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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 개과[??](4) (115/167)

〈 115화 〉 개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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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성의 얼굴을 마주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낸 다음 날, 저녁이 되자마자 박휘성이 병실에 찾아왔으니까.

어제 메시지를 보낸 시각이 늦은 점심이었음을 고려하면, 메시지를 받자마자 스케쥴을 짠 모양이었다. 그에 부담에 젖기도 잠시, 이내 병실에 들어선 박휘성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시아야.”

고개를 작게 끄덕여 답하자 이내 박휘성이 나를 바라보았다. 금색으로 물든 눈이 걱정을 담고 나를 향했다.

마인의 증거인 핏빛은 전혀 비치지 않는 선명한 색. 그 금안을 잠시 응시하던 도중, 박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이 나은 모양이네. 다행이야.”

그 순간 목소리에서 짙게 드러난 감정에 입을 꾹 닫았다.말뿐만 아니라 표정, 눈빛, 그 모든 것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걱정이 쏟아지고 있었다.

시선을 피해 애써 그 무게에 짓눌리는 걸 막은 뒤, 본론을 입에 담았다.

“…얘기는 들었어. 자퇴한다며?”

“응, 알고 있었나 보네? 도영이…가 말해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며칠 대화를 나눴다고 이도영의 성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인지, 박휘성은 이도영을 의심하지는 않는 듯했다. 하기야 애초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면 말해주지도 않았겠지만.

그 생각도 잠시, 이내 신예화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굳이 싸웠다는 이야기나 다른 부언을 하지는 않았다. 딱히 말해봤자 좋은 일도 아니고, 어느 정도 들었던 말을 납득하긴 했기에.

“그렇구나. 예화가….”

하지만 박휘성은 이미 그날 있었던 일의 내용을 예상한 모양이었다. 말끝을 흐리는 반응, 그리고 이내 침음성을 흘린 박휘성이 내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내 탓에 괜히 안 좋은 말을 들었겠네.”

사과하려고 불렀으면서, 정작 사과를 받아버렸다. 그 우스운 상황에 말문이 막히기도 잠시, 박휘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탓 아니야. 애초에 별일이 있지도 않았고.”

“응, 그러면 다행이네.”

믿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내 말을 믿겠다는 듯 옅게 웃은 박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애써 피해낸 뒤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왜 자퇴하는 거야?”

“응?”

“굳이 자퇴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혹시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있어?”

그때 확인하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전혀 마기에 의한 이상 반응이 없는 걸 고려하면 마인화 자체는 완벽하게 풀린 게 맞다. 애초에 눈의 색부터 마인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마인화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무슨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인 계약을 파기해버리는 건 원작에서도 나온 적 없는 일이니, 어떠한 부작용이 있다는 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이니까.

‘아니면 계약 파기의 부담일지도….’

그 피해를 막기 위해 기절시키기는 했지만, 영혼에 연결된 계약을 파기하는 과정에서 역시 영혼에 무리가 가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러 가설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도중이었다. 박휘성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시아 네 덕분에 마인화는 확실하게 풀렸으니까. 몸에 무슨 부상이 남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럼 왜…?”

“부상은 없어도, 약간의 부작용은 남았거든.”

그렇게 말한 박휘성이 왼손을 활짝 펴 손바닥을 위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박휘성이 손바닥에 기운을 집중했다.

­우우웅

약간의 소음과 함께, 박휘성의 손바닥 위에 금빛을 머금은 흑색의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빛을 뭉그러뜨린 듯 새까만 마기의 색도, 정련된 금속처럼 먹빛의 광택을 발하는 교의 마인이 지닌 마기의 색도 아닌 새로운 색.

칠흑 같은 검은색 위에서 금색의 빛이 어스레하게 감도는 기묘한 색의 기운이 손바닥 위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확인했지만, 여전히 몸에서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마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원작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진짜 이레귤러. 마기, 이계의 힘, 그리고 권능이 삼위일체를 이룬 힘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런 내 반응에 쓰게 웃은 박휘성이 충격적인 말을 입에 담았다.

“대마법사께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이 힘은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하셨어. 정확히 말하면, 연공을 통해 힘의 총량을 늘릴 수는 없다고.”

“뭐?”

