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해결책(1)
* * *
제 말을 못 이기고 수치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유시아. 머리카락에 채 가려지지 않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응시한 이도영이 방금 그 말을 되새겼다.
“…멀어지기…싫다고?”
제대로 들은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 되물은 말. 그 말을 들은 유시아의 몸이 다시 한번 퍼뜩 떨렸다. 그 반응을 본 이도영의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방금 그 말은, 충분히 오해할 만한 말이었다. 그런 의도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도, 혹시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어젯밤 느꼈던 그 씨앗이, 머릿속에 미혹을 마구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도영의 감정이 흘러 들어간 듯, 얼굴을 붉히던 유시아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친구!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그리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니었다. 친구가 멀어지는 게 싫다. 그런 생각은 충분히 할 법도 하고, 이해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반대로 충분히 다른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도영은 굳이 그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고 해도 얻을 만한 건 없다. 그런 실리적인 판단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는 쪽이 더 정확했다.
“그…그리고 멀어지기 싫다는 건 유진이도 포함이니까….”
이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입에 담았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다급히 변명하는 유시아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도 바빴으니까.
새빨개진 얼굴로 주섬주섬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모습이, 이도영의 눈에는 귀엽기 그지없게 보였다.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 하지만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면 알수록, 더욱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전해진 듯, 이리저리 변명을 주워섬기던 유시아의 입이 어느새 꾹 다물어져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맴돌기도 한참, 이내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유시아의 당황한 모습을 보는 것도 귀엽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어제 유시아가 그에게 했던 말에 따르면, 애초에 유시아가 자신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자신의 잠재력 때문이었다. 미래의 위험을 이겨 내기 위해서, 그의 실력이 기존보다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말에 담긴 건, 자신의 실력이 너무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어제 했던 말과는 상충되는 말이었다.
그 모순되는 말속에 담긴 감정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이도영이 질문을 던졌다.
“시아야, 내가 강해지는 게 싫은 거야?”
“…아니, 실력이 느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야.”
예상한 대답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실력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실력이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실력의 격차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느낄 감정을, 이도영은 뼈저리게 체감한 적이 있었다.
벌써 몇 달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기억.
유시아의 호의에 기대어 과분한 성적을 얻었을 때. 속되게 말해 버스를 탔을 때, 자신은 그 성적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호의에 마음 편히 기뻐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안했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주어진 일방적인 호의. 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뻐하기에는, 그 호의가 거둬지는 걸 상상하기만 해도 두려웠으니까.
그 감정을 알고 있기에, 이도영은 유시아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법도 알고 있었다. 당장 어제, 이도영은 그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어제, 자신을 이용했다고 고백하는 유시아를 보며, 이도영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유 없이 주어진 호의는 마찬가지로 이유 없이 거둬질 수 있지만, 이유를 가지고 접근했다면, 그 이유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사라질 수 없을 테니까.
유시아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한 게 잘못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자신은 그 목적이 기껍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품은 목적은, 역설적으로 그녀의 발목에 채워진 훌륭한 족쇄가 되어줄 테니.
‘음습해.’
빈말로도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이르기를 질투는 녹색 눈의 괴물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눈을 넘어 머리색마저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자신은 그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시답지 않은 생각과 함께 질척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이런 감정을 유시아에게 전해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이 이어 질문했다.
“그러면 내가 강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탓에 나나 유진이랑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게 싫은 거야?”
“…아마.”
김유진의 이름이 들어갔음에도 차마 완전히 긍정하는 건 부끄러운 듯,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시아의 대답. 그를 들은 이도영의 머리 한 구석에 기쁨이 차올랐다. 그 대답에는, 매우 큰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까.
단순히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고 해도, 그 목적 때문이라도 자신의 곁에 있어 줄 테니.
하지만 지금 유시아의 대답.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목적과 상충되는 그 대답은, 오히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목적 때문이 아니야.’
단순히 유시아가 품은 목적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그 목적 탓에 자신에게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자 갈등할 만큼, 그녀가 자신에게 충분한 애착을 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자 이내 밀려온 감정에, 이도영은 순간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 유시아에게 사과할 때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두근거림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겨우 그 몇 마디로 이 정도로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할수록,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아마 이 감정도 전해질 것이다. 그 생각을 떠올린 이도영이 상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감정만을 전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유시아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역시 말을 내뱉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네가 원하지 않으면, 멀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무슨 소리야?”
그 말을 들은 유시아의 얼굴에서 부끄러움이 절반 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조금 불편한 기색. 아무래도 이도영 자신이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원하고 원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야. 언젠가 내가 도움이 되지 않을 날이 올 테니까….”
