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개과[??](1)
* * *
적막한 병실 속에서 시선이 오가기도 잠시, 이내 신예화가 발을 움직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병실 내부를 잠시 훑은 신예화가 침대 근처에 앉아 입을 열었다.
“흐음, 생각보다 많이 다쳤나 보네?”
“어, 그런데?”
성의 없이 대충 안부를 묻는 태도. 그에 차가운 목소리로 반문을 던졌다. 그런 내 태도를 본 신예화가 살짝 눈을 꿈틀하더니 말을 이었다.
“너무 날 세우진 말지 그래. 나도 딱히 네가 좋아서 온 건 아니거든.”
“그럼 가던가. 아픈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병문안을 온 사람과 받는 환자의 대화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살벌한 대화.짜증 섞인 내 시선과 신예화의 차갑게 식은 시선이 마주하고, 이내 병실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졌다는 듯 눈을 찡그린 신예화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팔짱을 꼈다.
“뭐, 딱히 나랑 얘기할 생각은 없는 것 같네. 나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한 신예화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어진 신예화의 말을 듣고 눈가를 좁혔다.
“혹시 알고 있나 해서 왔는데, 역시 모르는 모양이기도 하고.”
“모른다고?”
“박휘성 말이야.”
맥락 없이 그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저 이름이 나온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신예화랑 내 접점이라고 할 만한 건 박휘성밖에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 이야기가 나올 필요는 없었다.
뭐, 박휘성이 따로 뭐라고 언질이라도 준 건가?
그런 내 반응을 관찰하기도 잠시, 이내 어깨를 으쓱한 신예화가 말을 이었다.
“휘성이 자퇴한다는데, 너는 아직 못 들었나 봐?”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이 밀려왔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나를 바라본 신예화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진짜 아무 말도 안 한 모양이네? 나, 참.”
“…걔가 자퇴한다고? 왜?”
“그냥 사정이 있다고만 하던데. 왜 관두는지는 난 몰라.”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머리를 굴리자, 이내 몇 가지 생각나는 사실이 있긴 했으니까.
테러 이후 갑작스러운 자퇴 선언. 그리고 다른 이, 관련되지 않은 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사정. 머릿속에 순식간에 몇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가 반박되기 시작했다.
‘역시 마인 계약 때문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마인화는 결국 풀렸잖아?’
마인 계약은 이미 파기된 데다가, 마인화의 증거인 붉은 눈도 마기가 새로운 힘으로 재탄생하면서 금안으로 바뀌었기에 그 이유일 리는 없었다.
물론 그 새로운 힘의 속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오해를 살 수도 있긴 하지만. 대형 길드라는 뒷배에 대마법사의 말까지 더한다면 감히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다른 증거가 있기 때문일 텐데.
‘영상은…아니, 그것도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
영상 정도야 마인화가 풀린 시점에 김시우가 이미 모조리 처리했을 테니까. 마인화 자체로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기엔, 딱히 잡을 만한 건덕지가 남아있을 리도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이해가 안 가는데.’
도저히 박휘성이 자퇴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신예화가 입을 열었다.
“하, 아무래도 너는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네?”
어째 비꼬는 어조에 생각을 마치고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
기분이 나쁜 듯 나를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 그에 마주 짜증이 솟아 입을 열려던 순간, 신예화가 먼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야, 그거 알아?”
“뭐.”
갑작스러운 질문. 그에 차갑게 대답한 내 태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신예화가 말을 이었다.
“난 박휘성이 싫어.”
“…?”
그래서 어쩌라고. 동문서답조차 뛰어넘은 헛소리에 짜증조차 잊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신예화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이미 한 번 차여놓고서 계속 달라붙으려는 꼴도 보기 싫고, 제 주변엔 쥐뿔도 신경 안 쓰면서 쓸데없이 다른 곳에만 눈 돌리는 것도 짜증 나.”
“….”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굴면서, 정작 입도 뻥끗 못 하는 태도도 멍청해 보이고, 그러면서 뒤에서 혼자 뿌듯해하는 꼴은 볼 때마다 호구 같아서 답답해 죽겠단 말이야.”
끊길 줄 모르고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닫고 신예화를 바라보았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불만 속, 그 안에 숨은 감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아니, 숨길 생각도 없었을지 모른다.
박휘성에 대한 애정과 나를 향한 질투를 형형히 드러낸 신예화가 나를 노려보았다.
