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고백(5)
* * *
“미래였던 것…?”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방금 그 말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미래가 아니라, 미래였던 걸 알고 있다는 말. 미묘한 어감의 차이였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캐치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의 입에서 그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미래였던 거라면, 지금은 미래가 아니라는 얘기야?”
“…믿는 거야? 진짜?”
미래를 알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말. 만약 그렇다고 가정하면 내 행동이 설명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믿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한 내게, 이도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믿어. 네 말이니까.”
“….”
그 말에 깃든 신뢰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만히 이도영과 눈을 마주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다시 한번 내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 했던 질문이었다.
“그보다 시아야, 미래였던 걸 알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줄 수 있어?”
“…말 그대로야. 예전엔 미래였지만, 이젠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니까.”
한때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무언가. 내 행동으로 인해 흐름이 바뀌었으니, 더 이상 미래일 수 없는 것. 내 머릿속에 있는 원작의 정의를 횡설수설 입에 담았다.
“그러니까 시아 너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미래를 바꿨다는 거고?”
“그래.”
난잡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를 용케도 이해한 이도영이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듯 내게 되물어왔다. 명확한 요약에 긍정을 표하자, 이내 이도영이 작게 독백을 내뱉었다.
“미래….”
곰곰이 생각에 잠긴 진지한 표정. 그러기도 잠시, 금세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내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까 나를 믿는 이유를 말해준다고 했지? 그리고 지금 미래를 알고 있다고 했고. 그러면 네가 나를 믿는 이유가, 그 미래에서 내가 한 행동 때문이야?”
“…응, 맞아.”
정확한 질문이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이도영이 내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넸다.
“시아야, 네가 아는 미래에 대해 말해줄 수 있어?”
*
그 질문에 대답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꽤 길어진 설명을 최대한 간추려 전했다.
이 세상은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멸망을 막기 위해선 이도영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도영이 나서도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내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실을 입에 담았다.
“그러면 나를 도와준 이유는….”
“…네가 미래의 희망이었으니까.”
원작에서의, 예정된 미래에서의 성장으로는 부족했기에 그 성장을 도울 필요가 있었다는 말. 그래서 성장을 돕기 위해, 그리고 마나 수급을 위해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 그 모든 사실을 들은 이도영이 독백을 내뱉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생각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내게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시아야,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응, 괜찮아.”
“이 사실, 그냥 숨겨도 되는데 왜 말해준 거야?”
“그건….”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 들킬 거, 미리 말해두자는 생각도 있었고.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죄책감을 이만 털어내고 싶기도 했으니까. 또, 더는 거리감을 가진 채로 이 세상을 대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박휘성이었다.
이미 원작에서 벗어나 버린 걸 알려줌과 동시에, 또 원작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원인이었으니까.
그 설명을 끝내자, 이내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이 작게 굳었다. 역시,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표정을 보며 작게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미안해.”
“응?”
갑작스러운 사과에 놀란 듯, 상념에서 빠져나온 이도영이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결국 나는, 너를 이용하려고 한 거니까.”
내가 이도영을 도운 이유는 선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무겁디무거운 짐, 세계를 구한다는 짐을 그에게 떠밀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작에 비해 더욱 빨리 성장했을 뿐 아니라, 원작보다는 확실히 덜 고생했을 테니.
하지만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해서, 내 의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국 내 행동에 이도영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한들, 나는 그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있었다.
“….”
그러한 사과의 말을 건네자, 이내 침묵이 방 안을 맴돌았다. 고요한 분위기 속,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시선을 내렸다. 이도영이 무슨 생각을 할지 예상하기 힘들어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한참 후, 침묵을 깨고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시아야.”
배신감이나 실망 같은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 그 말뜻을 이해한 순간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옅은 미소를 지은 이도영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감정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도영이 한 마디 예상치 못한 말을 더했다.
“나는 오히려 기쁘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돼.”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이도영의 순해 빠진 성격을 고려하면, 설령 배신감이나 실망을 느꼈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드러내지 않는 것일 뿐,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정반대되는 감정, 기쁨을 느낀다는 말은 상정한 적조차 없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이도영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는 이도영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생각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시아야. 이유와 상관없이, 네가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네가 나를 도와준 이유가, 나를 믿는 이유가 그렇다는 사실이 기쁘니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내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은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도왔던 것처럼, 나도 너를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러니까 시아야, 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쁘다는 말. 그 말을 내뱉은 이도영이 눈가를 접으며 웃음을 보였다. 그 표정이 어딘가 익숙했다.
자꾸만 밀려오는 기시감에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멍하니 방금 그 말을 중얼거렸다.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그래, 시아야.”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의 반응, 그 얼굴에서 비치는 감정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본능적으로 사고의 방향을 돌렸다. 그 감정을 직시한다면, 이 관계가 어떻게든 바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게 어느 쪽이건, 내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다음 건넬 말을 짜낸 순간,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게…왜 기쁜 건데?”
“그저 도움을 받기만 하는 건 불안했거든. 언제라도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거잖아. 그래서 기뻐. 단순히 도움을 받는 관계에서,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게.”
황망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깃든 감정을, 더는 무시할 수 없었다. 시선을 마주한 순간, 이도영의 눈에 깃든 열기가 무엇인지 깨닫고야 말았으니까.
얼마 전, 박휘성의 눈에서 쏘아지던 열기. 그와 동일한 감정이 이도영의 눈에서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숨기려는 기색 하나 없이 명확하게.
그 사실을 눈치챈 순간 밀려온 당혹감에 손을 꽉 쥐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 혼란에 한참 빠져 있던 도중이었다. 이도영이 내게 사과를 건넸다.
“오히려 오늘은 내가 사과해야 할 것 같네. 더 숨길 수가 없었거든. 미안.”
“…뭐?”
그 말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내게 다가왔다. 좁혀진 거리 탓에 더욱 강해진 청량감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보다 높아진 눈높이에서, 이도영이 내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밀려온 감정 탓에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아까 얼굴을 굳힌 건 너 때문이 아니었어. 그저 네 생각을 바꾼 게 휘성이라는 사실이 부러웠을 뿐이었으니까.”
“부러웠…다고?”
“응, 네가 바꾼 미래는, 그뿐만이 아니거든. 시아야, 네가 아는 미래에 너는 없었다고 했지?”
그렇게 말한 이도영이 내 손을 다시 감싸 쥐었다. 강해진 청량감에 이어 느껴지는 따스한 안정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그 안정감에도 불구하고 혼란해진 머릿속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머릿속에 이도영의 말만이 울려 퍼졌다.
“그러면 시아야, 너는 한참 전부터 미래를 바꾼 거야. 네가 아는 미래에는 내가 이 말을 하는 상황은 없었을 테니까.”
마주하는 시선에서 쏟아지는 감정. 그 짙은 농도의 감정에 말을 잃었다. 이미 박휘성을 통해 한번 겪었던 감정이었지만,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당혹스러운 건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한계를 넘어버린 탓에 멍하게 그를 올려다보는 내 얼굴을 마주한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좋아해, 시아야. 진심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