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천선[??](2)
* * *
다리를 바삐 놀려 유시아에게 다가간 이도영의 눈에 비친 것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참상이었다. 유시아의 몸에 남은 부상을 본 이도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먼저, 압도적인 힘에 의해 그대로 찢겨 나간 두 팔의 피부는 어느새 괴사했는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단순한 괴사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마기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권능을 지닌 이도영이기에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두 손목을 기점으로 침입한 마기가, 팔을 타고 올라가며 조금씩 그 몸을 침식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봉사활동 직전, 이도영 자신의 권능을 다량 주입했던 상태였음에도 확연하게 이루어진 침식. 얼마나 격한 전투를 벌였는지, 그 많은 권능을 모조리 소모한 모양이었다.
“….”
두 팔에 남은 갈기갈기 찢긴 상처 위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거무칙칙한 피얼룩을 본 이도영의 주먹에 핏대가 섰다. 떨리는 시선을 겨우 옮긴 이도영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유시아의 상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장이 상했는지 입에서 흘러나온 피 또한 검붉은 혈흔을 남긴 채 굳어 있었으니. 새하얗게 질린 유시아의 안색이 얼마나 심한 부상인지 온 힘을 다해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리. 평소 매끄럽게 뻗은 각선미를 보이던 다리였지만, 지금은 발목 부분에서 처참하게 비틀려 있었다. 그 끔찍한 참상을 본 이도영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김시우가 펼쳐 놓은 방어 마법에는 회복 마법도 병행하여 걸려 있었기에 부상이 조금씩이나마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
다만 문제가 있다면, 회복 마법은 마기 침식에는 효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젠장.”
이를 악문 이도영이 방어 마법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어느새 김시우가 조치를 취했는지, 이도영의 손이 닿은 순간 회복 마법을 제외한 모든 방어 마법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에 감사를 표할 겨를도 없이, 이내 유시아의 양손을 잡은 이도영이 다급히 신체 내부에 권능을 흘려 넣었다.
치지지지직!
이내 내부로 향한 권능이 유시아의 몸을 침식하던 마기를 모조리 불살랐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마기를 접한 권능이 급격히 날뛰는 것을 확인한 이도영이 다급히 권능의 고삐를 당겼다.
내부에서 권능이 가볍게 날뛰기만 해도 큰 부상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유시아의 체내 회로도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유시아와 접촉한 덕에, 권능의 통제력이 강화되었기에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급히 응급처치를 마친 이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기를 정화하는 데 성공하자, 새하얗게 질렸던 유시아의 얼굴에 점차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
안정을 되찾았지만, 아직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유시아의 얼굴을 이도영이 가만히 들여다보던 순간이었다.
“야.”
“…!”
옆자리에서 들려온 퉁명스러운 목소리. 귀에 낯익은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도영은,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다 못해 칠흑처럼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머리카락, 그리고 붉게 물든 눈동자.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몸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는 마기.
그에게 말을 건 남성, 박휘성의 상태를 파악한 이도영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설마….”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기도 잠시, 이내 상황을 이해한 이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휘성이 마인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오해할 여지도 없었다.
복장에 남은 찢어지고 그을린 전투의 흔적. 그리고 전신을 흠뻑 적신 검붉은 혈흔. 마지막으로 지금 박휘성은 김시우의 마법에 보호받고 있는 상태라는 점.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박휘성이 마인이 된 이유 정도야 쉽게 추론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도영이 다급히 뿜어낸 권능을 거뒀다.
현재 마인이 된 박휘성은, 까딱하다 자신의 권능에 닿는 순간 아예 소멸해버릴 수도 있었으므로.
지금은 방어 마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지만, 유시아와 마찬가지로 방어 마법이 풀린다면, 그 순간 박휘성은 끝이 나버릴 수도 있었다. 그것도 방금 그 마인처럼 처참하게.
물론 악마와 직접 계약을 맺은 박휘성은 이도영의 권능에 바로 녹아버릴 정도로 권능에 취약하진 않았지만, 현재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없었으니.
그에 이도영이 황급히 권능을 거두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귓가에 박휘성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되게 세더라. 그 괴물 같던 놈을 한 방에 날려버리다니.”
“그건….”
상성 관계가 너무도 유리했다. 마인이 폭주 상태였기에 권능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미 마인이 지치고 이성을 잃은 상태였기에 기습이 통할 수 있었다.
수많은 핑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이내 자취를 감췄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침묵하는 이도영을 본 박휘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그래? 표정 풀어. 네 입장에선 좋은 일이잖아.”
“그럴 리가…!”
유시아를 노리는 경쟁자가 알아서 사라져주니, 네 입장에선 다행인 게 아니냐는 말.
그 짓궂은 말을 들은 이도영이 큰 소리로 반박을 내뱉으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차마 입을 열게 할 수 없었으니까.
“뭐, 그래도 이번엔 내가 더 활약한 것 같은데. 넌 너무 늦었거든. 안 그래?”
“….”
자신을 폄하하는 말에도 이도영은 전혀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정심을 품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도영의 반응에 질렸는지, 박휘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아, 됐어.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해봐야 추하기만 하지.”
“….”
어떤 감정일지 모를 무언가가 실린 중얼거림을 내뱉은 박휘성이 잠시 입을 닫았다. 급격히 무거워진 분위기에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박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아냐?”
“…뭘?”
