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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 랭킹 갱신(5) (96/167)

〈 96화 〉 랭킹 갱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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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마법사. 내 친구 김유진의 아버지께서 친히 던져주고 가신 고민거리 덕분이었다.

“좀 자세하게 전해줄 것이지.”

겨우 한 마디만 딸랑 남겨놓고 가네. 괜한 짜증에 투덜거리기도 잠시, 이내 다시 고민에 빠졌다.

마인들이 움직임을 보였다는 말. 아마 그 신교인지 뭔지 하는 단체일 것이다. 다른 마인 단체와는 딱히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으니까.

“신교, 마교라....”

괜히 입에 달라붙는 익숙한 명칭에 중얼거리며 한쪽 눈을 가볍게 찡그렸다.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말이야. 투덜거리며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애초에 원작에서는 이런 습격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원작에서는 그 마인이 이계의 힘인지 뭐시기인지를 쓴 적도 없었으니까. 아마 이건 내 행동으로 인한 나비효과일 터였다. 다만 여기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다면.

‘내가 뭘 했다고 나비효과가 일어나?’

마인 쪽이랑은 관련된 적도 없는데,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비효과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데 말이야.

“아, 모르겠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침대에 드러누웠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차피 내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도 없으니, 그냥 편한 마음으로 사는 게 낫겠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나도 이 몸에 빙의하기 전에는 조금만 힘들어도 픽픽 아프고 그랬으니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사는 게 좋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이 몸은 확실히 잔병치레는 없어서 좋네.’

헤르메스의 말을 빌리면, 이 몸뚱이는 신의 것에 근접할 정도로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 겨우 감기 따위가 몸에 침범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영웅들도 질병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지만. 마나로 강화된 육신의 면역력은, 바이러스 따위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사실 이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마인들이 사관학교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고 쳐도, 사관학교 내부에는 결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외부인의 출입 자체는 봉쇄하지 않지만, 결계 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전투행위가 발생할 경우, 그리고 그 대상이 외부인일 경우 즉시 제압하고, 여의치 않으면 사살까지 허용하는 결계가.

‘솔직히 조금 과한 것 같긴 한데.’

영웅사관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준군사조직에 가까운 집단이고, 이 세계는 원래 살던 한국에 비해 치안이 꽤 나쁜 편이다. 물론 그것도 세계적으로 보면 최상위권에 드는 치안이었지만.

아무튼, 그러한 탓에, 이 세계의 한국은 과잉진압의 기준이 꽤 널널한 편이었다. 그 상대가 일반적인 범죄자도 아니고 마인이나 초인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애초에 일반인이면 결계의 제압을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제압을 버텨내고 날뛰는 이의 경우 무조건 초인일 수밖에 없다. 즉, 결계에 의한 과잉진압이 발생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이 결계도 김시우, 그 양반이 설치한 거였지?”

팔불출도 병이라고, 혹시라도 김유진이 다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결계를 설치했을 모습이 뻔히 보였다.

하기야 자기 딸이 체험학습 때 탈출한 마인한테 위험해질 뻔했다고, 마인을 잡아 뒀던 길드를 그 양반이 아예 공중분해 시켜버렸다고 하던데. 이 정도 지극정성이 아니라면 섭섭할 수준의 팔불출이긴 했다.

아무튼, 결론만 정리하자면 사관학교 내부에 있으면 마인의 습격에서 안전할 거라는 거다. 혹시라도 결계의 압박을 버텨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디버프가 걸리는 셈이니까.

디버프를 받은 마인은 나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테고,설령 내가 지더라도 결계의 알림을 받고 금방 교관과 다른 경비 전력들이 달려올 테니까. 사관학교 안은 안전지대라고 보는 게 맞았다.

‘뭐, 원작에서의 박휘성은 내부인으로 설정된 상태였으니까 영향이 없었지만.’

결계 효과의 적용 대상은 어디까지나 외부인 한정, 내부인으로 설정된 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탓에 원작에서 박휘성이 마인이 되었을 때 결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원작과는 달리, 지금 박휘성은 딱히 마인이 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위험하진 않을 것 같은데?”

기껏 경고까지 해주고 가긴 했지만, 딱히 별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 마나 수급 횟수를 늘려 두는 게 좋을 것 같긴 했다. 원래 이런 건 가득가득 채워두는 게 보기도 좋으니까. 내일 이도영한테 부탁해야겠네.

대충 생각을 마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

내 예상대로, 한동안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실기 시험을 치렀으니, 당연히 필기시험도 있는 법. 요 며칠간 필기 준비하느라 애들이 아주 기를 쓰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뭐, 나는 예외지만.’

헤르메스 덕분에 나는 시험공부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필기시험 기간 동안 고생하는 애들을 보면서 팝콘이나 씹었다는 거지.

솔직히 조금 치사해 보이긴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이런 법이다. 대학 강의에서 족보를 못 구한 새내기는 학점 B의 장벽을 넘을 수 없는 것처럼. 아니, 이 비유는 어째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괜히 기분이 불쾌해진 비유에 혼자 혀를 차기도 잠시, 이내 시험 성적에 관해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딱히 필기에서 두각을 보일 생각은 없었지만, 누가 부탁하는 바람에.

뭐, 그게 누구인지는 딱히 말할 필요도 없겠지. 당연하지만, 이도영이었다.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라.’

솔직히 말하면 내 실력이 아니라 헤르메스의 실력이라, 이걸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긴 하지만. 보통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 최선이라고 하지, 족보를 구하거나 커닝을 시도하는 걸 최선이라고 하진 않으니까.

