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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 마인(3) (104/167)

〈 104화 〉 마인(3)

* * *

눈을 뜬 박휘성은 이내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무지막지한 양의 마기가, 자신의 육신을 근본부터 뜯어고치고 있었다.

잘려 나갔던 팔의 절단 부위. 마기 침식으로 신경조차 망가졌던 곳에서 서서히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처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전해지고, 이내 부글부글 끓던 피부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났다.

새하얀 뼈, 그리고 그를 감싸는 근육. 근육을 지탱하는 피하 조직. 마지막으로 그 위를 두른 살구색의 피부. 어마어마한 속도로 팔이 재생을 이루고 있었다.

점점 회복되는 감각. 새롭게 돋아난 팔을 향해 뻗어진 신경 다발이 전달하는 전기 신호를 느낀 박휘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막대한 회복력.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었음에 씁쓸한 기분을 느낄 만도 했지만, 그에게는 감상에 잠겨 있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신체 내부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압도적인 마기. 눈을 감은 채 내부를 관조한 순간, 박휘성은 코어에 가득 차다 못해 넘치기 시작한 마기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끼이이익!

막대한 양의 마기를 감당하지 못한 코어가 비틀리는 소리가 신체 내부에 울려 퍼졌다. 마인의 회복력으로도 버텨 내기 힘들 정도의 부담.

그에 얼굴을 굳힌 박휘성이, 이내 신체 내부의 마기를 모조리 실어 기세를 뿜어냈다.

제대로 된 기세는 아니었다. 박휘성은 아직 기세에 의(?)를 싣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마인 계약은 무한에 가까운 마기를 제공해 줄 뿐, 경지를 올려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갑작스레 한참 높은 경지에 닿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나, 그것만으로, 무한한 마기만으로 충분했다. 기세에 실린 의(?)가 부족하다면, 그 이상을 기(?)로 채우면 되는 법.

박휘성의 몸에서 꾸역꾸역 쏟아진 칠흑같이 검은 마기가, 일순 폭발하듯 주위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앙!

“허?”

당혹감 섞인 마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잠시, 이내 몇 번의 타격음이 다시 고막을 간질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눈을 뜬 순간, 박휘성의 시야에 들어온 건 처참하기 그지없는 유시아의 모습이었다.

대체 어떻게 당했는지, 유시아의 손목 바로 밑부분은 검디검은 손자국이 새겨져 괴사하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마치 맹수에게 잡아 뜯기기라도 한 듯, 갈기갈기 찢어진 피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시선을 옮기자,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 완전히 백지장처럼 변한 얼굴색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도 하얀 피부이긴 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새파랗게 질린 유시아의 입술이 작게 기침을 내뱉자, 그 입에서 내상을 상징하는 검은 피가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발목. 왼발 복사뼈 부분을 기점으로, 유시아의 발목이 완전히 비틀려 있었다.

끔찍하게 꺾인 발목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그를 바라보던 유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주위를 집어삼킨 마기 덩어리가 폭발하듯 마인에게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조잡하다!”

그 공격에 대한 마인의 대응은 간단했다.

강기를 꺼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날카롭게 검결지를 세운 마인이 검기를 폭사했다.

한 번의 내려치기.

하지만 그에 실린 힘은 박휘성의 일격을 분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날카롭기 짝이 없는 검기가 덮쳐오는 해일을 반으로 갈랐다.

­꽈과광!

주위를 초토화하는 압도적인 거력. 그를 가볍게 받아낸 마인이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박휘성의 몸이 움직였다. 땅을 박찬 박휘성의 몸이 순식간에 마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흐읍…!”

날카롭긴 하나, 어설픔이 섞인 일격. 하지만 그 안에 실린 힘은, 부족한 자세를 뒷받침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유능제강(????). 그리고 사량발천근(四????).

포악하기 짝이 없는 마기를 다루는 마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섬세함의 극치에 달한 무리(?理). 하지만 그 효과는 발군이었다.