그때도 자신이 끼어 있으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거라는 말. 오히려 무리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 그러니 언젠가 자신은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 논리적인 지적이었지만, 이도영은 그에 논리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멀어질 일은 없을 거야, 시아야.”
“그게 무슨….”
단순히 반복된 말에 답답한 기색을 내비친 유시아가 눈가를 좁혔다. 해결 방안도 없이 무작정 아닐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화에서 중요한 건 논리가 아니었다. 유시아가 지금 느낄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은, 논리가 아니라 족쇄였다.
유시아가 어제 자신에게 걸었던 목적이라는 족쇄를, 이번에는 자신이 걸 차례였다.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운을 떼었다.
“몇 달 전, 던전 공략 체험. 기억나?”
“…음?”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고개를 갸웃하는 유시아. 그 모습을 보며 이도영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때 나는 사실 별 도움이 안 됐잖아. 다른 애들과 비교해서도 더욱.”
“아니, 그때는….”
마나 회복이라는 이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내뱉으려는 듯 유시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그를 캐치한 이도영이, 유시아의 말을 자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때, 너는 굳이 나를 데려가 줬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도움이 되건, 되지 않건 상관없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하아, 그때와는 경우가 다르잖아.”
그때는 연습, 시험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있을 위험은 실전이라는 말. 그때 자신은 생각보다 더 큰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유시아가 반박했다.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은 실감이 안 나지만, 진짜 그렇게 된다면 네가 약점이 될지도 모르지.”
아직 그녀에게 뒤처진 상황이기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말. 그 말에 동의를 표하자 유시아가 이제 알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약점이 된다고 해도, 같이 갈 거니까.”
“아니….”
답답하다는 듯 유시아가 눈살을 작게 찌푸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도영의 말이 이어졌다.
“이미 같이 있어야 할 이유는, 시아 네가 말해줬잖아.”
“…내가?”
“응, 네가 알고 있는 미래. 그 미래보다 나는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고 그랬지?”
“…그건 그렇지만. 그게 왜 이유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유시아가 멍하니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재촉하는 시선이 이도영의 얼굴을 향했다.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아낸 이도영이 차분한 목소리로 생각해낸 자신의 족쇄를 입에 담았다.
“지금 내가 강해지려고 하는 이유가, 시아 너니까.”
그 말을 들은 유시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당혹이 가득한 시선.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네가 없다면, 이렇게 수련을 열심히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네 덕분에, 지금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늘 수 있었으니까.”
“아, 아니….”
“그리고 시아야, 나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고 그랬지?”
“…정확히는 김유진도.”
다시 나온 그 화제가 조금 부끄러운 듯 김유진을 끼워 넣는 대답에 이도영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너랑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하면, 강해진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으니까.”
“그…으….”
연이어 튀어나온 말을 들은 유시아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도영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빈틈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오히려 빈틈이 된다고 해도, 약점이 된다고 해도 괜찮아. 그게 내가 더 열심히 수련해야 할 이유가 될 테니까.”
“….”
“너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있어 주기만 해도 내게는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기쁠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네가 내게 의지해줬으면 좋겠으니까.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쥐어짜듯 내뱉은 질문에 가볍게 답하자, 이내 결국 유시아가 한계를 맞이했다. 새빨개진 얼굴을 한 유시아가 필사적으로 눈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이도영이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러니까 시아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은 하지 마. 네가 싫다고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멀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테라스에 침묵이 맴돌았다. 마주 잡은 손에서는 더 이상 당황조차 밀려오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패닉을 맞이한 듯, 붉게 물든 얼굴로 유시아가 이도영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마주 잡은 손에서 다시 어떤 감정이 흘러 들어오려던 순간이었다.
휙
“…시아야?”
“그러니까…. 마나는, 전부 회복했으니까.”
갑작스럽게 손을 뺀 유시아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이내 여전히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유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를 붙잡을 새도 없이, 유시아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 얘기는 없던 걸로 해줘. 미안해. 이만 가봐야겠어.”
“잠깐만!”
“내일 보자. 미안.”
툭툭 끊어지는 어투로 그렇게 말한 유시아가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 후, 비어 버린 앞자리를 보며 이도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심했나….’
아무래도 말이 조금 오글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을 하자 이내 밀려오기 시작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이도영이 작게 탄식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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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테라스를 떠난 후, 방에 들어선 유시아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베개에 얼굴을 누인 유시아가 이내 이불을 꽉 쥐었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에선 핏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돼.”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린 유시아가 이내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푹신한 베개가 유시아의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한 가지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쿵! 쿵!
유시아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고 있었다. 숨을 참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조용한 방안에서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끝내 유시아가 욕설을 내뱉었다.
“미쳤냐고, 진짜….”
그 현실을 부정하려는 욕설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여전히 거세게 뛰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