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개과[??](3)
* * *
이도영은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금 자신에게 장난을 칠 때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 그 태도의 대상이 박휘성이라는 것을 생각하자마자, 이도영은 묘하게 속이 불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다. 고백에 대한 대답을 굳이 질문한 것은. 머릿속으로는 그녀가 거절할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확답이 듣고 싶었으니까.
저열한 질투,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자마자 안도해버린 자신을 보며, 이도영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진심으로 타인의 마음이 거절당하기를 바라게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사실 그러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부 활동 당시, 박휘성의 고백을 엿들었을 때도 그는 똑같은 소망을 품었었으니까.
그 뒤에 이어졌던 유시아의 말, 자퇴를 예고하는 그 말이 충격적이었던 탓에 기억에서 지워졌을 뿐, 이도영 자신은 이미 한참 전부터 추한 감정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도영이 겪은 그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유시아가 관계되었다는 점이었다.
박휘성이 유시아에게 처음 고백했을 때부터, 실기 시험에서 적팀으로 마주했을 때, 박휘성이 유시아를 위해 희생할 때까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자괴감과 함께 질투가 끓어올랐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사실을 자각한 이도영은 처음으로 자신의 안에서 타오르는 감정에 경각심을 품을 수 있었다.
넘실거리는 무언가가 둑을 넘어 머릿속을 휩쓸고 있었다. 마치 폭풍처럼 쏟아지는 그 감정에 휩쓸리기도 잠시.
두 눈에, 유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에 금방이라도 스며들려는 제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른 이도영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미쳤어.’
한번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를 더는 멈출 수 없듯, 한번 자각을 마친 감정은 기죽지 않고 난폭하게 기세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유시아가 지금 자신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그러한 원초적인 감정 따위가 아닐 테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위에 짐을 얹고 싶지는 않았다.
용틀임하듯 솟아나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른 이도영이 이내 얼마 전 박휘성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 김시우의 검사에 잠시 참여했을 때 있었던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때, 박휘성은 자신에게 유시아에 대한 고백을 밝혔었다. 부 활동 첫날의 고백이 아니라, 습격 당시의 이야기.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얼굴을 굳힌 자신을 보며 피식 웃은 박휘성이 한 마디를 덧붙였었다.
‘뭐, 어차피 차일 것 같긴 한데.’
자신이 거절당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 그 태도에 의구심을 느낀 이도영이 질문을 던졌었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 왜 고백했냐는 질문이었다.
‘아, 차일 걸 알면서도 왜 고백했냐고?’
‘그땐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거든. 그래서 그냥 말이라도 해보자 싶었던 거였지.’
‘뭐, 그래도 후회는 안 해. 그냥 그때는 알아줬으면 했을 뿐이니까. 그래도 부담스러웠을 테니, 미안하긴 하지만.’
박휘성과 나눴던 대화는 꽤 길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말들은 이것이었다.자신의 감정을 유시아가 알아줬으면 한다는 말.
그리고 그 말대로 유시아는 지금 박휘성을 꽤 신경쓰고 있었다.물론 그 방향성은 그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생각도 잠시, 이내 어느 정도 감정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박휘성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들은 유시아가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그런가.”
그렇게 고민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시아야.”
“응?”
의문 섞인 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왜 그러냐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이도영의 심장이 다시 한번 뛰었다.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방금 전 유시아의 손가락이 닿았던 부분에서 아직도 화끈거리는 착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봉인 때문인가.’
어쩌면 유시아가 입원한 동안, 제대로 권능의 안정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잠깐의 신체 접촉으로 인한 안정화도 크게 다가왔을지도.
아니, 사실 그따위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 이유일 리가 없었다.
어째서 이 정도로 박휘성의 고백에 동요하게 됐는지, 이도영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백을 거절하고 나면…. 휘성이랑은 어떻게 할 거야?”
단순히 박휘성이 유시아에게 고백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불안한 것은, 박휘성의 상황이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부담을 주기 싫다는 마음 반, 그리고 두려움 반으로 구성된. 장벽으로 막아 둔 감정이 언젠가 터지는 날, 유시아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기에.