괜히 미묘한 기분에 혀를 차기도 잠시, 이내 들려온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 신유정이었다.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다.”

정확히는 학기 중간의 성적이라고 해야겠지. 뭐, 그것도 성적은 맞으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너희가 받은 성적은 다른 생도 모두에게 공개된다. 다른 이들의 기록을 보면서 상위권인 생도는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하위권인 생도는 따라잡기 위해 모두 절차탁마하도록.”

입학 때부터 무한 경쟁을 강조했던 건 폼이 아니라는 듯, 대놓고 모두의 성적을 까버리겠다는 악습. 뭐, 옛날 한국에서도 그러긴 했지만, 요즘은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성적을 공개하는 건 금지된 실정이니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냉소적으로 보면 사실상 영웅사관학교는 최전선에서 싸울 병력을 길러내는 시설이니까. 충분한 실력 없이 영웅이 되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바라보면 경쟁은 생존 확률을 올려주는 좋은 방식이겠지.

뭐, 어찌 됐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런 건 고위층들이 알아서 정하라 그러고, 내게는 당장 나온 성적이 더 중요했다. 아, 물론 중요하다는 건 딱히 내 성적 이야기는 아니었다.

휴대폰으로 전송된 전교생의 성적 파일을 열람했다. 참 친절하게도 Ctrl+F까지 막아 둔 탓에, 생도들은 눈으로 성적 명단을 읽으면서 자기 이름을 찾아야 했다. 내 성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굳이 다른 애들 성적까지 보게 하는 건 참 악취미인 것 같긴 했다.

뭐, 사실 내 성적을 확인하는 건 딱히 그런 고생은 없지만.

[학년 1위 ­ 이설화]

[학년 2위 – 김유진]

[학년 3위 – 유시아]

이도영의 부탁대로 진지하게 필기시험에 임한 결과, 그러니까 뻔뻔하게 헤르메스의 힘을 빌린 덕에 필기시험에서는 무난하게 1등을 차지했었다. 정확히는 공동 1등이었지만. 이도영과 내가 같이 만점으로 1등을 찍었으니까. 그 밑으로 이설화, 그다음이 김유진이었고.

그리고 실기는 딱히 말할 것도 없겠지.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설화와 김유진에게 1, 2위를 빼앗긴 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어려울 건 없었다. 자퇴할 거라고 단꿈을 꾸던 시절에 이미 조져 뒀던 성적이 문제였으니까.

중간시험뿐만 아니라, 그전 수업에서 자잘하게 봤던 시험들도 점수에 들어갔으니까. 그래도실기는 제 기록대로 내긴 했지만, 대충 중상위권만 유지했던 필기가 문제였다.

뭐, 그런 악조건에서도 3위를 차지했으니. 솔직히 할 만큼 한 거지. 여기서 더 바라는 건 과욕이었다.

다시 시선을 내리자 이내 다음 등수가 눈에 들어왔다. 4위, 5위는 딱히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고, 그다음으로 액정에 표시된 6위는 꽤 의외의 인물이었다.

[학년 6위 – 박휘성]

생각보다 높은 박휘성의 등수. 작게 감탄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종합 등수의 경우, 대개 마법사들이 우세한 걸 고려하면 박휘성이 6위를 찍었다는 건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신체 강화 계열 초인들은 대개 이론에 약한 편이니까.’

나는 헤르메스의 힘을 빌린 이레귤러니 제외하면,박휘성의 등수는 사실상 신체 강화계의 위업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실제로 8위 권까진 나와 박휘성을 제외하고 모두 마법사였으니까. 뭐, 그래도 이건 좀 오버긴 한데.

시답잖은 감상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시선을 떼고 스크롤을 쭉 내렸다. 10위 권, 50위 권, 100위 권을 넘어서 그 아래까지. 다행히도 200위 권까지 가기 전에 이도영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학년 173위 – 이도영]

필기 만점과 실기 시험에서 1위 조의 조원이라는 성적을 고려하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등수였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필기만 조진, 그것도 어느 정도 점수는 유지했던 나와는 다르게, 이도영은 각성 전까지 실기를 전부 말아먹었으니까. 중간고사로 메꿨다고 해도, 땜빵이 너무 큰 탓에 최상위권까지 올라오는 건 무리였다는 거겠지.

‘뭐, 기말고사까지 고려하면 여기서 더 올라가는 건 확정이지만.’

아직 중간 성적에 불과한데다, 학기 말 평가의 비중이 더 높은 걸 감안하면, 1학기부터 최상위권에 이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뭐, 내가 먹인 게 뭔지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겠지만.

“시야야, 아무래도 랭킹은 내가 이긴 것 같은데?”

“그러게. 실기랑 필기시험에선 졌지만.”

“윽….”

옆자리에서 괜히 농담을 던졌다가 본전도 못 찾은 김유진에게 피식 웃음을 흘려준 뒤, 흘깃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자기 랭킹이 믿기지 않는 듯, 한참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궁사다운 선명하기 그지없는 시야에 자신의 등수를 클로즈업해둔 이도영의 휴대폰 화면이 담겼다.

‘나, 참. 저걸로 좋아하긴 한참 이른데.’

아직 한참 올라갈 등수만 남았는데, 여태 최하위권이었던 탓에 이 점수로도 감지덕지한 모양이었다. 그에 미묘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얼굴을 풀고 가만히 이도영을 응시했다.

그래도 뭐, 기뻐하는 걸 보니 이쪽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키우던 병아리가 성체 닭이 됐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느낌. 괜히 뿌듯해진 기분에 입가에 옅게 미소를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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