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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 나들이(10) (146/167)

〈 146화 〉 나들이(10)

* * *

새삼스럽지만 여태 이도영의 머릿속에서 유시아의 이미지는 꽤 많은 변화를 겪은 편이었다.

첫 만남과 그 이후 한 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쌓였던 신비감에서, 최근 고백 이후 급격히 비중이 늘어난 부끄럼을 타는 모습까지. 다양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왔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오늘의 경험 또한 그에 기여하고 있었다.

상어를 꽤 좋아한다는 점, 치마를 부끄러워한다는 점, 의외로 공포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는 점.

사소하다면 사소한 정보에 불과한 것들이었지만, 그 사소한 정보조차 부족했던 이도영에게 있어 그러한 정보는 꿀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도영은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하나 더 머릿속에 추가할 수 있었다.

“얼른. 팔 아파.”

옅은 미소가 깃든 표정으로 이쪽을 향하는 유시아의 시선. 살짝 풀린 눈이 제 꼬리를 작게 휘어 눈웃음을 그린다.

거기에 더해, 취기로 살짝 달아오른 얼굴까지 합쳐져 묘한 퇴폐미를 형성한 유시아가 이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잡아줄 거야?”

살짝 풀린 발음이 오히려 나른하게 읊조리는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마치 녹은 꿀처럼 끈적이는 목소리가 이도영의 귀를 간질였다.

느릿하게 살짝 고개를 갸웃한 유시아가 이도영을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겨우 정신을 차린 이도영이 되물었다.

“…잡아도 돼?”

감정 공유가 해결될 때까지 신체 접촉을 자제해 달라던 말. 그를 떠올린 이도영의 질문에 대답하듯 유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분명 순수하게 웃는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야릇한 분위기에 이도영이 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유시아의 허락이 떨어졌다.

“응, 잡아도 돼.”

“…그럼.”

애써 긴장을 지워내며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이 유시아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밀려온 재미있다는 감정에 휩쓸리기도 잠시, 이내 고개를 휘휘 저은 이도영이 유시아가 일어서는 걸 도왔다.

“…으음.”

마주 잡은 손에 살짝 힘이 실리고, 이내 몸을 일으킨 유시아가 이도영을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시선 탓에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기분에 이도영이 눈을 피했다.

하지만 이도영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마주 잡은 손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후훗.”

“…가자.”

귓가에 들려오는 짓궂은 웃음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도영. 그에 고개를 끄덕인 유시아가 같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기도 잠시, 이내 깍지를 껴오는 마주 잡은 손에 이도영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시, 시아야?”

“왜?”

“그…손이….”

단순히 마주 잡은 게 아니라 깍지를 낀 탓에 혼자서는 풀 수도 없는 두 손.

그에 당황한 눈으로 고개를 돌린 이도영의 눈에 담긴 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유시아의 얼굴이었다.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그러면 좋아?”

여태 부끄러웠던 경험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듯 적극적으로 자신을 놀리는 유시아. 여태 겪어본 적 없는 행동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병문안 당시 손가락으로 배를 콕 찔러보거나, 김유진의 볼을 쿡 눌러보는 등의 행동으로 어느 정도 장난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좀 과했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대답을 재촉하는 유시아의 시선에 이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기엔 이미 감정이 전해졌을 테니,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나도 좋아.”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 모습을 본 유시아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대며 웃었다. 마주 잡은 손에서 밀려오는 감정에 이도영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많이 취한 것 같아. 들어가자.”

“그래, 가자.”

요 며칠간 있었던 구도, 이도영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는 유시아라는 구도가 정반대로 되어버린 광경. 아니, 그보다 더했다.

적어도 그때는 이도영도 가끔 부끄럼을 타긴 했지만, 지금 유시아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으니까.

유시아의 행동에 의해 순식간에 정신력이 마모되는 걸 느낀 이도영이 발을 재촉했다. 그리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계단을 보며 배시시 웃은 유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계단이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대답에 침묵하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유시아의 말의 이도영의 얼굴이 다시 당황으로 물들었다.

“업어줘.”

“업어 달라고?”

“응, 다리 아파.”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굳이 마주 잡은 손에서 느껴진 감정을 댈 것도 없이, 그 말을 뱉은 표정에서 이미 장난기가 흘러넘치고 있었으니까.

“응? 업어줘.”

“…안 돼.”

놀림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보채는 유시아를 겨우 거절하자, 이내 알겠다는 듯 유시아가 한발 물러섰다. 그에 이도영이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그러면 이러고 가야지.”

갑작스럽게 팔짱을 껴온 유시아의 행동에 이도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팔에서 느껴진 말캉한 감촉. 하필 아까 전 파자마로 갈아입은 탓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이도영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자, 가자.”

그 반응을 모를 리 없는 유시아가 모르는 척 태연하게 이도영을 재촉했다. 급격히 빨라진 심박수에 이도영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겨우 정신을 되찾은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올라가자.”

애써 붉어진 얼굴을 숨기는 이도영에 유시아가 풋 웃음을 흘렸다. 그 표정에서 감도는 묘한 색기에 이도영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

“아, 방이네.”

