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불안(1)
* * *
“허….”
감탄 섞인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실력이 늘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방금 이도영이 보인 기예는 또 다른 영역에 속해 있었으니까.
디스펠 매직. 마법의 술식에 간섭해, 마법의 시전 자체를 취소시켜버리는 반칙과도 같은 기술.
전례가 한 번도 없는 기술은 아니었다. 대마법사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수준이 낮은 마법 정도는 개입해서 해체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런 기술의 존재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성립시키는 데는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상대가 시전한 마법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
그리고 두 번째는 이미 완성된 마법의 구조조차 흔들 정도로 막대한, 그러면서도 구조를 파괴할 정도로 섬세한, 대마법사 급의 마나 지배력.
그리고 그 두 가지 조건을 갖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마나 지배력이 아니더라도 첫 번째 조건조차 불합리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난도를 자랑했으니까.
심도 깊은 이해. 여기서 말하는 이해는 단순히 그 마법의 구조를 알고 있는 정도를 칭하는 게 아니다. 이해하고 시전할 수 있는 걸 넘어, 타인의 마법 구조를 한순간에 읽어내고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마법 자체에 익숙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첫 번째 조건을 충족했다 하더라도, 두 번째 조건은 더욱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완성된 마법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의 마나 지배력은, 대마법사 급은 되어야 지닐 만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쟤가 대마법사 급이라는 건 아니지만.’
비록 각성 이후 이도영의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다고 해도, 벌써 대마법사의 경지를 입에 담는 건 시기상조도 한참 시기상조였다. 아직 실력으로 따지면 김유진도 따라잡지 못했을 테니까.
“…디스펠? 어떻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김유진이 대련 링 위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기술 자체가 신기하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애초에 대마법사의 딸에게 있어 저 기술이 낯설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낯설지 않은 기술이라고 해도, 그걸 이도영이 시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기도 잠시, 여전히 의문 섞인 김유진의 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검 덕분이야.”
“검 덕분이라고?”
“어.”
순수하게 마법만 파기도 바빴을 김유진은 바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이도영 본인의 마나 제어력으로는, 허공을 격하고 마법에 간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마법 부근의 마나는 제어 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제어한다고 쳐도 마법에 간섭하는 데는 또 어마어마한 섬세함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허공을 격하는 게 아니라, 매개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닿는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지금 저건, 마법을 이루는 마나에 간섭한 게 아니라 검을 매개체로 써서 직접적으로 마나를 때려 박은 거야.”
섬세한 운용 자체가 훨씬 편해지는 것뿐 아니라, 부근의 마나를 제어하기 위해 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그냥 본인의 마나를 사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 방식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 하지만 그러면 농도가 안 맞는데?”
“응, 그렇지.”
김유진의 지적대로, 그 짓거리는 서클을 이용하는 마법사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코어를 사용하는 무인의 방식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무인이 사용하는 마력은, 마법사의 마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농도가 진했기에 그 또한 합당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할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뭐, 특성이겠지.”
“….”
성의 없는 대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저건 권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예일 테니까.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쩐지 조금 굳어진 안색. 그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 이내 대련 링 위의 상황이 일변했다.
***
“….”
이를 악문 강혜성의 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마구 맴돌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전혀 실력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검과 마법의 동시 사용이라는 신기원을 보인 것 치고는, 지금까지 이어진 대련에서 이도영은 거의 수세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이도영이 궁지에 몰렸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것은 강혜성이었다.
그가 쏘아내는 마법은 대부분 막히고, 일부, 검의 사각에서 날아가는 마법은 똑같은 마법으로 상쇄된다. 마치 철벽과도 같은 수비에 강혜성은 슬슬 지치기 시작한 몸을 자각했다.
서클은 삐걱거리고, 과도한 연산으로 머리에는 열이 올랐다. 그런 자신과 대조되게,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영을 보며 강혜성이 이를 갈았다.
“…놀리는 거냐?”
끝내려고 한다면 진즉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대련을 이어가는 지금, 이도영의 실력은 실시간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던 검로가 점점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을 경험치용 허수아비로 쓰는 듯한 태도. 그 태도를 깨달은 순간 강혜성의 눈이 뒤집혔다.
후우우우웅!
삐걱거리는 서클을 강제로 회전시킨다. 이미 대련이라는 것도 잊은 듯,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서클을 쥐어짜는 강혜성. 그 모습을 본 교관이 대련을 중지시켜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미안.”
“…뭐?”
갑작스러운 사과에 강혜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을 본 이도영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실전에서 써본 건 처음이라 이리저리 실험해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분 나빴나 보네?”
“….”
