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습격(5)
* * *
푸스스스스
“후우….”
숨통이 끊긴 마인의 몸이 정화되어 소멸하는 것을 본 이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셋. 그들이 처리한 마인의 숫자였다.
“이번 마인은 그나마 쉬운 편이었네.”
“…그러게요.”
첫 번째 마인은 이성이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어마어마한 힘을 방출하며 날뛰었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리고 두 번째 마인은 계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어느 정도 이성이 남아 있는 채로 전투에 참여하였기에 대응이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방금 상대한 마인은 상대할 때의 부담이 낮은 편이었다. 이지가 얼마 남지 않아 제대로 무예를 구사하지도 못하나, 그렇다고 품은 마기의 양이 많지도 않은 마인. 실제로 가장 많은 마인들이 이 시기에 토벌을 당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쉬운 상대라고 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가장 약한 시기의 마인이라 하더라도 마인은 마인. 생도 수준에서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으므로.
그런데도 이도영 조가 쉽게 마인을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도영의 권능 덕이었다. 마인에게 극상성이다 못해, 극독으로 작용하는 힘. 그 힘을 옅게 뿌리는 것만으로 마인들은 제힘을 쓰지 못하고 당해버렸으니까.
‘그때의 그 마인과는 달라.’
흐릿한 폭주 상태의 기억 속에서도 선명히 남아 있는 모습, 권능을 뿌리다 못해, 몸 안에 직접 들이붓는 수준으로 쑤셔 박았을 때조차 버텨낸 그 마인과는 달랐다. 현재 침입한 마인들은 전부 일반적인 마인. 즉, 권능에 내성이 없는 마인들이었으니.
그리고 이도영의 권능을 직접적으로 얻어맞은 마인들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조와는 다르게 말이다.
‘시아는…무사하려나.’
마인에게 마치 쥐약처럼 작용하는 자신의 힘. 그리고 생도 수준을 벗어난 검사와 마법사가 있는 자신의 조와는 달리, 유시아가 속한 조는 앞의 나열된 어떤 구성요소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유시아 본인이 생도 수준을 초월한 궁사이긴 했으나, 그녀는 혼자 마나 회복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기에 심각하게 약한 체질이기까지 했으니, 새록새록 걱정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기도 잠시, 걱정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이도영을 본 백소월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네?”
“지금 그 애 생각하는 거지?”
생각하던 게 그대로 티가 났는지, 정곡을 찔러오는 백소월의 질문에 이도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본 백소월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쪽에도 충분히 강한 검사가 있거든. 나보단 못하긴 해도.”
“아…그, 이시혁 선배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 녀석도 충분히 강하니까. 그 애가 다칠 염려는 안 해도 돼. 적어도 이 정도 마인들에게 당할 수준은 아니거든. 그리고 그쪽은 우리보다 인원이 많잖아?”
유감스럽게도 이도영 조에 배정되었던 2학년 두 명은, 중간고사 이후 커리큘럼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적되었기에, 현재 이도영 조의 총인원은 셋에 불과했다. 그리고 셋에 불과한 자신들도 마인을 잘 처리하고 있으니, 그들도 그럴 것이다, 라는 백소월의 위로를 들은 이도영이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위로를 들었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은 듯 불안한 얼굴, 그 표정을 본 백소월이 갑자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니?”
“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영을 보며 야릇한 미소를 띤 백소월이 말을 이었다.
“뭐, 시혁이가 조금 잘생기긴 했지. 걔 말고도, 박휘성이라고 하던가? 걔도 나쁘지 않긴 하던데.”
“아니, 그…그게 아니라!”
“아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래도 신경은 쓰고 있나 보네? 그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이도영이 질 나쁜 농담에 얼굴을 붉힌 순간이었다. 깔깔 웃음을 흘리던 백소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백소월이 손에 쥔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웅!
순식간에 검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모여들어 흐릿하게 육중한 검날을 그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흐릿하게 유형화된 기운이 딱딱하게 굳어 실체를 이뤘다. 그리고 백소월이 반대쪽을 향해 검을 휘두른 순간, 검에서 쏘아진 반원형의 참격이 목표를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앙!
부서진 건물의 잔해에 충돌한 검기가 어마어마한 굉음을 토해냈다. 그 갑작스러운 파괴 행위에 이도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은 순간이었다. 검기에 의해 피어난 먼지 연기 사이에서 누군가의 신형이 드러났다.
“어째 환영 인사로는 좀 과한 것 같은데 그래?”
“…마인.”
“아, 그래. 맞아. 와, 그나저나 이거 꽤 아프네. 생도 따위라고 무시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어.”
백소월의 사나운 목소리를 들은 마인이 경박한 말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인을 본 이도영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마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어.’
여태까지의 마인들과는 달리 이도영의 감각, 마기를 감지하는 권능에 걸리지 않은 마인, 방금 전 격전 탓에 주변에 충분히 권능이 퍼졌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모습, 그리고 명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성까지. 단서를 조합한 이도영이 이내 판단을 내렸다.
이 마인은. 그때 고아원을 습격했던 마인과 동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 조를 한 번 훑어본 마인이 태연히 입을 열었다.
