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천선[??](3)
* * *
내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박휘성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박휘성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를 보며 회로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키이이이잉
낮은 랭크의 정령술을 시전한 순간 열리는 또 다른 시야. 마나가 깃든 녹안이 물질계를 초월해 영혼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실선이 이도영의 몸에 연결된 모습. 계약의 증명을 관찰하기도 잠시, 곧 박휘성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영혼시라, 특이한 재능이군.”
김시우의 감탄 섞인 목소리를 흘려 넘기고 눈에 마나를 집중했다. 겨우 이 정도 마나 운용에도 뻐근하게 아려오는 회로를 억지로 제어하며 박휘성의 영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
영혼을 물들이려는 마기를 불사르고 있는 권능의 모습. 방금 확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 박휘성의 영혼은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관은 꽂혔지만, 그 관의 구멍은 권능에 의해 막혀 있는 상태. 영혼을 물들이려는 호스를 필사적으로 틀어막은 권능을 본 순간이었다.
“고작 영혼시로 본 사실로 그렇게 말한 것이냐?”
실망 어린 김시우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려 김시우를 바라보자, 이내 김시우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영혼시를 가졌으니 알겠지만, 이미 박휘성의 영혼은 악마와 연결된 상태라는 것. 이미 계약을 체결한 이상, 그를 무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눈짓으로 이도영을 가리킨 김시우가 설명을 계속했다.
“저 아이의 특성이 작용하는 것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면, 경솔한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구나. 저 아이의 힘은 오로지 그 전에 흘려 넣은 것만이 악마의 힘을 향해 작용할 뿐. 지금 힘을 더욱 불어넣는다면 신체를 파괴할 뿐이니.”
김시우의 말에 따르면, 아까 불어넣은 이도영의 권능이 마인으로 타락한 박휘성의 몸을 파괴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라고 했다.
내가 몸에 일부 흘려 넣었던 권능이, 마인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 변질이 일어났다고. 그렇기에 박휘성의 몸에 현재 남아있는 권능은 신체를 파괴하지 않는 거라고.
그러나 새롭게 지금 권능을 불어넣는 것은 그러한 변질 과정이 없었기에, 악마의 힘을 막기 전에 마인으로 타락한 박휘성의 신체부터 정화해버릴 거라고.
하지만 내가 계획한 건 권능을 쓰는 게 아니라서. 아니, 쓴다면 쓰는 거지만. 아무튼 그런 용도는 아니니까.
김시우의 말에 고개를 저은 뒤 입을 열었다.
“도영이의 힘을 쓰려는 게 아니에요.”
“음? 그렇다면 무슨…. 아, 설마.”
내 말을 들은 김시우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이도영을 번갈아 바라보는 시선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이도영 사이에 이어진 계약, 영혼을 두고 연결된 계약을 맺었던 방법을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잠시 눈을 꿈틀한 김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그 계약은 마법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니, 가능성이 있을 법도 하군.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그 힘은 정당한 계약조차 끊어낼 수 있다는 말이냐?”
그에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작,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마지막에 썼던 소설. 이 몸의 주인, 루시아 그란데우스가 등장했던 소설에서 루시아가 정령술을 통해 비슷한 일을 행했던 장면이 있었으니까.
초고위의 정령술사는, 수준 낮은 정령사의 정령 계약을 강제로 파기해버릴 수 있다.
원작에서는 단순히 일회용 악역을 처리하는 사이다 장면을 위해 넣은 설정이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설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살펴본 결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와 이도영의 계약과, 마인 계약의 메커니즘은 한없이 유사했으니.
즉, 마인 계약 또한 정령술을 통해 강제로 파기해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네, 가능해요.”
고개를 끄덕인 나를 향해 김시우의 흥미에 찬 시선이 쏘아졌다.
방금까지 박휘성을 향하던 씁쓸한 표정은, 어느새 호기심을 불태우는 마법사 본연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에 살짝 질린 기분이 들기도 잠시.
끼기기기긱!
“흐윽…!”
영혼시를 너무 오래 유지한 탓에 부담이 가해진 마나 회로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잠시 집중력을 잃자마자 영혼시가 풀려 버리고, 곧 부담을 견디지 못한 마나 회로가 비명을 토해냈다.
“시아야!”
