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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화 〉 비밀(5) (151/167)

〈 151화 〉 비밀(5)

* * *

저녁 이후 이도영을 확인해 본 결과, 어느 정도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오해였다는 걸 입증하듯, 딱히 이도영에게서 이상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냥 같이 있어서 몸에 밴 수준이었나 보네.’

그리고 오늘 저녁, 잠시 김시우가 근처에 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 딱히 신체 접촉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김유진이 또 자리를 비웠으니까. 어제와 똑같은 핑계였다.

“…오늘도 특훈이라고?”

“응…. 아무래도 며칠은 같이 수련 못 할 것 같아…. 미안….”

요 며칠 계속 대마법사와의 특훈이 있을 거라는 김유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여태 같이 수련을 하긴 했지만, 사실 무슨 약속을 하거나 했던 건 아니었으니, 딱히 미안해할 일은 아니었다.

뭐,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보면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우울해 보이는 표정이었으니까.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최대한 빨리 끝낼게!”

“아니, 안 그래도 돼. 아예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그래 봐야 저녁이면 올 건데.”

“…진짜 괜찮아?”

“어.”

조심스레 질문하는 김유진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조금 안심했다는 듯 김유진이 표정을 풀었다. 가겠다며 인사를 건네는 김유진을 배웅한 뒤,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약간의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굳이 의식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며칠간, 김유진은 말한 대로 계속해서 김시우를 따라갔다. 뭐, 덕분에 궁술 연습 자체는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김유진의 수다라는 방해물이 없었던 덕에, 집중은 더 잘 됐으니까. 굳이 휴식을 자주 취할 필요도 없어, 계속 활을 쏘기도 했고.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유감스럽지만 의심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더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

“미안! 오늘은 좀 훈련이 많아서!”

태연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김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훈련량이 많을 수도 있지.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무슨 훈련인지는 모르겠지만.’

넌지시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듣지 못했다. 아니, 사실 훈련을 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훈련을 마치고 온 김유진은 여전히 꽤 쌩쌩한 모습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수련할 때보다 덜 지친 듯한 반응. 그리고 여전히 느껴지는 마나 회복의 감각.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속이 조금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어땠어?”

“오늘? 으음…. 별다를 건 없었는데…. 평소처럼 수련했고….”

그런 감정을 숨기고 태연하게 던진 질문. 그를 들은 김유진이 잠깐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아, 도영이는 오늘도 열심이더라! 잘못하면 조만간 나도 따라잡힐지도 모르겠던데?”

“…그래?”

예상보다 더 빠른 성장 속도지만, 그런 건 딱히 놀랍지 않았다. 이도영의 성장에는 그만큼 플러스 요인도 많았으니까.

그보다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건, 김유진의 대답이었다.

하루 종일 노력하는 걸 보면 엄청 성실한 거 같다는 둥, 이론도 잘하니 대단하다는 둥, 당사자가 있었다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띄워주는 표현.

본인에 관한 이야기보다 이도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걸 중시하는 모습에, 의심이 한 톨 더 얹어졌다. 이도영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 충분히 의심스러울 만했으니까.

‘…수련이라면서.’

상세한 수련 얘기는 전혀 없이, 이도영에 대한 칭찬만 입에 담았으니. 의심을 풀려고 해봐야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도영 또한, 수련에 대해서는 별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

살짝 눈가를 좁히고 김유진을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이내 수다를 떨던 김유진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시아야. 요즘 자는 건 좀 어때?”

“잠? 그냥 뭐, 적당히 자는데. 왜?”

“으응,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

물어볼 거? 딱히 감이 오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그…잘 때 뭘 안고 자거나 하는 습관 있잖아. 혹시 어떻게 생각해?”

“…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저격하는 듯한 질문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물음이 이어졌다.

“인형이나 베개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거 안고 자는 건…역시 좀 이상할까?”

“…그건 갑자기 왜?”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순식간에 깨진 평정. 그 틈새로 당황의 물줄기가 꾸역꾸역 밀려왔다. 뜻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도영이 말했나?’

아니, 그럴 리 없다. 설령 둘이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아니, 사귀는 사이라면 더 그럴 리가 없었다. 애인 앞에서 다른 여자랑 있었던 일을, 심지어 그런 일을 밝히는 미친놈이 어딨어.

‘그러면 어떻게?’

