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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 비밀(2) (148/167)

〈 148화 〉 비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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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무튼 그렇게 감정 공유는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어색함이라는 부작용이 남긴 했지만, 그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애초에 동침 자체는 처음이 아니기도 했고.

물론 행동 자체를 제외하면 그 상황부터 전개까지 모두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이미 한 번 경험한 일. 두 번 경험했다고 또다시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전부 떨어버려서 더 떨 호들갑이 없다는 표현이 맞겠지.

아무튼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날이 지남에 따라 그 어색함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하기야 벌써 2주가 넘게 지났으니까.’

물론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고백 이전까지 돌아가는 건 무리였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눈만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거나 하는 수준은 벗어난 지 오래였다.

실제로 지금, 아침 식사 전에 방문 앞에서 인사할 때는 되게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이도영의 행동 변화도 한몫을 했다. 그날 이후, 딱히 행동으로 크게 티를 낸 적이 없었던 덕에, 적어도 괜히 어색한 분위기에 접어드는 일은 크게 줄었으니까.

아마 이 관계가 계속되기만 한다면, 사관학교에 돌아간 뒤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다 보면 언젠가 결국 지친 이도영이 마음을 포기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조금 있었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간다는 나무 없다지만, 나무가 아니라 철벽이면 얘기가 또 다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이도영을 흘깃 바라보았다.

어느새 키가 더 컸는지, 이전에 비해 한 뼘은 머리가 높아진 것 같았다. 왠지 모를 굴욕감에 작게 눈가를 좁혔다.

‘나는 더 안 크나?’

물론 성별에 따른 신장 차가 있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괜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은 각성 전이 그리워질 정도로.

‘그때는 내가 더 컸는데.’

그리고 키도 키지만 그 외에도 이도영의 외형에서 달라진 건 많았다. 검술을 익히면서 몸에 근육도 꽤 붙었고, 어깨도 벌어진 게, 인상 자체가 꽤 다부지게 변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험악하게 변한 건 아니고, 외모 자체는 여전히 뛰어나긴 했지만.

‘…뭐, 못생긴 것보단 낫긴 하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기왕이면 잘생긴 편이 보기 좋긴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요즘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기생오라비 같은 느낌은 아니니까.’

엘릭서를 막 먹였던 날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정도로 발달된 신체.

확실히 막 엘릭서를 먹인 날과는 달리, 얼마 전에는 가슴팍에 머리를 묻었을 때 꽤 탄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니, 그런데 이딴 걸 왜 품평하고 있냐.’

삼천포로 새어버린 생각을 흩어버리려 고개를 작게 휘저었다.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살짝 피가 쏠렸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시아야, 무슨 할 말 있어?”

“어? 아, 아니. 없는데.”

“…그래?”

아무래도 흘깃흘깃 바라본 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도영이 내게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에 황급히 고개를 젓자, 알겠다는 듯 이도영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휴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민망함에 살짝 붉어진 얼굴을 되돌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드디어 B+인가.”

과녁에 빽빽하게 꽂힌 화살을 뒤로 한 채 작게 중얼거렸다. B+. 시스템의 보정이 없는, 순수한 내 실력도 벌써 그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가져온 보람에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뭐, 그래도 시스템이 없었으면 당연히 무리였겠지만….”

B+의 궁술이라는 건, 활 한 번 잡아본 적 없던 놈이 고작 몇 달 만에 다다를 만큼 쉬운 경지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도영이나 다른 주연들에게는 그리 먼 경지까진 아니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었다. B랭크만 해도 사관학교 태반은 졸업할 때나 되어야 눈에 보일까 말까 한 경지였으니까.

‘엄밀히 따지면 주인공 일행이 규격 외인 거지.’

B랭크만 해도 기(?)의 사용이 가능한 경지이니, 어디 가서 크게 꿀릴 만한 수준까진 아니라는 거다.

여기서 잠시 기(?), 강(?), 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는 B랭크, 강(?)은 A랭크, 그리고 강(?)은 S랭크라는 경지의 증명이나 다름없는 힘이다.

먼저 기(?)는 단순히 무기에 마나를 싣는 걸 넘어,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칭하는 표현이다. 요약하자면 유형화(??化).

참고로 마력 화살은 최소 B랭크에 이르러야만 쓸 수 있다.

그리고 강(?)은 형태를 이루는 걸 넘어, 그 힘을 일점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요약하자면 압축(??).

이 정도의 실력자는 꽤 드문 편이다. 웬만한 중견 길드의 마스터나 대형 길드의 고위직 정도는 되는 이들이니까.

마지막으로 강(?)은 설명하기 좀 까다롭지만, 간단히 비유하자면 전공이라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여러 과목을 다양하게 배우지만 대학교에서는 한 분야에 특화된 지식을 배우는 것처럼, 자신에게 특화된 성질을 찾아내 마나에 깃들이는 것. 그게 강(?)이다.

‘그게 쉽지 않은 게 문제지만.’

