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습격(3)
* * *
며칠 후, 동아리 활동 당일이 되었다. 물론 동아리 활동은 오후에 배정되어 있으므로, 오전에는 이론 수업이 있었지만.
아, 그 사이 이도영과 어색한 분위기가 좀 있긴 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어차피 마나 회복은 필수였으니까, 어색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빠르게 사과를 하고 끝냈다는 거지.
생각을 마치고 교실에 앉아 교관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수다를 떠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뭐, 예민한 청각 탓에 종종 겪는 일이었다.
“너,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옆 반 교관 말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사람의 수다를 엿듣는 취미는 없었기에 한 귀로 흘리려던 순간이었다. 꽤 중요해 보이는 이야기가 내 귓가에 들어왔다. 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듣기로는 대마법사하고 마찰이 있었다고 하던데?”
“대마법사? 교관이? 왜?”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그래서 지금 옆 반은 난장판이래. 잘못하면 교관이 바뀔지도 모른다는데?”
꽤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이용완이 경질되는 사건은 원작에서 2학기에나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혼란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수다를 이어가는 생도들의 말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대마법사가 방문했던 날, 이용완 교관이 어쩌다가 대마법사에게 크게 밉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불똥이 튈세라 이용완 교관과 커넥션을 맺고 있던 길드가 하나둘 발을 빼기 시작했다고.
물론 그저 소문에 불과하기에 백 퍼센트 믿는 것은 곤란했지만, 애초에 길드와 교관 간의 커넥션 같은 민감한 이야기가 대놓고 돈다는 점에서 이용완 교관의 미래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저런 소문이 돌게 되면, 학교 측에서도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길드와의 커넥션이 끊겨버린 게 사실이라면, 이용완 교관의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도 그리 먼 일이 아니었다. 그를 덮어주던 길드라는 베일이 벗겨지면, 남은 건 그 썩은 속을 파헤치는 것뿐이므로.
“…응? 시아야, 왜 그래?”
거기까지 듣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질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에 적당히 둘러댄 뒤, 시선을 돌렸다.
‘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이번에도 김시우가 딱히 언질을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대마법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 딸 앞에서 할 리도 없으니, 김유진이 이야기를 모르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근데 대형 길드가 그렇게 쉽게 발을 뺀다고?’
물론 고작 교관 하나 때문에 대마법사와 마찰을 맺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쉽게 그를 잘라버리는 건 조금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꽤 커넥션이 있었을 텐데. 예를 들면 박휘성이라던가.’
원작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박휘성의 길드는 어느 정도 이용완의 뒷배를 봐주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그 수준은 아닐 수도 있지만.
‘…아, 모르겠다.’
판단할 정보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애초에 김시우와 이용완 사이에 있었던 일조차 제대로 모르니까.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마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쨌든 이설화 플래그 하나 부서진 건 확정인가.’
원작에서 박휘성의 마인화 이후 벌어졌던 사건. 이설화 플래그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맡은 이용완 사건이 벌써 일어났고, 거기에 이도영의 개입은 전혀 없었으니 이설화 플래그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지.
‘아니, 이젠 아무것도 안 해도 플래그가 혼자 부서지네?’
아무래도 원작과 달리, 지금의 이도영은 연애하기엔 글러 먹은 운명인 모양이었다. 히로인이란 히로인은 전부 플래그가 박살 난 상태이니까.
뭐, 눈꼴 신 꼴을 보면서 염장 질러질 일 없으니 내게는 이득이었다. 이도영을 흘깃 바라보며 옅게 통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옆에서 쏘아지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
오랜만에 받는 게슴츠레한 시선. 김유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괜한 장난기가 돌아 김유진의 볼을 콕 찔러준 뒤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옆자리에서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재밌는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동아리 활동 시간. 나는 지금 조장, 이시혁의 지시에 따라 교내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교내 봉사라고 하기에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환경 미화일 줄은 몰랐다. 애초에 사관학교에는 전문 청소부가 존재하니까. 아니, 물론 전문 청소부가 있다고 쓰레기가 없는 건 아니긴 하지만.
‘뭐, 교내에서 할 활동이라고 하면 이런 것밖에 없긴 한데….’
생도들이 할 수 있는 봉사라고 해봐야 별것 없으니까. 서류 작업을 맡기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딱히 시킬 만한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청소로 귀결되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니.’
속으로 작게 불평하기도 잠시, 이내 옆에서 묵묵히 쓰레기를 청소하는 박휘성에게 시선이 향했다. 어째서인지 조금 굳어 있는 얼굴. 옅은 호기심이 들어 입을 열었다.
“야.”
“…응? 아, 나 말하는 거야?”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지, 한참 후에나 대답을 내뱉은 박휘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용무냐는 시선에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표정이냐?”
“아….”
