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나들이(1)
* * *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지금 이도영의 수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감정 공유에 관해 이야기를 마친 후, 해결을 위해 김시우를 따라왔는데 정작 오전에는 김시우에게 정해진 스케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 따로 준비할 것도 있다고 하고.
뭐, 그 탓에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 남는 시간 동안 딱히 할 것도 없고 딱히 이곳에 아는 사람도 없으니, 이도영을 따라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허공에 묵묵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도영을 가만히 바라보며 감상에 잠겼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네.’
이래서 재능충은. 지금 저 모습이 검을 잡은 지 반년도 안 된 놈이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지금 이도영의 검술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검술에 문외한인 나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미 검술만 써서 겨뤄도, 하위권 생도들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검술의 수준까지 판단하지는 못하지만, 그 속도와 검에 실린 힘만으로도 머릿속으로 대충 승패를 가늠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도영이 이길 거라고 판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놀랍게도 이도영은 지금,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하위권 무투계 생도들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상태였으니까.
하위권이라고 하니 무시하기 쉽지만, 일단 영웅사관학교의 생도들은 모두 초인. 각성 전 이도영 같은 어나더 클래스의 최약체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다.
즉, 기본적으로 대부분 어릴 때부터 수련을 거듭한, 준비된 생체병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추월했다는 건, 실로 말도 안 되는 성장속도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엘릭서라는 버프를 고려한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괴물 같은 놈.’
물론 그렇게 따지면 이도영의 각성 전까진 수련도 제대로 안 하던 내 성장이 더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나는 시스템이라는 보조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보조 하나 없이 저 정도 속도로 성장한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감상을 갖기도 잠시, 이내 숨을 몰아쉰 이도영이 검을 거두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끝났어?”
“응.”
오늘 아침에는 꽤 심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니 조금 익숙해진 덕에 이제는 대화 정도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나눌 수 있었다.
물론 화제가 그쪽으로 향하거나 신체 접촉이 생긴다면 무리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케이스는 아니었으니까.
땀을 닦으려는 기색도 없이 고개만 끄덕인 이도영에게 다가가 수건을 내밀었다.
“자, 좀 닦아.”
“…응? 아, 아.”
어째서인지 바로 받지 않고 살짝 당황한 듯 수건을 바라보는 이도영. 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한 걸음 다가가 피부가 닿지 않게 조심하며 목에 수건을 걸쳐주었다.
“….”
그러자 입술을 달싹이다 마는 이도영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한 이도영이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모습에 괜히 묘한 기분이 들어 뒤로 한 걸음을 걸었다.
조금 벌어진 거리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려 퍼졌다.
“지금 막 준비를 마치셨다고 그러시네. 이제 가면 될 것 같아.”
휴대폰을 확인한 이도영이 말했다. 수련을 마치자마자 온 연락. 꽤 깔끔한 타이밍에 감탄의 말을 입에 담았다.
“어째 딱 맞췄네?”
“아하하.”
쑥스럽다는 듯 작게 웃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기야 같이 다니게 된 지도 꽤 됐을 테니.’
스케쥴 정도야 모를 리가 없긴 했다. 감상도 잠시, 이내 이도영과 목적지로 향했다.
*
목적지는 그리 멀진 않았다. 얼마 정도 이도영의 뒤를 따르자, 이내 꽤 커다란 연구실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목적지라는 듯 문을 여는 이도영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뭔지도 모를 이런저런 설비들이 널려 있었다. 잘못 만지면 망가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괜히 긴장하기도 잠시, 이내 이쪽을 발견한 김시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왔군.”
그 말을 내뱉으며 이도영을 바라본 김시우의 눈이 살짝 좁혀졌다.
“수련한 뒤 그냥 온 게냐?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구나.”
“아…. 네, 그렇습니다.”
‘아니, 수련했으니까 당연히 땀이 났겠지.’
괜히 무안하게 꼽을 주는 모습에 살짝 눈을 치켜뜨기도 잠시, 이내 부끄럽다는 듯 살짝 얼굴을 붉힌 이도영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찰랑
허공에 떠오른 물덩이가 이도영의 전신을 휘감고, 이내 이도영의 몸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의 말을 흘렸다.
‘헐….’
얼마 전 봤을 때와 비해도 대단할 정도로 발전된 마법 실력.
