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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화 〉 나들이(8) (144/167)

〈 144화 〉 나들이(8)

* * *

다시 상영관 내부에 들어선 뒤 자리에 앉았다. 슬슬 종막이 가까워진 영화. 긴박감 넘치는 스크린 화면을 흘깃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방금 그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도영은 스크린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하기야 눈이 마주쳤다간 다시 어색해지기에 십상일 테니, 어쩔 수 없긴 했다.

‘이제 손잡을 필요는 없나 보네.’

아까는 무섭다고 그러더니. 무서워하기는 무슨, 스크린에서 한시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묵묵히 손을 거둬 무릎 위에 올렸다. 서늘한 극장 내부의 공기가 치마 아래로 노출된 맨다리를 차게 식혔다.

그리고 한참 후, 상영관 내의 조명이 밝혀졌다. 곁눈질로 스크린을 확인하자,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시아야! 도영아!”

좌석 사이 계단으로 나오자, 이내 김유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빠르게 합류한 뒤, 상영관 밖으로 향했다. 영화 보는 내내 입이 근질근질했다는 듯, 활력을 되찾은 김유진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시아야, 영화 어땠어?”

“딱히, 그냥 그랬어.”

애초에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다 보니, 딱히 호평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로맨스보다는 낫겠지 라는 심정으로 고른 영화였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로맨스가 나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 하긴 나도 조금 별로긴 하더라!”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 말에 호응하듯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김유진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얘가 공포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심지어 오늘 좌석 배치를 보면 더더욱.

‘나는 그나마 같이 앉았지만.’

김유진은 아예 따로 떨어져서 봤으니까. 아마 상영시간 내내 벌벌 떨지 않았을까. 뭐, 나도 조금 무서웠던 장면이 있긴 했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김유진의 기를 세워주려 입을 연 순간이었다.

“뭐, 그래도 좀 무섭긴 했….”

“귀신이 하나도 안 무섭더라구.”

“…응?”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행히도 내 말을 못 들은 모양인지, 김유진이 이래저래 영화에 대한 혹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놀래키려는 게 너무 뻔하더라. 귀신 디자인도 너무 조잡하고. 기대작이라고 해서 고른 건데, 별로 안 무서웠어.”

“어, 그, 그러냐…?”

그…정도는 아니지 않나? 솔직히 좀 무섭긴 했는데.

무서워서 못 보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꽤 잘 뽑힌 공포 영화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뻔하긴 해도 그 클리셰만의 맛이 있는 법이니까.

‘아니, 물론 내가 놀랐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내가 보기엔 저 정도로 혹평할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김유진의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실제로 전혀 무서워하지 않은 듯한 표정에 괜한 패배감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으음, 그래도 나는 좀 무서웠던 것 같은데….”

‘그래, 솔직히 좀 무섭긴 했어.’

이쪽을 흘깃거리던 이도영이 꺼낸 말에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물론 엄청 무서웠던 건 아니지만, 중간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는 됐으니까.

“그래?”

“응, 꽤 무섭더라고.”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이도영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의외로 이도영이 가장 공포 장르에 내성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무섭다고 손도 잡아 달라고 했으니.’

물론 딱히 무서워하는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말하는 걸 보니 꽤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뭐, 그래도 유진이 말대로 엄청나게 무섭진 않더라. 볼 만은 했어.”

두 의견을 절충해서 내린 감상. 나름대로 합리적인 감상이었다. 딱 평작에서 수작 사이의 공포 영화였으니까. 그리고 그 냉철한 감상은,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그래?”

‘아니, 뭐? 왜?’

내 말을 듣고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과 김유진. 괜히 나빠진 기분에 작게 눈가를 좁혔다.

*

다음 목적지는 카페였다. 김유진이 주장하기를, 영화를 봤으면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나? 솔직히 딱히 이해가 가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카페 내부. 취향에 따라 주문을 마친 뒤 자리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이도영에게 눈총을 주기도 잠시, 이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뭐, 이제 와서 이러기도 뭐하지.’

어차피 영화관에서 이미 같이 앉았는데, 카페 안이니까 떨어지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했다. 혼자 어색해진 기분을 꾹꾹 눌러 담은 순간, 김유진의 입이 열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에는 어떻게 할 거야?”

“밤?”

“거리 제한 말이야. 옆방이니까 괜찮을까?”

고개를 갸웃한 내게 이어진 질문. 그 말을 듣고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점에 관해서는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다.

“내 방에서 잘 거야.”

각방을 쓰는 건 떨어질 위험이 있으니 기각. 그렇다고 이도영의 방에서 자는 것도 무리였다.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이라도.