점심마다 침실을 청소하는 사용인이? 그럴 리도 없었다. 그날 이도영이 나간 다음, 한동안 침대에서 바둥거린 탓에 사용감은 충분했으니까. 나와 이도영이 같이 잤다고 판단할 건덕지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때 들켰다면, 굳이 지금 와서 말할 이유도 없었다. 아예 묻을 거면 묻어두고, 물어볼 거면 진즉 물어볼 것이지. 왜 이제 와서 그 일을 꺼낸단 말인가?

‘견제? 도발? 단순히 찔러보기?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만약, 아주 만약 김유진이 이도영과 사귄다고 해도, 김유진은 이런 음습한 도발을 걸어올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차라리 바로 내게 연애 사실을 밝히면 밝혔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질문을?

복잡해진 머리에 속으로 끙끙 앓던 순간이었다. 재촉하듯 김유진이 다시 한번 질문을 건네왔다.

“시아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그, 그런 거?”

아니, 모르겠다. 무슨 의도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어디까지 아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그를 짐작할 수 있을 리도 없지만.

“뭔가 껴안고 자는 거 말이야.”

그리고 그런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서 내밀어진 질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이 움직였다.

“…그, 싫어하는 건 아니긴 한데.”

“그러면 좋아해?”

“구, 굳이 따진다면…좋아하는 편이지만…. 아니, 그런데 그건 왜?”

“헤헤, 그냥!”

당당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윽고 내가 한 대답의 뜻을 깨달은 순간, 결국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그냥 인형. 그러니까 인형 말이야.”

“…응? 응! 인형 말이야!”

황급히 되지도 않는 변명을 주워섬기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래서 이건 왜 물어본 거야?”

“그냥? 나도 인형 좋아해서 한번 물어봤어! 에헤헤, 시아도 인형 좋아하는구나!”

“…그, 그렇지.”

딱히 인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방금 내뱉은 말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이었으니.

고민도 잠시, 어떻게든 난감한 이야기를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이내 다시 피어난 의문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 그래서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대체.’

안 그래도 답답한 속에, 돌덩이가 하나 더 얹히는 듯한 기분.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마나 회복 시간에 이도영을 탐문한 결과, 이도영은 누구에게도 그날의 일을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애써 묻었던 일을 다시 파헤친 탓에 분위기가 급격히 어색해지긴 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또 김시우를 따라간 김유진과 이도영을 뒤로 하고 홀로 수련장으로 향했다. 과녁에 기계적으로 화살을 쏘아낸 지도 한참, 수련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진짜 모르겠다.’

요즘 김유진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심정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도영을 좋아하는 거라고 보기엔 애매한 반응이긴 했지만, 정작 다르게 해석하기에도 영 감이 오지 않는 태도. 그에 고민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또 다른 의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만약 좋아하는 게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사실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둘 사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이도영에게서 조금 멀어지는 게 맞겠지.

나는 이도영과 사귈 생각은 없으니, 김유진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셋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만약 그렇다면 김유진에게 양보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싫어.’

그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김유진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굳이 고민하지도 않겠지. 이미 김유진은 내 소중한 친구였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도영이라고 내 친구가 아닌 건 아니었다. 물론 처음 다가간 건 단순히 주인공이라는 이유뿐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걸 떠나서라도, 그냥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모르겠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김유진이 이도영을 좋아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원작에 기대기에는, 이미 달라진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텅 빈 수련장에 앉아 한참 고민에 잠겼다. 며칠 전과는 달리, 푸른 하늘을 봐도 전혀 속이 개운해지지 않았다. 일렁이는 감정을 억누르려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다. 요즘 김유진의 행동이 이상한 건 맞지만, 이도영을 좋아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둘은 벌써 왔나.’

어쩐지 조금 소란스러운 저택 내부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이내 단둘이 저택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는 감정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애써 표정을 정돈한 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펑! 퍼엉!

기다란 종잇조각 비슷한 것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귓가에 따가운 폭음이 연신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온몸에 뿌려진 잔해를 보며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폭죽?”

당황으로 딱딱히 굳어 있기도 잠시, 이내 이 폭죽을 쏘아낸 장본인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짠! 어때? 놀랐지!”

“아하하, 많이 놀랐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은 김유진과, 이 상황이 조금 낯부끄러운 듯 어색하게 웃는 이도영.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뭔….”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게 다가온 김유진이 손에 들린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괴악한 폰트로 HAPPY BIRTHDAY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요란한 장식이 된 고깔모자. 얼떨결에 그걸 받아 들자마자, 이내 김유진과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시아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시아야, 생일 축하해.”

…생일?

아니, 잠깐. 잠깐만. 이게 대체….

뭔데, 이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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