마인의 왼손이 살포시 내밀어지고, 이내 마인의 얼굴을 향하던 주먹의 궤적이 부드럽게 비틀렸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박휘성을 응시한 마인이 이내 빈 오른손을 뻗었다.

­터어엉!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박휘성의 몸이 순식간에 뒤로 튕겨 나갔다. 급히 마기로 빚어낸 몇 겹의 방패를 모조리 관통한 손이 사정없이 복부를 강타했다.

그 충격으로 내장이 진탕되기도 잠시, 피를 한 움큼 토해낸 사이 모조리 회복된 부상.

그에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켠 박휘성을 향해 마인이 힐난의 말을 내뱉었다.

“힘만 믿고 날뛰느냐? 짐승과 다를 바가 없구나.”

염치도 모르고 내뱉는 헛소리. 그에 이를 악문 박휘성이 다시 한번 마기를 끌어냈다.

아무래도 생각한 대로 상황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가만히 박휘성을 바라보던 마인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린 마인아, 악마에게 휘둘려 꼭두각시가 된 꼴이 참으로 가련하구나.”

“….”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 그에 묵묵히 공격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마인의 말이 이어졌다.

“애초에 이 습격은, 네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박휘성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슨…소리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이번 마인의 테러는, 이도영과 유시아를 노린 것이 아니었던가?

혼란에 잠긴 박휘성을 가만히 응시하던 마인이 말을 이었다.

“네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던 환청.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너를 마인으로 만들어준 목소리일 테니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박휘성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자신에게 환청이 들리고 있다는 것. 그가 그 얘기를 했던 이는 이도영뿐이었으니.

그리고 이도영은 저들에게 목숨이 노려지는 처지이니, 그가 그것을 밝혔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은, 자신이 계약한 악마. 그 사실을 깨달은 박휘성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아챈 모양이구나.”

그 말을 필두로 마인의 설명이 뒤를 이었다. 마인의 말에 따르면, 마인은 박휘성이 계약한 악마와 한가지 거래를 나눴다고 했다.

그 거래의 내용은 오늘의 테러를 통해 박휘성의 타락을 유도하는 것.

그리고 그를 대가로 눈앞의 마인은 이지를 잃은 마인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고.그렇게 말한 마인이 비죽 웃었다.

“조금 전, 네 몸에 흘러 들어갔던 마기는 내 힘이 아니었다. 만약 그것이 내 것이었다면, 저 계집이 품은 힘 따위가 감히 정화할 수 있을 리 없지.”

자신에게 흘러 들어온 마기는, 모두 자신이 계약한 악마의 것이었다고.

아니, 애초에 지금까지 마인이 사용한 힘 중, 강기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힘이 아니었다고 말한 마인이 말을 이었다.

“습격 직후부터 갑작스레 환청이 심해지지 않았느냐? 그리고 내게 공격을 받은 이후엔 아마 환각까지 보였을 테지?”

그 말대로, 습격 이후, 자신의 환청이 점점 심해지긴 했다.

물론 유시아에게 활을 넘겼을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이상은 없었지만, 첫 마인의 습격 이후에는 도저히 전투에 참여하기 힘들 정도였으니.

그리고 팔을 잘리고 나서는 환각까지 나타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팔이 잘린 이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건, 물론 고통도 일부 원인을 차지했지만, 환각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했으니까.

“계약을 맺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 적절한 타이밍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힘을 건네준 악마가, 마치 천사처럼 보이기라도 했느냐? 유감스럽게도, 원래 위장과 속임수는 악마의 주특기란다.”

그 말을 내뱉은 마인이 이내 한 마디를 더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빼먹었구나. 요즈음에 네가 쳐낸 교관이 있었지? 아무리 네 심기를 거슬렀다고 해도, 네가 그 정도로 가혹하게 굴었다는 점은 조금 이상하지 않더냐?”

“그건….”

그 말을 들은 박휘성의 머리에 의문이 피어났다.

