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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화 〉 해결책(5) (136/167)

〈 136화 〉 해결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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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나아지긴 개뿔, 또다시 얼굴에 피가 쏠리고 있었으니까. 눈을 마주치는 순간 되살아나려는 어제의 기억. 황급히 시선을 티 나지 않게 살짝 피했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나보다 머리 한두 개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한, 어느새 나보다 커져 버린 이도영의 눈 탓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굴을 피해 시선을 옮기던 순간, 갑작스레 이도영의 몸이 이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걱정 섞인 말을 내뱉으며 다가오는 이도영의 몸뚱이. 그리고 이쪽을 향해 뻗어지는 손. 그 손의 궤적이 내게 다가오는 걸 확인한 순간,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지금 서있는 위치가 애매했다는 점이었다.

­턱

“…악!”

문을 열자마자 이도영을 마주한 탓에, 나는 지금 문턱을 한 발짝 정도 넘어가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다급히 뒷걸음질을 친 결과는 뻔했다.

문턱에 걸리자마자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몸이 급격히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시아야!”

급격히 쏠린 시야에 가득 담긴 천장.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거리감도 잠시, 이내 놀란 이도영이 다급히 이쪽을 향해 팔을 뻗었다. 기울어지는 내 몸을 팔로 받친 이도영이, 그대로 내 몸을 끌어당겨 제 몸에 기댔다.

“어…어?”

그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머리가 패닉에 잠겼다. 내 등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손길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웠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후우…. 다친 곳은 없어?”

아니, 뜨거운 건 체온이 아니었다. 그 열기의 근원을 파악한 순간, 멍하던 머릿속에 급격히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으니까.

심지어 어제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어제는 단순히 손을 잡았을 뿐이지만, 지금은 접촉 면적이 그 몇 배는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사이에 옷이라는 방해물이 있다고 해도, 그 면적의 차이가 차이였기에. 어제에 못지않은, 오히려 더 강한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제 느꼈던 그 애정은 주된 감정은 아니었다는 점. 물론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량이었다는 점이었다.

그 대신 이번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순수한 걱정. 고작 이따위 일에는 과할 정도로 거대한 걱정이 가득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 성공한 순간, 황급히 몸을 일으켜 이도영을 떼어냈다.

“괘, 괜찮아….”

­쿵! 쿵! 쿵!

어제와 맞먹을 정도로 요란하게 뛰는 심장. 짧은 시간동안 공유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여파를 흘려내기 위해 애쓰기도 잠시, 몸을 떼어낸 후에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이 붉은데. 혹시 열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방금 넘어질 뻔한 것도 그렇고.”

그렇게 말한 이도영이 내게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이쪽으로 다가오는 손길. 내 체온을 재려는 듯 이마를 향하는 궤적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팔이 움직였다.

­탁!

“손대지 마!”

생각도 전에 먼저 움직인 몸. 그와 동시에 튀어나온 외침.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방어적인 태도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내보였다.

“…시아야?”

손이 튕겨 나가자 당황한 듯, 이도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놀란 기색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방금 내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순간, 급격히 미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 미…미안.”

신체 접촉이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로 과민 반응할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를 걱정하는 행동이었는데,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에 대해 사과를 건네자, 이내 괜찮다는 듯 애써 미소를 지은 이도영이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당연히 불편할 거라는 걸 생각해야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어제 있었던 일이 상기된 탓에 괜히 수치를 느끼기도 잠시, 이내 살금살금 이도영의 눈치를 살폈다.

말과는 달리, 이도영의 얼굴에는 역시 조금 씁쓸한 기색이 숨어 있었다. 피해자에게 역으로 사과의 말을 들었다는 생각에, 괜히 양심이 쿡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래를 한 줌 씹은 듯한 껄끄러움에 침묵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재차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싫었다면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살짝 떨리는 눈가. 미안함 가득한 시선. 없던 죄책감도 생겨날 정도로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 양심을 자극하는 행동에 밀려온 감정. 그 감정을 못 이겨 입을 열었다.

“싫은 건 아니야. 아니, 오히려….”

