한데 모여 폭주할 때 생기는 새로운 속성. 사람들은 그 속성을 품은 마나를 마기라고 하죠?”
“이용완 교관. 말을 신중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지금 이도영 생도를 마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가?”
“아뇨, 그냥 궁금할 뿐이에요. 모든 속성을 총망라한 속성, 그걸 체화하는 데 성공한 육체,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새롭게 솟아난 힘. 꽤 공교롭지 않나요?”
“하지만 이도영 생도가 사용한 힘은 마기가 아니지. 그리고 이도영 생도의 상태는 대마법사가 이미 살폈다고 했다. 설마 대마법사의 말을 의심하는 건가?”
“에이, 설마요. 그건 그렇고 이도영 생도가, 저번 외출에서 마인과 조우했던 그 생도네요? 마침 이도영 생도가 각성했다는 날짜도 딱 그 근처이고 말이에요. 그냥 우연이 이 정도로 겹치는 게 조금 신기할 뿐이에요.”
으드득!
대놓고 자신의 신경줄을 긁는 비아냥에 신유정이 이를 갈았다. 그 반응을 본 이용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대치하기도 잠시, 교관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지기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그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로군.”
닫혀 있던 통제실 문이 열리고, 이내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출한 로브를 몸에 두른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 그를 본 순간, 한결같이 여유롭던 이용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추스린 이용완이 입을 열었다.
“김시우…님? 어째서 여기에…?”
“딸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서 말이야. 내가 보증한 생도가 마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내게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겠나?”
“그, 그건….”
그 말을 들은 이용완의 눈이 파르르 경련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