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개과[??](2)
* * *
신예화와 싸우고 난 뒤 며칠, 나는 계속 고민에 잠겨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김유진에게도 티가 났던 모양이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나를 달래겠다며 이리저리 방방 뛰었으니까.
뭐, 거기까진 고맙다고 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주는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 방법의 내용이겠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김유진은 내 기분을 달래겠답시고 이도영을 데려왔으니까.
‘대체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거랑 얘를 데려오는 거랑 뭔 상관인 거래?’
아니, 뭐. 와서 나쁠 건 없긴 한데. 행동에 연관성이 없잖아, 연관성이.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들어 눈앞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이도영의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묘하게 느껴진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음…?”
어째서인지 조금 날카로워진 인상. 미묘하게 변한 기세에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예상이 떠올랐다. 그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요즘 바뀐 거라도 있어?”
“아, 응. 검술을 좀 배우기 시작했거든. 어떻게 알았어?”
“그냥. 어째 기세가 좀 달라져서 물어봤지.”
그 말을 내뱉고 다시 이도영을 전체적으로 훑어보자, 확실히 꽤 달라진 모습이 눈에 잡혔다.
봉인이 풀린 이후, 성장이 가속화된 덕인지 몸에 근육도 꽤 붙어 있었고. 키도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둘 다 일어서면 내가 올려다봐야 할 수준까지 큰 채였다.
그리고 운동 자체야 중간 실기 시험 이후 늘렸다는 것 같지만, 본격적으로 검술까지 수련하게 되자 서서히 기세가 변하기 시작한 듯, 날카로운 기세가 몸에서 드문드문 엿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흐응….”
생각보다 단련된 신체에 작게 감탄을 내뱉기도 잠시, 이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벌써 검술 수련을 시작했다고?’
원작에서는 한 2학기쯤 되어서야 시작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검술까지 익히기 시작하다니.
생각보다 빠른 진도에 색다른 감상이 들기도 잠시, 이내 가볍게 눈가를 좁혔다.
이런 사소한 곳에서부터 원작과 차이가 나는 것이, 더 이상 원작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나빠진 기분을 떨치려 머릿속에서 자그마한 장난을 떠올렸다.
“…?”
어째 장난기가 감도는 내 얼굴을 본 이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몰래 검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빈틈을 엿보기도 잠시, 이도영이 방심한 틈을 타, 이도영의 복부에 손가락을 콕 찔러넣었다.
“…어, 어?”
“오, 확실히 단단하네. 수련 열심히 했나 봐?”
손가락에서 느껴진 단단한 근육의 감각에 가볍게 감탄을 흘렸다. 말랑말랑하기는커녕 딱딱한 근육의 감촉만 느껴졌으니까.
이 상태가 힘을 주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하면, 그간 이도영이 얼마나 단련을 했는지 대충 체감할 수 있었다. 그 노력의 무게에 가볍게 칭찬의 말을 남긴 순간이었다.
“….”
어째 기묘하게 내려앉은 내부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당사자인 이도영은 그렇다 쳐도, 왜인지 김유진까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왜 그래?”
장난 좀 쳤다고 보이는 반응이라기엔 과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내 질문을 듣자마자, 이내 아직도 붉은 물이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김유진이 나를 타박했다.
“그, 시아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 친구끼리 장난 좀 칠 수도 있지.”
어째 과한 힐난에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어 반박하기도 잠시, 이내 작게 혀를 차고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무래도 말싸움으로 가면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뭐, 그래. 미안해. 내가 실수했네.”
“아, 아니. 나는 괜찮아. 시아야….”
“그래? 그럼 됐고.”
이도영에게 용서를 받아내자마자 어떠냐는 듯 김유진을 바라보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한참 입술을 달싹이던 김유진이 이내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깔린 침묵에 볼을 긁적이기도 잠시, 이내 화제를 돌리려는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시아야, 고민이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음….”
갑작스러운 질문에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설마 이쪽으로 질문이 들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그리고 곤란한 내 표정을 본 김유진이 이내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추궁에 가세했다.
“맞아, 어제부터 계속 표정이 안 좋았잖아.”
두 명이 합세해서 질문을 던지자, 침묵이 돌던 병실이 다시 왁자지껄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게 그렇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 추궁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그렇게까지 숨길만 한 내용도 아니기도 하고, 애초에 이도영 또한 연관된 고민이었으니까.
‘결국 얘한테도 말해야 하니까.’
