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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화 〉 고민(3) (129/167)

〈 129화 〉 고민(3)

* * *

점심. 김시우가 다른 연구에 집중하는 동안 이도영은 홀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성 각성 이후, 한 번 빨라진 성장세는 날이 갈수록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이전에 지녔던 서클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발달한 서클.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탄탄해진 몸. 한 학기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겪은 일이라고 하기엔 꽤 큰 변화였다.

그 변화의 원인은 간단했다.

‘너는 대마법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김시우의 말을 빌리자면, 대마법사의 재능. 그가 지닌 특성의 효과 중 하나에 대한 표현이었다. 물론 다른 대마법사들에게 이도영과 비슷한 권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특성에 의해 얻게 된 마나의 성질. 어떠한 속성의 마법이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불합리할 정도의 성질이었으니까.

다른 마법사들의 경우, 본인의 속성을 통달한 뒤 다른 속성의 마법을 차근차근 익히는 방식으로 마법을 익혀 나간다.

완벽하게 자신이 타고난 속성을 지배하기 전까지는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때 어느 정도 부담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도영은 그러한 장애를 겪을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속성에 먼저 통달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이들이 지닌 속성 하나에 집중한다면, 그는 모든 속성을 재능으로 가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대마법사의 재능이라는 건 그 사실을 요약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닌 특성의 힘은 거기서 그치지도 않았다. 마법과 무술의 공존. 그 두 종류 힘의 시너지가 가지고 오는 상승효과는 예상보다 더 대단했기에.

이미 마법과 검술 실력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 두 힘을 합쳤을 때의 무력은 더욱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가히 일취월장이라 칭할 만한 압도적인 성장. 그리고 그 모든 건, 사관학교 입학 당시에만 해도 꿈조차 꾸지 못한 일이었다.

이론을 제외하면 낙제점조차 되지 못할 실력을 지니고 있던 그때의 자신에게 이 사실을 밝힌다면, 아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어넘겼을 것이다.

아니, 굳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겠지. 미래를 알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두근두근

그 대상을 떠올리자마자 또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 빨라진 맥박을 자각한 이도영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얼굴을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건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고백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참작할 여지는 있다. 적어도 이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를 마친 후, 이도영은 수련을 재개했다.

그리고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랜 이도영이 수련에 열중하던 도중이었다. 김시우의 목소리가 이도영의 귓가에 꽂혔다.

“벌써 새로운 마법에 익숙해진 모양이군. 시전이 많이 빨라진 걸 보면.”

옅은 감탄이 섞인 목소리. 그에 이도영이 고개를 돌리자 평소처럼 무표정한 김시우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담겼다. 적당히 겸양의 말을 내뱉은 이도영을 본 김시우가 질문을 던졌다.

“슬슬 수련도 끝나가는 것 같은데. 잠시 연구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

“예, 괜찮습니다.”

슬슬 서클도 피로로 뻑뻑하던 참이었고, 남은 스케쥴은 단순 신체 단련이었기에 어느 정도 훈련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이 이내 김시우의 뒤를 따랐다.

*

연구가 끝나고, 이내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물론 김시우나 이도영의 경우 딱히 호화스러운 식사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김시우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그리 식도락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고, 이도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맛있는 식사가 주는 포만감도 좋지만, 수련이나 연구를 통한 발전에서 오는 고양감을 이기진 못한다. 그런 공통의 사고방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으니까.

뭐, 멀리서 보면 둘 다 똑같은 인종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저녁 수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김시우가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메시지가 온 듯 휴대폰을 붙잡고 손가락을 놀리는 모습.

그러기도 잠시, 이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이도영을 본 김시우가 묵묵히 시선을 향했다.

저 소년이 저런 반응을 보일 상대를 특정하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던 이가 있었으니까.

딸아이의 친구라는 검은 머리의 소녀를 떠올린 김시우가 가만히 이도영을 응시했다.

휴대폰으로 상대와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던 이도영은, 이내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시선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시우가 입을 열었다.

“그 소녀인가?”

“…시아 말씀이시라면, 맞습니다.”

당혹감을 지워낸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김시우가 잠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본래라면 그 둘이 어떤 사이이건 전혀 관심 없었겠지만, 딸아이의 친구들이라는 지위가 그에게 호기심을 부여하고 있었다.

“무슨 사이지?”

“예?”

“단순히 친구라고 하기엔 꽤 가까워 보이던데.”

“아….”

질문을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흘린 이도영이 이내 고민에 빠졌다. 말을 고르는 이도영을 묵묵히 김시우가 바라보았다. 조금 신경 쓰이는 화제이기도 했기에, 이참에 확답을 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의 입이 열렸다.

“…그냥 친구입니다. 아직은.”

“친구라….”

아직 친구라는 말. 그 말에 담긴 감정을 느낀 김시우가 흡족하다는 듯 그 말을 반복했다.

처음 딸아이가 친구라는 이유로 집에 데려왔을 땐 조금 거슬렸지만, 딸아이가 저 소년만을 데려오려 한 것도 아니고, 여태 딸아이에게 별다른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어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조금의 불안은 어쩔 수 없어, 수련을 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딸아이에게서 떼어내어 놓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남아있던 조금의 불안이, 지금의 대답으로 해결되었다. 그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김시우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당장 오늘 아침 이도영과 유시아가 보인 행동을 보면, 친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친구보다는 연인에 가까운 행동거지였으니, 적어도 단순히 친구 사이에서 보일 감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이걸 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챈 김시우가 입을 열었다.

“흠, 고백이라도 한 모양이군.”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반응에 확신을 가진 김시우가 가만히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이내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절당하긴 했지만. 그렇습니다.”

“거절?”

이건 조금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거절이라고 보기엔 오늘 아침 보인 행동거지가 퍽 자연스러웠으니까. 그에 살짝 놀라기도 잠시, 이내 김시우가 대충 생각을 마쳤다.

‘거절이라, 이건 곤란하군.’

그의 딸아이에겐 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으니.

물론 자신의 딸아이를 닭 취급한다면, 생도이건 안면이 있건 상관없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살지 못할 테지만.

물론 지금 그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말을 내뱉은 이도영의 눈에 실의 따윈 보이지 않았으니까.

거절당했음에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거나, 최소한 거절 탓에 마음이 꺾이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마음에 들어.’

자고로 마법사란 정신력이 중요한 법. 거절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은 꽤 호감이 가는 요소였다.

물론 그런 점보다는 김유진에게 눈을 돌릴 리 없다는 사실에서 온 포인트가 한참은 더 컸지만, 유감스럽게도 김시우는 그를 자각하진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내 생각을 마친 김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와주지.”

“예?”

“거절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여태 본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이 소년이 딸아이에게 눈을 돌리거나 할 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혹시나 하는 불안 요소를 없애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김시우는 그렇게 판단했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도와주도록 하마.”

“아, 예….”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몇 마디 대화를 빙자한 조언을 듣고 난 뒤 수련을 시작한 이도영을 본 김시우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아주 팔불출이 따로 없군.’

그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아주 화색을 띠던 이도영의 얼굴. 아무리 그라고 해도 조금 표정이 변할 정도로 깊은 애정이었다.

물론 김시우에게 그는 매우 기꺼운 사실이었다. 그 애정이 깊을수록, 자신의 딸아이에게 날파리가 꼬일 확률은 낮아질 테니까. 흐뭇한 미소를 지은 김시우가 이도영을 흡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뭐, 이번에도 멀리서 보면 둘 다 똑같은 인종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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