“나, 네가 부러웠거든.”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표정에 당황이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은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왜 그리 놀라? 당연한 거 아냐? 실력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 놈이, 어째서인지 시아한테 관심은 엄청 받았었잖아? 정작 시아는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그가 자신을 부러워할 줄은. 아니, 알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은 그를 부러워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감정에 당당할 수 있는 실력. 그가 가진 실력이 부러웠으니까.
“아, 그리고 내가 너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몇 개 더 있어. 내가 시아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 알아?”
그 이유를 이도영이 알 리가 없었다. 묵묵히 경청을 이어가는 이도영을 향해 박휘성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 부활동 때, 걔가 나한테 물어봤거든. 내가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유가 뭐냐고.”
그때 박휘성은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입학한 거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 말을 내뱉고 쓴웃음을 지은 박휘성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아가 그러더라. 이도영, 네가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슨 기분이었는지.”
뭐, 그 후로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며 격려해주는 모습에 반했다고. 가볍게 말을 마친 박휘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되게 부럽더라고. 누군가에게 그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게, 그리고 그 동기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게. 아쉽게도 나는 그게 안 되더라.”
“…그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박휘성이 자신을 향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한 적 없었다.
그리고 하얗게 물든 머릿속에 멍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을 향해 박휘성이 검지를 치켜세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러운 게 있어. 이건 지금 막 생겼다고 해야겠네.”
그 말을 내뱉은 박휘성이 이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그에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잠시, 이내 박휘성의 말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보다시피 마인이 되면서까지 싸웠는데도, 결국 나는 그 마인한테 형편없이 당했거든. 아마 대마법사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그대로 끝이었을 거야.”
그래서 자신이 부럽다는 말, 결국 자신은 유시아를 구해내는 영웅은 될 수 없었다는 말을 내뱉은 박휘성을 보며 이도영이 손을 파르르 떨었다. 밀려오는 감정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야….”
박휘성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도영 자신은 오히려 박휘성을 부러워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이도영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했을 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실질적으로 유시아를 구해낸 건, 대마법사를 부르고,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낸 건 박휘성이었다.
자신감 없이 그저 주위만 맴돌았던 자신과 달리, 당당하게 그녀에게 마음을 전한 것 또한 박휘성이었다. 그리고 나약하던 자신과 달리, 박휘성은 충분한 실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당당할 수 있을 만큼.
그랬기에 이도영, 자신은 그가 부러웠다. 그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박휘성에게 대답을 건넸다.
“나도…네가 부러웠어.”
자신감에 걸맞은 실력이, 그에 따르는 배경이, 당당하게 유시아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용기가, 그리고 자신과 달리 유시아를 구해낸 그 행동이, 자신마저 희생할 수 있었던 결단이, 그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도영의 진심이 담긴 그 말을 들은 박휘성이 후련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말을 끝으로 또다시 장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기도 잠시, 어느새 이쪽에 가까이 다가온 김시우가 복잡한 눈으로 박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알아챈 박휘성이 이내 김시우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대마법사 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감사 인사는 받을 수 없다. 나는, 너를 구하지 못했으니.”
“아니요, 시아를 구해주신 걸 말하는 거예요.”
그 대답을 들은 김시우의 표정이 작게 경련했다. 그러고는 이내 근처에 다가온 이설화와 백소월을 본 박휘성이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설화, 그리고 부장님. 이렇게 뵙게 되어 유감이네요.”
방금 전 나눈 대화로, 간략하게나마 상황을 이해한 백소월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마찬가지로, 여태껏 무표정을 유지하던 이설화의 얼굴에 실금이 그어졌다.
그런 이설화를 바라본 박휘성이 한 마디를 건넸다.
“설화, 너한테는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네. 이용완, 그 인간이 헛짓거리하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여태 방관했으니까. 혹시라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지금 사과할게.”
“…됐어.”
“그래, 고마워.”
마치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보이는 박휘성의 모습에 이를 악문 이도영이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마인 계약을 취소할 방법은 없냐는 질문. 그를 들은 김시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인 계약은 쌍방이 동의한 계약. 마도학적으로 정당하게 성립된 계약은, 마법으로는 비틀 수 없다.”
“그러면….”
뒷말을 차마 잇지 못하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인 김시우가 이내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이미 미래를 받아들인 것처럼 태연하기 그지없는 표정. 하지만 그럼에도 작게 떨리는 입꼬리가, 그 표정이 진심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불안정한 감정을 직관으로 꿰뚫어 본 김시우가, 애써 냉정을 가장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남길 말은 있느냐?”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그거면 됐어요.”
그 말을 뱉은 박휘성이 눈을 감았다. 불안으로 경련하는 눈꺼풀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김시우가 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파츠츠츠츠
빚어낸 것은 전격. 마(?)에 물든 이들에 대한 징벌을 의미하는 힘. 하지만 정작 그것이 향하는 대상이 행한 것은 정의롭기 그지없는 일이었으니.
그 기막힌 모순에 전격을 만들어낸 김시우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김시우가 박휘성을 향해 전격을 쏘아내려던 순간이었다.
“…그만, 멈춰…!”
갑작스레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 급히 전격을 역소환한 김시우가 이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기절한 채 쓰러져있던 유시아가, 어느새 정신을 차린 채로 이쪽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급히 달려간 이도영이 유시아의 몸을 부축한 순간이었다.
“커헉…! 흐….”
내상으로 인해 기침을 토해내기도 잠시, 이내 유시아의 입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죽이지 마…. 아직, 구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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