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 고백(4) (120/167)

〈 120화 〉 고백(4)

* * *

저택 탐방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애초에 길도 잘 모르는 데다, 아무 곳이나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대마법사의 사택이란 걸 고려하면 단순히 예의 문제를 떠나서 까딱하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마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뭘 잘못 건드렸다가 대형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웬만하면 별일은 없겠지만,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괜히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게 있는 건 아니므로.

차라리 이도영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먼저 며칠 살았으니 적당히 안내해달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쉬라고 해놓고 다시 불러서 안내해달라고 하는 건 멋쩍기도 하고.

‘…괜히 보냈나?’

작게 후회하기도 잠시, 이내 잡생각을 빠르게 흘려버렸다. 사실 딱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저 포도는 신 포도라는 거지. 어차피 걔도 딱히 아는 건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잠깐 돌아다니는 동안 관찰한 결과,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와 이도영이 묵는 곳은 통째로 손님용으로 나눠진 구역인 모양이었다.

굳이 대충 비유하자면, 한옥의 사랑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 뭐, 사랑채는 온전히 손님용은 아니니 조금 잘못된 비유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건 크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쪽의 구조 자체도 집보다는 차라리 호텔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니. 그리고 대마법사급 위인의 저택에 손님용 공간이 있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고.

여기서 그나마 조금 신기한 게 있다면, 손님용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김시우의 집에 아예 사용인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아까 전 김유진과 함께 건물로 향할 때만 해도 몇몇 일하는 이들이 보였고, 애초에 이 정도 크기의 집을 사용인 없이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무슨 이유라도 있나?’

뭐, 굳이 대접받고 싶지도 않고, 혹시라도 밤에도 돌아다니다 마주치면 좀 귀찮을 테니 없는 게 낫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1층에서 시간을 때우던 도중이었다. 이내 돌아온 김유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아야, 기다렸어?”

“딱히, 금방 왔네.”

무슨 용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삼십 분도 안 되어 돌아왔으니까. 그럴 거면 왜 간 건가 싶긴 하지만.

그리고 몇 마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이내 김유진이 돌아온 목적을 입에 담았다. 식사하러 가자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저녁 시간인가.’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자, 진짜 식사 시간에 가까워진 시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주위를 살피던 김유진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도영이는 어디 있어?”

“아, 어째 피곤해 보이길래 방에서 쉬라고 했지. 아마 방에 있을걸.”

“그래? 많이 피곤했나 보네.”

뭐, 눈동자도 막 떨리는 게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더라. 걔가 이상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긴 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했으니까.

그렇게 속으로 맞장구를 치던 도중이었다. 김유진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오늘은 꼼짝없이 둘이서 먹어야 하겠네.”

“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김시우면 몰라도, 이도영은 왜 빼놓은 거래?

그리고 그런 내 표정을 본 김유진이 설명을 이었다.

“아버지와 도영이는 내가 연락하기 전에 이미 둘이서 식사했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아무래도 우리 둘만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래?”

이건 예상 못 했네. 어쩐지 피곤해 보이더니, 식곤증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말고.

뭐,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친구 아버지와 겸상하는 건 좀 뻘쭘하기도 하고, 이도영도 밤에 약속까지 잡아 뒀는데 그 전에 또 마주치긴 조금 어색할 것 같았으니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럼.”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김유진의 뒤를 따랐다.

*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맛을 평가하자면, 백 점이었다.

여태 사관학교 급식 퀄리티도 엄청났지만, 오늘 맛본 식사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이었다.

뭐, 사관학교의 급식은 결국 급식이란 걸 감안하면 비교 자체가 무리였지만. 애초에 이건 비교가 된다는 걸 칭찬해줘야 하는 부분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맛있네. 사관학교보다 낫더라.”

“그래? 다행이네!”

적당히 감상을 남기자, 그를 들은 김유진이 이내 헤실헤실 웃었다. 그에 마주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입을 열었다. 식당에서 사용인을 본 순간부터 다시 피어났던 의문이었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눈을 동그랗게 뜬 김유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와 이도영이 묵는 곳에는 사용인이 원래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들은 김유진이 이내 답변을 건넸다.

“아니, 원래는 계셔. 지금은 너희가 있어서 다들 잠시 다른 구역에 배정해드렸지만.”

