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고민(4)
* * *
수련을 끝낸 뒤, 이도영은 저택으로 귀환했다. 마나 회복이라는 이유로 다시 얼굴을 맞댈 기회에 바삐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재촉해 금세 2층으로 오른 이도영이 이내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유시아의 방이었다.
노크와 함께 유시아를 부르자, 이내 금방 나오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린 순간 이도영은 본의 아니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유시아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
딱히 보기 불편한 옷은 아니었다. 노출도가 높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반소매 셔츠에 파자마 바지. 팔다리가 반쯤 드러나는 걸 제외하면 건전한 복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도영이 침묵한 이유는, 그 복장을 한 번 본 적이 있던 탓이었다.
그 복장은 한참 전, 유시아가 이도영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을 때, 이도영이 엘릭서를 섭취했던 날에 유시아가 입고 있던 복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기억에 꽤 선명히 남아있는 그 복장을 목도한 순간, 이도영의 머릿속엔 본의 아니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다음 날의 기억, 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의 기억이.
‘…미친놈.’
속으로 자신에게 매도의 말을 내뱉은 이도영이 급히 혼란해진 머릿속을 진정시켰다. 머릿속에 다시 범람하려던 기억을 억지로 찍어 눌렀다.
곧 마나 회복을 할 텐데, 이런 정신으로 마나 회복을 할 수는 없었다. 양심의 문제도 문제지만, 감정이 일부 공유되는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자신의 감정도 유시아에게 전해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는 확신 또한 없었다. 그리고 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순간 붉어지려던 얼굴을 필사적으로 정돈한 이도영이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유시아는 이상한 기색을 느끼진 못한 것 같았다.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조금씩 피하는 걸 보면, 아마 이도영의 얼굴을 관찰할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에 조금 아쉬움을 느끼기도 잠시,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 이도영이 입을 열려던 찰나, 유시아가 말을 던졌다.
“…가자.”
꽤 날카로운 목소리였지만,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자기가 뱉은 말에 자기가 놀란 채, 혹시라도 너무 날카롭지 않았나 눈치를 살피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리가 없었으니까.
뭐, 방금 그게 어떤 반응이었건 상관없이 이도영이 유시아에게 나쁜 감정을 품을 리는 없겠지만.
“응, 안내할게.”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눈길을 보내는 유시아의 모습. 그 모습을 본 이도영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감상이 떠올랐다. 귀엽다, 라는 감상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유시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예쁘다는 말이나 도도하다는 말이면 몰라도, 귀엽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인상이었으니까. 성격은 말할 것도 없었고.
하지만 현재 이도영은 그 감상이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붉어진 그녀 자신의 볼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을 피하며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자 더욱 굳어졌다.
애써 어색한 기색을 숨기며 이도영에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넓혀지지도 좁혀지지도 않는 거리를 두는 행동에 이도영이 애써 웃음을 감췄다. 오늘 아침부터 유시아는 계속 비슷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접근하면 털이 곤두선 고양이처럼 경계를 보내다가, 이내 자신의 행동을 보고 안심한 듯 긴장을 푼다.
그러다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어색해 보이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다 드러나는 표정으로. 그리고 그 고민을 끝내면, 괜히 과하게 태연한 태도로 다음 행동을 취한다.
거의 순간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행동이지만, 항상 유시아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이도영에게는 훤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물론 초인 중 초인인 김시우나, 눈치가 꽤 빠른 편인 김유진에게도 마찬가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오기로 계속 행동을 고집하는 모습이 이도영에게는 꽤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여태 지나치게 신비로웠던 유시아의 이미지가 어제 사실을 밝히면서 깨진 반동일지도 몰랐다. 신비로운 이미지 속에 감춰졌던 행동이, 그를 숨기던 이미지가 깨지자 더 부각되는 느낌.
‘이런 모습은, 나랑 유진이 빼면 아무도 못 보겠지만.’
마치 고슴도치처럼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시를 세우는 유시아가, 드물게 가시를 세우지 않는 대상. 그 대상에 자신이 끼어 있다는 게 새삼 기뻐진 이도영이 시선을 거뒀다.
“휴우….”
그 순간 옆에서 들려온 안도 섞인 한숨에 다시 향하려는 시선을 이도영이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대로 그가 더 쳐다보면 유시아가 진짜 홍당무가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그건 좀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기쁘게 해주진 못할망정, 괴롭히고 싶진 않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생각에 이도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애초에 고백한 시점에서 괴롭히고 싶지 않다는 말도 우습긴 하지만.’
그 생각 뒤로 씁쓸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을 애써 털어버린 이도영이 표정을 정돈했다.
다행히 여전히 시선을 피하고 있었던 덕에, 유시아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감정 공유에 대비해 머릿속을 정리한 이도영이 목적지로 향했다.
