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천선[??](1)
* * *
하늘에서 내린 천벌과 하늘을 무너뜨리려는 역천의 힘. 그 두 힘이 찰나의 간극을 넘어 맞닿은 순간, 이내 서로를 불사르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쿠르르릉!
굳이 김시우가 번개를 고른 것은 그 상성이 마기에 즉효였기에.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 벽조목에 사특한 것들을 쫓는 힘이 깃들었듯이 사마외도에 속한 힘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마외도를 쫓는 힘을 지닌 우레가 제격이었으므로.
하지만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역천(??)의 힘을 품은 마기 또한 신성의 대극에 선 기운이나 다름없었기에. 심지어 그것이 이계의 힘을 뒤집어썼다면 더더욱.
물론 핵을 폭주시킨 이상 이계의 힘이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남은 기운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이아의 권능이 아닌 단순한 번개에 맞서는 것 정도는.
서로가 서로의 극상성이라면, 남은 건 힘 대 힘의 대결.
일격에 산을 날려 버릴 위력을 담은 공격들이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금빛의 뇌룡과 흑색의 포탄이 치열하게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리는, 조금 더 간절한 측에게 돌아갔다.
콰지지지직!
뇌전과 격돌한 마환(??)이 그 몸체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격돌도 잠시, 이내 뇌룡의 아가리를 관통한 마환이 뇌기를 살라 먹으며 그 몸통을 꿰뚫었다.
그리고 뇌룡의 미간에서 꼬리까지, 번개의 줄기를 완전히 갈라내며 그 몸을 검게 물들인 마환이 이내 하늘에 펼쳐진 결계까지 솟구쳐 올랐다.
꽈과과과광!
마환이 직격한 결계에 이리저리 실금이 그어지고, 이내 산산조각 부서진 결계가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망가진 결계를 눈에 담은 김시우의 얼굴이 작게 찌푸려졌다.
“어마어마한 힘이군.”
“크…그극….”
그 막대한 힘을 쏟아낸 마인은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마기를 체외로 마구 발산하고 있었다.
아니, 지치지 않기에 힘을 쏟아내는 게 아니었다. 마기를 제어할 힘조차 남지 않았기에, 그 마기가 금이 간 그릇으로 질질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생명을 불태웠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증폭이다. 흐음…. 과연, 이게 그쪽이 지닌 비술인 것이냐?”
“네놈….”
“영혼이 망가지지 않은 마인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관심은 생겼지만, 역시 새로운 걸 목격하니 더더욱 흥미가 끓는군. 이런 고도의 기술이 하루아침에 떨어졌을 리는 없을 진데.”
흥미로 가득 찬 두 눈을 마인을 향해 굴린 김시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생사를 가르는 전투 상황에서도 흥밋거리에 눈이 돌아가는 모습. 과연 마법사의 극에 닿은 자다운 태도라 할 만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 하나, 나를 이리 모욕한단 말이냐!”
하지만 마인에게 그것은 막대한 모욕으로 다가왔다. 크나큰 치욕에 분노를 표출하는 마인을 본 김시우의 입가가 작게 비틀렸다. 제 허물은 못 보고 열을 올리고 있는 꼴이 꽤 우스웠으니.
“글쎄, 제 실력에 반 치도 닿지 못한 아이들을 농락하던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닥쳐라!”
그 말을 들은 마인이 할 말을 잃은 채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반박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저 눈을 부라리는 마인을 향해 김시우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비웃음을 눈에 담은 순간, 안 그래도 폭주한 마기에 휩쓸리던 마인의 이성이 결국 한계에 달했다.
쿠오오오오
“…호오.”
마인의 눈이 완전히 뒤집힌 순간, 그 몸에서 뿜어지던 마기가 기세를 한참 더했다.
맑은 물에 잉크 몇 방울이 떨어지던 수준에 불과하던 양이, 이제 잉크를 들이붓는 것처럼 줄기줄기 튀어 나왔다. 주위를 차츰차츰 적시기도 잠시, 이내 순식간에 기세를 불린 마기가 근처 공간을 완전히 뒤덮었다.
