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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 나들이(4) (140/167)

〈 140화 〉 나들이(4)

* * *

다음 날, 아침의 일정은 간단했다. 일단 모두 김시우를 따라가 조정 마법을 받은 후, 다 같이 김유진을 따라 번화가로 향한다.

뭐, 그중 조정 마법을 받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도중에 김유진이 따라간다는 사실을 들은 김시우가 설교한 탓에 시간을 좀 잡아먹긴 했지만, 이 정도는 허용 범위 내였다.

“그래서 유진아,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번화가로 향하는 길, 이도영이 김유진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쿠아리움! 이 근처 쇼핑몰 지하에 있어!”

‘아쿠아리움이라….’

기껏해야 노래방이나 볼링장 정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본격적인 계획에 흥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가볍게 생각에 잠겼다.

‘아쿠아리움 같은 곳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

빙의한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몸에 빙의하기 전에도 딱히 그런 장소와는 크게 연이 없었으니까.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괜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나는 괜찮은데?”

“그럼 다행이네, 시아 너는? 별로야?”

“응?”

묘한 감상에 사로잡히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혹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냐는 듯, 살짝 불안한 시선에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좋아.”

그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다행이라는 듯 싱글 웃었다. 그 표정을 천천히 바라보기도 잠시, 갑작스럽게 떠오른 의문에 가만히 입을 열었다.

“아, 근데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아쿠아리움이면, 상어도 있어?”

“응? 그야 당연하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 물어볼 필요도 없는 당연한 상식이었던 모양이다. 뭐,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니까.

“혹시 상어 좋아해?”

“…조금?”

그러기도 잠시,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상어를 좋아하냐는 말. 그에 고개를 끄덕이자,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왜 그러나 싶어 시선을 돌리자, 비슷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유진의 얼굴이 시야에 담겼다.

“…왜 그래?”

설마 상어 때문에 이러는 거냐? 아니, 상어 좀 좋아할 수도 있지. 멋있잖아.

고작 이런 걸로 이러는 게 꽤 유치한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 세상에는 아기상어 노래는 없나?’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괜한 심술에 나중에 곡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참교육을 하겠다는 삐뚤어진 생각도 잠시, 이내 내 얼굴을 본 이도영이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시아 네가 뭘 좋아한다고 말한 건 처음인 것 같아서.”

“…내가?”

“응, 나도 오늘 처음으로 들은 거 같아.”

예상치 못한 말에 멍하니 되묻자, 이내 김유진이 지원하듯 마저 대답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연계에 괜히 불편해지기도 잠시, 이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랬던가…?’

하기야 여태 딱히 호불호 관련해서 뭐라고 말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딱히 가리는 게 많지 않기도 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으니까.

‘뭐, 엄청 싫은 건 싫다고 하겠지만.’

딱히 지금까지 그렇게 뭐라고 할 만한 건 없었으니까. 그래서 얘기를 안 했을 뿐인데, 얘들은 그게 또 신경 쓰인 모양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렇게 때늦은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잠시, 이내 옅게 웃은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나 알게 됐으니까. 하필 상어라는 게 좀 아쉽지만.”

‘그게 왜 아쉬운데?’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자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좀….’

김유진이 있어서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교묘하게 능글맞아진 이도영에겐 그런 건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더 분한 건, 딱히 제대로 뭐라고 한 것도 아니어서 따질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김유진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 따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김유진의 시선을 피해 이도영을 찌릿 노려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별 효과는 없었지만.

*

도착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뒤, 김유진의 인도에 따라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이거 봐! 얘가 니모 맞지?”

“뭐, 그런 것 같은데.”

“응, 얘가 흰동가리 맞아. 봐봐, 표지판에도 쓰여 있네.”

뭐, 첫인상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수조에서 헤엄치는 열대어들을 본 김유진이 낸 와아 하는 감탄을 배경음 삼아 천천히 내부를 구경했다.

“예쁘네.”

“그러게.”

푸른 느낌의 조명이 깔린 내부. 퍽 신기한 분위기에 짤막하게 감탄을 내뱉자 이도영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도영도 아쿠아리움은 처음인 듯 보였다.

‘하기야 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

요리조리 비치된 작은 수조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를 흘깃 훑으며 빠르게 걸음을 걸었다. 안내하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들어오자마자 혼자 신나서 달려나간 김유진이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바삐 다리를 놀려 벌어진 거리를 따라잡자, 이내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기자기한 열대어로 끈 흥미를 확 압도하겠다는 듯, 방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물고기들이 수조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시아야! 이거 봐! 엄청 커!”

“허, 그러게. 되게 크네.”

혼자 신난 김유진이 손가락을 들어 물고기를 가리켰다. 나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거대 물고기가 신나게 수조를 들이받고 있었다.