그제야 자신이 짓고 있던 표정을 깨달은 듯, 박휘성이 민망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내 표정을 정돈한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그냥, 걱정돼서.”
“걱정? 뭐가?”
무슨 일이라도 있나? 원작에서 박휘성의 사연은 거의 묘사되지 않았으니, 내가 모르는 사건이라도 일어난 걸지도 몰랐다.
의문도 잠시, 얼마 후 박휘성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꽤 의외의 내용이었다.
“원래 가던 봉사 장소에 있던 아이들 말이야.”
“아, 고아원?”
나는 한 번 밖에 못 갔고 딱히 그리 좋은 기억도 없었지만, 박휘성은 그 후에도 계속 봉사하러 갔을 테니까. 아이들에게 꽤 정이 든 모양이었다.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은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시험 기간이 끝나면 다시 보자고 했는데, 못 가게 된 게 신경이 쓰여서.”
“…그래.”
너무 건실한 말. 여태 지내면서 생각보다 그리 나쁜 놈은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말이었다.
조금 당황한 탓에 내가 입을 닫자, 어째 어색해진 분위기에 박휘성이 민망한 듯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아, 대신 이번 주말에 보러 가겠다고 연락했으니까.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 없어.”
“…부 활동도 아닌데, 주말에까지 가는 거냐?”
“응, 약속은 지켜야지. 보러 가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 박휘성의 모습에 어째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원작과는 다르게 얘가 꽤 멀쩡한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성실한 줄은 몰랐으니까.
마인 후보라는 고정 관념이 남아 있었던 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로 착실한 모습. 괜히 밀려오는 불편한 죄책감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도중,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야,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묻고 싶은 거?”
“어, 너희 반. 교관한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같은데, 혹시 알아?”
해석하자면, 길드들이 이용완을 잘라낸 이유를 묻는 말이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렇게 흔쾌히 잘라내는 건 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바로 나왔다.
“아…. 그 인간?”
“그 인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순간 차갑게 변한 표정과 입에서 나온 멸칭. 그리고 경멸 가득한 목소리. 그를 들은 순간 대형 길드들이 이용완을 빠르게 잘라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마법사 때문이 아니었네.’
대마법사는 단순히 계기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진짜 길드들이 잽싸게 움직인 이유는 박휘성이었다. 그 예상치 못한 사실에 작게 혀를 찼다.
‘그런데 얘는 왜 그런 거지?’
대마법사도 대마법사지만, 박휘성이 움직인 이유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이용완 같은 인간이 박휘성에게 밉보일 일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이었다. 진지해진 내 표정을 본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순간 보인 태도 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저, 시아야?”
“아, 그래. 괜찮아.”
살짝 흔들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박휘성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생각을 마쳤다. 뭐, 사실 딱히 내게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으니까.
이설화 플래그와 관련된 일이긴 하지만, 파워 업 이벤트도 아니니까. 플래그야 부서지건 말건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연애하는 꼴을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득이라고 해야 할지도.
‘그럼 박휘성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괜히 든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잡생각에 빠져 있기도 잠시, 이내 이시혁의 눈초리에 앗 따가워라 청소를 재개했다. 그런 나를 본 박휘성이 작게 킥킥거렸다.
아, 이거 좀 짜증 나네.
*
위이이이잉!
청소를 이어가던 도중, 갑자기 안내 방송용 스피커에서 비상 알람이 울려 퍼졌다. 사관학교 전역에 울려 퍼지는 위험 경고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당황 섞인 목소리를 뒤로 하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예민한 청각에 쉴 새 없이 때려 박히는 귀 아픈 경고음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흘러나오기 시작한 안내 방송에 신경을 집중했다.
[긴급 상황입니다. 사관학교에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생도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급히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사관학교에 테러가….]
“테러?”
“사관학교에 테러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공황 상태에 빠진 조원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관학교 테러. 그게 실제로 발생할 줄은 몰랐다.
원인은, 역시 마인이겠지.
‘아니, 결계가 있는데 테러를 저지른다고?’
어떻게 봐도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결계의 영향을 받는 순간, 아무리 강력한 마인이라도 최소 두세 단계는 수준이 떨어질 테니까.
대마법사를 초월한 수준의 마인이 아니라면,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설마 그 수준의 마인이 올 리는 없었으니, 사실상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결계가 있으니 금방 진압될 거다. 침착하게 대피하도록 하자.”
“그, 그렇겠죠?”
조장, 이시혁도 그렇게 말하며 차분하게 2학년 조원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된 순간이었다.
“어…?”
“왜 그러지?”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2학년 마법사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이시혁이 질문을 던지자, 마법사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아녜요….”
“응?”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이시혁이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말을 들은 이시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나와 박휘성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결계가…작동을 멈췄어요.”
“뭐라고?”
아무래도,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