거기까지 말하자 다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깔끔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신체가 맞닿았을 때 밀려온 감정. 그 감정의 명칭을 그대로 입에 담기에는, 내 얼굴이 그리 두껍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그러기도 잠시,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숙인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긴장한 듯한 눈빛이, 불안감이 섞여 작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느껴진 의무감에,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그…몸이 닿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이…상한 기분? 아….”

그 말을 듣자마자 약간 당황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 이도영. 그 반응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이도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마도 당황, 아니면 놀람. 대충 그런 느낌의 감정이 가득한 시선.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생각에 잠기자마자 그 감정이 빠르게 잦아들기 시작했다. 언제 동요했냐는 듯 금세 평정을 찾은 이도영의 눈빛. 그에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얘도 알고 있었나 보네.’

이도영이 감정 공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이제야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뭐, 감정이 공유된다는 것 자체는 모를 리가 없긴 하지만….’

그게 쌍방향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을지는 조금 긴가민가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도영 또한 거기까지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설명이 쉬워진다. 그 생각이 들자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짝 맑아진 머리로, 목을 가다듬고 확인하듯 질문을 건넸다.

“…너도 알고 있었어?”

“…대충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불편해할 줄은 몰랐어.”

면목이 없다는 듯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이도영. 하지만 나는 따져 묻거나 할 생각으로 그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괜찮다는 듯 가볍게 손짓을 보낸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몸이 닿거나 하는 건 좀 부담스러워. 그,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 그러면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정확히는 감정에 휩쓸린다는 느낌이지만, 그 말을 그대로 내뱉기는 조금 그랬다. 다른 방향이라면 몰라도, 하필 그 감정이 감정이었으니, 조금 돌려 말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숨을 멈췄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며 이도영의 눈을 다시 바라보자, 이도영이 내 눈을 피하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어째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대충 납득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히 자기 탓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거나 그런 거겠지. 그 생각에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방금 전에 그건 네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어.”

물론 이 사태에 전혀 이도영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 뜻을 담은 말을 들은 이도영이 서서히 눈을 떴다. 다만 내가 예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음?”

어째서인지 열기가 깃든 것처럼 보이는 시선. 나를 강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방금 그 눈빛은 내 착각이었다는 듯, 평온한 눈빛을 띤 이도영이 내게 질문했다.

“그러면 앞으로도 몸이 닿으면 안 되는 거야? 마나 회복은?”

‘…뭐였지?’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대답을 건넸다.

“그건…해결될 때까지는 역시 자제해야겠지. 그래도, 오늘 김시우 님께 해결 방법을 여쭤볼 생각이니까. 그리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나도 빨리 수련해야 하니까. 이 일로 너무 오랜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그렇구나. 응, 말해줘서 고마워. 시아야.”

한층 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 그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돌연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시아야, 그러면 그 문제만 해결되면 괜찮은 거야?”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신체 접촉 말이야. 마나 회복도 해야 할 테니까. 혹시 그거 말고도 꺼려질 다른 이유도 있을까 해서.”

“아….”

조금 불안한 기색이 섞인 목소리. 아닌 척했지만, 역시 내 말을 듣고도 아직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 행동이 꽤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신체 접촉이라….’

물론 이도영의 감정을 고려하면, 감정 공유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신체 접촉 자체가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아예 마나 회복 없이 지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감정 공유가 해결되면, 동요하는 이유 대부분이 사라질 테니.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

공유되는 감정도 문제지만, 그 탓에 괜히 고백이나 나를 향한 감정이 상기되는 것도 문제였으니까. 이전처럼 돌아간다면 그렇게 이도영을 어색해하진 않을 듯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것만 해결되면 상관없어.”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안심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흘깃 바라보기도 잠시, 어째서인지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은 거 맞겠지?’

어색한 분위기는 그대로일 텐데, 너무 막 지른 게 아닌가 싶은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의식하지만 않으면, 그럴 일 없을 거니까.’

그리고 감정 공유만 아니라면 내가 그런 쪽으로 이도영을 의식할 리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판단을 정당화하며 후회를 지웠다. 머릿속 한구석으로 불안을 몰아내며 애써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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