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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화 〉 나들이(7) (143/167)

〈 143화 〉 나들이(7)

* * *

공포 영화. 그 네 글자를 듣자마자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아는 공포 영화 싫어해?”

“별로. 좋아하진 않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공포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뭐, 무서워서 같은 이유는 아니다. 딱히 내가 그런 걸 무서워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내가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등장인물의 답답한 행동이었다. 주로 서양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성. 뻔히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주인공.

그런 호러 무비의 답답한 전개는 별로 취향이 아니었다. 보다 보면 스크린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리고 또,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더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연출. 그런 연출은 딱 질색이었으니까.

다시금 말하지만, 딱히 공포 영화를 무서워서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클리셰가 싫을 뿐이니까. 간략하게 설명을 마친 뒤,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른 영화는 없어?”

“있긴 한데….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어.”

“…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조리 매진된 좌석. 그에 한탄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하나 남은 영화의 장르를 입에 담았다.

“으음, 로맨스. 그럼 로맨스는 좋아해?”

“…싫어하는 건 아니긴 한데.”

공포보다는 나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로맨스는 지금 보기엔 곤란한 영화였다. 주로 이도영이라는 이유로.

‘얘하고 이걸 어떻게 보냐고….’

친구와 봐도 낯 간지러울 영화를, 이도영하고 같이 보는 건 조금 무리였다.

아니, 이도영이 친구가 아니란 건 아니지만. 아직 그런 쪽으로는 조금 불편하니까. 적어도 감정 공유가 해결되고 시간이 좀 지난다면 모를까.

“그럼 로맨스로 예약할까?”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머리가 슬슬 아파지기 시작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포 영화를 보느냐, 아니면 차라리 낯이 간지러워지는 걸 감수하고 로맨스 영화를 보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어느 쪽을 골라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선택지. 그에 끙끙거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잠시, 이내 결정을 내렸다. 차라리 공포 영화가 나을 것 같았다.

“…차라리 공포가 나을 것 같네.”

“응! 그럼 예약하고 올게!”

“그래, 그래라….”

어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기도 잠시, 이내 얼굴에서 느껴진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이도영이 따스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그 불쾌한 시선에 째릿 이도영을 노려보자, 이내 미안하다는 듯 이도영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한참 후, 예매를 마친 김유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째 꽤 오래 걸린 시간에 질문을 건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아, 응…. 문제가 좀 있었거든.”

“문제?”

어쩐지 시선을 피하는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응, 아무래도 떨어져 앉아야 할 것 같은데?”

“뭐?”

“두 자리만 붙어있는 자리는 많은데. 빈 좌석끼리 좀 떨어져 있어서. 셋이서 같이는 못 앉을 것 같아.”

아니, 이건 좀 곤란한데.

“그럼 다른 영화는?”

“로맨스 쪽도 똑같아. 오히려 로맨스가 더 좌석 수가 적더라구.”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김유진하고 내가 이어진 두 자리에 앉고, 이도영을 조금 멀리 앉힌다. 이도영에게 쬐끔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니까.

그리고 그 안이한 생각은, 이어진 김유진의 말을 듣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서 시아하고 도영이, 둘이 같이 앉아야 할 것 같아.”

“…뭐? 왜?”

5m 거리만 유지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희망도 잠시, 김유진이 담담하게 그 희망을 깨부쉈다.

“빈 좌석끼리 거리가 너무 멀어서. 5m를 넘어갈 것 같아서 그래.”

“아니….”

에반데.

*

­쿵!

“꺄악!”

스크린 속 영화에서 갑작스럽게 닫힌 문.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터져 나온 비명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귀청 떨어질 정도로 큰 비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영화의 주인공이 닫힌 문으로 다가갔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문을 확 열자, 이내 적막한 실내가 스크린에 담겼다.

‘아, 잠깐만….’

팝콘을 먹으려 고개를 돌리고 손을 뻗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에 집중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어느새 비어 있는 팝콘 통에 얼굴을 굳혔다.

‘언제 다 먹었대….’

바닥만 잡히는 통에서 손을 뺀 뒤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을 닫은 주인공이 뒤를 돌아보자마자 나타난 귀신. 괴기한 화장을 한 채 산발을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스크린에 가득 잡혔다.

“꺄아아아악!”

그 순간 귀를 가득 채우는 근처의 비명. 곧 나타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하필 이 타이밍일 줄은 몰랐다. 뻣뻣이 긴장한 몸을 겨우 풀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뻔했네.’

순간 놀란 탓에 마나를 끌어올릴 뻔했다. 하마터면 오늘 하루가 완전히 허사가 되어버릴 뻔한 상황에 작게 식은땀을 흘렸다. 그 순간이었다.

“…힉!”

갑자기 내 손을 잡은 무언가. 그에 식겁하며 옆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그 정체를 확인한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이도영의 손이었다.

“…왜?”

“무서워서. 안 될까?”

‘그런 말을 할 거면, 손은 떼고 하지 그러냐.’

