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고백(1)
* * *
다음 날 점심이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회복 마법이 걸린 붕대와 깁스를 벗기자, 이내 흉터 하나 없이 깔끔히 나은 팔과 다리가 드러났다.
‘확실히 마법이 대단하긴 하네.’
그 심각했던 부상을 고작 일주일도 안 돼서 완치한 걸 보면, 확실히 마법이 대단하긴 했다.
현대였으면 몇 주를 넘어서 몇 달 단위로 회복해야 했을 텐데. 다 낫는다고 해도 후유증이 남거나 재활이 필요할 수도 있고.
물론 이 정도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회복 마법의 시전자가 대마법사라는 점도 꽤 크게 기여했지만.
과연 대마법사라는 이름값을 하겠다는 듯, 일반적인 회복 마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효과를 발휘했으니까.
‘뭐, 그래도 이렇게 빨리 나은 건 몸 자체의 재생력이 올라간 덕도 있고.’
시스템 각성으로 재생력이 더 올라간 게 아니었으면 회복까지 한참은 더 걸렸겠지.
제아무리 마법의 보조가 있어도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특히 마나 회로 쪽은 무조건 망가졌을 테고.
그때 과부하에 걸린 마나 회로를 어마어마하게 혹사한 탓에 회로가 아예 찢겨 나가기 직전까지 몰렸었으니, 자칫하면 마나 운용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을 수도 있었다.
물론 각성을 계산하고 행동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뭐, 어찌 됐건 최선의 결과가 나왔으므로 딱히 따질 일은 아니었다. 부상은 후유증 하나 없이 완치되었고, 박휘성의 마인화를 해제하는 것도 성공했으니.
생각도 잠시, 이내 박휘성을 떠올리자마자 답답해진 기분에 혀를 작게 찼다.
“…쯧.”
하루가 지났지만 역시 뒷맛을 완전히 없애기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기분이 불편한 걸 보면.
물론 받아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건 아니니까. 하필 사관학교를 관두는 일까지 겹치기도 했고.
‘그나저나 마인 사냥이라….’
원작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힘,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역할.
이미 원작을 머릿속에서 버리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에 못을 박는 것처럼 원작에서 완전히 벗어난 박휘성의 모습에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감상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역시 테러는 아직 이슈인 모양이네.”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테러와 관련된 뉴스가 주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흥미 섞인 시선으로 섬네일을 천천히 훑던 도중이었다. 이내 눈에 들어온 한 뉴스를 보자마자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테러 피해에 대한 뉴스였다.
뉴스에 따르면 사망자 수만 해도 수십, 부상을 입은 이들까지 포함한 사상자 수는 수백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사관학교의 생도 하나하나가 고급 인력이었으니, 가히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물론 테러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로 그친 것도 다행이었지만.
뭐, 그것도 마교 소속의 마인은 작정하고 살육을 저지르지 않은 덕이긴 했다. 실제로 나를 습격했던 마인의 경우, 한 명을 제외하면 다른 생도들의 목숨은 빼앗지 않았으니까.
마인 따위가 꼴에 무인이라고, 무슨 자부심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보다 의외인 것은 테러의 목표, 나와 이도영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또한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교 쪽은 실패한 테러의 목표를 밝혀서 괜히 불명예를 자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언론 쪽에서 목표를 밝히지 않았다는 건 좀 의외긴 하지만,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
일단 나와 이도영은 지금 대마법사가 비호하고 있는 데다가, 아마 박휘성 쪽에서도 움직였을 테니까.
대마법사와 대형 길드. 그 둘에게 동시에 보호받는 이들을 섣불리 건드릴 간 큰 언론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이들이 제 몸집을 충분히 불렸을 리가 없으니. 분수를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입을 틀어막는 것 정도야 쉬울 테고.
뭐, 그 외에도 2차 가해를 우려한 정부가 나섰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추측하긴 힘든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거기에 하나만 더하자면, 언론에게는 이미 다른 먹잇감이 있었다. 배신자라는, 여러모로 신나게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
그런 맛 좋은 먹이를 놔두고 굳이 독이 든 먹이에까지 이를 들이댈 만한 이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예상을 지지하듯이, 시선을 내리자마자 배신자와 관련된 뉴스가 눈에 띄었다.
[배신자, 이용완 검거에 실패. 국외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
“이건 좀 위험한데….”
또 한 가지 생겨난 변수를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용완, 사관학교 교관직에서 파면당하는 것까진 원작과 동일했지만, 그 이후 전개가 판이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원작에서는 그저 비리가 모조리 밝혀져 감옥에 갇히는 걸로 끝났는데, 지금은 투옥되긴커녕 외국으로 성공적으로 도주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봐야 송사리 빌런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건 박휘성도 마찬가지.
게다가 이용완이 마교와 결탁했을 때 손에 무엇을 쥐었을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차후에 꽤 큰 문제가 될 소양이 있었다.
그리고 고민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대책이 한 가지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뭐, 결국 답은 실력이라 이거네.”
이미 사건의 흐름은 원작에서 탈선한 지 오래니, 결국 답은 실력을 키우는 것밖에 없었다. 이 정도 변수는 쉽게 뭉갤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물론 A+ 수준의 궁술 따위로 뭘 할 수 있느냐라는 생각도 잠시 들긴 했지만.A+ 수준이 도움이 안 되는 건 파워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진 후반부 이야기고, 중반까지는 나름 활약할 만한 수준까진 되니까.