애초에 내가 이도영에게 처음 접근한 이유부터가 원작 때문이었으니, 기만의 수준으로 따지면 박휘성 이상으로 높은 것이 이도영이었다.
물론 지금은 원작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도영을 친구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얘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으므로.
뭐, 지금 밝히려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 이도영에게 말하기엔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건 이도영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그 사실을 고백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돈하며 어디까지 밝힐지 결정한 뒤, 입을 열었다.
*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애초에 원작을 포함해도 이야기의 길이가 그리 긴 편은 아니었지만, 거기서 원작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니 더더욱 짧아졌으므로.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박휘성의 근황이었다.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휘성이가 자퇴한다고?”
“어, 몰랐어?”
“응…. 아버지는 그런 얘기 안 하셨는데….”
아무래도 김시우에게 별 얘기를 듣지 못한 듯, 김유진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도영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무덤덤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이도영을 보며 김유진이 질문을 던졌다.
“도영이 너는 알고 있었어?”
“응, 김시우 님의 연구에 참여할 때 걔한테 들었어.”
김유진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더니, 김시우의 연구에도 어울렸던 모양이었다.
뭐, 김시우 같은 대마법사가 이도영이라는 훌륭한 샘플을 가만히 놔둘 리는 없긴 했지만.
생각도 잠시, 이내 볼을 살짝 부풀린 김유진이 이도영에게 타박을 주었다.
“으으…. 그럼 알면서도 나한테만 안 알려준 거야?”
“나는 유진이 너도 이미 알고 있을 줄 알았거든. 그리고 걔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진 말아 달라고도 했고.”
쉽게 당하진 않겠다는 듯 바로 반박하는 이도영을 보며 김유진이 삐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깨달은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뜬 김유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그럼 시아는 그 얘기를 누구한테 들은 거야? 휘성이?”
“음….걔는 아닌데….”
근데 이게 나한테 불똥이 튀네. 전혀 예상치 못한 대화의 흐름에 작게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질문에 대답했다.
“며칠 전에 신예화가 찾아왔었거든.”
“신예화…?”
“중간시험 때, 나랑 잠시 싸웠던 애 있어. 박휘성이랑 같은 조였던 애.”
신예화가 누구였지?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유진에게 간략히 설명을 마쳤다.
뭐, 그때는 김유진이 꽤 멀리 있었을 테니, 신예화랑 내가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는 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내 설명을 들은 김유진이 다시 반문했다.
“아, 그러면 걔가 말해준 거야?”
“어.”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도중,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시아야,네가 걔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정확히 뭐야?”
“음….”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원작이라는 선입견에 휩싸여, 박휘성의 행동에 담긴 감정을 직시하지 않고 무시했다는 것. 그게 내가 지금 사과하려는 이유였으니까.
그 내용을 적절히 잘라 내서 대답하자, 이내 옆에 있던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냥 사과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사과 다음으로 해야 할 말은 고백에 대한 거절일 텐데. 어째 그건 좀 미안하잖아. 안 그래도 괜히 나를 구하겠다고 계약까지 감수한 놈인데.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우물우물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도영이 김유진에게 부탁을 건넸다.
“유진아, 잠시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
“응? 왜?”
“잠시 시아랑 할 얘기가 있어서.”
갑작스러운 이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단둘만이 남은 공간에서 이도영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아, 뭔가 괜히 어색한데.
급격히 어색해진 분위기에 괜히 긴장한 순간이었다. 이도영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휘성이가 한 고백 때문에 고민하는 거지?”
“음…. 어?”
그 질문에 멍하니 대답하기도 잠시, 이내 화들짝 놀라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놀라 휘둥그레 뜬 내 눈을 바라본 이도영이 대답하듯 말했다.
“휘성이한테 들었거든. 너한테 고백했다고.”
“아….”
걔는 왜 그런 걸 다 말하고 다니는 거래. 미묘한 기분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다시 한번 내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그 고백, 받아줄 생각이야?”
“…아니.”
그럴 생각이었다면 고민도 안 했겠지.
내가 여태 무시해왔던 감정을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그 감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저질렀던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건 맞았고,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있는 것도 맞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역시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동정으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건, 방향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기만에 불과한 일이기에. 그 감정에는 이미 거절이라는 대답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 전에 박휘성 자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을 뿐.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이도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면 역시…. 거절하려고?”
“응, 아마 그렇겠지.”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표정이 어째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무슨 감정일지 모를 얼굴. 그런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이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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