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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 습격(4) (100/167)

〈 100화 〉 습격(4)

* * *

“젠장.”

사관학교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 장치. 그 앞에서 결계의 구성 회로를 건드리던 이용완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고작 마인 따위의 말에 따라 사관학교의 교관이라는 직위를 버리고 테러에 동참하는 건.

하지만 그에게 더 이상 남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시각각 좁아지는 그의 입지를 고려하면, 조사의 손길은 곧 그의 비리에 닿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그가 여태 쌓아온 것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릴 테니, 도주를 위해서라도 긁어모을 수 있는 건 전부 긁어모아야 했다.

그의 수배 내역에 마인과 내통했다는 범죄가 추가되겠지만,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에서 살기는 글렀으니까.

수배서에 죄목 한 줄이 더 추가되는 일 정도야 이용완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개 같은 대마법사. 빌어먹을 애새끼.”

아니, 사실 별 감흥이 없을 리는 없었다. 대마법사와 있었던 마찰, 그 사소한 마찰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이렇게까지 몰릴 일은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가 지금 가장 원망하는 대상은 대마법사가 아니었다.

박휘성. 그의 개입만 없었다면, 아무리 대마법사와 마찰이 있었다고 하나 그가 이 정도로 몰릴 리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용완은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니까.대마법사라고 해도 사관학교의 교관을 그 정도의 마찰로 쳐내는 것은 부담이 큰 일이었다.

그렇다면 박휘성은 왜 이용완을 쳐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인. 우습게도 그가 이도영을 마인으로 몰아갔다는 것이, 박휘성이 그를 쳐낸 이유였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도영이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미친 새끼.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그가 이도영을 몰아갈 때 근거로 들었던 것. 마인과 조우했던, 그리고 이도영이 각성했던 날짜. 그날의 행적이 이도영과 겹치는 이가 하나 더 존재했으니까.

만약 이도영이 그때 마인으로 타락한 게 사실이라면, 사건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그리고 이도영보다 더욱 행적에 의문이 존재하는 유시아 또한 의심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을 터.

그리고 이용완이 박휘성에게 버림받은 이유는 고작 그 하나뿐이었다. 하마터면 그가 제기한 의혹이, 유시아에게까지 닿을 뻔했다는 것.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런 의혹을 불러일으킬 뻔했다는 것만으로, 박휘성은 아무 망설임 없이 이용완을 잘라낸 것이다.

‘이래서 권력자라는 새끼들은….’

자신과 같이 부평초나 다름없는 이들에게는 태풍이나 다름없는 일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른다.

한 번 아랫것들이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순간, 마치 벌레를 짓이겨 죽이듯 쉽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물론, 교관이라는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며 생도들의 앞길을 가로막던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우우우우웅!

그가 분노를 담아 마지막으로 장치를 조작한 순간, 사관학교 전역을 뒤덮었던 결계가 작동을 멈췄다.

결계를 이루는 핵심 구조식에 이질적인 회로를 쑤셔 박았기에, 아마 다른 이가 손을 댄다고 해도 쉽게 수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설령 대마법사 본인이 온다면 모를까.

그리고 사관학교에 마인들이 집단으로 테러를 일으킨 시점에서 결계를 멈춰버린 이 행동은, 확정적으로 끔찍한 참사를 불러오겠지만 이용완은 그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사관학교가 자신을 먼저 버렸는데, 자신이 배신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일은 끝냈으니, 일단 사관학교부터 벗어나야겠지.’

교묘하게 회로를 교체한 덕에, 결계가 작동을 멈췄음에도 대마법사에게 신호가 가진 않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범행 현장에 오래 자리를 두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추적이 오기 전에 외국으로 도피해야 하니, 한시가 바쁜 몸이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이용완이 품 안의 죽통을 만지작거렸다. 거래를 위해 만난 이에게서 요청에 대한 대가로 받은 물건이었다.

‘마인이 되어도 영혼이 망가지지 않는 방법이라.’

권력에 취해 이리저리 박쥐 같은 짓을 하긴 했지만, 이용완은 실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는 교관이었다.

애초에 이용완이 사관학교의 교관직을 받아들였던 이유조차, 영웅질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권력자들에게 알랑방귀를 뀌면서 얻어낸 자산으로 수련을 거듭한 이용완은, 그에 걸맞은 실력을 벼려낼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마법사 교관들이라면 대마법사의 결계에 손조차 대지 못했을 테니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사관학교 교관 따위는 할 필요 없지.’

그리고 그런 이용완에게 마인이 내민 매물은 꽤 유혹적이었다. 마기. 저번에 그가 말했듯, 모든 속성을 총망라하고 있는 마나.

마인의 대부분은 무인이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실력 향상을 위해 여러 금술까지 알아본 이용완은 알고 있었다.

마인화를 마친 마법사는, 무인과 비교했을 때 어마어마한 성장 폭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허약한 마법사의 육신으로는 강대한 마기의 폭주를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동을 견뎌내지 못한 탓에, 순식간에 영혼이 붕괴하고 만다.