“괜히 다른 사람까지 짜증이 나게 하는 타입이거든, 걔. 아무튼 난 걔 같은 타입은 딱 질색이란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지금 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딱 하나 더 있거든?”
찌를 듯 쏘아지는 시선을 마주하며 얼굴을 굳혔다. 이다음 무슨 말이 이어질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그리고 그 예상을 긍정하듯, 신예화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난 너 같은 타입이 제일 싫어. 모르는 척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제대로 말을 하던가.”
마인 습격 이후, 잠시 생각했던 일. 그것을 날카롭게 찌르는 지적에 순간 입을 닫았다. 그런 나를 본 신예화가 내 말문이 막혔다고 생각한 듯, 비난의 강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르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 감정을 무시하는 거, 그거 진짜 이기적인 행동이거든. 설마 내가 직접 상처는 주기 싫다. 뭐, 이런 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두 눈에서 선명하게 일렁거리는 질투를 여실히 드러낸 채, 신예화가 비꼬듯 입을 열었다.
“뭐, 자퇴 소식을 왜 말하지 않았는지는 알겠네. 또 너랑 엮인 일이겠지.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거 보면 참 짠해, 그치?”
가시가 가득한 신예화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 솔직히 부정하기엔 올바른 지적이긴 했다. 박휘성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런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테니까.
확실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내 행동에 대한 합당한 비판을 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야.”
다시 입을 열려는 신예화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맞는 말이긴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저쪽의 개인적인 감정까지 내가 받아줄 필요는 없거든.
“내가 박휘성에게 어쨌건 간에, 그건 네 알 바 아니지. 안 그래?”
“…뭐?”
“내가 박휘성한테 잘못한 건 맞는데, 그건 내가 걔한테 사과하건, 아니면 걔가 나한테 말하건 할 일이거든? 생판 남인 네가 나한테 지랄할 게 아니라.”
내 말을 듣자마자 부릅뜬 눈에서 흘러넘치기 시작한 감정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생판 남이라는 단어가 신경을 자극한 듯, 신예화의 두 눈에서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그딴 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뭐, 말을 들으니까 네가 걔를 좋아해서 나한테 화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네가 까이는 것까지 내 잘못은 아니잖아? 내가 잘못한 건 박휘성 하나뿐이지, 너는 딱히 아니라서.”
“…이, 이….”
“꺼져, 그냥. 박휘성한테는 내가 알아서 사과하건 말건 할 테니까. 네 감정까지 나한테 쏟아내는 걸 받아주기엔, 내가 지금 좀 많이 피곤하거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신예화를 바라보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신예화가 씩씩대며 입을 열었다.
“…하, 별. 뭐 이런 게….”
분기에 차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신예화가 이내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잠시 후, 짜증 섞인 손길로 짐을 챙긴 신예화가 마지막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너, 진짜 짜증 나. 알아?”
“알았으니까, 그만 꺼지라고.”
마지막까지 살벌한 대화를 끝으로, 신예화가 분노 가득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닫힌 문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한 대상이 대상이라서 괜히 싸우기는 했지만, 그 말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다.
여태 박휘성이 보인 태도에 비해, 내 행동이 돼먹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마인화를 걱정해서 그랬다는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그 핑계를 대려면, 최소한 지금처럼 회피로 일관하는 태도는 보여서는 안 됐으니까.
마인화 때문라고 말하려면, 적극적으로 교화를 시도하건, 아니면 아예 삭초제근을 하건,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풀에 지치길 기대하며, 어떻게든 될 거라고 낙관하며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척 흘려넘겼으니까.
‘멍청한 새끼, 그깟 원작이 뭐라고.’
결국 내가 우유부단하게 행동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원작. 항상 원작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알고 있던 미래의 흐름이 뒤틀리는 게 두려웠으니까.
박휘성을 건드렸다가 미래가 바뀌는 게 두려웠다. 갱생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뭘 어떻게 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원작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도 아닌 애매한 행동.
이미 사건의 흐름이 원작에서 한참 뒤틀리기 시작했음을 알면서도, 머릿속 얼기설기 남은, 별 가치 없는 미래의 파편조차 잃기 싫어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고 그 증거를 무시했다.
결국 방금 신예화가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상처를 주기 싫다, 그런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내 행동이 내 자신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건 동일했기에.
“…젠장.”
여태껏 모른 척했던 내 행동의 모순. 그를 자각한 순간 밀려온 자괴감에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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