가히 무한히 쏟아지는 마기 속에 갇힌 김시우의 눈가가 흐릿하게 좁혀졌다.
‘이건 조금 곤란하군.’
사실상 마경에 가까울 정도로 농후한 마기가 퍼진 공간. 그 안에 들어선 김시우가 고심하듯 손가락으로 다른 손의 손등을 똑똑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기는 모든 마나를 압도하는 특성을 지녔으니, 마기가 짙은 공간에서는 마법 사용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었으니까.
물론 대마법사 정도의 수준의 마법사라면, 그리 큰 제약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찌한 것인지는 몰라도 생명을 불태움으로써 마인은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제아무리 김시우라 해도 더는 방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시우를 향해, 마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꽈아아아앙!
고작 주먹에서 터져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굉음. 충격파에 휩쓸린 주변 돌멩이들이 작게 진동하기도 잠시, 이내 마인의 연격이 김시우의 몸을 향해 쏟아졌다.
일격일격이 산에 구멍을 뚫을 정도로 막대한 위력의 연타. 그를 마법을 펼쳐 막아낸 김시우가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기껏 펼쳐낸 수백 겹의 방어막이, 마인의 주먹을 받을 때마다 십여 장씩 우수수 부서지고 있었다.
심지어 마인은 지칠 기색을 보이긴커녕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마력시를 펼친 김시우의 눈에 마인의 내부가 속속들이 비쳤다.
일격을 날릴 때마다 소모한 마기가, 그 이상의 양으로 꾸역꾸역 채워진다. 가히 무한해 보일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기.
아무리 김시우가 대마법사라고 할 지라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초장거리 텔레포트를 펼친 이후의 상태로 제압하기엔 조금 버거울 정도였다.
물론 작정하고 소멸시키길 원했다면 이미 처리하고도 남았겠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마법사로서 지닌 호기심.
‘잘못하면 귀중한 연구 자료를 잃을지도 모르겠어.’
무한히 쏟아지는 마기에 의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마인의 핵심, 이계의 힘을 다루는 단전 부위는 멀쩡한 채였기에 김시우는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까딱해서 마인을 완전히 죽여버릴 경우, 간만에 흥미를 돋우는 실험 재료를 잃게 될 테니까.
마인화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보존하는 방법이야, 이미 북유럽에서 생포한 기존 마인 단체에 소속된 샘플이 있었기에 여태 그리 큰 관심은 주지 않았지만, 오늘 마인을 직접 마주하고 저 특이한 에너지 증폭 방식을 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흥미롭기 짝이 없는 증폭 방식,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힘을 지닌 색다른 마인. 그 모든 것이 마법사의 탐구욕을 듬뿍 자극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기 위함이라면 최상의 결과는 생포.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력시로 본 몸 상태를 고려하면, 저 증폭 상태가 끝나자마자 마인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소멸해버릴 테니.
만약 그 전에 목숨을 끊는다 해도, 마인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 마인의 몸은 마찬가지로 폭주한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할 터.
즉,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무력화였다. 최소한 한 호흡, 이계의 힘을 추출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키아아아아!”
“아예 이성을 잃었나.”
넘쳐나는 마기를 견디지 못한 마인의 정신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을 본 김시우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마인 따위의 영혼이 붕괴하건 말건 별 상관은 없지만, 저 상태가 끝나는 순간 흥미의 대상 또한 망가져 버릴 테니까.
하지만 지금 김시우에겐 마인을 바로 제압할 정도의 힘이 부족했다.
그의 본거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의 그였다면 손짓 하나만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사관학교였으므로. 현재 결계조차 마인의 공격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이상, 그만한 힘을 바로 다룰 수는 없었다.
그리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 공방이 이어지던 도중이었다.
“음…?”
김시우의 기감에 누군가가 접근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 번 접했던 마력 패턴이었기에, 누구인지 식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몸에 막대한 권능을 품고 있던 소년, 이도영이었다. 그 뒤쪽에서 따라오는 두 명이 더 잡혔으나, 그들이야 김시우에게 딱히 중요한 이들은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파즈즈즈즈!