“워, 이거 아무래도 대주께서 목표를 조금 잘못 고르신 모양인데? 아무리 봐도 그쪽 목표보단 이쪽이 더 강할 것 같은데.”
“…대주? 그쪽이라고?”
경박한 말투의 중얼거림 속, 묵과할 수 없는 정보를 캐치한 이도영이 마인에게 되물었다. 그 말을 들은 마인이 씨익 웃으며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맞아. 너 말고도 목표가 하나 더 있잖아? 그쪽이 더 까다로울 거라고 판단했는지, 대주께서 그쪽으로 가셨거든. 뭐, 지금 너희 수준을 보니, 그쪽이 이쪽보다 더 빡세긴 힘들 것 같긴 하지만.”
“…시아.”
자신이 아닌 다른 목표라고 한다면 유시아밖에 없을 터. 그 생각을 떠올린 이도영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 표정을 본 마인이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아무래도 역린이었던 모양이네. 이거 참 미안하게 말이야. 뭐, 걱정하지 마. 곧 다시 보게 될 테니까. 그게 이승은 아니겠지만.”
그게 억울하면 교인을 해하지 말았어야지.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마인이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쉬이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백소월의 검이 한 번 더 마인을 향해 휘둘러지고, 이내 조금 전의 그것보다 더욱 강대한 검기가 마인을 향해 쇄도했다. 그를 본 마인이 검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까아앙! 소리와 함께 쏘아진 검기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나 참. 나랑은 이야기하기 싫다 이건가? 생애 마지막 대화일 테니, 조금이라도 놀아줄 생각이었는데.”
백소월의 검기를 막아낸 마인이 작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에 백소월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을 고했다.
“마인 따위와 할 얘기는 없어.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너를 빨리 처리하고 그 애를 도우러 가는 게 낫겠지.”
“허, 나를 처리한다고? 너희 따위가?”
그 말을 들은 마인이 어이없다는 듯 읊조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대답 없이 자세를 잡는 백소월의 모습을 본 마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아, 그래, 좋아. 이야기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원래 하려던 거나 하자고.”
그 말을 내뱉자마자 여태 껄렁한 태도를 보이던 마인의 기세가 급변했다. 방금 전 그 여유작작하던 마인에게서 쏘아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예기. 그 찌릿찌릿한 감각을 느낀 백소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장내의 긴장이 한계에 달한 순간, 갑자기 마인의 신형이 자취를 감췄다.
후웅!
그리고 다시 마인이 나타난 곳은, 백소월의 코앞.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인의 일권이 백소월의 명치를 향해 작렬했다.
까아아아앙!
“…크윽!”
간신히 검면을 들어 공격을 막아낸 백소월의 입에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방어는 성공했지만, 충격을 전부 흘려내진 못했다. 허공으로 붕 떠오른 백소월의 모습을 본 이도영이 급히 소리쳤다.
“설화야!”
무예에 대한 식견은 없지만, 그런데도 일권을 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부어도 상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초월적인 실력. 이설화의 권능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도영의 말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상황을 파악한 이설화가 권능을 개방했다.
맹금류의 것으로 변한 이설화의 왼쪽 눈에서 막대한 마력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토트의 눈. 실기 시험 당시, 어마어마한 신위를 보여주게 한 그 힘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설화의 몸에서 뿜어진 무지막지한 힘이 창공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우웅!
허공을 뒤덮은 냉기가 이내 하나의 권역을 이루었다. 속성을 체화한 마법사만이 발휘할 수 있는 힘, 자신의 마법을 백업하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권능. 그 희귀한 능력을 본 마인이 꽤 놀란 듯 감탄사를 흘렸다.
“호오, 권역이라. 역시, 내 쪽 목표가 더 센 것 같다니까? 진짜 대주께서 목표를 잘못 고르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여유작작한 태도. 그 방자한 모습에 표정을 찌푸린 이설화가 마법을 쏘아낸 순간이었다.
푸화아아아악!
기묘한 소리와 함께 마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설화가 뿜어낸 힘의 총량에 전혀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양. 그 막대한 마기가 이설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역을 형성했다. 모든 마나를 집어삼켜 제 것으로 삼는 마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이설화가 쏘아낸 공격 마법이라고 무사할 리는 없었다.
카가각!
순식간에 갈려 나가는 얼음덩이. 그러기도 잠시, 자세를 되찾고 다시 마인에게 달려든 백소월이 검을 휘둘렀다. 까앙! 소리와 함께 마인의 주먹과 백소월의 검이 충돌했다.
그리고 한참 마인과 공방을 겨루는 백소월의 모습을 보며, 이도영이 얼굴을 굳혔다. 지금 상대하는 마인의 강함조차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그렇다는 건.
‘시아가…위험해.’
마인의 말에 따르면, 저 마인보다 더한 이가 유시아를 노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유시아 조의 수준을 고려해보면, 이보다 강한 마인을 상대로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불길한 감각이 등골을 오싹하게 내달렸다. 조급해진 기분에 쏘아낸 마법을 가볍게 막아내는 마인의 모습. 그 모습에 가능한 한 최대한의 권능을 뿜어내며 이도영이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불길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