피라루크라 쓰인 표지판, 그리고 주변의 인테리어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섹션은 아마존 컨셉인 모양이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어딜 봐도 아마존 물고기 같이 생기긴 했지만.

뭐, 크기는 꽤 신기했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딱히 더 볼 건 없었으니까. 힐끗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자, 의외로 이도영은 꽤 즐거운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우리 사진 찍자!”

그러던 도중 포토존을 본 김유진의 눈이 득달같이 빛났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잡아끄는 손길. 그리고 그 힘에 한 발짝 끌려 나간 순간, 훅하고 당황이 밀려왔다.

­덥썩

물론 차분히 생각해보면, 김유진이 마법을 방해하거나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당황에 빠진 상태에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잘못하면 일이 허사가 되어버릴 거라는 불안감에, 본능적으로 이도영의 팔을 확 끌어안았다.

“저, 저기? 시아야?”

놀란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몇 초 후.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밀려온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미, 미안. 실수했네.”

“아, 응. 괜찮아….”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황이 상황이었던 덕에 그리 낯 뜨거운 감정이 흘러들어오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고작해야 즐거움 정도였으니.

물론 그런 감정 없이도, 충분히 부끄러울 만한 상황이었기에 그 사실이 안도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급격히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김유진이 내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그에 몇 마디를 내뱉으려던 생각도 잠시, 이내 입을 꾹 닫았다. 시무룩한 표정을 보니, 잘못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사실 포토존과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김유진에게 끌려갔다고 해도, 이도영과 5m 이상 떨어질 일은 없었다.

즉, 엄밀히 따지면 이 사태의 원인에는 내 과민반응도 있었으니, 김유진에게 뭐라고 하기에는 나도 그리 떳떳한 편은 아니었다. 감정을 사그라뜨린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엔 괜찮은데, 다음부터는 좀 조심해.”

“응, 미안….”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미안한 듯 눈치를 살피는 김유진.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에 조금 불편해진 기분도 잊고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히 주춤한 발걸음을 따라잡아 살포시 손을 잡았다.

“그건 됐고, 빨리 가자. 곧 상어 밥 줄 시간이래.”

“…응!”

들어오면서 본 시간표에 따르면, 상어에게 피딩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환기하며 아까 얘가 그랬듯 가볍게 손을 잡아 끌자 이내 활기를 되찾은 김유진이 파닥파닥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또 뭐하냐, 근데.’

아쉽다는 듯 손을 흘깃 바라보며 뒤를 따라오는 이도영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렇게 봐도 너랑은 손 안 잡을 거야. 적어도 감정 공유가 해결될 때까진 절대.

*

뭐, 그 후로는 딱히 별일은 없었다.

펭귄이나 수달을 보고 김유진이 좋아하거나, 의외로 이도영이 악어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기대하던 상어 피딩 장면을 구경하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아무튼 그렇게 아쿠아리움 구경을 마친 직후, 한 번 쭉 기지개를 켠 김유진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재밌었다, 그치?”

“응, 그러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이내 좋다는 듯 김유진이 헤헤 웃었다. 뭐, 재밌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발짝 뒤에서 따라오던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다음엔 어디로 갈 거야?”

“으음, 아쿠아리움 구경은 했으니까. 쇼핑! 옷 좀 보러 가려고!”

쇼핑이라, 그리 기대되는 울림은 아니었다. 나는 딱히 뭘 사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고, 이도영도 그런 취미는 없는 것 같았으니. 물론 이도영은 금전적인 원인도 어느 정도 있긴 하겠지만.

뭐, 그래도 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마음에 안 드는 일정은 아니었다. 저녁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한두 시간 정도는 어울려 주는 것 정도야 별로 힘든 일은 아닐 테니까.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자, 가지각색의 옷가게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김유진을 따라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어머?”

익숙한 허스키한 음색.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내 낯익은 얼굴이 눈에 비쳤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 꽤 차가운 인상을 지닌 여검수. 백소월이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조우에 당황해 백소월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옆자리, 김유진에게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소월 언니? 여긴 웬일이에요?”

언니라는 꽤 친해 보이는 호칭. 언제 친해졌는지, 친근한 말투로 백소월에게 말을 거는 김유진에게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이쪽을 살핀 백소월이 흥미롭다는 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놀러 왔지. 옷도 좀 구경할 겸. 그러는 너희는 웬일이야? 시아하고 도영이까지 끼어서.”

“저희도 옷 좀 보러 왔어요!”

김유진의 발랄한 대답을 들은 백소월이 이내 재미있겠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눈을 떴다.

“어머, 그러면 우연히 만난 김에 같이 골라도 될까? 마침 옷이 어울리는지 봐줄 사람도 필요했는데.”

‘아, 이거. 아무래도 망한 것 같은데.’

급격히 치고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 아무래도 아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빡세질 것 같은 쇼핑 난이도에, 괜히 뒷목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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