마인이 말한 대로, 원래의 그였다면 그처럼 과격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돌발 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굳이 그를 쳐내려고 했다면 차근차근 목을 죄어갔겠지.

하지만 그때는 어째서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 우발적인 감정에 판단을 맡기고 내린 결정. 하지만 애초에 그게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다면?

그 순간 박휘성의 머릿속에 벼락같이 한 가지 깨달음이 내리쳤다.

“설마 결계를 멈춘 게….”

그 중얼거림을 들은 마인이 고개를 까딱였다. 긍정을 표하는 그 동작에 박휘성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종당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혼란에 빠진 박휘성에게, 마인이 말을 이었다.

“이제야 알겠느냐? 네가 저 계집에게 품은 감정은 전부 악마의 농간에 불과하단 것을. 그런 꼭두각시놀음에 휩쓸려, 영혼과 미래를 내버린 선택이 아쉽지 않으냐?”

그렇게 말한 마인이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박휘성의 시선에 마인이 본론을 입에 담았다.

“다행히도 네게는 아직 되돌릴 방법이 있다. 적어도 영혼만은 말이지.”

“방…법…?”

“그래, 영혼만은 지킬 방법이 있지.”

흔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박휘성을 향해, 마인이 진정한 제안을 건넸다.

“신교에 입교하는 게 어떠하냐? 어린 마인아.”

“신교…라고?”

“그래, 이미 너도 느끼고 있지 않으냐? 마인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영혼이 침식당하기 시작하는 것을.”

그 말을 들은 박휘성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과 달리, 박휘성의 영혼은 현재 큰 부담을 받고 있지 않았으니까.

본래라면 박휘성은 이미 마기에 영혼을 침식당하기 시작해야 했다.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끝없이 쏟아지고 있는 무한한 마기는, 그 반대급부로 막대한 부담도 같이 가져오므로.

하지만 지금 박휘성은 그러한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전, 유시아가 치유를 위해 박휘성에게 흘려 넣었던 미량의 권능. 그 힘이 박휘성의 영혼을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이내 권능이 전부 소모되면 결국 완전히 마인화에 이르게 될 터.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은 괴물로 전락하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예정된 미래임을, 박휘성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박휘성을 향해, 마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신교에 네가 입교한다면, 너는 더는 그러한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교의 비술을 이용하면, 영혼이 침식당하는 걸 막을 수 있으니.”

자신이 마인임에도 명확한 이지를 유지한 채, 무예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건 전부 신교에 입교한 덕에 가능한 일이라.

그렇게 설명을 마친 마인이 마치 포교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박휘성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

말할 기력조차 없는 듯, 축 늘어진 채 자신에게 시선만을 보내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 그리고 그런 유시아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박휘성은 드디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이 품은 이 감정이 모두 거짓이라면, 모두 악마가 꾸민 농간이었다면, 방금 자신이 택한 선택은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일.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택해야 할지는 뻔했다.

“….”

“그래, 옳은 선택을 내린 거다! 악마와 직접 계약을 맺은 너라면, 충분히 나를 뛰어넘는 교인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묵묵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휘성을 본 마인이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금세 거리가 좁혀지고, 이내 마인의 코앞까지 다가간 박휘성이 내민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기 시작했다.

“입교한다면, 영혼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그래! 교에만 들어온다면 너는….”

마지막으로 확신을 달라는 듯,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되묻는 박휘성의 모습에 들뜬 목소리로 마인이 대답한 순간이었다.

천천히 나아가던 박휘성의 손이, 갑작스레 주먹을 쥔 채 압도적인 속도로 쏘아졌다.

­퍼어어어엉!

무방비한 상태의 마인에게 꽂힌 클린 히트.

무지막지한 마기를 실은 주먹이 빈틈을 드러낸 마인의 복부를 후려쳤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한 마인의 시선을 마주한 박휘성이, 태연히 욕설을 내뱉었다.

“엿이나 처먹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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