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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 습격(1) (97/167)

〈 97화 〉 습격(1)

* * *

점심시간. 식당에 앉아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이었다. 김유진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겠네?”

“응?”

“요새 시험 기간이라고 동아리 활동도 못 하고 시험 준비만 했잖아.”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교과서만 들여다본 탓에 눈이 침침해진 것 같다며 장난스럽게 푸념을 내뱉는 김유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동아리, 벌써 꽤 된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이도영은 환경 미화 활동이라고 했고, 나는 고아원 봉사활동이었지. 공통점이라면 둘 다 사관학교 외부에서 하는 활동이라는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관학교 외부로 나가면 위험한 몸이었고.

‘어,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사관학교 외부라면 결계의 보조도, 다른 이들의 도움도 구하기 힘드니, 마인이 습격하기에 최적화된 일정이나 다름없었다. 더 문제는, 나와 이도영이 다른 조인 탓에 마나 회복조차 힘들 거라는 거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이도영은 식사도 멈춘 채로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담당 교관에게 가서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동아리 활동이 성적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성적보다는 당연히 목숨이 비교할 수도 없이 귀하니까. 생각을 마친 뒤, 김유진의 말에 적당히 어울리며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

“동아리 활동 말이냐?”

방과 후, 이도영과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만날 상대는 담당 교관인 신유정. 대충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신유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도 저번, 실기 시험 때 대마법사께서 언질을 주셨다. 외부 활동을 아예 금지하는 건 무리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너희의 야외 활동은 가능한 한 줄여 달라고 하셨지.”

김시우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딸랑 한 마디만 전하고 간 줄 알았는데. 애프터 케어까지 해줄 줄이야. 속으로 감사 인사를 짧게 전하기도 잠시, 이내 신유정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동아리 관련해서는 이미 조치가 취해졌을 거다. 자세한 건 동아리 부장에게 문의해보는 게 낫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봉사활동 부였던가?”

“네.”

“그래, 그러면 번거로울 필요 없이, 같이 물어보면 되겠구나. 부장을 맡은 생도, 너희에겐 백소월 생도겠군. 아무튼, 백소월 생도에게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다. 아마 지금쯤 동아리 관련 업무를 위해 부실에 있을 테니.”

“예, 감사합니다.”

신유정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교무실을 나섰다.

*

‘그러고 보니 부 활동은 되게 오랜만이네.’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째 중간고사까지 끝났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부 활동에 참여했던 적은 처음 한 번뿐이었다.

물론 사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 부 활동 이후 이래저래 일이 많았으니까. 일단 체험 학습에서 마인에게 습격을 당한 탓에 입원했었고, 퇴원한 이후에도 이도영의 각성 사건 탓에 또 병원에 실려 갔었으니까.

그리고 겨우 또 퇴원한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고사가 있는 탓에 동아리 활동은 올스톱. 그러므로 나는 이게 두 번째 동아리 활동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둘 다 마인 관련 사건이네.’

동아리 활동을 못 한 이유가 어째 전부 마인 탓이라니. 꽤 우스운 일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동아리 활동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이유도 마인이었으니, 아무래도 나는 마인이라는 족속들과 참 질기게도 얽힌 모양이었다.

신세를 푸념하기도 잠시, 이내 내 볼에 와닿는 이도영의 시선에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응? 아, 응. 물어봐.”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이도영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횡설수설 입을 열었다.

‘뭐하던 거래?’

이쪽을 보고 있길래 얘도 할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딴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얼빵한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질문을 입에 담았다.

“나 없는 동안, 동아리 활동은 어땠어?”

“동아리? 음…딱히 별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

이도영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별일이 없었다는 걸 보면, 백소월이랑은 아직도 아무 관계도 맺지 못한 건가? 그 생각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음…그러고 보니 부장을 맡은 선배가 마인 관련해서 뭘 물어본 적은 있어.”

“…부장? 백소월?”

반사적으로 말하고 나서야 생각난 거지만, 부장을 맡은 선배는 당연히 백소월 밖에 없었으니 딱히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뭐, 백소월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원작에서 백소월은 마인을 어마어마하게 적대하는 캐릭터였으니까. 마인 습격 사건과 관련된 이도영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애초에 지금 백소월은 마인 처치 업적만 열에 달하는 괴물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이것도 플래그였나.’

원래 봉사활동에 임하던 태도로 품었던 호감을 바탕으로, 마인 처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지는 패턴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플래그가 아예 꺾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뭐, 원작에 비하면 약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검술을 가르쳐 줄 정도까지는 사이가 발전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서로 사이가 너무 좋아지는 건 내 배가 아플 것 같으니 좀 그렇고. 적당히 친한 정도로만. 적당히.

괜히 불편해진 기분에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던 도중이었다. 기껏 답변을 듣자마자 갑자기 내가 입을 닫아버린 게 당황스러웠는 듯, 짧게 말을 더듬은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선배가 시아 네 얘기도 물어보더라.”

“내 얘기?”

“응, 마인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그러더라고.”

“흠….”

뭐, 이것도 예상치 못한 소식까진 아니었다. 애초에 백소월이 마인 관련해서 이도영에게 말을 건 거라면, 같이 마인이랑 마주했을 나한테도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할 테니까.

