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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 천선[??](4) (110/167)

〈 110화 〉 천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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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을 적용한 순간부터, 끌어모은 막대한 마나가 시스템을 통해 밑 빠진 독처럼 순식간에 빨려 나갔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시스템에 의해 내 영혼이 격상하기 시작했다.

궁술을 적용했을 때 느껴진 감각이 육체적 고양감이라면, 지금의 것은 정신적인 고양감.

이전, 정령술을 시전했을 때와 똑같은 감각. 영혼의 격이 현격히 상승하는 쾌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에 휩쓸릴 시간 따윈 없었다. 한 번 겪어봤기에 더욱 차분하게 작용하는 이성을 바탕으로, 내부를 관조하며 삐걱거리는 마나 회로를 강제로 굴려 한 번 더 마나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얼마 후, 초월을 거듭한 드높은 경지에 이르고, 이내 마나가 듬뿍 깃든 녹안이 방금 전에 비할 데 없이 선명한 영혼시를 일깨웠다.

방금 가볍게 시전한 영혼시에서 모든 형태가 흐릿하게 뭉뚱그려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영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명쾌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신비한 광경에 잠시 눈길을 빼앗긴 순간이었다.

“허…이 정도로 고위의 비술이었던가.”

내 몸에서 퍼져나간 파장을 느낀 김시우의 입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확실히 이건 학생 수준이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아니, 웬만한 영웅은커녕 최상위권의 영웅들도 다룰 수 없는 수준의 힘이었다.

SS랭크, 초월을 두 번 겪은 경지는 대마법사와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 경지였기에.

물론 궁술과는 달리, S랭크를 초월한 기술은 내가 온전하게 다룰 수는 없는 데다가, 마법과는 체계 자체가 다른 힘이기에 그 수준을 모두 파악당하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SS랭크라는 경지는, 고작 그 편린 따위로도 생도 수준은 한참 초월하고도 남는 수준이었으니, 김시우가 감탄할 만도 했다.

그 반응에 어찌 해명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생각을 흩어버린 뒤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지금은 이 일에 온전히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키이이이잉!

생각을 마친 뒤, SS랭크의 정령술을 통해 날카로운 무형의 칼날을 벼려냈다. 지금 할 일은 이전에 이도영과 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었다.

그때는 이도영과 계약을 맺었지만, 지금 내가 박휘성에게 하는 것은 계약의 파기였으니까.

어째 묘하게 대비되는 구도에 문득 흥미로운 기분이 든 순간이었다.

­찌지지지직!

“흐으윽…!”

어느새 내구에 한계를 맞이한 마나 회로가 서서히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칼로 후비는 듯한 고통에 참지 못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괜찮아?”

잠시 후, 겨우 고통에 적응한 뒤 귓가에 들려오는 이도영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를 악물고 벼려낸 칼날을 실선을 향해 휘둘렀다.

­카가가가각!

휘둘러진 칼날이 연결된 계약의 패스에 서서히 파고들고, 이내 그를 갈라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잘려 나가는 통로를 보며 눈을 부릅뜨고 칼날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칼날이 완전히 통로를 끊어낸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

“뭐…?!”

잘려 나간 계약의 통로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터져 나왔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대비는 해뒀었으나, 그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엄청난 기세였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마기가 깔아둔 이도영의 권능조차 돌파하고 내 몸에 닿기 직전.

“위험하구나.”

허공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이내 토막난 실선에서 맹렬히 쏟아지는 마기를 김시우가 긴급히 만들어낸 결계가 둘러쌌다.

“후우….”

둘러싼 결계의 내부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 정도로 밀도 높은 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끄으으….”

정신을 잃은 박휘성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토해지고, 이내 기절한 박휘성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검게 물들기 시작한 박휘성의 몸뚱이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무슨…!’

­쿠오오오오

이윽고 계약 파기 이후에도 남아 있던 마기가 박휘성의 몸에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악마와의 계약은 이미 끊어졌으므로 새로운 마기가 충원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계약을 끊기 전까지 신체에 남아 있던 마기가 폭주할 뿐.하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박휘성의 몸에서 광폭하게 날뛰기 시작하는 마기를 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권능은…안 돼.’

이도영의 힘을 쓰면 마기는 전부 소멸시킬 수 있겠지만, 현재 박휘성의 몸은 마기에 짙게 물든 상태.

계약이 끊어졌다고는 하나 잘못해서 정화 대상으로 판단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니, 권능을 불어넣는 방안은 폐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령술? 아니, 이것도 안 돼.’

악마와 박휘성의 계약 관계가 정령과 정령사의 계약과 비슷한 구조였기에 간섭 자체는 가능했지만, 마기는 원래 정령술로 다룰 수 없는 힘.

