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개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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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타고났으나, 타고난 품성이 그를 썩히고 있다. 강혜성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까지는 되지 못한다고 하나, 수재 정도는 되는 재능. 최고에 이를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열심히 갈고 닦는다면 충분히 최상위권까지는 이를 수 있는 재능을 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재능에 걸맞은 노력을 기울일 의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저 재능만으로도 최고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처음 사관학교에 입학한 직후, 그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재능 하나만을 버팀목으로 삼기엔, 그 재능에 이어 노력까지 겸비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때의 충격을 간단히 비유하자면,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모의고사를 치른 후, 결과를 받은 고등학생이 느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충격을 디딤돌로 삼아, 노력을 불러오는 마중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재까지는 아니라고 하나, 충분한 재능을 가진 건 확실했으니까. 제대로 노력했더라면, 고작 상위권에 걸치는 수준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고른 것은, 최악에 가까운 선택지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을 보며 느끼는 열등감을, 자신보다 수준 낮은 이들을 멸시하며 해소한다.
자신의 발전에 있어서도 하등 쓸모없고,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도 않은 행동. 그리고 그런 행동의 말로는 뻔했다.
결국 노력 없는 재능의 한계에 도달한 뒤, 다른 이들의 실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유급하거나, 아니면 그 전에 퇴학당하거나. 그에게 남은 미래는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영과의 결투에서 패배한 이후, 그의 행동은 꽤 바뀌었다. 고작 기초 마법, 물론 그 수량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측면도 있었으나, 평소 무시하던 이에게 패배했다는 경험은, 그에게 꽤 굴욕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태도는 꽤 큰 변화를 맞이했다. 재능을 믿고 안주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수련을 행한다. 물론 그 강도가 높지는 않았으나, 이전에 비하면 괄목상대한 변화라고 할 만했다.
물론 그 변화의 이유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변화 자체는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복수심 자체는 질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 테니까.
하지만 사유와 상관없이, 그에게 잠들어 있던 재능은 정직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간당간당한 상위권에서 확고한 상위권으로, 그리고 확고한 상위권에서 최상위권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비록 진짜 최상위권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이전의 패배를 설욕할 수준은 충분히 되는 실력이었다.
이전의 기초 마법, 매직 미사일과 실드 따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실드 수백 개를 겹쳐 씌워도 순식간에 파괴해버릴 수 있고, 매직 미사일 수백 발이 날아와도 방어 마법에 흠집조차 낼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을 품은 강혜성이 대련 링 위에서 맞이한 것은, 상정한 적 없었던 공격 수단이었다.
“…검? 진심이냐?”
“어, 진심이야.”
중단세를 취한 채 그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이도영의 모습. 휴교 전까지 검을 깔짝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마법만 수련해도 모자랄 판에, 주제도 모르고 검술까지 익히기 시작했다는 건 꽤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한 번 이겼다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냐? 아니면 맛이 가버린 거냐? 배운 지 몇 달도 되지 않는 검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하지만 도를 넘은 우스움은 황당함으로 수렴하는 법. 고작 몇 달. 본래라면 신체를 단련하는 것조차 무리인 시간이었다.
물론 현재 이도영은, 무예에는 일자무식인 눈으로 봐도 꽤 단련된 신체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를 상대할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벌써 쌓아 올렸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검을 사용한다는 건, 마법으로 자신을 상대하는 건 포기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 생각을 한 강혜성이 사납게 이도영을 노려보았다.
“…쯧. 그래. 차라리 핑계라도 대고 싶은 거냐? 마법이 아니라 검으로 상대해서 진 거라고? 아니면 기초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재능 탓에, 아예 마법은 포기한 거냐?”
어느 쪽이건 유쾌한 대답은 아니었다. 전자가 답이라면 정신승리의 여지를 남겨준다는 게 불쾌한 일이고, 후자가 답이라면 그런 머저리에게 패배했던 자신이 더욱 우스워지는 일이니.
“둘 다 아냐.”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대답을 들은 강혜성이 표정을 팍 찌푸렸다.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도영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이전부터 느꼈지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었다.
