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비밀(3)
* * *
저택으로 돌아온 후, 저녁 식사를 마치기까지, 명백한 연애의 징후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가정, 이도영과 김유진의 연애라는 가정의 신뢰도가 한 단계 내려갈 정도로.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이도영은 평소 그대로였지만.’
김유진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으니까. 명백하게 무엇이 이상하다. 그런 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오늘 수련장에서의 대화 이후, 마치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행동이 조금씩 눈에 잡혔으니까.
물론 그 자체로는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굳이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훈련을 빼먹은 게 괜히 미안해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 기분이 조금 불편하다는 걸 눈치챈 걸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티는 안 내려고 했지만, 김유진은 꽤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아니, 그건 좀 애매한가.’
눈치는 빠르지만, 눈치를 안 보는 경우도 잦았으니까. 뭐, 애초에 그런 성격이었으니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주제를 되돌리자면, 따져보면 합당한 핑계는 널려 있었지만, 그래도 김유진의 태도가 조금이나마 눈에 밟혔다는 거다. 완전히 의심을 지우지는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이도영과 김유진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밝힐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묻기도 전에 미리 털어놨을 테니까.
반대로 숨기려고 한다면,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대답할 리가. 물론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예전처럼 원작에 휘둘리는 판단은 아니지만, 일단 히로인과 주인공이라는 관계였기도 하고.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렇다는 점에서 의심해볼 여지 자체는 충분했다.
물론 작은 의심일 뿐이지 확정된 건 아니었으니, 벌써 단정 지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게 도리일 테니까. 애초에 김유진이 오늘 만난 사람이 이도영이라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
그런 점에서, 마나 회복 시간은 오늘 이도영의 스케줄을 확인하는데 꽤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도영이 오늘, 평소처럼 수련했을 뿐이라면 애초에 내 가설은 망상에 불과해지는 셈이니까.
‘일단, 가보는 게 맞겠지. 그럼.’
생각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
똑똑
이도영의 방문을 두 번 노크한 뒤 대답을 기다렸다. 평소의 이 시간대는 항상 마나 회복을 하던 시간이었기에, 딱히 용건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만!”
이윽고 안에서 대답이 흘러나오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이도영의 뒤쪽,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을 보며 질문을 건넸다.
“공부하고 있었어?”
“응, 곧 다시 개학할 테니까. 슬슬 준비해야지. 그리고 새로 익힐 마법도 있고.”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아냐! 다 끝나가는 중이었으니까! 아, 일단 들어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기는 이도영의 뒤를 따라 방 안에 들어갔다.
뭐, 이제는 딱히 이도영의 방에 들어간다고 해서 어색하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이미 한참 들락날락했으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방 안에 들어선 뒤, 슬쩍 주위를 살핀 후 침대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그 와중에 살짝 말려 올라간 치맛단을 다시 정돈한 뒤, 책상을 정리하는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아, 왜 치마를 입고 있냐고?
뭐,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입다 보니 꽤 편하기도 했고, 사 놓고 안 입기도 그랬을 뿐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지금 입은 옷은 그때 처음으로 산 옷이었다. 스트라이프 니트에 플리츠 스커트.
‘확실히 편하긴 해.’
물론 움직일 때 조금 신경 쓸 필요는 있지만, 그 대신 바지에 비해 갑갑함이 훨씬 적었으니까. 격한 활동이 없는 일상생활 중에는 치마가 오히려 더 편안했다.
물론 돌핀 팬츠 같은 핫팬츠 류 바지라면 오히려 치마보다 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아직 정신적으로 무리였으니까.
“끝났어?”
“응. 기다리게 해서 미안.”
생각도 잠시, 이내 정리를 마친 이도영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손짓으로 왼쪽에 앉으라는 뜻을 전하자, 이내 조금 떨어진 곳에 걸터앉는다. 미묘하게 벌어진 거리에 살짝 눈가를 좁혔다.
“너무 먼 거 같은데.”
“…그런가?”
엄청 멀지는 않았지만, 손을 잡기 힘들 정도로는 먼 거리였다.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약간 더 가까이 다가왔다.
“….”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좁혀진 거리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반응을 본 이도영이 조심스레 내게 손을 내밀었다. 편할 때 잡으라는 듯 내 옆에 놓인 손을 가볍게 포개어 잡았다.
“…그래도 좀 불편하네.”
“그럼 탁자로 갈까?”
침대에 앉아서 마나 회복을 한 건 처음이었던 탓에 자세가 조금 불편하긴 했다. 벌어진 거리 때문에 팔을 좀 벌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의 대답에 고개를 젓고 몸을 일으켰다.
“됐어. 이러면 되니까.”