즉, 속되게 말하자면 내 최대치가 무의미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실력을 키워서 뽕을 뽑아야 했다.
‘그러면 역시 스킬 체화를 우선해야겠지.’
이번에 시스템 각성을 통해 마나통이 좀 더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전투 지속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마나는 마력 화살이나 강기(??) 등을 사용할 때도 소모되니 스킬 적용에 의한 마나 소모라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체화를 거듭할수록 최대 마나량도 늘어나므로 결과적으로 전투 지속력도 올라갈 테므로, 일석이조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서 전투 지속력을 고려한다면 웬만하면 정령술보다는 궁술을 우선시하는 게 좋겠지만….
‘거기까진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일단은 퇴원 수속부터 밟는 게 먼저였다. 수련이고 뭐고, 먼저 병원을 나가야 뭐라도 하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
그에 몸을 일으키기 전, 여전히 화면이 켜져 있는 휴대폰을 다시 조작해 김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라면 그냥 퇴원한 뒤 집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며칠 전 김유진이랑 나눈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걔네 집에서 몇 주 정도 지내기로 했으니까.’
안전 측면도 측면이지만 내 집에서는 딱히 수련을 할 방법이 없기도 했으니, 적절한 시기에 들어온 참 고마운 제안이었다.
뭐, 거기다 이도영도 있다고 하니까 수련 후 마나 회복하는 것도 수월할 테고.
그렇게 상념에 잠기기도 잠시, 이내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곧 출발하겠다는 말, 아마 퇴원 수속을 밟아두면 어느 정도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
*
퇴원을 마치고 얼마 후 도착한 김유진과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면, 나를 데리러 온 김유진이 호위 하나 안 붙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병원에서야 호위가 없었던 건 영웅 전문 병원은 원래 철통같은 경계를 자랑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이미 병원을 나왔음에도 김유진에게 호위 하나가 없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나와 이도영이 김유진의 집에서 지내는 이유가 테러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런데 너, 호위 하나 없이 나와도 괜찮아?”
“응? 아, 응! 괜찮아!”
그에 관해 질문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에게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어째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 반응을 확인한 김유진이 배시시 웃으며 손을 들어 자기 옷에 달린 브로치를 가리켰다.
“이거,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아티팩트거든.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있으면 자동으로 아버지한테 신호가 가게 되어 있어. 그거 말고도 호신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도 몇 개 있고.”
“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뭐, 괜한 의문이었다. 하기야 사관학교에 결계를 설치해 줄 정도로 딸을 그리 귀하게 생각하는 양반이 생각 없이 얘를 밖에 내돌릴 리는 없겠지만.
오히려 저걸 이제야 만들어 줬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기도 했다. 체험학습 당시 마인 사태를 고려하면 진작에 줬어도 줬어야 할 텐데.
‘아니면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 완성한 걸지도 모르겠네.’
어느 쪽이건 사실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다시 김유진이 잡담을 시작했다. 그에 적당히 어울려주며 김유진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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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엄청 크네.”
“그런가? 하긴 도영이도 그렇게 말하긴 하더라구.”
과연 대마법사의 본거지 아니랄까 봐, 김유진의 집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건물과 마당 외에도, 건물 근처에 다용도 부실과설비도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작게 감탄을 흘리며 김유진의 뒤를 따르던 도중이었다. 어째 아직도 보이지 않는 얼굴에 김유진에게 질문을 건넸다.
“근데 도영이는 지금 없는 모양이네?”
“아, 도영이는 오늘 아버지가 데려가셨거든. 마법 수련을 도와준다고 하시던데.”
대마법사의 1:1 마법 강습이라. 사실상 기연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 수련이라….’
오늘은 나를 데리러 오느라 안 갔겠지만, 그럼 평상시에는 얘도 같이 하는 건가? 괜히 따돌려지는 듯한 기분에 김유진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
“응, 도영이도 수련할 때마다 실력이 많이 느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
뭐, 직접 본 게 아니라 들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따돌림은 틀린 추측인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까짓 거 그리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생각도 잠시, 방실방실 웃으며 대답한 김유진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높이를 보면 당연하겠지만 저택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뒤, 층계를 오르는 김유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후, 주르르 위치한 문 중 하나를 연 김유진이 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시아, 네 방은 여기야.”
“…오, 되게 좋네.”
빈말이 아니라 진짜 좋았다. 사관학교의 기숙사보다 좋은 시설은 처음 봤으니까.
뭐, 아무리 기숙사가 좋다고 해도 결국 공공기관. 대마법사의 저택에 비하면 딸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만.
“좋다니 다행이야.”
칭찬 같지도 않은 칭찬이었지만 그것도 기쁘다는 듯, 김유진이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 반응에 피식 웃은 순간이었다. 이내 방을 나선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시아야. 난 먼저 내려가 있을게. 아, 옆방은 도영이 방이니까. 혹시 이따가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
“…어, 그래. 나도 곧 갈게.”
아니, 설마 방을 헷갈리겠냐고.
어째 쓸데없는 충고에 미묘한 감상을 품으며 주섬주섬 방 안에 가져온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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