“…그래. 어느 쪽이건 상관없긴 하지. 어차피 처발릴 놈인데.”
으르렁대듯 중얼거린 강혜성이 마주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교관의 신호가 울려 퍼지자마자 허공에 어마어마한 바람이 몰려들었다.
휘오오오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람. 그 바람을 몸에 휘감은 강혜성이 손을 까딱이자, 순식간에 바람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드 따위론 못 막을 거다. 몇 겹을 겹쳐도 모조리 깨 버릴 거거든.”
물론 모습을 보아하니, 이도영은 마법을 시전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검을 치켜든 채, 고요히 그를 바라보는 모습. 다시 한번 치솟은 짜증에 눈을 부라린 강혜성이 마법을 쏘아냈다.
콰아아!
묵직하기 짝이 없는 바람이 이도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그리고 순식간에 근접한 마법을 향해 이도영이 가볍게 검을 찔러 넣은 순간이었다.
푸시식!
“…무슨?”
이도영을 향해 날아들던 마법이 순식간에 형체를 잃고 스러졌다. 동등한 충격에 의해 상쇄된 건 아니었다. 그가 쏘아낸 마법에 비하면 이도영의 검에 깃든 마력은 한참이나 부족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상쇄되었다면 저렇게 허무하게 마법이 사라질 리 없었다.
수준급에 이른 검사라면 마력이 깃든 검으로 마법을 막아낼 수는 있지만, 아예 위력을 나누지 않고 저렇게 소멸시킬 수는 없다. 마치 마법 시전에 실패한 것처럼, 저렇게 마법을 흩어버릴 수는 없다.
“실전에서 써보는 건 처음인데…. 다행히도 성공했네.”
이도영의 말을 들은 강혜성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그래, 순수하게 저 현상 자체만 보면 낯선 현상은 아니었다. 제대로 익히지 못한, 술식이 불완전한 마법을 시전했을 때의 현상과 동일했으니까.
안정되지 못한 술식의 구조가 붕괴하고, 그 붕괴한 틈을 타서 마나가 흩어져버린다. 방금 일어난 현상과 동일한 반응이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마법은 술식의 구조가 안정적이었다는 점.
“…설마.”
방금 일어난 일을 파악한 강혜성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원리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혜성 정도의 마법사라면. 아니,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의 종류를 파악한 후, 그 술식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그 취약점을 파악한 뒤, 찔러 넣은 검을 통해 술식을 붕괴시킨다. 그래, 듣기로는 참 쉬웠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마법의 술식을 읽어내려면, 일단 그 마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다고 해도, 유동적으로 변하는 술식을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여기까지 가능하다고 쳐도, 그 방법을 실행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애초에 마법을 이루는 술식은 이중 삼중으로 방어 장치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검에 깃든 마력을 휘둘러, 술식을 방어째로 깨부숴버린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건 이미 마법을 상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까 그 모습처럼 마법을 취소시켜버리는 게 아니라.
그리고 그건, 검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체 강화 계열 초인이 사용하는 농축된 마나는 그런 작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섬세함을 넘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마법의 방어 장치는 자물쇠, 농축된 마나는 자물쇠 구멍보다 더 큰 막대였다. 애초에 자물쇠 구멍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락픽은 자물쇠를 절대 열 수 없다. 깨부수는 것만이 가능할 뿐.
“…이 새끼, 설마.”
“응, 맞아.”
당황 섞인 질문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이 이내 마법을 시전했다. 간단한 매직 미사일. 그 자체로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마법이지만, 지금 이도영의 상태를 고려하면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농축된 마나가 회로에 찌꺼기처럼 남은 상태에서는 마법을 구사할 수 없다. 기름을 잘못 넣은 자동차 엔진처럼 서클이 망가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찌꺼기처럼 남은 마나가 서클의 유동 자체를 방해하기에, 검과 마법의 병행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러했다.
“….”
여태까지 불가능했던 검과 마법의 병행. 그리고 그것을 유일하게 성공해낸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혜성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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