자신에게 특화된 성질을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진짜 어려운 부분은 그걸 마나에 적용하는 영역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성질을 찾는 게 전공 공부라면, 그걸 마나에 깃들이는 건 논문 작성에 빗댈 수 있겠지. 물론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얼개를 파악하는 데는 이 정도 비유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시스템 보정 없이 B+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건 꽤 많은 걸 의미한다.

적어도 사관학교 자체 이벤트에서는, 더는 시스템에 마나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전투에 쓰인 마나는 보충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나 소모가 극적으로 줄어든 덕에 전투 지속력이 크게 올라간 건 사실이었다. 즉, 이도영이 없어도 단기전만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실기 점수가 좀 더 올라가겠네.’

대신 헤르메스가 없어졌으니, 필기 점수는 수직으로 떨어지겠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관학교 성적 따위, 딱히 크게 신경 쓴 적도 없으니까.

생각도 잠시, 이내 활을 내려놓았다.

평소의 수련 시간에 비해 조금 빨리 끝난 감이 있긴 하지만, 경지를 뚫었으니 오늘 하루는 이쯤 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김유진이 없는 것도 빠른 종료에 한몫했고.

‘미안!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수련 못 할 것 같아!’

오늘 아침 들었던 김유진의 말을 떠올리며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같은 반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나?

뭐, 나와는 다르게 이도영이나 김유진은 다른 1학년들과도 꽤 친했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처럼 인간관계가 협소한 쪽이 비정상이지.

‘그래도 어째 좀 그렇긴 하네.’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좀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심한 건 아니고 가벼운 투정 정도지만, 조금 소외감이 들긴 했으니까. 유치한 질투에 피식 웃음을 흘린 뒤 고개를 저었다.

“뭔 궁상이냐.”

이럴 시간에 차라리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겠지. 생각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저택 근처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시야 한구석 멀리, 사유지 입구 쪽에 보이는 익숙한 적발에 걸음을 멈췄다.

‘벌써 왔나 보네?’

생각보다 빠른 귀환 시각에 작게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적발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익숙한 색상. 익숙한 머리색에 얼굴을 굳혔다.

선명한 녹발. 이도영의 머리색이었다.

“…응?”

분명 지금 시간이면 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인지 김유진과 같이 저택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

유감스럽게도 거리 탓에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사유지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건 아닌 것 같았다.

‘…약속이란 게.’

설마 이도영이랑 잡은 거였나?

아니, 아직 속단할 수는 없었다. 입구에서 마주친 게 아니더라도, 이 근처에서 마주쳐서 같이 왔을 확률도 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김유진의 성격상, 나만 따돌리고 둘이서 데이트를 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 데이트 말이지….’

머릿속에 피어난 의심을 꾹꾹 짓누르며 가만히 그 둘을 지켜보았다. 겨우 이 정도로 판단하기엔 여전히 근거가 현저히 부족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둘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둘이서 뭐라고 몇 마디를 나누더니, 이내 두 갈래로 갈라져서 각자 걸음을 옮긴다. 이도영은 저택 쪽으로, 김유진은 수련장 쪽으로.

마치 같이 있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것 같은 움직임에 살짝 눈썹을 꿈틀했다.

‘수련장으로 오는 건…나 때문이겠네.’

내 얼굴을 보러 오는 거겠지. 그 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빠르게 발걸음을 뒤로해 다시 수련장을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김유진보다 먼저 수련장에 돌아와 휴식하는 시늉을 취하던 도중이었다.

“시아야!”

“…왔어?”

“응! 쉬고 있었어?”

“어, 오늘 수련은 끝냈거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김유진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내 반응을 본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그래?”

“…땀. 많이 흘렸으니까.”

“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평소와 하나 다를 바 없는 모습. 그 변함없는 태도에 작게 피어난 의심을 떨쳐버렸다.

‘뭐, 착각이겠지.’

입구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는 거니까. 애초에 김유진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얘네 둘이 사귄다고 해도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도영이 내게 마음을 접었다는 뜻이니, 오히려 호재라면 몰라도.

‘아니, 마나 회복하기 눈치 보일 테니 그건 아닌가.’

그리고 굳이 마나 회복이 아니더라도, 친구 사이에 트러블이 생길 만한 이슈이긴 하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호재는 아니었다.

생각도 잠시, 이내 김유진을 보며 지나가듯 입을 열었다. 뭐, 간단히 확인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나저나 오늘 뭐 하고 놀았어?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면서.”

“응? 아…. 으음….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고 그랬지.”

묘하게 딜레이가 걸리는 대답. 그에 떨쳐버린 의심이 다시 올라오려는 걸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수련 끝났으면, 더 할 건 없는 거야?”

“어, 이만 들어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키자, 이내 김유진이 다시 웃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재잘대는 말에 적당히 어울려주며 티 나지 않게 김유진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이 사귈지도 모른다는 건가.’

그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막상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지금 이렇게 가능성을 마주하고 보니, 어쩐지.

“….”

어째서인지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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