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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화 〉 고백(3) (119/167)

〈 119화 〉 고백(3)

* * *

대충 짐을 정리한 뒤 내부를 한 번 둘러보았다.

단순히 방이라고는 했지만, 욕실까지 딸린 것이 사실상 호텔 객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생활공간이라고 보기엔 조금 다른 구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손님맞이용 방인가 보네.’

어째 규모가 꽤 대단하긴 한데, 집주인이 대마법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그리 과한 편도 아니었다. 이런 스케일의 대저택에 와본 건 처음이라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흥미도 잠시, 이내 생각을 접은 뒤 문밖으로 향했다. 남의 집이 어떻든 간에 사실 내 알 바는 아니었기도 하고, 짐도 다 풀었으니 방 안에서 딱히 할 것도 없었으니까.

복도로 나서자 이내 쭉 늘어진 문들이 눈에 띄었다. 대충 훑어보며 계단으로 향하기도 잠시, 이내 흘깃 옆방 문을 바라보았다. 이도영의 방이었다.

‘그나저나 방도 많은데 왜 하필 딱 붙여서 배정해준 거래?’

뭐, 대충 이해는 갔다. 방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으면 좀 보기 불편할 테니까. 영화를 예약할 때, 굳이 좌석을 떨어뜨리지 않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물론 조금 다른 비유이긴 했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짐은 다 정리한 거야?”

“어. 방이 넓어서 대충 놓아둬도 되니 편하더라.”

“헤헤, 그래?”

층계를 내려오자 나를 본 김유진이 질문을 건넸다. 이윽고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하기도 잠시, 이내 표정을 정돈한 김유진이 말을 이었다.

“아, 아버지한테 연락해 봤는데, 곧 오신다고 하시더라. 도영이도 같이 올 거래.”

“그래?”

생각보다 빨리 온다 싶긴 했지만, 슬슬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각이었으므로 그리 빠른 것도 아니었다. 사관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비해 조금 더 이른 수준 정도였으니.

그리고 얼마 후, 탁 트인 창문 너머에 한 줄기 빛이 솟구쳤다.

“…뭐야?”

그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본 내게 김유진이 대답했다. 김시우와 이도영이 공간이동한 이펙트라나, 뭐라나.

‘허, 참. 출퇴근을 공간이동으로 하네.’

어렸을 때 한 번쯤 꿈꿨던 로망. 그를 완벽히 실현하는 모습에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빛줄기가 그치고 모습을 드러낸 김시우와 이도영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김시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잘 있다 가게나.”

내 인사를 들은 김시우가 나와 마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야기를 마친 김시우가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아, 시아야, 도영아. 그럼 나도 이만 갈게. 이따 봐!”

“…어, 그래라.”

“응, 고마워. 유진아.”

바로 아버지를 따라가는 김유진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랑 이도영, 순식간에 단둘이만 남아버렸으니까.

뭐, 김유진이야 이미 이도영을 본 지 며칠은 됐을 테니, 딱히 할 얘기가 없긴 하겠지만.

생각도 잠시, 이내 이도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놀랍게도 요 며칠 못 본 사이에 또 진전이 있었는지, 몸에서 풍기는 기세가 한결 날카로워져 있었다.

‘역시 재능충은 재능충인가.’

가히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

원작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대마법사와의 1:1 교습과 엘릭서의 효험, 그리고 봉인 완전 해방이라는 요소의 조합이 매우 효과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효과가 없을 수가 없는 목록들이긴 했지만.

그렇게 가볍게 평가를 내리던 도중이었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도영이 이내 입을 열었다.

“오늘 퇴원했다며?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어, 이제 다 나았으니까. 자, 멀쩡하지.”

흉터 하나 없이 뽀얗게 새살이 올라온 팔을 이도영에게 내밀어 보였다. 그를 본 이도영이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 나아서 다행이야. 많이 걱정했어.”

“그, 그래. 고맙다.”

진지한 걱정이 담뿍 담긴 말에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째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그 기분을 떨쳐내려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수련은 잘 되어 가? 보기에는 꽤 강해진 것 같긴 한데.”

“응, 그래도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

향상심은 좋지만, 어째 좀 과한 태도였다. 이미 원작에 비해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너무 조급해하고 있었으니까.

눈가를 좁히며 이도영의 몸을 훑던 도중이었다. 이도영의 팔에 감긴 붕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다쳤어?”

“아, 응. 대련 중에 조금. 별 건 아냐.”

그렇게 대답한 이도영이 머쓱한 듯 팔을 뒤로 뺐다. 상처를 입은 게 부끄러운 듯한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해. 괜히 다치지 말고.”