그리고 이 육신으로 마기를 다루려고 시도한다면 그 순간 어마어마한 알레르기 반응이 발작하듯 일어날 테니, 이 또한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젠장, 방법이 없나…? 슬슬 몸 상태도 한계야.’

여기서 회로에 더 부담이 가해지면, 계획했던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도 마나 회로에 영구적인 손상이 남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에 인상을 와락 찌푸리기도 잠시, 또다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났다.

­츠츠츠츠츠

방금 뿜어진 마기를 봉쇄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펼치는 정령술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위해 김시우가 잠시 내려놓았던 마인의 핵.이계의 힘의 근원과 같은 그 물건에서 갑작스레 이계의 힘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꾸역꾸역 쏟아진 이계의 힘을 본 김시우가 급히 그를 회수하려던 순간.순식간에 튀어나온 이계의 힘이 이내 폭주하는 마기를 감지하고 박휘성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이런.”

이계의 힘이 사라지자마자 파스스 흩어진 마인의 핵을 보며 김시우가 탄식을 내뱉기도 잠시,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휘성의 몸에 깃든 이계의 힘이, 마기를 모조리 잡아먹으며 자신의 힘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박휘성의 영혼을 보호하던 이도영의 권능 또한 움직임을 보였다.

­우우우우웅!

이계의 힘을 정화하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애초에 권능은 이계의 힘에는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했으니.

오히려 그 움직임이 가진 의미는 정반대였다.

[이건…나조차도 처음 보는 일이군.]

“허, 이게 무슨….”

마법에 통달한 두 존재가 감탄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마기와 권능. 그 양립할 수 없는 두 힘이 이계의 힘을 중심으로 서서히 합쳐지고 있었다.

“마기가….”

그리고 얼마 후, 마기와 권능이 합쳐짐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힘. 그 힘이 체내를 마구 돌아다니며 존재하는 마기란 마기는 모조리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권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계의 힘을 중심으로 뭉친 새로운 힘이, 체내의 존재하는 모든 힘을 집어삼켰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시우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인화가…풀리고 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 힘은 대체….”

김시우의 말대로, 박휘성의 몸에 일어났던 마인화의 증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악마와의 계약 전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지닌 마나는 이미 마기로 대체되었던 데다, 그 마기조차 새로운 힘에 잡아 먹힌 상태이므로.

즉, 박휘성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복원이 아닌 새로운 변화. 이 세상에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던 새로운 힘이 이내 박휘성의 전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힘이 완벽히 몸에 자리를 잡은 순간, 감겨 있던 박휘성의 눈이 살짝 뜨였다.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어느새 찬란한 금빛을 띠고 있었다.

‘금안이라고?’

그 예상치 못한 색상에 놀라기도 잠시, 이내 황급히 박휘성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만약 의식이 남아 있었다면, 계약 파기의 충격으로 정신을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

‘아, 그냥 눈만 뜬 거였나.’

다행히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한 듯, 눈에서 초점이 비치진 않고 있었다.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목표했던 안정화가 끝났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황급히 정령술을 해제했다. 삐걱거리던 회로의 부담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가 있었다.

­꽈지지지직!

그리고 정령술을 해제한 순간, 회로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를 넘은 회로가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이 상태까지 몰려 있었다. 아니, 사실상 망가진 것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흐으으….”

“시아야!”

고통을 참으려 이를 악문 내 모습을 본 이도영의 표정이 걱정으로 참혹하게 흐려졌다. 아무래도 최악의 상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뭐,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내 눈앞에 어떠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체화를 통해 쌓인 포인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신체능력이 더욱 강화됩니다.]

방금 정령술을 시전해 숙련도를 올린 덕에, 쌓인 포인트가 신체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메시지. 다행히도 계획대로 목표를 달성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몸뚱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드득!

좁디좁은데다 무리한 운용으로 황폐해졌던 마나 회로가 순식간에 증축되고, 으스러졌던 발목에 서서히 감각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완치는커녕 호전조차 무리인 수준이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치료 마법 없이도 악화되지 않을 정도의 재생력은 얻었다는 것.

즉, 회복 마법과 요양을 거듭하면 완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내 긴장이 풀린 몸에서 힘이 쫙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흐릿해지는 시야가 점점 앞으로 기울어지던 도중, 갑작스레 기울어지던 몸뚱이가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더니 전신으로 마나가 서서히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무래도 이도영이 내 몸을 받아든 모양이었다.

그 포근한 느낌을 천천히 흘려보내며, 점점 멀어지는 정신에 살포시 눈을 감았다. 아마 눈을 뜨면 또다시 병원이겠지.

어째 매번 입원하는 듯한 기분에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잠시, 이내 한계에 달한 의식이 뚝 하고 끊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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