무섭기는 무슨, 아직 감정 공유가 끊기지 않은 탓에 감정이 선명하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 뻔한 거짓말에 이도영을 흘겨보기도 잠시, 이내 또다시 스크린에 잡힌 귀신을 보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아니, 뭐. 전달만 안 될 뿐이지 무서울 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그리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니었지만, 그럴 확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정 크기 아래의 감정은 전해지지 않으니까, 그 정도로만 무서울 수도 있는 거지.

“고마워.”

그러기도 잠시, 환하게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뭐. 딱히 무섭진 않지만 그래도 흘러오는 감정 덕에 조금 긴장이 풀리긴 했다.

그렇게 스크린을 향했다가 괜히 빈 팝콘통을 향했다가, 또다시 이도영의 얼굴을 향했다가 이리저리 시선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유영하기도 한참.

­오싹

얼마 후, 슬슬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려던 시점이었다. 아까 전부터 조금씩 올라오던 위기감. 그 위기감이 갑작스레 등골을 쭈뼛하게 타고 올랐다.

오늘 하루,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입에 주워 넣은 탓에 조금씩 오기 시작한 신호. 그리고 그 신호를 자각한 순간,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요의가 순식간에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그냥 하루 굶을 걸 그랬나.’

별생각 없이 쭉쭉 들이켠 콜라를 떠올리며 빈 콜라잔을 노려보기도 잠시, 진동과 비명의 힘을 받은 욕구가 슬슬 위험 수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적인 수치심과 생리적인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순간이었다.

“시아야, 무슨 일 있어…?”

이 감정이 마주 잡은 손 탓에 전달된 듯, 걱정스러운 눈빛을 띤 이도영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그래, 걱정해주는 것 자체는 고마웠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반응이 오히려 더 쪽팔렸다는 점이다.

‘젠장…. 마나만 쓸 수 있었어도.’

생리 현상을 막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나를 썼다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버린다.

그 사실에 갈등하기도 잠시, 이내 주변에서 한 차례 더 비명이 터져 나온 순간, 생리적인 욕구에 굴복한 채 입을 열었다.

“…실.”

“응? 뭐라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

다행히도 좌석 위치 자체는 꽤 깊숙했지만, 가는 길에 노쇼 좌석이 몇 자리 있었던 덕에 다른 이들에게 크게 방해를 주진 않았다.

뒤쪽으로 향하던 중, 무슨 일이냐는 듯 이쪽을 향한 김유진은 눈짓으로 적당히 얼버무렸고.

그리고 지금, 그 역경을 거쳐서 화장실 안에 들어온 나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실 입구 바로 옆에 서 있을 이도영 때문이었다.

“아…진짜….”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차마 얼굴을 부여잡지는 못하고 이를 악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불안감이 확 솟구쳤다.

‘…설마 들리진 않겠지.’

물론 웬만하면 들리진 않을 것이다. 5m 거리 안팎이긴 하지만, 일단 이도영은 당연히 여자 화장실 입구 바깥에 있고, 나는 지금 화장실 칸 안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사이 놓인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엘릭서를 먹은 이도영의 신체 능력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청각.

그 불안감에 밀려오는 요의를 참으며 고뇌하던 순간이었다. 이내 내 시야 구석, 화장실 벽면에 설치된 기계장치가 눈에 띄었다.

“이거….”

대충 이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통칭 에티켓벨.

남자 화장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자 화장실에는 종종 설치되어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기능은 간단했다. 버튼을 누르면, 그…민감한 소리를 감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물소리를 재생해주는 기계였다.

‘이거, 그거 맞지…?’

처음 여자 화장실에서 이걸 발견했을 때 이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알아봤기에 기능 자체는 알고 있었다.

물론 이 몸에 빙의한 이후, 누군가 안에 있을 때는 화장실을 가기 꺼려졌던 탓에 직접 써볼 일은 없었다. 화장실이 북적북적할 경우, 그냥 마나를 끌어올려 버틴 뒤 나중에 해결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내게 이 물건은 구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에티켓벨이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도 많은데, 다행히도 대형 영화관인 덕분에 설치된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속으로 감사의 말을 읊조리며 버튼을 누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

예상치도 못한 소음. 그 어마어마한 음량에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바깥에 있는 이도영의 귀까지 확실히 들릴 크기. 그에 당황하기도 잠시, 황급히 생리 현상을 처리한 뒤 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도중 문득 든 생각에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런데 이거….”

의미가 없잖아.

그…런 소리를 처리하려고 쓰는 건데. 정작 저걸 써서 소리를 가리면 결국 지금 용변을 보고 있다고 광고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자, 이내 다시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 소리를 이도영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거울에 비친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애써 무시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이만 들어갈까?”

“그, 그래.”

문을 열고 나오자 내게 말을 건넨 이도영. 붉은 기가 가득한, 아까 거울에 비쳤던 내 표정과 비슷한 얼굴에 눈을 질끈 감았다. 복도로 나와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들었겠네. 아마.’

조용하기 짝이 없는 복도, 그리고 크게 소리를 막는 장치가 없는 화장실 입구. 아무리 봐도, 그 큰 소리를 막을 만한 방음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이내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

애써 모르는 척하는 이도영의 등을 노려보기도 잠시, 이내 밀려온 부끄러움에 시선을 내리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그래,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낫긴 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진짜 죽고 싶다. 그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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