그리고 이도영이 마기에 접근한 순간, 그 권능에 닿은 마기가 말 그대로 소멸하는 것이 김시우의 기감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마어마한 정화력. 뇌뢰가 품은 파마(??)의 힘 정도는 말 그대로 따위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에 김시우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 마인이 정상 상태였다면 품은 이계의 힘 탓에 정화를 할 수 있을 리 없었지만, 지금의 마인은 폭주 상태.
단전을 기반으로 작용하던 핵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상태이기에, 이도영이 품은 권능은 마인에게 특효약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해를 끼친다는 방향에서.
이 지루한 대치 상태의 돌파구를 발견한 김시우가 작게 미소를 띠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 힘은…!”
이성을 반쯤 잃었던 마인의 눈에 순간 이지가 돌아오고, 경악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내 놀란 마인의 시선이 이도영이 있는 쪽을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죽음을 각오했던 마인의 눈에 어떠한 열망이 깃들었다.
“계집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저 힘, 저 힘을 저 정도로 품은 인간이 있었다고…!”
“음? 정신을 차린 게냐?”
“교주님께…전해야 한다. 여기서, 여기서 죽을 순 없어! 교를 위해서라도!”
처절하기 짝이 없는 절규를 내뱉은 마인이 발에 마기를 실은 채 땅을 박찼다.
방금 전까지 집요하게 달려들던 이가 보인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태세 전환.
그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당황한 김시우가 마법을 꺼내 들었다가 과한 위력에 주춤한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
이도영의 손에서 뿜어진 바람이 그대로 밖으로 향하던 마인의 경로를 휩쓸었다.
그리 어려운 마법은 아니었다. 바람 계열의 중위 마법에 권능을 실어서 쏘아냈을 뿐.
하지만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악!”
마인의 전신을 둘러싼 권능이 쏟아지는 마기를 모조리 정화하며 그 몸에 달라붙는다.
이계의 힘, 그 핵이 온전하기에 몸이 완전히 정화되어 사라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비참한 결과.
전신이 참혹하게 불타버린 채 바닥을 구르는 마인을 본 김시우의 표정이 순간 멍하게 변했다.
“허, 이 정도로 효과적인 힘이었던가.”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일반 마인에게는 가히 죽음 그 자체라 보아도 무방한 수준의 권능. 그 효과를 직접 목격한 김시우의 얼굴에 작게 흥미가 떠올랐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바닥에서 꿈틀대는 마인의 몸을 염력으로 들어 올린 김시우가 마력시를 가동했다.
“다행히도 핵심에 손상은 없군. 뭐, 이 상태에서 더 정보를 캐낼 수는 없을 테니 굳이 살려둘 필요는 없겠지.“
푸슉!
김시우의 손이 휘둘러지고, 이내 마인의 복부가 쩍 갈라졌다. 마기가 휘몰아치는 내부 장기들에 살짝 눈을 찌푸린 김시우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딱였다.
촤아악!
“카아아아아악!”
그 순간 폭주하던 마기를 비집고 들어간 칼날이 마인의 내부를 마구 헤집었다.
이내 핵심에 닿은 칼날이 그를 가볍게 도려내고, 마인의 핵이 김시우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권능에 직격한 마인의 몸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이게 그 힘의 원천인가. 확실히 흥미로운 기관이로군.”
처절한 마인의 단말마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사적 흥미로 가득 찬 감상을 남기는 김시우의 모습에 소름이 돋을 법도 했지만, 이도영 또한 그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도영에게는 지금 한참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리고 이내 걱정으로 가득 물든 표정을 지은 이도영의 눈에 방어 마법에 둘러싸인 유시아와 박휘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시아야!”
다급히 달려가는 이도영의 뒤를 두 여인이 따르기도 잠시, 이내 자신을 본 한 여인, 백소월의 얼굴에 당황이 깃드는 걸 본 김시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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