“그래서 사관학교를 자퇴한다고 한 거야. 어차피 계속 다닌다고 해도 더 성장할 수는 없으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눈을 부릅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영웅으로서 박휘성의 길은 완전히 막혀버린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 반응을 보고 당황한 박휘성이 황급히 설명을 이었다.

“아, 아예 성장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마나 연공으로 총량을 늘릴 수 없다고 한 거지, 다른 방법으로도 강해질 수 없는 건 아니거든.”

“…다른 방법이라고?”

“마인. 정확히는 마인을 처치한 다음 그 마기를 흡수하면 돼. 일반적인 마나는 이 힘이 흡수하지 못해도 마기는 완벽히 흡수할 수 있거든.”

그 말을 듣자, 정확히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도영이 지닌 권능의 특성, 마기를 흡수하여 봉인하는 힘과 이계의 힘이 가진 특성, 마기를 덮어씌워 지배하는 힘이 결합해 새로운 특성으로 화한 모양이었다. 그 구성요소 탓에 일반적인 마나로는 힘을 늘리는 게 불가능한 거고.

그리고 아마 그 구성요소들을 고려하면, 박휘성이 얻은 힘은 마인에게 어마어마한 독으로 작용할 터.

마인으로 대상을 한정한다면, 이도영의 힘보다 더한 극상성을 자랑할지도 모른다. 이도영의 힘은 그저 정화, 봉인에 그치지만 박휘성의 힘은 탐식. 상쇄를 넘어서 흡수까지 해버리니까.

그래. 장점만 본다면 기연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인에게 어마어마하게 효과적인 힘, 그리고 마인을 사냥할 때마다 강해진다는 특성은 꽤 매혹적인 힘인 데다가, 미래의 일을 고려하면 마인을 전문으로 척살하는 그 힘은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그 생각을 대변하듯 나를 안심시키려는 박휘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관학교를 나간다고 해서, 내가 영웅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진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장점만 봤을 때의 일, 단점까지 고려한다면 절대 기연이 아니었다.

마인을 사냥한다는 가정하에서는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말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마인을 사냥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즉, 다른 생도들이 사관학교에서 안전하게 교육을 받을 때 박휘성은 벌써 마인과 계속해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원작의 중심이 사관학교인 이상, 다른 생도들이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위험이 찾아오는 것과 위험을 자초해서 찾아간다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니까. 그리고 위험의 빈도도 마찬가지고.

그러한 문제는 전혀 입에 담지 않은 채, 괜찮다는 듯 새로운 힘의 장점만 나열한 박휘성이 나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내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려는 태도. 그 안에서 드러나는 짙은 감정에 차마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 시선을 내렸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안을 피한 채로, 박휘성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 탓이 아니야. 마인 계약을 맺기로 한 건 나였고, 그대로 마인이 돼야 했을 날 구해준 건 너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해야….”

“…아니, 내가 사과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애초에 마인 계약을 맺은 것부터가 나 때문이었으니, 그에 대해서도 사과와 감사를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내가 지금 사과하는 건, 사과하려고 계획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

“난…네가 마인이 될 걸 알고 있었어.”

“…무슨 말이야?”

처음으로 듣는 박휘성의 당황 섞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시선을 더욱 숙였다. 눈을 마주친 상태로는 차마 말하기 힘들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박휘성의 반응을 피한 채, 묵묵히 설명을 계속했다.

그에게 예정된 미래, 악마와의 계약을 알고 있었다는 것. 그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그 탓에 그의 감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했다는 것.

그 사실을 모두 밝히자, 이내 병실 내부에 침묵이 맴돌았다.

“….”

무거운 적막 속에서 여전히 시선을 내린 채 박휘성의 말을 기다렸다. 이를 듣고 박휘성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긍정적인 반응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한참 후,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시아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에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린 순간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박휘성의 말이 이어졌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박휘성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내가 마인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미안한 거야? 아니면 내 감정을 모르는 척 했다는 게 미안한 거야?”

“…둘 다.”

“그래, 그렇구나.”

대답을 들은 박휘성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적어도 전자는 사과할 필요 없어, 시아야.”

“…뭐?”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박휘성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마주한 금안에 여전히 머금어진, 아니 오히려 더 크기를 불린 채 나를 향하는 감정. 그 묵직한 무게에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눈꼬리를 휘어보인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시아야. 네가 날 구해줬는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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