“응, 고마워.”

뭐, 굳이 싫다는 데 호들갑을 떨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심각한 부상이면 이미 병원에 갔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김시우가 이미 조치를 취했을 테니까. 적당히 걱정 섞인 말을 건넨 뒤 화제를 마무리했다.

“….”

대화가 끝나고 이내 침묵이 맴돌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가만히 시선이 오가던 도중이었다. 머뭇거리던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시아야, 저번에 얘기했던 일은, 어떻게 됐어?”

“저번…? 아.”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뭘 말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박휘성의 일이겠지. 그거 말고는 딱히 이렇게 머뭇거릴 소재가 없었으니까.

“….”

박휘성을 떠올리자마자 다시 착잡해진 기분에 얼굴을 굳혔다. 여전히 씁쓸한 뒷맛은 여전히 남아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얼굴에 와닿는 걱정 어린 시선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뭐, 적당히 해결했어. 고백은 거절했고.”

“…힘들었겠네. 미안.”

“아니, 뭐. 별거 아니야.”

힘들었다, 라는 건 조금 과한 표현이었다. 약간 답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고민했느냐 하면 솔직히 동의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런 의미를 어찌어찌 알아들었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얘도 문제네.’

원작에 대해서도 말하기도 했고, 사과하기로 했지만, 역시 무슨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미룰수록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니 더 숨길 수는 없었지만.

급격히 무거워진 기분도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오늘 밤에 혹시 시간 있어?”

“시간?”

“어, 혹시 해야 하는 일이 있나 해서.”

“아니, 왜?”

무슨 일이냐고 내게 물어오는 이도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했던 얘기. 오늘 말하려고. 내가 너를 믿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던 시선에 다시 걱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반응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말이 이어졌다.

“…괜찮아?”

“응?”

“혹시라도 무리하는 거라면, 굳이 말해줄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이 담뿍 담긴 말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막상 사실을 듣고 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물론 순둥순둥한 놈이니 그렇게까지 심한 반응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건 그냥 내 희망 사항일 수도 있으니, 역시 약간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더 미룰 생각은 없었다. 생각을 마치고 이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오늘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하려는 거니까.”

내 대답을 들은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그러면 어디서…?”

이런. 그러고 보니 그건 생각 안 해뒀었네.

약속 장소를 정하자는 말. 그 말을 듣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나는 이 집의 구조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김유진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기 무섭게 이도영을 만났으니까. 애초에 집 안을 둘러볼 시간이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저녁 시간 동안 집을 둘러본 다음 정하자고 하는 건 또 조금 그랬다. 어차피 그러려면 다시 만나야 할 텐데, 굳이 할 일을 두 번 나눠서 할 이유는 없으니까.

‘애초에 만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굳이 약속 장소까지 잡을 필요가 있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애초에 나랑 이도영의 방이 딱 붙어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냥 문 열고 옆방으로 가면 바로 볼 수 있는데, 굳이 귀찮게 다른 곳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갑자기 든 생각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근데 말하고 나면 얼굴 보기 좀 껄끄러워질 텐데. 망했네.’

하필 방이 딱 붙어있어서 얼굴 볼 일도 잦을 텐데. 아무래도 제발 잘 풀리기를 기도해야 할 것 같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굳이 약속 장소는 안 정해도 될 것 같은데. 옆방이잖아.”

“…옆방이라고?”

“응, 유진이가 옆방이라고 하더라.”

어째 당황한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이도영은 내가 바로 옆방이라는 건 모르던 모양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조금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약간의 의문도 잠시, 이내 통보하듯 말을 이었다. 굳이 귀찮게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뭐, 그러니까 약속 장소는 딱히 정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이따가 밤에 네 방에 갈게.”

“그, 그래. 내 방…. 뭐?”

잘못 들었다는 듯 황급히 되묻는 이도영의 말. 당황 섞인 안색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네 방에서 만나도 되잖아.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는데.”

“아, 아니…. 그….”

“아니면 뭐,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도 있어?”

얘가 딱히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뭐, 프라이버시는 있는 법이니까. 그 순간,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없어! 없으니까!”

“아, 그…그래. 뭐, 그러면 상관없지?”

“…응.”

격한 부정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한 번 더 질문을 던지자 이내 한숨을 내쉰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따 밤에 노크할게. 문 열어 줘.”

“…알겠어.”

“응, 그럼 이따 봐.”

어째 급격히 지쳐 보이는 표정. 아무래도 대련의 피로가 이제야 밀려온 모양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빠르게 대화를 마쳤다.

뭐, 쟤는 밤까지 편히 쉬라고 내버려 두고, 나는 저택이나 구경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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