당황한 채 내 상태를 살피려는 이도영의 행동을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차피 확인한다고 해서 나아질 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상태를 꿰뚫어 본 김시우가 내게 선고를 내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네 상태로는 무리다. 지금 상태에서 마나를 더 운용한다면, 잘못하면 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은 요양을 취한다면 회복할 수 있지만, 여기서 더 힘을 사용할 경우 폐인이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시아야. 굳이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굳이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젓는 박휘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말과는 달리, 낯빛에 잠시 떠올랐던 희망의 빛이 꺼져버린 표정. 그 모습을 보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애초에 몸 상태에 대해서는 믿고 있는 것도 하나 있었으니, 이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위험 부담이 큰 일도 아니었다.
“…시아야?”
이도영의 부축에서 벗어나 몇 걸음을 더 다가간 뒤 다리를 굽혔다.
낮아진 시야 속 선명하게 보이는 붉게 물든 박휘성의 눈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괜찮아도, 나는 안 괜찮거든.”
어디서 구원튀를 하려고, 괜히 사람 찝찝하게.
내 말을 들은 박휘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 시선을 담담히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구해준 거 퉁 치려는 거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뜨인 눈. 그를 들여다보기도 잠시, 이내 박휘성이 알겠다는 듯 입을 닫았다. 그를 보며 김시우에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넸다.
“혹시 얘가 잠시 정신을 잃게 해줄 수 있으신가요?”
“정신을 잃게 해달라고? 흠, 마취를 말하는 것이냐?”
“예. 강제로 계약을 파기하면, 그 충격도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계약 파기 장면을 되새겨보면, 대상이 된 정령사는 계약이 강제로 파기된 충격에 의해 반폐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망가졌었다.
물론 정령을 잃었다는 실의가 대부분이었을 테니 그 정도 걱정은 할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내 말을 들은 김시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고, 순식간에 작은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에서 시선을 뗀 뒤, 불안 섞인 박휘성의 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눈 뜨고 나서 다시 보자.”
“…응, 고마워.”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박휘성의 몸에 김시우의 마법이 깃들었다. 서서히 박휘성의 눈이 감기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박휘성을 땅에 살포시 눕힌 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뭐해? 이리 와.”
나를 걱정과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도영.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이도영을 이쪽으로 불렀다.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황급히 걸음을 옮기고, 이내 내 곁에 선 이도영의 손을 꽉 붙잡았다.
“…!”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냐.”
맞닿은 손에서 부드럽게 밀려오는 마나의 감각을 느끼던 도중, 퍼뜩 몸을 떠는 이도영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이도영의 모습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어머….”
귓가에 백소월의 흥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에 미묘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곧 잡은 손에서 밀려 들어오는 마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초고위의 정령술을 시전하려면, 이도영에게 계속 마나를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다.
‘뭐, 그래도 손잡는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정령술을 사용하는 동안은 연결된 신체 부위를 통해서 마나를 빠르게 끌어낼 수 있을 테니, 접촉의 수위가 그렇게 높을 필요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박휘성의 경우에도 영혼을 찾아낼 것도 없이, 영혼시를 켜자마자 바로 보였기에 그때처럼 몸을 접촉할 필요는 없었다.주변에서 쏘아지는 시선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생각을 마치고 이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절대 손 놓으면 안 돼.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응.”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시선이 오가고, 곧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가득 채운 마나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윽….”
최대한 회로에 부담이 가지 않게 섬세하게 운용했음에도 다시 찢어발겨지기 시작하는 회로. 그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잠시, 다시 신경에 날을 세운 뒤 마나를 운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느 정도 마나가 모이는 걸 직관하며 잠시 잡생각에 빠졌다.
‘그나저나 타락에서 돌아오는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갱생?’
갱생은 어감이 어째 그런데. 그렇다고 개과천선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얘가 잘못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잘못은 내가 얘한테 했으면 했지.
‘그러면 개과를 빼서 천선이라고 해야 하나?’
알 게 뭐야.
충분히 모인 마나에 잡생각을 흩어버린 뒤, 이내 모조리 끌어올린 마나를 시스템을 향해 쏟아부었다. 목표하는 정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SS랭크.
[정령술(SS)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적용된 순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술의 힘을 빌려, 원작에서조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었던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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