뭐, 그렇게 되었으니 결국 남는 건 내 방밖에 없었다. 아예 다른 방을 빌리는 것도 고려는 해봤지만, 저택 내부에서 그런 곳을 찾아 달라고 하기엔 좀 민폐라서. 어차피 하루밖에 안 쓸 텐데.

‘그렇다고 나가서 잘 수도 없고.’

애초에 김유진의 저택에서 지내는 이유부터 안전 때문인데, 고작 어색하다는 이유 하나로 나가서 잘 수는 없었다. 본말전도도 그런 본말전도가 없을 테니까.

“…으, 응?”

그러기도 잠시,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빛살처럼 이쪽을 향했다. 당황한 시선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김유진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갑작스레 일어난 침묵. 괜히 나까지 당황하게 되는 분위기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 시…시아야?”

“왜?”

“방에 침대는 하나뿐인데…. 어떡하려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바닥에서 재우면 되지.

“바닥에서 자면 되잖아.”

“아, 그, 그러네. 응….”

태연하게 대꾸를 마치자 이내 그를 들은 김유진이 긴장을 풀었다. 그 이상행동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그 이유를 깨닫자마자 김유진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니, 같이 잘 리가 없잖아.”

“여, 역시 그렇지?”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애써 맞장구를 쳤다. 뭔가 아쉽다는 기색이 보인 것 같지만, 잘못 본 거겠지.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 주문한 메뉴를 받아 가라는 진동벨이 울렸다.

­우우웅!

“아, 내가 가져올게!”

내 시선이 조금 따가웠는지 쏜살같이 일어난 김유진이 카운터로 향했다.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바라보았다.

“…아.”

그 순간, 이쪽을 바라보는 눈과 시선이 마주했다. 눈빛이 오가기도 잠시, 이내 미묘하게 부끄러워진 기분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하아….’

김유진이 과하게 반응한 탓에, 괜히 나까지 어색해진 모양이었다. 속으로 김유진을 탓하며 괜한 테이블만 빤히 바라보았다.

*

뭐, 주문을 가져오는 데 오래 걸릴 리는 없었다. 금세 돌아온 김유진이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저녁이라는 시간대를 감안한 듯, 커피를 시킨 이는 없었다. 나는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 이도영은 오렌지에이드, 그리고 김유진은 디카페인 쿠키 프라페. 주문한 음료를 들고 한 모금 쭉 들이켰다.

‘뭐, 괜찮네.’

새콤하면서도 달달한 맛. 물론 단맛이 훨씬 강하긴 했지만. 뭐, 나쁘진 않은 맛이었다. 같이 나온 조각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입맛이 좀 변한 것 같은데.’

원래는 그리 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단맛을 자꾸 찾게 되는 기분이었다.

뭐, 이 몸의 입맛이라고 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변화를 깨닫게 되는 건 꽤 묘한 기분이었다. 물론 빙의 이후 변한 게 이 하나뿐만은 아니었지만.

흘깃 이도영과 김유진을 살피며 케이크를 한 조각 더 먹어 치웠다. 달달한 당분이 혀끝을 타고 전해지는 걸 느끼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기도 잠시, 어느새 빈 접시를 내려다보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빨리도 먹었네.’

살짝 아쉬운 기분에 접시를 힐끗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괜찮으면, 내 것도 먹을래?”

“…응?”

“난 단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 그럼 잘 먹을게.”

그렇게 말하며 접시를 살짝 이쪽으로 밀어주는 이도영. 그에 묘한 시선을 보내기도 잠시, 이내 케이크를 받았다. 뭐, 준다는데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자, 여기 냅킨.”

다시 입에 케이크를 넣던 도중 입가에 조금 묻은 크림. 냅킨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이도영이 냅킨을 몇 장 뽑아 내게 건넸다.

“고마워.”

감사의 의미를 담아 가볍게 고개를 까딱인 뒤 입을 훔쳤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탁

절반 정도 남은 케이크를 내버려 두고 김유진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건넸다.

“더 안 먹어?”

“응, 너무 달아서. 조금 먹기 힘드네.”

‘그렇게 달았나?’

내 체감상으로는 그리 달지는 않았는데, 김유진은 또 달랐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음료도 달콤한데 케이크도 다니까, 궁합으로 따지면 그리 어울리진 않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케이크를 전부 먹은 순간이었다. 이내 텐션을 되찾은 김유진이 질문을 건네왔다.

“그나저나 도영이랑 시아는, 집에 가면 바로 잘 거야?”

“음…. 아마?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아니면 뭐, 따로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따로 할 거라도 있냐는 내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 뭘 할 거냐는 이도영의 새 질문을 받은 김유진이 이내 작게 속삭였다.

“괜찮으면…술 한 번 마셔보지 않을래?”

“술?”

아니, 뭐. 상관은 없는데. 갑자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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