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고민(5)
* * *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말.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가만히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방금 다진 각오가 무색해지는 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 대신 머릿속을 채운 것은 의문이었다. 자신이 불편한 게 아니라면 아까 느껴졌던 그 감정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에 대해 질문을 던지려던 이도영에 앞서, 유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불편했던 게 그냥, 수련 관련해서 생각한 것뿐이야.”
“…수련?”
대답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생뚱맞기 짝이 없는 말이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도영의 머릿속에 어제 들었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말. 그 말을 생각해낸 이도영이 작게 얼굴을 굳혔다.
수련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만한 이야기라면, 다른 의미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혹시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 건가.’
몸에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생길 예정이거나. 그러한 이유에서 나온 불편함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후보로 추정할 만한 변화도 있었으니까.
최근 시도하고 있는 마법과 검을 같이 사용하는 전투 방식. 그 작동 원리가 무슨 문제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권능을 남용한 탓에 봉인이 위험해진다거나, 혹시라도 완전히 봉인하지 못한 마력이 서클과 코어에 잔류한다거나, 그런 위험 한두 개 정도는 지금도 바로 떠올릴 수 있었으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물론, 이미 몇 번이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데다가, 더욱이 대마법사 또한 항상 관찰하고 있으니,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면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실제로 부작용의 기미는 아직 전혀 관찰되지 않은 상태이고.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다는 유시아의 말을 고려하면, 어쩌면 지금 발견하지 못한 다른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혹시 내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 거야?”
“…응?”
아무리 대마법사의 눈에도 안전해 보인 일이었다지만, 약간의 위험이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 방법을 받아들인 건, 그 또한 유시아 때문이었다.
마인 습격 당시 만신창이가 된 유시아의 모습. 그런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방식에 위험이 있다면 계속해서 그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실력을 급격히 올릴 수 있는 선택지였기에 채용했을 뿐, 딱히 별다른 애정이 있거나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마법이랑 검을 같이 사용하면 안 된다든가, 아니면 권능을 너무 남용했다든가. 그런 일 때문…. 아니야?”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며 말을 잇던 이도영이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끝마쳤다. 유시아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나 보네.”
그 순간 밀려온 쑥스러움에 간신히 말을 마친 이도영이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헛다리도 아주 제대로 짚어버린 상황.
그리고 괜히 민망해진 기분에 이도영이 몰래 시선을 피한 순간, 어째서인지 마주 잡은 손에서 부끄러운 감정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착각 맞아. 그런 거 아니야.”
순간 자신의 감정인 줄 착각했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옆을 향한 시선을 다시 되돌리자, 퉁명스레 그 말을 내뱉은 유시아가 부끄러운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도톰한 입술이 하얗게 질리는 모습. 그리고 그에 맞추듯 계속해서 쏟아지는 감정. 아무래도 이도영 자신의 착각이 유시아가 그 이유를 되새기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 격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한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니면, 왜 그런 거야? 수련이 왜?”
웬만하면 저 표정을 본 순간, 더 곤란하게 하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지금은 꽤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이도영이 합리화를 마친 순간, 유시아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 그러니까.”
거의 새빨개진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이으려는 유시아의 모습. 그를 본 순간, 이도영의 머릿속에서 여태 머무르던 심각한 감정이 모조리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건, 이전까지의 그것에 비하면 태평하기 짝이 없는 감상. 귀엽다, 라는 감상. 그리고 그 감상에 뒤따르는 간질간질한 감정.
여태 보였던 날카롭거나 차갑던 모습과는 달리, 붉게 물든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잇는 유시아의 모습이 꽤 색달랐다.
그리고 끝내 이도영이 그 감정을 억누르는데 실패한 순간, 유시아가 작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아.”
방금보다 더더욱 붉어진 얼굴. 당황으로 물든 표정. 그리고 그런 표정을 지었던 유시아의 눈매가, 이내 매섭게 뜨인 채 이도영을 향했다.
“너….”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이내 그 변화의 이유를 깨달은 이도영이 낭패라는 감상을 흘렸다. 아까 전 세웠던 가설에 확신이 실렸다.
‘이거, 쌍방향이구나.’