그래서 이도영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두려웠다. 어쩌면 자신이 곧 맞이할 미래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고백은 확인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에겐 이대로 현상 유지를 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는 행동이었으니까.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수천 년이 지나도 유시아가 자신을 이성으로 볼 리가 없었으니. 선수를 뺏기는 건 두 번도 충분히 과했다.
그리고 이내, 유시아의 답변을 들은 이도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글쎄…. 딱히 별 차이는 없지 않을까? 걔가 날 대하는 건 역시 좀 달라지겠지만.”
“…그래?”
거절당한다고 해도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말.
비겁하게도 이도영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도와 동시에, 고삐가 풀린 감정이 다시 한번 날뛰기 시작했다.
한 걸음. 여태 걷지 못했던 그 한 걸음. 다른 이는 이미 두 보 앞서 있는 그 걸음을 걸을 용기가 채워졌다. 하지만.
‘오늘은 아냐.’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아까 말했듯이, 지금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것은 그저 감정의 배설에 불과할 뿐. 제대로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유보. 조금 더 알맞은 상황을 기다리려는 판단이었으니.
그리고 그 상황은, 의외로 바로 그에게 주어졌다.
“뭐,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적당한 감사 인사를 내뱉기도 잠시, 이내 다시 표정에 작게 긴장을 품은 유시아가 이도영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너, 혹시 나중에, 퇴원하고 나서 시간 있어?”
“시간? 왜?”
“그냥,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한 이도영이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방금 박휘성을 향했던 태도와 비교해도 비슷할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 순간 걸맞지 않은 기대를 할 정도로 무거운 시선이었으니.
그리고 곧 유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이야기였다.
“…예전에. 내가 너를 믿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랑 관련된 얘기야.”
***
면회가 끝나고, 다시 모두가 자리를 비운 병실. 그 안에서 침대에 누운 나는 방금 전의 대화를 되새기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결국 해버렸네.”
뭐, 계속 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원작이라는 것에 더는 휩쓸리지 않으려면, 먼저 원작 때문에 접근했던 이도영에게 사과를 구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도영의 성격상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을 테지만,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했단 사실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낄 만한 일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권능 탓에 계속 얼굴을 맞대야 할 텐데, 그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사이가 틀어져 버리면 곤란했다.
아니, 사실 권능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었다. 정령 계약, 권능, 그런 게 아니더라도, 친구랑 사이가 나빠지는 게 유쾌하게 다가올 수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차라리 더 숨길 걸 그랬나.’
하지만 결국 내 행동은 기만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니, 관계가 더 쌓이면 쌓일수록 사실을 밝혔을 때 배신감은 커질 터.그런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지금 터뜨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바로 밝히기엔 상황이 상황인지라 또 나중으로 미뤄버렸지만, 아직 박휘성 관련 일도 해결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허용 범위겠지.
뭐, 이렇게 변명하고는 있지만, 사실 멍청한 짓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다른 빙의물에서 괜히 빙의 사실을 안 밝히는 게 아니니까. 끝까지 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게 맞았다. 나는 홧김에 털어버리게 되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내 성격상 끝까지 숨길 수 있었을 리는 없으니까. 어차피 들킬 거 미리 밝혀버린 거라고 생각하자. 그렇지 않으면 답답함에 목구멍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열심히 답답한 감정을 털어버리고, 이내 진정을 마친 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박휘성]
이도영에게 앞서서 내가 사과를 건네야 할 대상의 연락처. 면회가 끝나기 전, 김유진에게 부탁해서 받은 연락처가 휴대폰 화면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얘는 여태 번호도 모르고 있었구나.’
괜히 또 찝찝해진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여태 내가 좀 너무하긴 했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받아줄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진짜 무리라서….’
차라리 원작대로 이설화한테 반하는 게 오히려 더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아니, 굳이 의문문을 쓸 것도 없었던. 적어도 이설화는 완연한 여성이었으니까.
아, 뭐. 나도 지금 몸뚱이는 여자인 건 맞지만. 그래도 역시 차이가 좀 있으니까….
또다시 잡념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흔들어 대충 생각을 흘려버렸다. 이런 잡생각을 할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가만히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박휘성에게 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
[한번 좀 보자. 할 말이 있어.]
그리고 얼마 후 답신이 도착했다.
미안하게도 긍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