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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화 〉 해결책(2) (133/167)

〈 133화 〉 해결책(2)

* * *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베개에 처박았다. 까맣게 변한 시야 속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만이 귓가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내 심장이 뛰는 소리임을 깨달은 순간, 결국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쳤냐고, 진짜….”

미쳤다. 미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정신 나간 것처럼 뛰고 있는 심장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거세게 뛰는 심장을 자각하자마자 몰려온 당황. 휘몰아치는 감정이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북돋우듯 더욱더 거세게 뛰는 심장에, 결국 베개에 얼굴을 한 번 더 처박았다.

그렇게 한참 후, 조금 당황이 걷히고 미친 듯 뛰던 심장의 기세가 한풀 꺾였을 때, 방금과는 다른 새로운 감정이 이어서 밀려왔다. 수치심이었다.

“젠장….”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친구와 헤어지기 싫다고 칭얼거리는 꼬락서니라니. 방금 전 내 말은, 아무리 좋게 쳐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를 자각한 순간 밀려온 부끄러움에 옅게 신음성을 흘렸다.

“아으으….”

­팡! 팡! 팡!

쪽팔림으로 배배 꼬이는 몸뚱이. 답답한 심정을 차마 버틸 수 없어 매트릭스를 걷어찼다. 팡팡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게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부끄러움에 신음을 내뱉기도 한참, 이내 숨이 막혀 고개를 들었다. 베개에서 머리를 떼고 다디단 공기를 들이마셨다.

“후우….”

공기가 들어가자 겨우 달궈진 머리가 조금 식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되찾은 평정에 베개에 턱을 올리고 다시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진짜 뭐냐고….”

이내 방금 내 반응을 돌이켜보자마자 든 감정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내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친구랑 떨어지기 싫을 수는 있지. 응.’

어린애 같은 투정이긴 하지만,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걸 이도영한테 들킨 것도, 쪽팔리긴 하지만 견딜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도영이 뭐라뭐라 내게 말했던 시점. 그래, 내가 자기가 강해질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고 했던가?

‘미친놈….’

그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맨정신에 내뱉은 이도영도 신기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그 말을 들은 내 반응이었다.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이도영에게서 느껴진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정상적으로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으니까. 내 행동이 이상했던 건 전부 그 탓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지. 그래, 그렇지.”

전부 감정이 공유되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감정 공유만 아니었으면, 딱히 내가 그런 어린애 같은 투정을 부리고 있다는 걸 들킬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모든 행동의 이유를 그쪽으로 떠넘겨 버리자, 그제야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내가 걔한테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건데.’

그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순간 든 멍청한 생각을 고개를 휘휘 저어 털어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헛소리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

그리고 잠시 후, 방금 움직임으로 조금 어지러워진 시야가 진정되자 이내 걱정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감정 공유가 문제면, 앞으로도 이럴 거 아니야.’

애초에 감정이 공유되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게 문제였다. 감정이 일정 수위만 넘어가면 어떤 감정이건 상관없이 모조리 전해지는 듯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감정의 세기마저 똑같은 것 같진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 완전히 휩쓸리지는 않을 거라는 점도.

그 감정의 크기도 크기지만, 일단 그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니라는 느낌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거기서 끝난다면 내가 이럴 일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중 한 가지 예외가 있다는 점이었다.

고백했을 때. 그리고 오늘, 방금 전 내게 뭐라고 말을 전했을 때. 그때 밀려온 애정은 방금 설명한 다행이라는 말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물론 엄밀히 따지면 예외라고 하긴 뭣했다. 애정 또한 전해지는 원리 자체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일 테니. 하지만 그 애정이 예외인 진짜 이유는, 감정의 크기에 있었다.

‘그 미친놈, 진짜….’

다른 감정들과 달리, 일부만 전해졌는데도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애정. 그 감정이 내게 밀려온 순간은, 다른 감정들과 다르게 그 애정이 내 감정인지 아닌지 판단할 겨를도 없었으니까.

그저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로 막대한 해일이, 머릿속을 가득 휩쓰는 듯한 느낌. 그 기묘한 느낌을 떠올린 순간 몸을 반짝 떨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피어났다.

‘아니, 그런데 공유받은 내가 그 정도인데, 걔는 대체….’

­두근

그 생각을 한 순간, 심장이 다시 세차게 박동했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몰린 핏기에, 또다시 고개를 휘휘 저어 생각을 흘려보냈다.

‘진짜 미쳤나….’

