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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화 〉 해결책(4) (135/167)

〈 135화 〉 해결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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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이야기가 끝났다. 생각보다 길기도 했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정보가 꽤 충격적이었던 탓에 잠시 생각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신격들이 벌써부터 엮이기 시작했다는 사실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와 계약을 맺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인의 정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마인의 정체는 원작에도 나오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아니, 원작에서는 로키는 코빼기도 나온 적 없었다. 게이트 사태 이후 모습을 드러낸 신격 중에 로키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북유럽은 설정상 망해버렸으니까, 생각도 한 적 없었다고.’

그래, 생각도 한 적 없었는데, 심지어 그쪽은 나를 알고 있단다. 그 난잡한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정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은 채로 가만히 이야기를 요약하기 시작했다.

‘일단 원작이랑 다른 점, 로키라는 이레귤러 하나.’

잡다한 이야기를 다 쳐내고 요약하면,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첫 번째 변화, 원작에선 나온 적 없었던 로키라는 존재가 생존해 있었다. 이건 내가 뭔가를 한 나비효과는 아니었다. 내 빙의 시점에서 한참 전 일이었으니.

‘그렇다는 건 원작에서는 나중에 소멸할 놈이라는 건가.’

지금 이 흐름에서도 똑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원작에서는 그렇겠지.

‘설명에 따르면, 그놈은 마교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고.’

이계의 힘이라는 말. 그건 아마 마교 소속 마인들이 가진 그 특이한 힘을 말하는 거겠지. 그쪽의 목적이 알 수 없지만, 그게 로키의 목적과 관련이 있는 듯하고.

그리고 두 번째 변화, 그놈이 나를 인지하고 있다. 이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박휘성의 계약을 강제로 파기할 때부터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으니.

‘오히려 이건 좋은 일일지도. 헤르메스의 말에 따르면 그쪽이 내게 더 간섭할 일은 없을 테니.’

물론 별명이 사기와 기만의 신인 그놈이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 아래서이지만, 일단 한숨 돌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생각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의문이 피어났다.

‘아니, 그런데 굳이 왜 예언을 해준 거래?’

나를 두고 협박을 했다는 건 알겠지만, 그게 왜 협박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헤르메스에게 어느 정도 중요한 입장까진 되겠지만, 아예 불이익을 감수할 정도로 중요하냐고 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졌으니까.

‘애초에 올림포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계약 말고는 별다른 것도 없었고.’

그나마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리 좋은 이야기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아예 별 이야기도 없기도 했으니,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어차피 그 부탁을 들어주건 들어주지 않건, 헤르메스가 올림포스에게 경계를 받게 되는 건 똑같았을 것이다.

부탁을 들어준 결과는 지금 이 상황이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로키가 별 음해를 다 했을 테니까. 그 별명, 사기와 기만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해달라는 대로 해줄 필요까지 있나?’

뭐, 안 해줄 필요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궁금해져서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간단명료했다.

[서로 돕겠다고 계약했으니, 계약에 따랐을 뿐이다.]

이거 참, 할 말을 잃게 하는 대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계약 조건은 거의 까먹고 있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헤르메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뭔가 머뭇거림이 섞인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싶었으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부른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아.”

그제야 기억난 원래 화제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쏟아진 탓에, 당장 닥쳐온 문제를 잊고 있었으니까.

이도영과의 감정 공유. 어째 방금 전 이야기와 비교하면 조금 하찮아 보이긴 하지만, 사실 매우 시급한 문제였다.

이 감정 공유가 이어지면 대비이고 수련이고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 쾌적한 전력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거지.

자기합리화를 마치고 패스를 향해 사정을 설명했다.

뭐, 구구절절하게 사정을 설명하진 않았다. 간단히 문제의 개요만 입에 담은 수준, 전부 말하기엔 내 정신이 수치심으로 망가져 버릴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설명을 마치고 잠시 후, 과연 마법의 신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순식간에 해결책이 도출되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 문제로구나. 영혼의 결속이 원시적인 방식으로 연결된 탓이니.]