무심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말에 강혜성이 순간 혼란을 겪었다. 비꼬는 건지, 진심인지 헷갈리는 태도였으니까.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어진 대꾸에 강혜성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뭐, 이젠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아. 더 해봤자 네 말 대로 놀리는 것밖에 안 될 것 같거든.”
“…이, 개자식이…!”
태연스럽게 자신을 조롱하는 말. 더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폭주하듯 쏘아 댄 마법이 이도영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량. 그 마법에 맞선 이도영의 행동은 간단했다. 치켜 든 검을 내린 이도영이 이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휘오오오오!
그 순간, 순식간에 몰려든 바람이 이도영의 몸을 감쌌다. 바람 마법에 특화된 강혜성의 것보다도 오히려 더욱 거대한 바람이었다.
이도영의 몸을 향해 밀어닥친 바람과 그를 보호하듯 감싼 바람. 두 바람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날뛰었다. 마치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파공성이 퍼져나가기도 잠시, 이내 승패가 갈렸다.
콰아아아아!
상대를 집어삼키고 더욱 덩치를 키운 바람이 강혜성을 향해 쇄도했다. 순식간에 밀려든 바람이 강혜성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교관의 말이 울려 퍼졌다.
“이도영 승!”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교관의 말을 넘긴 이도영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치욕과 분노가 섞여 일그러진 얼굴. 그 모습을 보며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결국 기둥서방한테 져 버렸네. 그것도 두 번이나.”
“너, 이 새끼….”
이를 악무는 강혜성을 보며 마지막 남은 앙금을 털어낸 이도영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설욕이라면 설욕이었지만, 의외로 별다른 감흥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요구해야 할 게 생각난 이도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상관없지만, 시아한테는 사과해. 당사자는 몰라도, 뒷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쁠 테니까.”
“….”
아니, 사실 유시아의 성격을 고려하면 딱히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받을 수 있는 사과를 받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생각을 마친 이도영이 대답을 촉구하듯 강혜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 입술을 질끈 깨문 강혜성이 꽉 막힌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렸다.
“…그래.”
여전히 떨리는 어깨. 예전에는 바라볼 수도 없던 상대의 굴욕감으로 젖은 얼굴을 흘긋 본 이도영이 대련 링에서 내려갔다. 통쾌함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리 나쁜 기분도 아니었다.
***
“이겼네.”
뭐, 예상한 결과였다. 재능만 믿던 놈이 노력을 깨작 했다고 그새 자신감이 붙었던 모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도영도 성장했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한 듯 하니까.
물론 이제 와서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박수를 쳐줄 만한 일이었지만, 상대가 나빠도 한참 나빴다. 재능으로도, 노력으로도, 밀릴 수밖에 없는 상대였으니.
“….”
그렇게 묘한 감상에 잠기기도 잠시, 이내 방금 대련을 본 이들이 나누는 감탄 섞인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다.
“…쟤, 방금 마법이랑 신체 강화를 동시에 쓴 거 맞지?”
“어, 특성 덕분에 가능했다는데?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그런 게 이거 때문이었나 봐.”
“…잠깐만. 몇 달? 저게 몇 달 만에 배운 검술이라고? 나보다 나은 것 같은데?”
이전의 대련 때도 그렇지만, 오늘의 대련이 하도 압도적이었던 탓에 이도영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바뀐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세계 최초로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마검사라는 타이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하는 실력, 그리고 각성 이후 훤칠해진 외모까지. 이 정도로도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쟤, 지금 보니 되게 잘생기지 않았어?”
“응, 예전에도 귀엽긴 했는데, 지금 보니까 엄청 잘생겼다. 몸도 좋고.”
그러기도 잠시, 이내 여학생들의 대화에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원작에서도 이와 비슷한 묘사가 있긴 했지만, 솔직히 실제로 들으니 되게 오글거렸다.
‘…쯧. 빨리 끝낼 것이지.’
왜 쓸데없이 대련을 질질 끌면서 괜히 폼을 잡는단 말인가. 괜한 짜증에 이도영을 째릿 노려보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유진아, 왜 그래?”
“으, 응? 뭐, 뭐가?”
“어째 표정이 좀 나빠 보여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분명 순간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내 질문을 들은 김유진이 당황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내, 내가? 아닌데?”
“…그래?”
거짓말이라는 게 확연히 티가 나는 반응. 그에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잠시, 이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숨기고 싶다면 굳이 팔 생각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프라이버시는 있는 법이니까.
“뭐, 내 착각이었나 보네.”
“으, 응. 그러게….”
“….”
그러기도 잠시, 어색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눈치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뭐, 짐작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방금 보인 감정은 읽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김유진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 * *