그리고 이도영은 마인이랑 두 번째로 마주했을 때, 권능이 폭주한 탓에 정신을 잃었었다는 걸 고려하면, 아마 내게 마인과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받고 싶은 거겠지.

원작에서는 마인이랑 대치한 게 이도영 하나여서 따로 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애초에 이도영의 기억도 멀쩡했으니 상관없었겠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니까. 나라는 대체재가 있는데 이도영에게 집착할 필요도 없을 테니.

‘어, 잠깐만.’

꺾이지 않기는 개뿔, 아무래도 플래그를 제대로 때려 부순 모양이었다.

원작에서 이도영에게 백소월이 엮이는 원인은, 봉사활동에 성실히 임했다는 다분히 주인공다운 사소한 이유와 마인과 관련된 감정,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난 지금 그 이유를 둘 다 없애 버린 상태인 거고.

‘이거…검술 훈련 도움은 받을 수 있으려나.’

훈련 자체야 꼭 걔한테 받을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있을 일을 고려하면 인맥 정도는 쌓아 둬야 하는데. 아예 관계가 없는 것도 좀 문제니까.

‘아니, 뭐. 그래도 플래그는 한참 남긴 했으니…. 괜찮지 않나?’

일단 가장 중요한 이유, 마인과 관련된 사건이야 한참 남았으니까. 아직 기회는 무수히 많으니, 괜찮을 법도 한데….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어차피 날은 한참 남았는데, 벌써 고민해봤자 피곤할 뿐이고.

자기합리화를 풀가동하며 생각을 마쳤다.

*

부실에 들어서자마자 안경을 쓰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단정한 옷차림과 어울리는 차분한 느낌의 안경. 어깨까지 내려온 C펌 단발과 시너지를 내는 안경 덕에, 현재 백소월에게서는 모범생 분위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저번에 부실에서 처음 봤을 때 봤던 두 얼굴, 따뜻한 소녀의 인상과 냉철한 검수의 상과는 또 다른 모습에 흥미를 느끼기도 잠시, 이내 우리의 인기척을 느낀 백소월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니?”

듣는 이에게 퍽 따사로운 느낌을 주는 목소리에 작게 감탄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얼굴을 확인한 백소월이 반갑다는 듯 말을 이었다.

“도영이구나? 여긴 무슨 일이야? 그리고 옆은….”

친근한 말투로 백소월이 이도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안 친하다고 하지 않았냐? 어째 미묘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던 백소월이 이내 깨달았다는 듯 작게 손뼉을 쳤다.

“으음…그쪽이 시아구나? 도영이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야기요?”

“응, 활동 중에 도영이가 네 얘기를 많이 했거든. 그러고 보니 너도 봉사활동 부였지? 아쉽게도 활동은 거의 못했지만.”

“아, 네. 맞아요.”

따뜻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모습. 그 따사로운 말투에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김유진에겐 그나마 적응하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 이런 타입은 좀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마인이랑 싸웠으면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마인 하나는 완전히 쓰러뜨렸다면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거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미소를 머금은 백소월이 말을 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모습, 점점 길어지는 말에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 이 느낌. 어디서 많이 겪었던 것 같은데.’

시동이 걸렸을 때 김유진의 수다와 비슷한 느낌. 아니, 그보다 더한 수다량이었다. 닫힐 낌새를 전혀 보이지 않는 분홍빛 입술 탓에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 행동으로 백소월을 만만하게 보는 것도 곤란했다. 지금은 이렇게 손가락을 쿡! 찌르면 바로 폭! 들어갈 것처럼 말랑거리는 태도지만, 진지해졌을 때, 주로 마인을 마주쳤을 때의 백소월은 또 이야기가 다르니까.

애초에 지금 저렇게 웃으면서 하는 말의 주제부터 마인 척살이니 말이다. 과연 마인 척살자 아니랄까 봐, 마인 이야기를 시작하니 입을 멈출 새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기도 잠시,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목소리에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상대한 마인은 무슨 타입이었어? 도영이한테 물어봤을 때는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서 궁금했거든. 그리고 도영이 말에 따르면, 네가 마인을 거의 다 잡았다고도 하던데. 그거 진짜니?”

“아니, 저기….”

“아, 그러고 보니 너희는 아직 마인에 대한 분류도 잘 모르겠구나? 짧게 설명하자면 마인은 그 마인의 정신 상태에 따라 분류하는데, 정신이 맑을수록 상대하긴 까다롭지만 보통 가진 힘 자체는 적거든. 계약 기간에 따라 힘이 늘어나지만, 그 반대급부로 정신이 망가지니까. 그래서….”

쉴 틈 하나 주지 않고 말을 쏟아붓는 모습. 아까 전, 착실한 모범생의 이미지, 따뜻한 교회 누나 이미지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웬 투 머치 토커가 하나 나타나 있었다.

‘원작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심히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소월의 말이 끝나질 않았다.

“그래도 계약 기간만으로 속단하면 안 돼. 당연하지만 계약 전 가진 힘에 따라 마인이 다룰 수 있는 힘도 차이나니까. 그러고 보니 네가, 아니 너희가 쓰러뜨린 마인 말이야. 내가 듣기로는 계약한지 꽤 오래된 마인이라던데….”

내 표정이 썩어가거나 말거나, 전혀 말을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백소월의 모습에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 일단 내 말 좀 들어. 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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