원시적이라는 말은 조금 불쾌했지만, 그만큼 확고해 보이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원시적이고 뭐이고 간에, 이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원시인이 되는 게 나았다.

[굳이 떼어낼 필요는 없다. 물론 그게 빠르기는 하겠지만, 봉인을 고려하면 위험할 테니. 그 대신, 영혼 사이 결속에 간단한 방벽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지.]

뭔가 되게 말이 되는 것 같은 설명에 고개를 파닥파닥 끄덕였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든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흐음, 너 혼자서는 불가능하겠구나.]

아니, 그럼 뭐 하러 말해 준 건데.

어이가 없어 멍한 표정을 지은 순간, 헤르메스의 말이 이어졌다. 당연하겠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말해줘서 나를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대답의 시간차를 보면 조금 의심 가긴 한데.

[다행히도 네 주변엔 마법에 정통한 이가 하나 있으니, 그의 도움을 받으면 되겠지.]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말에 생각에 잠겼다. 마법에 정통한 이. 마법의 신에게 그런 호평을 받을 만한, 내 주변에 있는 존재. 뭐, 답은 바로 나왔다. 유진이 아버님이시겠지.

‘내일 바로 말해야겠다.’

해답이 보이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감사 인사를 전하려던 순간이었다. 한계에 달한 패스에서 큰 충격이 느껴졌다.

­끼기기기긱!

영혼에 직격으로 들어오는 소음. 패스가 완전히 망가지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길어진 대화 동안 한계를 맞이한 듯, 패스가 사정없이 찢어지고 있었다.

‘아, 이런….’

[끝이군.]

담담한 목소리로 상태를 평한 헤르메스가 잠시 침묵했다. 그에 뭐라고 작별 인사를 건넬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먼저 작별을 고한 헤르메스의 말과 동시에, 패스가 끊어졌다.

[계약대로, 이 속박에서 풀려나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다리도록 하마.]

­뚜두둑!

그 말을 마치자마자 대답할 시간도 없이 끊어진 연결. 상태를 보면 무리로 인해 완전히 파열된 게 아니라 저쪽에서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예상치 못한 행동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걸 그냥 끊어버리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마치 해외 친구와 통화하는데,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저쪽에서 인사도 듣기 전에 끊어버린 느낌.

그에 살짝 표정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한숨을 내쉬고 얼굴을 정돈했다. 내가 뭐라고 하던, 이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열을 낼 필요는 없었다.

‘뭐, 이젠 좀 편하긴 하겠네.’

그리 착한 놈은 아니었지만, 딱히 내게 그리 크게 잘못한 것도 없었던 탓에 조금 정이 들긴 한 모양이었다.

시원섭섭한 감정에 괜히 감상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과하게 감상에 빠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사상범이랑 정드는 것 자체가 손해니까.

애써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감았다. 그래도 뭐, 조금 섭섭하긴 했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헤르메스의 빈자리를 느꼈다. 뭐, 그런 건 없었다. 애초에 요즘은 별 얘기도 안 했으니 딱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래도 어제보단 좀 낫긴 하네.’

이도영과 관련된 감상이었다. 어제 대화 직후에는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았는데, 그 후 헤르메스와 이야기도 하고, 잠까지 잔 덕에 어느 정도 해소된 모양이었다.

그에 조금 후련한 감정으로 몸을 정돈하고 식사하러 가기 위해 문을 연 순간이었다.

“어….”

노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도영의 모습.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뻣뻣이 굳어버린 몸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낫긴 개뿔….’

어제 아침이랑 똑같았다. 아니, 한 번 경험했는데도 이러는 거라는 점에서 어제보다 더 심했다. 그렇게 눈을 마주하던 순간, 환하게 웃음을 보인 이도영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잘 잤어?”

그 인사에 데자뷰를 느끼며, 딱딱하게 굳은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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