혹시라도 나와 이도영이 불편해할지 몰라 잠시 다른 곳으로 배정했다, 라.

뭐,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은 아니었다. 나랑 이도영은 성격상 딱히 그런 대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대우가 익숙하지도 않고.

그래도 청소는 어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방이 빈 시간대에 끝낸다고. 그렇게 말한 김유진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까 편하게 지내도 돼. 점심쯤 아니면 마주칠 일은 없을 테니까.”

특히 이른 아침이나 밤은 애초에 사용인들도 휴식 시간이니 더더욱 볼 일이 없을 거라고. 그렇게 말한 김유진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얘도 설명충 기질이 좀 비치는 것 같았다.

‘굳이 시간대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는데.’

어차피 오늘 빼면 딱히 밤에 방에서 나갈 일도 없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그리 신경 쓰지도 않을 텐데, 쓸데없이 자세한 정보였다.

‘뭐, 그래도 나름 신경 써준 거긴 하니까.’

물론 이 기질이 진화해서 백소월 급까지 닿는다면 끔찍하겠지만, 설마 얘까지 그렇게 되겠어?

잠시 떠오른 잡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방에 도착한 뒤 얼마 후.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시간, 저녁을 지나, 환한 달이 뜬 밤이 되었다.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방에서 나섰다.

복도는 여전히 환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뭐, 김유진이 밤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했다.

‘괜히 얘 방에 들어가는 걸 보이면 좀 그럴 테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 김유진이 이걸 고려하고 사용인들을 치운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다행이긴 다행이었다. 이도영의 방문 앞에서 한참 문고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들키는 건 역시 좀 쪽팔릴 것 같았으니까.

“…후.”

괜히 말한다고 했나.

또다시 답답해진 기분에 괜히 문고리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차피 이미 엎지른 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결단을 내리고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똑

“나야.”

“…응, 들어와도 돼.”

노크를 한 지 잠시 후, 방 안에서 이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나보다 긴장한 듯한 목소리에 때아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익숙한 감각이 밀려왔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마나 회복의 쾌감. 정확히는 호흡기를 통해 마나를 회복할 때의 그 청량감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각에 살짝 놀란 눈으로 이도영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그 감각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련하고 있었나 보네?”

아무래도 마나 연공 중이었던 듯, 기감을 통해 일렁거리는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직 한참 부족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입을 닫았다. 충분히 대단한 성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근처 의자에 앉았다.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수련으로 대화의 운을 떼긴 했지만, 그다음으로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이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 망설임이 대화의 물꼬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 속에서 한참 시선이 오가던 도중, 이도영의 입이 열렸다.

“지금 온 건, 역시 아까 그 얘기 때문이야?”

“…어, 맞아.”

“그래. 그렇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이도영이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순간 마주한 깊디깊은 눈빛에 살짝 당혹감이 밀려왔다. 이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전히 굳어 있는 내 손을 양손으로 살포시 감싸 쥔 이도영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아야. 아까도 말했지만, 힘들면 굳이 말해줄 필요 없어.”

걱정 어린 시선과 태도, 마주 잡은 손에서 와닿는 체온과 마나의 감각. 그를 느낀 순간,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완만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더해지듯이, 내 귓가에 이어지는 이도영의 말이 들려왔다.

“그 이유가 어찌 됐건, 결국 네가 나를 위해줬다는 건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 내가 힘들다면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내뱉은 이도영이 가만히 나를 보며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마주한 순간, 마지막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잡힌 손을 부드럽게 떼어낸 뒤 입을 열었다.

“신경 써준 건 고맙지만, 괜찮아. 그 정도로 어렵진 않으니까.”

“응.”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의 입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경청하겠다는 듯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믿긴 힘들겠지만, 본론부터 말할게.”

이도영에게 이 세상이 소설 속 세계였다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말인 탓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나라는 이레귤러가 생긴 순간부터, 원작에서 어긋나버린 순간부터, 이미 이 세계는 원작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더 이상 원작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으면서, 원작이라는 표현으로 이도영을 옭아매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잠시 말을 골라내기도 잠시, 속으로 몇 번 말을 삼킨 뒤, 골라낸 말을 입에 담았다.

“나는, 이 세상의 미래였던 걸 알고 있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