*
얼마 후, 이도영은 테라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몇 시간 전, 김시우가 풍경이 괜찮은 곳이라고 추천해준 장소. 과연 그 말 대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이도영은 작게 감탄을 흘리는 유시아를 데리고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감탄한 기색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애써 시선을 피하는 유시아의 얼굴. 이도영은 가만히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살짝 홍조가 올라온 볼이 꽤 낯설었다. 평소의 유시아는 꽤 무뚝뚝한 성격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가끔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힌 장면이 몇 기억에 남아있긴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 몇 개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으니까.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가만히 유시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새하얗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는 모습.
그 상태로 애써 시선을 피하는 유시아의 얼굴이 이상하게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달빛 때문인가.’
찰랑이는 흑색의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백옥같이 흰 피부가 은은하게 반짝였다. 하지만 붉어진 뺨 탓에, 신비해 보이지는 않았다.
달빛이 비추는 유시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도영이 이내 멍하니 중얼거렸다.
“예쁘네.”
“…뭐?”
갑작스러운 이도영의 말에 유시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뜨인 녹색의 눈이 이도영을 향하고, 옅은 홍조가 맺힌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하기 직전, 이도영이 다급히 손을 들어 바깥쪽을 가리켰다. 아, 하는 탄성을 내뱉은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예쁘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유시아가 이내 납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걸 들은 이도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하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괜히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긴장한 탓일지도 모르고. 자연스러운 척 말을 돌린 이도영이 가만히 유시아를 응시했다.
조금 불편한 기색이 사라진 표정. 그 표정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유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다시 올라오려는 씁쓸한 감정을 애써 지워낸 뒤 손을 내밀었다.
“자.”
“…그래, 고마워.”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울지 고민하는 얼굴에 괜히 간질거리는 가슴도 잠시, 이내 손을 잡은 유시아의 얼굴에서 점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편안한 기색이 드러나는 유시아의 얼굴에 이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건.’
맞잡은 손에서 밀려온 감정에 이도영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불편한 감정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 느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부정적인 감정. 당황도 잠시, 이내 그 감정의 원인을 깨달은 이도영이 반대쪽 손을 꽉 쥐었다.
어제 느꼈던 그 희미한 감정은 거짓말이라는 듯, 불편함만이 밀려오고 있었다. 마주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굳히는 유시아의 모습. 그 반응에 자괴감이 든 이도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라고 해도 불편했을 테니까. 친구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아닌 척했을 뿐, 실제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방금 걸음을 옮기며 들었던 부정적인 감정에 살이 붙는다. 이내 그를 먹이로 자라난 죄책감이 가슴 속을 채운다. 여전히 밀려오는 불편함을 가만히 느끼며,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는 유시아. 그리고 의문 섞인 시선과 함께 날아온 질문에 이도영이 마치 고해하듯 입을 열었다.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다는 말. 욕심을 못 이겼다는 말.
어제도 이미 했던 말이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은 조금 달랐다. 설렘보다는 씁쓸함이 강해진 감정. 그를 담아 사과를 건넨 이도영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 난감하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불편함이 사라질 때까지는 조금 떨어져 있을 생각이었다. 물론, 자신이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는 이상 시아가 느끼는 불편함이 사라질 리는 없겠지만.
그 뒤로 이어진 다른 마나 회복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작게 혹한 기색이 비쳤다가, 자신을 보고 애써 아닌 척하는 유시아의 표정을 본 이도영이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방은…내가 유진이에게 옮겨 달라고 부탁할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시아야.”
이렇게 말하면서도 적어도 아침 식사 시간에는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이도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마주 잡은 손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뒤로 빼던 손이, 유시아의 양손에 꽉 붙들렸다.
“시아야?”
당황한 표정으로 유시아를 바라본 이도영이 이내 말문을 잃었다. 처음 보는 표정으로 유시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본 적 없는 표정에 당혹하기도 잠시, 이내 유시아의 입이 열렸다.
“…그럴 필요 없어.”
“…응?”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듣지 못했다. 유시아에게 집중하지 않은 탓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유시아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집중의 대상이 달랐을 뿐이었다.
마주 잡은 손에서 밀려온 감정. 그 감정이 하나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가지 마.’ 라는 뜻을 담은 감정이, 맞닿은 피부에서 차츰 밀려오고 있었다.
애써 담담한 척하면서 자신의 눈을 마주한 녹색의 눈동자. 그 시선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어제 느꼈던 그 감정이,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고백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러지 마.”
정말이냐고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밀려오는 감정이, ‘진실입니다.’ 라고 사실을 전해주고 있었으니까. 그 감정에 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느끼며, 이도영이 멍하니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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