아무래도 방금 이도영에게 감정을 공유 당한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트리거가 될 만한 생각만 해도 심장이 다시 날뛰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제 주인의 감정도 몰라보고 마구 날뛰는 건방진 심장을 한참 달래던 순간이었다.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이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 테라스에 버리고 튀었던 이도영이 방으로 돌아오는 발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긴장으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

차마 숨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발걸음의 주인이 옆방 문 앞에 멈춰 섰다.

곧 들어갈 것처럼 느껴지는 모습. 그에 긴장을 풀고, 작게 숨을 내뱉은 순간.

­저벅

“…힉!”

옆방이 아니라, 내 방으로 향하는 걸음 소리. 더 커진 발걸음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그 예상치 못한 일격에 멍청한 소리를 내뱉은 순간이었다. 이도영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시아야, 있어?”

“…왜, 왜?”

­쿵! 쿵!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몸에서 심장만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목을 삐걱삐걱 돌렸다.

온 신경이 문밖을 향해 곤두서고, 떨리는 시선으로 문을 바라본 순간, 이도영의 말이 이어졌다.

“응, 그냥 잘 자라고.”

시답지 않은 용건. 그에 안심하려는 찰나, 다시 한번 내쉬던 숨을 멈췄다. 여전히 기척이 방문 앞에서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아니, 왜, 대체 왜 안 가는 건데…?’

분명 용건은 끝났을 텐데, 전혀 움직임을 보일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으로 하얗게 물든 머리가 패닉을 맞이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밤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듯 한 가지 영감이 머릿속에 내리쳤다.

“그…그래. 너도 잘 자.”

마치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듯 번뜩인 영감. 그 영감을 믿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이 대답을 건넸다.

“응, 시아 너도 좋은 꿈 꿔.”

그 말이 끝나고 이내 이도영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 그리고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까지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

­철컥

이윽고 완전히 이도영이 방으로 들어갔다는 확신이 들자, 그제야 마음 놓고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끼며 한참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아….”

기겁했다, 진심으로.

물론 이도영의 성격상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괜히 긴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한 순간, 이내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진짜 어떡해야 하냐….”

마나 회복을 하기는커녕, 아예 이도영과 말도 제대로 못 섞게 생겼다. 오늘은 그나마 대화까진 가능했지만, 방금 내 반응을 보면 내일은 얼굴을 맞대기도 힘들 것 같았다.

“…진짜 미치겠네.”

감정 공유의 여파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겨우 두 번 감정이 밀려왔다고 이 지경인데, 몇 번 더 당하면 진짜 어딘가 잘못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마치 계약 전 마나를 회복할 때와 비슷한 감각. 아니, 그보다 한참 더했다. 시간이 지난 탓에 기억이 무뎌졌음을 감안해도, 그때는 이 정도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감각은 드물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을 마친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감정 공유를 끊어야 한다. 끊는 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약화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쓴 소설의 설정을 뒤져봤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정령술에 이딴 부작용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하기도 한참, 이내 답을, 적어도 해결의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이를 떠올려낼 수 있었다.

대마법사 이상으로 마법에 정통한 존재. 그리고 지금 당장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요즘 대화가 조금 뜸하긴 했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었다. 생각을 마치고 패스를 연 뒤 말을 건넸다.

‘헤르메스, 있어요?’

그리고 한참.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에 당황해서 패스를 자세히 살핀 순간, 패스의 상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연결이 왜 이렇게….’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좁아진 통로. 좁아진 것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손상이 가기까지 한 채였다. 그리고 그에 놀라 패스의 상흔을 이리저리 살피던 순간, 익숙한 메시지가 머릿속에 쏘아졌다.

[오랜만이구나.]

꽤 피로감에 젖은 듯한 느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해진 순간, 실금이 가 있던 연결이 다시 한번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이건….’

[오래 대화를 나누는 건 역시 무리겠구나.]

갈라지는 걸 넘어 부하를 버티기 힘들다는 듯 작게 진동하는 패스에 놀라기도 잠시, 이내 헤르메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전, 박휘성의 마인 계약을 파기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헤르메스와의 연결도 피해가 갔다는 말이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오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일 것 같구나.]

갑작스럽게 쏘아진 당혹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초에 패스의 상태가 문제라면 다시 이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다시 계약을 맺으면 안 되나요?’

저번 지리산 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분신을 마주하는 방식 등으로 새 패스를 연결하면 되지 않냐는 질문. 그에 대한 헤르메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무리다.]

‘분신이랑은 계약할 수 없다는 건가요?’

[아니, 내가 하계에 개입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말. 그 말에 깃든 짙은 피로감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 헤르메스의 말이 이어졌다.

[감시가 더욱 강해졌으니, 나는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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