감정공유의 방향이 쌍방향이었다는 것. 뭐, 사실 이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대마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도영 자신과 유시아 사이의 계약 또한 쌍방향이라고 했으니까. 그 탓에 방금 그 감정이 일부 흘러 들어갔다면, 유시아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도영은 아까 유시아의 방 앞에서 내렸던 판단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유시아에게 그런 수치스러운 생각을 들켰다면, 차마 지금 얼굴을 들기 힘들었을 테니까.
물론 지금 느끼는 바에 따르면 공유되는 건 감정일 뿐, 그런 생각까지 전해지는 건 아니니 조금 과한 걱정이긴 했지만.
그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조금 안도하게 되는, 그런 복잡미묘한 기분도 잠시. 이내 본래 화제를 떠올린 이도영이 유시아를 향했다.
그러자 어느 정도 진정한 듯, 붉은 기가 꽤 사라진 얼굴이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
사과하는 게 오히려 더 화난다는 듯 맹렬히 불타는 눈동자.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시선을 거둔 유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마주 잡은 손에서 다시 느껴진 부끄러움을 필사적으로 무시한 이도영이 덤덤한 표정으로 유시아의 눈을 마주 보았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유시아가 실토하듯 입을 열었다.
“…그냥, 요즘 수련에만 너무 열중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랬어.”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의도로 그 말을 내뱉은 건지 가늠이 가지 않았으니까. 수련에 집중하지 말라는 말이면, 다른 쪽에도 좀 신경을 쓰라는 의도인가? 하지만 무슨 일에?
‘시아…는 아닐 거고….’
눈만 마주쳐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수준인데, 자신에게 신경을 더 써달라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의도의 말을 유시아가 할 리도 없지만. 그러면 왜?
“수련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건 또 아니고. 강해지는 건 좋은 게 맞긴 한데.”
이어진 답변에 더욱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반응에 작게 한숨을 내쉰 유시아가 결심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유시아의 설명은 꽤 난잡했다.
어제 했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실력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보다는 부끄러움을 없애 버리고 싶은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횡설수설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경청한 이도영이 생각에 잠겼다.
이야기 자체는 난잡했지만, 요약하자면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유시아는 자신의 성장 한계를 알고 있다. 충분히 뛰어난 실력이지만 정점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 그게 유시아가 설명한 그녀의 한계였다.
또 그녀는 미래를 알고 있다. 이도영 자신이 하늘 중 하늘, 대마법사조차 넘어서는 실력을 갖추게 되는 미래. 정작 그 말을 들은 이도영 자신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너보다 강해진다고? 그것도 한참 더?”
“응.”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여전히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이도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유시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무튼 현재, 이도영의 수련 효율은 그녀가 알고 있는 미래보다 더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도와준 것에 더해 대마법사의 개인 교습을 합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즉,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이도영 자신이 유시아를 따라잡게 될 순간이 더욱 앞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어째서 유시아가 불편함을 느낄 이유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왜…?”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시아가 말을 멈췄다. 머뭇머뭇하며 입을 열지 못하는 모습.
그 모습에 재촉의 말을 흩어버린 이도영이 생각에 잠겼다.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일 리는 없었다. 유시아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과거 필기시험에서 일부러 틀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물론 자신이 의도하고 지는 것과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가설은 신빙성이 낮았다. 여태 유시아는 실력의 고하에 그리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므로.
‘애초에 그러면 내가 강해지는 걸 도와주지도 않았겠지.’
뒤늦게 승부욕이 싹텄을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당장 어제만 해도 유시아는, 자신에게 수련했냐는 질문을 하며 흐뭇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진짜 왜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이유에 이도영이 머리를 싸매기 직전, 유시아의 입이 열렸다.
“…니까.”
“응?”
여태 말하던 성량에 비하면 매우 작은, 거의 중얼거리는 수준의 목소리. 그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이도영이 되물은 순간이었다. 따가운 유시아의 시선이 이도영의 얼굴에 꽂혔다.
다시 말하게 만드는 게 원망스럽다는 듯 따끔하게 쏘아지는 시선. 그 익숙한 반응에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도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 잡은 손에서 또다시 수치심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 대응도 그리 잘한 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 한참 후. 이내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문 유시아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멀어지기 싫으니까.”
유시아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한 말. 순간 놀란 시선을 보낸 이도영의 반응에, 유시아가 수치심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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