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삽화)나들이(5)
* * *
불길한 예감과는 달리, 의외로 그리 크게 귀찮아지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김유진과 백소월이라는 조합만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저 둘이 함께 있는데 조용할 거라는 생각이 더 허무맹랑할 테니까.
하지만 다행인 점은, 저 둘이 함께 어울린 덕에 이쪽으로 불똥이 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유진아, 이건 어떠니?”
“으음, 이것보단 저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저건 너무 헐렁해서.”
“오히려 그게 낫지 않니? 착 달라붙는 느낌보다는.”
“글쎄요. 그것보다는….”
저 멀리서 이런저런 옷들을 비교하며 대화를 나누는 김유진과 백소월. 굳이 그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한 발짝 떨어져 근처 의자에 앉았다.
“시아야, 다 골랐어?”
“고른 게 아니라, 딱히 살 게 없어서.”
이도영의 질문에 대답하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가지각색의 의복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역시 별다른 흥미는 일지 않았다.
뭐, 이 외모면 걸친 게 거적때기 수준이 아니라면 대충 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딱히 패션에 신경 쓸 생각이 없다는 점이 더 컸다.
애초에 사관학교에선 대부분 교복을 입고 다녔고, 김유진의 집에 와서도 대충 옷장에 있던 옷을 꺼내 입었으니까. 따로 옷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러는 너는, 뭐 고른 거 있어?”
“아니, 나도 뭘 살 생각은 없어서. 그리고 떨어지면 안 되잖아.”
하기야 이쪽은 여성복 매장이니까, 얘가 여기서 뭘 사긴 좀 그렇지.
대충 납득한 뒤 가만히 앉아 김유진 쪽을 구경했다. 분명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분위기. 조금 질리는 기분에 가볍게 중얼거렸다.
“뭔 옷을 저렇게 열심히 고른대.”
“아하하….”
맞장구치기 애매한 말에 이도영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앉아서 노가리를 까던 도중이었다. 이쪽을 확인한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아야, 여기서 뭐 해?”
“별로 뭘 살 생각은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지.”
“응? 옷 안 사도 돼?”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영문 모를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미 있는 옷 입으면 됐지.”
“그치만 시아, 너 옷도 별로 없잖아. 저번에 짐 싸온 거 보니까 몇 벌 안 되던데. 그래서 일부러 여기 온 건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있는 거 대충 입으면 되잖아.”
무슨 패션쇼를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거 입으면 됐지. 굳이 뭘 또 고를 생각은 없었다.
그런 의미가 담긴 대답을 내뱉자, 이내 김유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어째 지뢰를 밟아버린 듯한 느낌에 조금 싸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표정에 의무감이 깃들었다. 이도영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보낸 김유진이 이내 내 손을 턱 잡았다.
“안 되겠다. 따라와.”
“아니, 잠깐….”
“도영아, 너도 와야지!”
“그, 그래….”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 내 말을 자른 김유진. 아쿠아리움에서의 실수를 떠올린 듯, 이도영을 부른 김유진이 이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둘이서 뭐하니?”
그러기도 잠시, 이내 백소월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백소월에게 김유진이 뭐라 뭐라 속삭이고, 잠시 후 이야기를 들은 백소월이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시아 옷을 좀 골라주겠다고? 나도 끼어도 되니?”
“네! 소월 언니가 도와주면 고맙죠!”
순식간에 작당이 끝나고, 이내 두 사람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도영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자, 이내 미안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이게 이렇게….’
불길했던 예감이 현실이 된 상황. 두 사람에게 질질 끌려가는 채로 이도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시아야, 이건 어때?”
“그것보단 이게 낫지 않니?”
“…둘 다 괜찮은 것 같은데.”
멍한 표정으로 내게 내밀어진 두 벌의 옷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물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들은 체도 하지 않은 두 여인이 이내 다시 격렬한 토의를 시작했다.
“아니야, 지금 보니까 둘 다 별로인 것 같다. 아예 돌핀 팬츠는 어때? 시아는 다리도 기니까.”
“그것도 괜찮지만, 전 크롭티에 스키니가 나을 것 같은데….”
“미쳤어?”
갈수록 노출도가 높아지는 복장. 내게 내민 옷 꼬라지에 무심코 욕설을 내뱉었다. 그를 들은 김유진이 아쉬운 듯 투덜거렸다.
“…그래도 예쁠 것 같은데.”
“안 입어. 절대.”
미쳤냐고, 진짜.
아니, 그래. 노출도 자체는 그럭저럭 선을 넘은 수준은 아니었다. 길 가다 보면 가끔 보이는 패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보는 거하고, 내가 입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전투용 슈트도 아니고….’
슈트야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입었지만,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노출이 많은 복장을 입을 생각은 없었다.