온갖 번뇌를 이겨내고 방에 도착한 이도영이 유시아의 팔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다행히도 방에 정신이 팔린 덕에, 유시아가 그 행동을 방해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응, 방이야. 이제 양치만 하고 자자.”

“자야지…. 응….”

걸음을 옮긴 탓에 취기가 더 올랐는지, 늘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실에 들어섰다. 유시아가 양치하는 틈을 타 이도영이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온 유시아의 뒤를 이어 이도영이 양치를 끝냈다. 양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유시아를 이도영이 흘깃 바라본 순간이었다. 이내 다시 짓궂은 표정을 지은 유시아가 입을 열었다.

“같이 잘래?”

“…뭐라고?”

유시아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폭탄 발언에 이도영이 기침을 토해냈다. 연신 콜록거리는 이도영을 보며 유시아가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린 이도영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아직도 제 흐름을 찾지 못한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 느끼며 혼비백산한 정신을 진정시키기도 잠시, 이내 대답을 들은 유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왜, 왜라니….”

“마법을 빨리 마치려면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며.”

“그, 그렇긴 한데….”

“그리고 저번에도 같이 잤잖아.”

생각보다 집요하게 이어지는 대화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재차 반대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도 그건 안 돼. 그런 건 조심해야지….”

“조심해? 뭘?”

애써 얼버무린 부분을 물어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얼굴을 붉힌 이도영이 겨우 말을 이었다.

“그…나도 남자니까. 그런 건….”

“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유시아의 모습에 이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 타이밍이 조금 많이 일렀다.

“그건 괜찮은데.”

“…뭐?”

순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답에 이도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얗게 변한 머릿속에 순식간에 폭죽처럼 생각이 터져 나왔다. 잠깐 진정했던 심장이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긴장으로 뻣뻣이 굳은 얼굴로 물어오는 이도영을 본 유시아가 배시시 웃었다. 잠시간 이어진 침묵에 이도영이 숨을 참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유시아의 말이 이어졌다.

“싫다고 하면 안 그럴 거잖아. 아니야?”

천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유시아를 본 이도영이 말을 잃었다.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기묘한 기분을 갖기도 잠시, 술에 취했다고 해도 현저하게 위기감이 부족한 태도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그렇긴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 또한, 저번에 먹은 영약 덕에 술에 전혀 취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유시아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니까 괜찮아.”

“….”

아니, 지금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에 담긴 신뢰를 본 이도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고삐 풀린 심장이 미친 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한 당황이 밀려오는 대화에 신음하기도 잠시,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안 돼. 그만 자자.”

“진짜 안 올라올 거야?”

“응. 안 올라갈 거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을 본 유시아가 이내 알겠다는 듯 침대에 누웠다. 의외로 빠른 포기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불을 끈 이도영이 이불에 몸을 뉘었다.

눈 뜬 시야에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 겨우 긴장을 풀고 다시 눈을 감은 이도영이 점점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던 도중이었다.

­삐걱

‘응?’

침대에서 들려온 삐걱거리는 소리가 이도영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따뜻한 무엇인가가 이도영의 곁에 달라붙었다.

그 순간 밀려온 익숙한 감각에 멀어졌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온 이도영이 눈을 부릅떴다.

“…시, 시아야?!”

“응. 왜?”

태평한 목소리의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을 들은 이도영은 전혀 태평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졸음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리자, 이내 장난기 섞인 유시아의 표정이 어둠을 넘어 이도영의 눈에 담겼다.

“안 올라온다고 해서. 내가 내려왔지.”

그 말을 내뱉은 유시아가 이도영에게 조금 더 밀착했다. 말캉한 감촉, 유시아의 턱이 자리 잡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더운 숨결.

그 한계를 넘은 자극에 순식간에 사고회로가 터져버린 이도영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덥석

몸을 일으키려던 이도영의 옷깃을 유시아의 두 손이 잡아채고, 균형을 잃은 이도영이 다시 베개 위에 쓰러졌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눈을 뜬 이도영이 소리 없이 경악했다.

“…!”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에 머릿속이 하얘지기도 잠시, 이도영을 마주 보던 유시아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가지 마.”

달콤하게 늘어지는 목소리. 듣는 순간 힘이 빠져버리는 미성에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이도영이 긴장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 이도영을 본 유시아가 배시시 웃었다.

“후후.”

어딘가 요염한 웃음소리에 이도영의 몸이 작게 떨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유시아의 행동에 떨리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으으응….”

이도영의 얼굴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유시아의 얼굴이 점점 내려가고, 잠시 후 이도영의 쇄골 부근에 유시아의 이마가 맞닿았다.

그리고 이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유시아가 쌕쌕 숨을 쉬었다.

“….”

여전히 하얗게 물들어 있는 머릿속 탓에 멍하니 누워있기도 잠시, 이내 상황을 인지한 이도영이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고르게 변한 호흡이 여전히 가슴팍을 간질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자라고….’

벗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꽉 잡힌 몸에 겨우 손을 빼낸 이도영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밤은 길었다. 이도영에게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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