걸음을 옮겨 이도영의 오른쪽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살짝 당황한 기색을 모른 척하며 깍지 낀 채 마주 잡은 손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다.
“….”
흔들리는 시선을 무시한 채 고개를 살짝 내려 마주 잡은 손을 내려보았다. 허벅지 맨살에 맞닿은 이도영의 손등이 꽤 까슬까슬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깍지를 풀었다. 어느새 거칠어진 이도영의 손이 눈에 띄었다.
‘검술 수련 때문인가.’
이전의 깨끗하던 손과는 다른 거친 손.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내 손을 움직였다.
이도영의 손등 밑에 왼손의 네 손가락을 끼워 넣고, 왼손 엄지로 손바닥을 누른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이도영의 손에 잡힌 굳은살을 가볍게 매만졌다. 검을 잡으면서 배긴 굳은살이었다.
네 손가락 밑에 배긴 굳은살을 쿡쿡 찔러보고, 손가락 마디에 배긴 굳은살을 만지작거린다. 약지와 소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으로 이도영의 손가락을 꾹꾹 눌러본다.
그러던 도중 느껴진 묘한 감흥에 작게 중얼거렸다.
“…딱딱해졌네.”
“…뭐, 뭐?”
보기에만 바뀐 게 아니라는 듯한 딱딱한 감촉이 꽤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빙의 이후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많은 게 바뀌었다는 걸 깨닫는 건 꽤 신기한 일이었다. 원작에서는 아직 이도영이 검술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을 시점이었으니까.
“굳은살도 많이 배겼고.”
“아….”
어째서인지 한숨을 내쉬는 이도영의 반응을 뒤로하고 장난치듯 손을 계속 꾹꾹 눌렀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살살 문질러도 보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마사지하듯 눌러도 본다.
묘한 재미에 괜히 열중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얼굴을 살피고 장난을 그만두었다. 조금 불편한 듯 붉어진 안색에 다시 입을 열었다.
“검술 수련도 열심히 했나 보네. 굳은살이 배긴 거 보면.”
“…응, 빨리 강해지기로 했으니까.”
“…그래.”
오랜만에 나온 고백 당시의 화제에 조금 어색해지기도 잠시, 이내 분위기를 깨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무리하지는 마.”
“무리는 아니야. 할 수 있어서 하는 거니까.”
“그러면 됐고.”
몇 마디 오가지 않고 다시 끝난 대화. 평소대로의 대화였지만, 반쯤 목적한 흐름이기도 했다. 화제를 이어가려는 척 태연하게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오늘 수련은 어땠어?”
“오늘?”
“어. 저번에 한 번 보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고민에 잠겼다. 대답을 고민하는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도영의 입이 열렸다.
“으음…. 저번에 봤던 검술 수련에 마법 수련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면 돼. 가끔 김시우 님이 특성 관련해서 연구하실 때 참여하기도 하고. 오늘은 아니지만.”
“…그럼 오늘은 연구는 없이 수련만 한 거야?”
“응.”
태연하게 대답하는 이도영의 모습에 이해한 척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지기도 잠시, 이내 화제를 돌리는 이도영의 말에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
“오늘도 고마웠어. 잘 자.”
“응, 시아 너도 잘 자.”
마나 회복을 끝내고, 이도영과 인사를 마친 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수련만 했다고….’
내 질문에 대답한 이도영의 말을 떠올리며 작게 얼굴을 굳혔다. 오늘은 연구가 없었다고 했으니, 이도영이 일찍 온 이유 자체는 설명이 됐다. 빈 시간이 생겼으니 일찍 온 거겠지.
물론 이도영 정도 수련광이 빈 시간에 수련을 더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나도 오늘 수련은 좀 일찍 끝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늘 이도영이 실제로 수련을 했다는 가정하에서 말하는 거고.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오늘은 마나가 안 느껴졌어.’
수련한 날 저녁에는 항상, 권능을 사용한 여파로 인해 이도영의 몸에서 조금씩 마나가 흘러나왔었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으니까.
즉, 둘 중 하나라는 거다. 수련은 했지만, 권능은 사용하지 않았거나, 애초에 수련하지도 않았으면서 했다고 내게 거짓말을 했거나.
‘…왜?’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수련을 쉬었다고 내가 뭐라고 할 성격도 아니고, 이도영이 허세를 부릴 성격도 아니니까.
그리고 허세가 아니라면, 굳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오늘 한 일을, 나한테 숨기려고?’
그리고 이도영이 오늘 한 일로 추정되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야?”
여러 단서가 조합되어 가리킨 하나의 사실. 마치 퍼즐처럼 드러난 사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