예를 들자면 수영복 같은 느낌이다.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길거리에서 수영복을 입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전투용 슈트는 착용 시 운용하는 마나 일부를 흡수하는데, 그 상태에서는 몸을 덮는 면적이 늘어나므로 실질적인 노출도는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애초에 그럴 거면 그냥 전신을 덮는 게 낫지 않나 싶긴 한데….’
합리적인 트집이었지만, 어차피 의식적으로 마나 공급을 끊지 않는 이상, 마나 공급 자체는 자동으로 유지되니 딱히 큰 차이는 없었다. 물론 내가 마나 공급을 일부러 끊을 리도 없고.
‘아니, 몇 번 있긴 하지만.’
실기 시험 당시, 불침번 설 때 마나가 아까워서 끊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볼 사람이라고 해봐야 이도영뿐이었고.
‘뭐, 이것도 어찌 보면 정신승리긴 한데.’
아무튼 전투복도 꽤 망설였던 내가, 길거리에서 저 옷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입을 생각도 없었고. 굳건한 내 의지에 김유진이 아쉽다는 듯 물러섰다.
“아쉽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몇 벌의 후보군이 추려졌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곰곰이 고민하던 둘이 이내 이도영을 불렀다.
“도영아, 네가 골라보는 건 어때?”
“응? 나?”
“응! 우리가 여기서 하나만 고르기엔 힘들 것 같아서. 네가 골라 봐.”
‘아니, 내가 입을 옷을 나한테 물어봐야지.’
왜 쟤한테 물어보냐?
물론 내게 물어봤자 아무거나 좋다는 답변이 나왔겠지만.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이 고른 옷을 본 내가 작게 신음했다.
“치마…네.”
어깨가 드러나는, 흔히 오프숄더라고 하는 스트라이프 니트에, 새하얀 색의 플리츠 스커트. 그리 노출이 높은 복장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여태까지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응! 그러고 보니 시아 네가 치마를 입은 걸 본 적이 없어서.”
그야 없으니까. 정확히는, 몇 벌 있었지만 버렸다. 입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치마는 별로인데….”
“왜? 치마 싫어해?”
“그냥, 팔랑팔랑하니까. 나랑 별로 안 어울리잖아.”
치마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제하더라도, 내 성격상 팔랑거리는 치마는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뜻이 담긴 대답을 내뱉자, 이내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새침하게 노려보았다.
“지금 놀리는 거야?”
“…응?”
어째 화난 듯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내 손에 강제로 옷을 쥐여 준 김유진이 말을 이었다.
“일단 입어보고 말해!”
“아, 아니….”
“얼른!”
어째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탈의실로 향했다.
*
‘젠장.’
받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이걸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뭐. 통상 상태의 전투복에 비하면 선녀지만, 적어도 전투복은 하의는 바지였으니까.
괜히 짜증 섞인 시선으로 손에 들린 옷을 노려봤지만, 그런다고 옷이 사라지거나 불타버릴 리는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기도 잠시,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 입는다, 입어.’
아예 시작부터 거절했다면 모를까, 이미 입겠다고 했으면서 굳이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입는 거냐?’
도무지 옷에서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다리를 움직이자, 이내 팔랑거리는 치맛단에 황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살과 천이 스치는 감각이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시아야, 다 입었어?”
“…아니, 잠시만.”
입긴 다 입었지만, 도저히 나갈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허전하기 그지없는 감각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바람이 부는 순간 날아가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도저히 치맛자락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손을 꼼지락거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시아야?”
“…어, 지금 나가.”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의아함이 섞이기 시작한 김유진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열린 문에 의해 생긴 바람 탓에, 치마가 가볍게 팔랑거렸다.
“…!”
황급히 치마폭을 꾹 누른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김유진, 이도영, 백소월. 세 명의 시선이 내게 꽂히고 있었다. 그를 깨달은 순간 확 밀려온 수치심에 괜히 눈을 피했다.
“잘 어울리는데? 엄청 예뻐!”
“응, 되게 괜찮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야.”
분명 칭찬이었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괜히 더 심해진 수치심에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들려오지 않는 이도영의 목소리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순간이었다.
“….”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과 눈을 마주친 순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어색해서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도영아, 너는 어때?”
“…아, 되게 예뻐. 응, 잘 어울리네. 엄청 예뻐.”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질문을 들은 이도영이 대답했다. 정신줄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감상. 그 날것 그대로의 표현 속 섞인 감정에 결국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머….”
흥미롭다는 듯 추임새를 넣는 백소월. 귓가에 들려온 그 감탄사에 애꿎은 치맛단을 사정없이 구겼다.
‘아니, 제발…. 제발 좀.’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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