그것이 마인 마법사가 희귀하기 짝이 없는 이유였다. 대부분이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만약 마인이 이용완에게 제시한 매물이 사실이라면, 그런 걱정 따윈 할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 조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

마인 조직인 이상, 머리가 딱딱하게 굳은 무인들만 그득할 게 뻔하기도 했고.애초에 이 정도 스케일의 테러를 또 저지른 이상, 그 조직이 오래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한국은 제법 영웅 강대국에 속하는 나라였고, 명분을 쥔 상태에서 대마법사까지 합세해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한다면, 아무리 강대한 조직이라도 버티기 힘들 테니.

‘역시, 고른다면 북유럽인가.’

최초의 게이트 사태에 폐허가 되어버린 북유럽. 사실상 무주공산이나 다를 바 없는 그곳이라면 공권력의 마수도 닿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력을 기르고 나면, 신분이야 세탁하면 될 일이고.

머릿속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린 이용완이 결계 관리실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를 걷던 도중, 이용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 정도 규모로 테러를 저지른 건 신기하긴 하군.’

대마법사와 국가 기관의 추적을 받으면서 고작 테러에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투입할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조직이기에 이런 게 가능한가 싶긴 했다.

자신조차 테러 전까지는 이름을 듣지 못했던 걸 고려하면,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는 조직이었으니 더더욱.

하기야 제게 거래를 제안했던 상대를 마주했을 때 느낀 힘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끼칠 정도이니, 그 강함은 대충 유추가 되긴 하지만.

물론 그 신교라는 조직의 세가 얼마이건, 그에게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의문이 오래가진 않았다.

이내 흥미가 가신 이용완이 생각을 마치고 빠르게 사관학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결계의 작동 중지를 알아챈 이후, 조원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끝에 행동 목표를 정했다. 첫 번째는 무장의 확보, 두 번째는 사관학교의 탈출이었다.

뭐, 무장을 갖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애초에 무기 자체가 필요 없고, 다른 이들도 주 무기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편이었기에.

수련장에서 기본 무기를 준다고는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정도라면 개인의 애병 정도는 있었으니, 수련을 위해서 항상 무기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봉사활동까지 무기를 들고 오진 않았지만, 근처 건물에 짐이랑 같이 놓아뒀다고.

그런 이유 덕에 무장을 갖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만 빼고. 나는 애병 따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조원들을 따라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박휘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시아야.”

“응?”

“이거 받아.”

내게 말을 건 박휘성이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활을 내게 건네주었다. 왜 이걸 주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자,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나보단 네가 실력이 좋으니까. 네가 쓰는 게 낫잖아. 그리고 난 체술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무기는 없어도 돼.”

“어…그, 그래. 고맙다.”

따져보면 맞는 말이긴 했다. 박휘성보단 내가 활을 쓰는 게 더 효율적이긴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무기를 건네주기까지 할 줄이야.

당황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활을 받아들었다. 당황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으니까. 손에 착 달라붙는 활의 감각. 그 고급스러운 촉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명품 명품 하는 건가.’

기본으로 배급되는 싸구려 활과는 전혀 다른 감각.괜히 손이 근질근질해질 정도의 손맛에 옅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본 박휘성이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탈출을 위해 이동하던 순간이었다. 귓가에 폭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인이었다.

­퍼어엉!

“찾았다!”

근처 건물을 부수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 말을 내뱉은 마인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이 꽤 맛이 간 것을 보면, 이전의 그 마인과는 달리 그리 이성이 온전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보다 찾았다는 건, 날 말하는 거겠지.’

다른 조원들은 그저 테러할 대상을 찾은 마인의 헛소리라고 받아들였는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박휘성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딱딱한 표정으로 마인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테러의 대상이 나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 때문에 휩쓸린 격이니, 불쾌할 만도 한가.’

괜히 조금 미안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조원들을 바라보자, 이미 전투 태세에 들어간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다행히도 동아리에서 짜인 조의 구성은 의외로 전투 상황에서도 꽤 훌륭한 편이었다. 검사 둘에 궁사와 마법사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마법사 둘이 아니라 궁사 둘이라는 점에서 조금 에러였고, 궁사 하나는 활이 없다는 점은 더 문제였지만, 그 정도는 커버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이도영은…걱정할 필요 없겠네.’

테러의 또다른 대상일 거라는 점에서, 생각이 잠시 이도영을 향했지만, 이내 그 조 구성원의 면면을 보자 걱정이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마인 척살만 열 번은 경험한 백소월. 한정적이나마 현역 영웅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설화. 그리고 마인에게 극상성 그 자체인 이도영까지.

사실상 주인공 파티나 다름없는 구성이었다. 뭐, 사실 주인공 파티 맞기도 하고.

‘그래도 권능은 사용할 수밖에 없겠지.’

상황이 상황이니 이도영이 권능을 숨길 리는 없다.

즉, 마인 척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백소월이 이도영에게 흥미를 느낄 요건은 충분하다는 거다.

원래도 꽤 친해 보였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터.

‘벌써 이 플래그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설마 이렇게 일이 꼬일 줄은 몰랐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마인을 향했다. 휘둘러진 이시혁의 검이 마인의 손에 막힌 것을 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탈출하면서 전투가 몇 번이나 벌어질지를 고려하면,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겠지.

생각을 마치고 마인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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