검술만 수련한 게 아니라는 듯,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법의 수발이 자연스러워져 있었지만, 정작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아니, 수건 괜히 줬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살짝 기분이 다운되어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이럴 거면 그냥 마법을 쓰지, 굳이 왜 수건을 받은 거냐는 의문도 잠시, 이내 시야에 들어온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얼굴이 조금 붉게 변한 이도영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질문을 던지자, 이내 이도영이 긴장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그, 혹시 땀 냄새…기분 나빴어?”
아, 난 또 뭔가 했네.
하기야 이런 걸 대놓고 지적 받으면 부끄러울 만도 했다. 배려가 없는 김시우의 행동에 괜히 속으로 한 마디를 내뱉은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았는데.”
“…응,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 대답에도 불구하고 어째 믿지 않는 듯, 이도영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혀를 찬 뒤 한 마디를 더했다.
“알잖아, 권능. 오히려 좋은 냄새였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거짓말은 아니었다. 권능의 수발이 꽤 자유로워진 이도영은, 검술 수련을 하면서 틈틈이 권능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그 덕에 일부 흘러나온 권능으로 공기가 상쾌하면 상쾌했지, 딱히 땀 냄새가 불쾌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 그래…?”
그 말을 전해주자, 어째 예상과는 달리 더욱 붉어진 안색. 안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자 어째 나도 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못 말했나.’
지금 생각해보니 좀 표현이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생각에 얼굴에 조금씩 피가 쏠리던 순간이었다. 이내 귓가에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크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김시우가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이 꼴을 들켰다는 사실에 괜히 쪽팔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화제를 돌리려는 듯 김시우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 온 이유는, 그 연결과 관련된 문제이더냐?”
“아, 네. 맞아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내뱉은 긍정. 그리고 잠시 후, 김시우가 이쪽을 향해 여러 질문을 건넸다.
감정이 공유되는 상황. 그 크기. 그리고 언제부터 공유되기 시작했는지, 그 원인으로 추측되는 건 있는지, 다종다양한 질문에 모두 대답하자, 이내 대답을 들은 김시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간 침묵하던 김시우가 이내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충 무슨 문제인지는 알겠구나. 다만 해결책을 내놓는 건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겠어.”
“확인이요?”
무슨 확인? 그런 표정으로 되물은 내 말에 대답하듯 김시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감정이 공유되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구나.”
아, 잠깐만.
“그 말은….”
“실제로 감정이 공유되는 방식을 한 번 관찰해야 할 것 같다.”
불길한 예감대로, 그리 내키지 않는 말이었다. 잠시 이도영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 이도영과 눈을 마주쳤다.
“…!”
그 순간 또다시 급격히 어색해진 기분에 훽 시선을 피했다. 감정 공유라는 키워드만 나오면 답답해지는 분위기에 괜히 속으로 짜증을 내기도 잠시, 이내 시선을 피한 나 대신 이도영이 질문했다.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저 가운데, 마법진 위에 서서 지금 말한 현상을 재현하면 된다.”
즉, 마법진 위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뜻이었다. 꺼림칙한 기분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대로 쭉 사느니, 차라리 지금 한 번에 끝내는 게 나았으니까. 죽는 것도 아니고, 쫄아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의지를 다지자, 이도영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괜찮겠어?”
“어, 괜찮아.”
그 질문에 허세를 섞어 대꾸하고, 마법진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법진 정중앙에 선 채, 이도영을 마주하자 방금 그 대답이 약간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 역시 좀 무리인 거 같은데….’
방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막상 판을 깔아주니까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설상가상으로 방금 나눈 대화까지 떠오른 탓에, 점점 더 꺼려지는 기분.
답답한 심정으로 이도영의 손만 바라보던 순간, 이도영이 내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힘들면 내가 잡을까?”
“…그래.”
차마 내가 먼저 손을 잡기에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이도영의 손이 내 손을 향해 뻗어졌다.
“아….”
그리고 손을 잡힌 순간 밀려온 감정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들고 이도영을 노려보았다.
“…너.”
나를 보며 귀엽다고 느끼고 있는 감정. 그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느낀 순간 격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에 항의하듯 붉어진 얼굴로 이도영과 시선을 맞대기도 잠시, 이내 미안하다는 듯 내게 작게 웃어 보이는 이도영. 그 얼굴을 마주하자 밀려온 더한 자괴감에, 결국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 실랑이 이후, 아무래도 내 수치심이 저쪽에 전해진 듯, 밀려오는 감정의 세기가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차마 더 버티기 힘들어 김시우에게 언제 끝나냐는 시선을 보냈다.
“흐음….”
그런 내 눈에 담긴 건,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김시우의 모습. 아무리 봐도 금방 끝내줄 것 같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밀려온 아득함에 결국 질끈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